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22화 (22/305)

제22화 그들이 저지른 것은

-전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균열이 벌어지면서…….

송가은은 무의식적으로 텔레비전을 틀어놓기는 했지만 딱히 집중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방금 끓인라면을 식탁위로 가져가는 데 집중할 뿐이었다. 그때 그녀의 귓가를 자극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특히 현장에는 월드스타 판도라의 멤버들도 있었으나 다행히 아무런…….

판도라라는 말에 가은의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그대로 얼어붙듯 멈추어 버렸다.

-강림자의 활약으로…….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에 익숙한.

빛과 함께 떠나갔던 그의 일행 중 하나가 눈아 또렷하게 박혀 왔던 것이다.

* * *

전화통에 불이 났다.

이어 판도라의 사옥으로 속속들이 사람들이 몰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도착한 것은 송가은 작가였다.

가은이 차에서 내려 뛰어갈 때 즈음 도착한 차에서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 작가, 같이 가!”

“아, 피디님!”

그녀를 불러 세운 건 바로 강찬성 피디였다.

십년의 세월이 적지는 않았는지, 머리는 염색으로 검게 바꿀 수 있어도 늘어난 주름은 어쩌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차 밖으로 빠르게 뛰쳐나오는 모습은 그가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로비에 올라가자 얼떨떨한 표정의 직원이 그들을 안내했다.

갑자기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니 놀랄 만도 했다.

그들이 도착한 강당 입구에는 그들만이 알 수 있는 모임 명 하나가 적혀 있었다.

[고비파 모임장]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되고 있었다.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들이 잔뜩 있었다.

“육 감독! 먼저 왔네?”

“어이쿠! 오셨습니까? 아! 송 작가 어서와!”

서울 액션 스쿨의 대표 육의찬 감독이 강 피디와 가은을 향해 손을 흔들며 반겼다.

육 감독 뒤로 평소 안면이 많았던 육 감독의 제자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녀는 인사를 하는 등 마는 둥 했다.

그리고는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누군가를 찾아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송 작가님 곧 나오니 진정해요.”

그제야 가은은 한쪽에 초췌한 얼굴의 서준모 경장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 형사님! 아까 봤어요! 어떻게 된 거에요? 전화로는 아무런 말도 안 해 주고…….”

끝에 가서는 거의 울먹이다시피 하는 가은의 모습에 서 경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송 작가님 진정하세요.”

그때 최후배 반장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아, 최 경장님?”

“지금은 경윕니다. 누구랑 다르게 제대로 승진했죠.”

“자랑이다. 왜? 옛 썸 타던 여자 잘 사냐고 물어보지?”

“캬아악!”

서 경장의 말에 최 반장이 그의 멱살을 잡았다.

“난 다 잊었다고요!”

“컥! 이거 놔! 여자 월드컵 공인구 같은 놈아!”

그의 별명이다. 전 세계 여인들에게 걷어차인다는 의미로 붙은.

그때 뒤늦게 곽주호와 광호 등이 들어왔다.

그렇게 사람들로 득실거릴 때 안쪽의 문이 열리며 전창걸 대표와 승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사람들의 기대감 속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건, 고빈이었다.

“아, 안녕하십…….”

갑자기 쏟아진 시선에 빈이 나름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지만 사람들이 우루루 그를 스쳐 지나가 뒤로 향했다.

그의 뒤로 모습을 드러낸 을지부루에게로 말이다.

“하,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장군!”

“정말 다시 오신 겁니까?”

강 피디와 육 감독이 감동에 찬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그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가은이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다, 다들 잘 계셨던 건가요?”

강림자라는 것은 이미 예전에 죽은 이를 말한다.

그렇기에 가은은 반가움 반, 슬픔 반 섞인 음성으로 질문을 던져왔던 것이다.

그런 가은을 내려다보던 부루가 그녀의 양 어깨를 잡으며 입을 열었다.

“내래 을지부루야.”

“아…….”

“묻고 싶은 건 내가 더 많디.”

