제23화 적응해 나가는 나날
“주인공이 되는 기야.”
“이런 주인공은 싫어요.”
을지부루의 말에 고빈이 글썽이는 눈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원하는 거 아이간?”
“원치 않아요.”
“사내는 말이디. 원티 않아도 해야 할 때가 있디.”
“그게 지금이디.”
그 말을 끝으로 부루가 대부를 어깨에 터억 하니 걸쳤다.
그 분위기가 몇 마디 더 따지면 한 대 후려치기라도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아.”
빈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부루가 들고 있는 것 정도는 아니지만 충분히 묵직한 도끼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일전에 부루가 말한 것을 실천하는 중이었다.
밥값하게 만든다는 말.
“쪼개라우.”
“…….”
빈의 앞에는 어디서 구해 왔는지 모를 통나무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그걸 멍하니 바라보는 빈의 귓가에 부루의 음성이 들려왔다.
“꼴통이 쪼개지는 수가 있디.”
그와 동시에 빈의 도끼가 하늘로 솟구쳤다.
“빠샤!”
뻐억!
관사 마당에서 울려온 타격음에 강문호 대위가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일입니까?”
“웃기는 일이디.”
“…….”
빈이 앞이마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웅크린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내래 통나물 쪼개랬디 대가릴 쪼개라 했네?”
“아후우우!”
빈은 일어서면서 빛의 속도로 이마를 연신 문질렀다.
“똥내 나니 그만 문떼라우!”
“정말 아프다니까요!”
“맞았으니 아프디. 다시. 힘으로 하디 말고 정확히 툭 건들라우. 알간?”
“말이 그렇지 어떻게 툭 치면…….”
툭.
쩍!
부루가 대부로 툭 건드니 통나무가 쩍하고 갈라져 양옆으로 떨어져 내렸다.
“쉽디?”
“그, 도끼가 크고 무거우니…….”
툭. 쩍!
이번엔 대부가 아니었다.
손가락이었다.
부루가 빈에게 손가락을 내보였다.
“상상해 보라우. 이거이 비니 꼴통에 살짝 얹으면 어케 될디 말이야.”
“흐아압!”
툭!
빈이 도끼를 정확히 내렸다.
그리고 도끼날은 통나무 중앙에 그대로 안착했다. 물론 쪼개지진 않았다.
그걸 본 부루가 도끼를 집어 들었다.
“뭐하시려고요?”
“생각이란 걸 할 필요 없는 대가리 하나 떼 버릴라는 거이디.”
“흐이익!”
쩌억!
인간이 위기에 몰리면 초인적인 능력을 낸다는 말이 있다.
빈은 생명의 위기를 딛고 통나무를 쪼개는 데 성공했다. 물론 힘은 조금 들어갔지만, 아까처럼 통나무를 후려쳐 튕겨낸 다음 마빡으로 받아내는 참사는 없었다.
“서, 성공이다!”
“기래. 다 하면 말하라우.”
“예?”
“저기 있디 않네.”
빈이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쪽에 통나무들이 작은 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몇 개요?”
“말도 못 알아듣네? 다 하면 말하라 했디 않네.”
“…….”
빈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빈을 뒤로하고 부루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정말 시키실 겁니까?”
“기럼? 질긴 껍데기 하나 믿고 설치는 꼬라질 보란 말이네?”
“아, 그건 아닙니다만…….”
강림자가 내려오는 순간 소환자 역시 신체적인 능력이 향상이 된다.
물론 초인이 되는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방어력만큼은 획기적으로 올라간다.
피부도 질겨지고 타격에도 어느 정도 버티게 된다. 생존력이 올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저렇게 훈련시킬 생각을 하는 건, 초기 침식 때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때야 뭐라도 해야 할 때였으니까.
“그런데 저건 어서 났습니까?”
강 대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말이디?”
“저 통나무들요. 관사에는 저런 게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내래 저 아새끼래 사람 만들려고 해 왔디.”
“예?”
“기럼 쉬라우.”
방으로 들어가는 부루를 보며 강 대위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통나무 더미를 바라봤다.
“해와?”
“자기야. 여기 수목원 철거해?”
“그, 그러게?”
연인들은 평소 산책하던 길 양 옆에 가지런히 심어져 있던 메타세콰이어 수목들이 밑둥만 남아 있는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그게 아니라는 건 곧 밝혀졌다.