그의 이름에 가은은 순간 다리가 풀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양 어깨를 잡아 준 부루의 손길 덕에 꼴사납게 주저앉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다들 부루의 대답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중에서도 빈이 가장 충격이 큰 모습이었다.

“내, 내가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그런 빈의 어깨를 강문호 대위가 두들겨 주며 위로를 건넸다.

“포기해라. 처음부터 그건 글렀어.”

지금 그는 잘 봐 줘야 부루의 심부름꾼, 소위 따까리일 뿐이다.

너무도 특별한 강림자 덕에 다른 소환자와 같을 수 없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부루가 천천히 단상위로 갔다.

“내래 궁금했어야.”

부루의 말에 다들 아쉬움 반 기대 반 섞인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곳을 다녀간 우리 열제께서리 어떤 인연을 만들었는데 말이야.”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부루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복이 많으신 분이디. 이렇게 잊지 않고 띠어와 반기는 이들이 많은 걸 보니 말이야.”

사람들을 바라보며 슬쩍 입꼬릴 올린 부루가 다시 말했다.

“내래 얼결에 와 보니 세상이 개판이 되었디만 말이디. 적어도…….”

천천히 사람들과 눈을 하나하나 마주쳐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기 인연들만은 내래 꼭 지켜 주갔어. 내래 그걸 제일 잘하디.”

부루가 허연 이를 드러내며 자신 있게 웃음을 머금었다.

시간이 늦었지만, 아무도 되돌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이참에 오랜만에 만나 즐겁다는 듯 음식을 시켜 먹고 있었다.

그 와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인 중심에는 부루가 있었다.

그리고 가장 소외된 곳에 빈이 있었다.

그런 빈에게 유일하게 남은 이 하나가 있었다.

바로 강 대위였다.

“넌 안 먹냐?”

“네.”

“맛있는데? 후회 안 하고?”

나름 분위기를 풀어 보려는 듯 강 대위가 던진 말에 빈이 우울한 표정을 한 채 대답했다.

“후회는 이미 하고 있어요. 소숫점 이하를 본 순간부터요.”

그런 빈에게 강 대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삐진 이유가 소환자인 널 아무도 신경 안 써 줘서냐, 아니면 그 라방인지 라이브 방송인지 못 하게 해서.”

“둘 다요.”

“너도 집요하구나.”

“그런 소린 좀 들어요.”

그렇게 푹 꺼져 있는 빈에게 강 대위가 지나가듯 입을 열었다.

“나중에 합방이라도 해 달라고 부탁하면 들어주지 않을까? 그래도 소환잔데.”

“그럴까요?”

순간 파린이(파프리카 TV 어린이) 빈의 눈이 반짝였다.

강 대위의 말에 힘입은 빈이 영업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 빈의 모습을 보며 살짝 웃음을 머금었던 강 대위의 표정이 다시금 어두워졌다.

그가 한쪽으로 나와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신호가 몇 번 반복되고 나서야 전화를 받았다.

[어! 거기 나도 가고 싶었는데!]

“압니다. 어떻습니까?”

전화를 받은 건 구은태 박사였다.

그는 강대위의 질문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우리나라는 아무것도 아니야. 미국은 일부 주가 아직도 수습이 안 되고 있다고 들었다.]

“비공식인가 보죠?”

[맞아.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멀쩡한 건 아니야. 피해가 꽤 커. 그런데 특이점은 지금 균열이 벌어진 곳들이 침식지 주변이 많다는 거야.]

“설마 확장입니까?”

[가능성 있는 이야기지.]

처음 생겨난 침식지 주변으로 균열이 빈번하게 발생되다가 일정 시간이 흘러 새로이 침식지가 생겨난다.

그걸 확장이라 한다.

그렇게 생겨난 침식지가 별도로 영역을 생성하거나 기존 침식지와 합쳐져 크기를 키우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어느 것이든 좋은 게 아니다.

문제는 이 일자체다.

초기 침식의 시작 때 벌어졌던 일들이었다.

그 당시 그 확장을 막아 낸 것은 그렇게 미친 듯이 일이 벌어지던 마지막에 나타난 군단장급 마물을 처리하면서였다.

물론 그건 하나가 아니었다.

막아 내지 못한 곳은 지역 자체가 침식지로 변해 버렸다.

마치 침략자에게 땅을 빼앗긴 것 마냥.

당시 군단장급이라 불린 마물을 막기 위해 투입된 전력만 해도 어마어마했었다.

그때의 기억이 그만큼 뼈저렸기에 그걸 아는 구 박사가 부랴부랴 되돌아간 것이다.

[강 대위 쪽은?]

“아무래도 이쪽도 그걸 의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공무원들이라지만, 데이터는 거짓말을 안 하니까요.”

[허어. 그런데 이번은 조짐이 더 안 좋아. 당시 최초 생성된 침식지 다섯 개 중, 각기 주변으로 대여섯 개의 새로운 침식지가 형성될 뻔했잖은가.]

“그랬지요.”

[그때 반은 막고 반은 못 막아서 지금의 숫자가 된 거고.]

지금 침식지는 스무 개다.

만약 막지 못했다면 마흔다섯 개나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스무 개가 그때처럼 각자 대여섯 개로 침식지를 늘리려 한다면…….

“생각만도 끔찍합니다.”

[맞아.]

“저도 들어가는 대로 정보 좀 모아 보겠습니다.”

[그러게. 그나저나 왜 유독 미국이 그런지…….]

“뭔가 피셜이 있긴 하지만, 정확한 게 없어서 못 믿잖습니까.”

[그렇지. 51구역에서 사고 쳤다는 말이 가장 그럴 듯하지만.]

“어찌 되었든 고생하십시오.”

[알겠네. 그리고 나중에 이야기 좀 해 주게. 사실 이것만 아니었으면…….]

“끊습니다.”

강 대위는 다시 길어지려 하는 구 박사의 말을 서둘러 끊었다.

* * *

“실패했습니다.”

노 박사의 보고에 존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실패할 것을 왜 건드리냐고!”

“하, 하지만…….”

존이 머리를 감싸 쥐며 중얼거렸다.

“갓 뎀!”

51구역의 가장 아래에는 마치 웜홀처럼 일렁이는 원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을 바로 아래에는 검은 돌멩이 하나가 기계장치 위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뼈다구들만이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총이나 낡은 군복의 잔해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뼈의 주인 역시 유추할 수 있었다.

“후우. 이 저주받을 실험을 하는 게 아니었어.”

대한민국 정부를 윽박지르다시피 해서 가져온 물건 등 중 하나가 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아이언맨 슈트라 불리는 것은 미이라를 추가로 몇 양산하는 데에 그쳤지만, 이건 제대로 일을 내 버렸다.

연구하던 도중 저 이상한 소용돌이 형태의 문이 생겨난 것이다.

이걸 문이라고 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 안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으니까.

반대로 이쪽에서는 들어갈 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저것이 생기고 나서 세상 곳곳에 침식지라는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결국 미국은 이 사실을 더더욱 숨길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적 재난을 불러온 이들이 바로 미국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리겠는가.

이 일로 어떤 곳은 인간이 살 수 없는 땅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영국의 경우 왕궁자체가 침식지로 변해 버렸다.

“점점 힘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하아.”

존은 힘겨운 한숨을 내뱉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한쪽 책상위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이 친구야. 그쪽 세상에 가서 즐거운가?”

그 사진에는 한때 지상 최강이라 불렸던 트렌든이 챔피언 벨트를 존과 함께 붙잡고 웃고 있었다.

그때 정보원 하나가 조심히 들어와 테블릿을 내밀었다.

“저 보셔야 할 게 있습니다.”

“뭐가? 새로운 침식지라도 생겼나?”

하지만 정보원은 대답대신 태블릿을 켜서 영상 하나를 재생시켰다.

그걸 보던 존이 떨리는 목소리를 흘렸다.

“Oh my……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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