“어떤 개애애애새애애애!”
관리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무너지며 욕설을 날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형님들. 자 오늘 백 연타 갑니다!”
빈이 힘차게 도끼를 들어올렸다.
쩌억! 쩍! 쩍!
언제 친해졌는지 빈의 앞에는 관사 관리병 하나가 연신 통나무를 올려주고 있었다.
그걸 빈은 쉴 새 없이 한방에 쪼개고 있었다.
-오오! 원샷 원킬!
-ᄏᄏ 이걸 뭐라고 하지 쪼방?
-통나무 쪼개는 방송이니 통쪼방이 맞지 않아요?
-꼬비니뭐햐 님이 파프리카 100개를 선물했습니다.
“웃샤아! 꼬비니뭐햐형님 알랍! 우싸아아!”
쩌억!
연신 통나무를 쪼개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강문호 대위가 혀를 찼다.
“저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인가…….”
이틀 전까지만 해도 죽을 동 살 동 해서 걱정을 했는데 사흘째 되는 날 보니 오히려 이걸 콘텐츠 삼아 방송을 하고 있는 고빈이었다.
“제법 빠르구만 기래.”
“아, 예. 뭐 방법을 떠나 곧잘 하는 것 같습니다.”
그때 관사 앞에 경찰차 한 대가 와서 멈추었다.
강 대위가 그걸 의아한 시선을 바라보았다.
“응?”
사관이나 부사관 등 군인들이 몰려 사는 이곳에 헌병차도 아닌 경찰차가 이곳에 올이 얼마나 있겠는가.
“저, 저거 맞아요! 저기 저거, 구석에 가지쳐 놓은 거 봐요!”
관리인 복장의 중년인의 울분에 찬 외침에 경찰들이 성큼성큼 빈에게 다가갔다.
“이거 어디서 났습니까?”
“형님들 잠시만요! 저 아저씨 방송중이라…….”
빈의 말에 경찰이 혀를 찼다.
“차라리 먹방을 할 것이지, 다 큰 어른이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예? 뭐하긴 도끼질……어? 이 나무 때문에요?”
“지금 장난합니까?”
경찰의 말에 빈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에이. 오해가 있으신대요. 제가 소환잔데요, 제 강림자가 베어 온 거에요.”
“예. 그럼 서로 가시지요.”
“자, 잠깐만요! 제 강림자가 멋대로 베어 온 거라니까요! 아저 씨! 말 좀 해 줘요!”
빈이 경찰들에게 끌려가기 직전 부루를 향해 억울함을 토로했다.
빈의 베란다에서 빈을 바라보고 있던 부루가 입을 열었다.
“……내가 벤 거이 맞디.”
“그렇죠!”
“길티.”
부루가 인정하자 빈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지만 경찰들은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난하나. 강림자는 소환자의 말을 따른다는 상식도 모를 거 같아요?”
“아니, 그게 저 아저씨는 특이해서…….”
“내래 특이하디.”
“……아저씨?”
“내래 아저씨디.”
“…….”
갑자기 앵무새가 된 부루를 보며 멍한 표정을 짓는 빈의 팔목에 경찰들은 은팔찌를 채워 주었다.
그리고 끌려가는 빈을 보며 채팅창은 파프리카가 난무했다.
-똥꼬발랄 님이 파프리카 444개를 선물하셨습니다.
-꿀잼! 이거 레알?
-비니 꿀잼 오지고!
-허니잼 님이 파프리카 10002개를 선물하셨습니다.
끌려가던 빈을 멍하니 바라보던 관리병이 화면의 챗팅창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형님들 나이샤아앗! 울 비니행님 사식 넣는 데 보태겠습니다!”
-ᄏᄏᄏ 사식 오지고!
-사식 지리고!
차문이 닫히고 열려진 틈새로 빈이 외쳤다.
“제발! 강 대위님! 설명 좀!”
하지만 이내 창문이 닫히고 눈물콧물을 매단 빈이 차창에 얼굴을 뭉갠 채 멀어져 갔다.
그 모습을 보던 강 대위가 고개를 돌렸다.
“…….”
강 대위의 시선을 느낀 부루가 물었다.
“간 거이 맞디?”
“예.”
“기럼 된 거디.”
부루가 뒤돌아섰다.
마치 이제 일 끝났으니 쉬러가는 것 일꾼처럼 말이다.
“이거 누명이잖습니까.”
“누명이 아니라 적응이디. 기리고 며칠 힘들었으니 꽁밥 먹으며 쉬는 거도 나쁘디 않디. 저거이 나라 밥 먹는 거디 않네?”
“그, 그건 그렇지만.”
“기럼 넌 와 대신 변명 해 주디 않은 거이간?”
“…….”
강 대위는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연구 대상이 더 중요했다는 그 진실이 꺼내기가 참으로 힘들었다.
* * *
열심히 삽질하고 있는 고빈을 보며 을지부루가 팔짱을 낀 채 훈수를 두고 있었다.
“날래 하라우. 이거이 다 수련이니까네.”
“누구세요? 저 아세요?”
그런 부루를 보며 빈이 눈을 말똥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삽질이 보이디 않네.”
“왜요? 보이면 안 되나요? 아저씨 이상한 분이시네요? 저 아세요?”
자꾸 기어오르는 빈이었다.
물론 믿는 바는 있었다.
저쪽에 경찰과 관리인이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빈은, 결과적으로 약간의 벌금과 노동형에 처해졌다.
노동은 부루가 파괴하고 빈이 쪼개낸 메타세콰이어 숲길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물론 중기로 하기는 했지만, 관리인은 굳이 빈을 부려먹어야겠다며 지켜보고 있던 것이었다.
“왜요? 적응하셨다며요?”
“…….”
계속 깐족이는 빈을 보던 부루가 천천히 대부를 들어올렸다.
“그, 그걸로 치시게요?”
“굳이 그럴 필요 있간?”
“어, 어디 가세요?”
빈은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부루를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터벅터벅 나아간 부루가 큰 소리로 외쳤다.
“조심하라우!”
그 외침과 함께 대부를 휘둘렀다. 깔끔한 휘두름.
한 그루의 생명이 동강나는 순간이었다.
“저 미친!”
“아저씨! 미쳤어요!”
빈이 외쳤다.
부루가 답했다.
“내래 미쳤시요!”
또다시 한 그루. 그 사이 경찰과 관리인이 질주해 왔다.
“멈춰요오오오!”
빈이 절규하자 부루가 멈췄다.
마치 말 잘 듣는 아이마냥.
“어?”
빈이 뭔가 이 장면이 익숙하다고 느낀 순간, 관리인이 피를 토하는 외침을 터트리며 달려왔다.
“너이 개애애새에에에에!”
칠진 욕설을 들으며 빈이 눈물을 떨궜다. 험난한 그의 앞길을 위한 눈물이었다.
* * *
주지환 국정원장이 경찰차를 타고 울고 가는 고빈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얘는 왜 자꾸 경찰을 들어가?”
“그게 강림자 시켜서 나무를 하다가 끌려갔답니다.”
“나무를 왜?”
“그건 저도 잘…….”
코드명 호크아이로 알려진 것과 달리 지금 이 강림자는 대부를 쓴다고 보고가 들어와 있었다.
심지어 이름도 다르다는 것까지 밝혀졌다.
을지부루.
처음 호크아이로 알았던 것은 결국 착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심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너무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후우. 옛날에도 느꼈지만, 이 일당과 엮인 일에 뭔가 정상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던 일이 없군.”
주 국장의 한숨에 요원들이 머리를 긁적였다.
“미국 쪽은?”
“우리 정보를 보내줬습니다. 코드명 호크아이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래? 뭐래?”
“온답니다.”
짧고 간단한 대답에 주 국장이 인상을 팍 구기며 욕설을 뱉었다.
“이 새끼들은 뭐 처먹을 거 있다고 여길 와!”
“당시 꽤 엮인 게 많았잖습니까.”
“그래서 그때 이거저거 주요 증거품 주워갔잖아!”
주 국장이 버럭 소리 지르자 요원이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제, 제가 가져간 건 아니지 말입니다.”
“끙, 미안하다. 네가 CIA도 아닌데.”
“아닙니다.”
자리에 털썩하고 엉덩이를 붙인 주 국장이 중얼거렸다.
“존이 오려나……. 그래 아마도 존이 오겠지.”
한숨만 흘러나오는 주 국장이었다.
먼가 알아내기도 전에 대상을 빼앗기는 느낌이었다.
침식 전에도. 그리고 침식 후에도 여전히 세계최강은 미국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