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비슷하지만 다른
크롸륵!
순간 침을 사방으로 흘리며 러닝독 네 마리가 군인 둘을 향해 덮쳐왔다.
둘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유모차와 아이엄마를 몸으로 가리며 손도끼를 휘둘렀다.
최소한 쳐낼 건 쳐내고 못 쳐내는 건 그들의 몸으로 때울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아이엄마와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만에 하나지만 아군이 도울 수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담았다.
그러나 그들의 손도끼는 허공을 갈랐다.
쾌래랙!
콰자자작!
거친 풍압과 요란한 파괴음이 동시에 울려퍼졌다.
그들의 앞을 덮쳐오던러닝독 네 마리가 동시에 박살나듯 갈려 나간 것이다.
그 덕에 둘은 헛손질을 한 것이고.
하지만 낭패감을 느끼기보다는 재빨리 다시 충격탄을 쏘는 총으로 바꾸어 잡으며 눈앞을 쓸고 간 것을 바라보았다.
한쪽 바닥에 푹 박혀 있는 건 커다란 도끼였다.
“저거?”
방금 전 자신들이 피하라고 종용하던 이가 들고 있던 도끼였다.
그때였다.
케잉! 켕!
“헛!”
바로 앞에서러닝독의 울음소리가 울리자 두 군인은 그제야 화들짝 놀라며 앞을 바라보았다.
“정신 안 차리는 거이간? 쌈중에 어떤 아새끼가 딴짓을 하라 가르친 거이야!”
“죄,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
천둥처럼 울려오는 윽박지름에 둘은 군기 바짝 든 모양으로 대답하다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윽박지름에 그들이 반사적으로 대답하던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사내가 양손에 러닝독의 목줄기를 잡은 그대로 박수치듯 맞부딪혔다.
퍼석!
비현실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의 양손에 쥐여져 있던 러닝독 두 마리가 서로 맞부딪히며 박살이 나 사방으로 잔해를 뿌렸다.
“손되끼!”
사내가 손을 내밀며 외치자 군인 중 하나가 재빨리 건네주었다.
그걸 받은 사내가 크게 휘두르자 팔 휘두름만으로도 머리가 휘날리는 듯한 풍압이 터져 나왔다.
퍼퍼퍼퍽!
그건 약과다.
날아간 손도끼는 한쪽에 뭉쳐 있던 러닝독 세 마리를 박살내 버린 것이다.
이내 바닥에 박혀 있던 대부를 다시 뽑아낸 사내가 러닝독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홀로 달려 나갔다.
“그…….”
‘말려야 하는데.’라는 말은 입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왠지 말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옳았다.
사내가 휘두르는 커다란 대부의 궤적을 따라 박살이 난 러닝독들의 잔해가 사방으로 뿌려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 와중에 다른 군인들이 달려와 그들에게 산탄총을 던져 주고는 사주경계를 취했다.
“누구냐?”
“강림자야?”
다들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주변에는 소환자로 보이는 사람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누가 각성이라도 한 거 아냐?”
“혹시 아줌마……는 아니겠구나.”
아기엄마는 아이를 겨우 꺼내들고 눈물콧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강림자에게 명령을 내릴 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단 이탈해!”
짧은 순간이었지만 군인들의 효과적인 대응과 러닝독들을 학살하는 사내 덕에 개체수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러닝독들이 튀어나왔던 균열은 아직 할 일이 남았다는 듯 일렁이고 있었다.
“젠장! 빨리 이탈해! 스케빈저다!”
시체 따위의 잔해를 먹이삼는 짐승을 스케빈저라 부른다. 하지만 이들이 부르는 스케빈저는 그런 것들과 달랐다.
정식명 데몬 스케빈저.
악마의 형상을 닮은 그것은 러닝독의 뒤를 따라다닌다.
러닝독들이 한번 휘젓고 간 뒤를 따라 나오며 시체들의 잔해를 먹어치우는 게 바로 그들이었다.
물론 침식지에서는 거의 세트로 인식될 정도로 거의 함께 출몰했지만, 이런 균열에서는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드물다고 없는 일은 아니었다.
“최소 열!”
러닝독이 한 백여 마리가 튀어나왔으니, 적정비율인 열 마리는 튀어 나올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
일부는 산탄총을 계속 쥐고 있었지만, 대다수는 충격탄을 쓰는 총으로 바꿔들었다.
“젠장.”
스케빈저는 죽기 딱 좋은 D급이었다.
“나온다 몰아!”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군인들이 쏘아내는 충격탄들이 그들을 두들겼다.
“그르륵! 그륵!”
허리가 구부정하기는 하지만, 덩치가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있듯 스케빈저들은 러닝독처럼 두상이 성인 몸통만큼 컸다.
그 덕에 이족보행을 하면서도 달릴 때에는 양손을 거의 바닥에 늘어트리듯 하면서 바닥을 짚을 때가 많았다.
두두둥!
그나마 다행인 것은 러닝독처럼 재빠르지는 않는다는 점이지만, 불행인 것은…….
“몰아! 몰아!”
“요술봉 가져와! 빨리!”
화기가 거의 안 먹힌다는 거다.
그나마 충격탄이 주는 저지력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기라도 해서 다행이었다.
이렇게 몰아놓고 알라의 요술봉이라 부르는 휴대용 대전차 로켓탄인 RPG-7을 쏘는 게 최선이었다.
“빌어먹을 인근 강림자는 출발했대?”
투아아악!
주변에서 강림자의 위치를 묻는 것과 동시에 이들 분대가 소지한 두발의 RPG-7이 몰려 있는 스케빈저를 향해 날았다.
“빌어먹을!”
하지만 탄이 날아가 닿기도 전에 군인들의 욕설이 튀어나왔다.
콰아앙!
커다란 폭발이 일었다.
하지만 군인들은 대열을 유지하며 뒤로 연신 물러서며 총을 전방으로 지향했다.
“누구 찬지 몰라도 보험은 제대로 들었을라나?”
로켓탄이 닿기도 전에 스케빈저가 옆에 주차되어 있던 경차를 집어 던졌던 것이다.
그리고 날아간 로켓탄은 애꿎은 차만 터트렸고 말이다.
그때였다.
“자, 잠깐 사격 중지!”
폭발이 걷히는 순간 분대장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가 외치지 않아도 아무도 발사를 하지 않았다.
콰작!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은 도끼자 루에 스케빈저가 그대로 쪼개졌다.
“강림자 맞네!”
“우와아아!”
환희에 찬 음성이 튀어 나왔다. 그제야 다들 환한 표정을 지으며 환호했다.
중화기가 아닌 저런 냉병기로 E 급 이상의 마물을 쪼갠다는 건 강림자라는 증거였던 것이다.
하나를 바로 쪼갠 강림자가 한 손으로 주먹을 말아쥐고 머리통을 후려쳤다.
빠작!
동시에 또다른 스케빈저의 머리통이 박살이 나며 흐느적이며 한쪽 바닥으로 축 늘어졌다.
이어 발을 올려 차니 스케빈저의 사타구니에 틀어박혔다.
그와 동시에 몸통이 붕 뜬 스케빈저를 다시 횡으로 그어진 도끼가 상제와 하체를 양단해 버렸다.
몸통을 가르고 지나간 대부를 손목놀림만으로 휘돌려 다시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는 신기가 이어졌다.
콰작!
이번에도 어김없이 머리통을 반으로 갈랐다.
그 상태에서 내지른 발길질.
퍼엉!
몸뚱이가 새우처럼 휘어지며 날아가 건물 벽면에 처박혔다.
콰아앙!
이어 남은 몇 마리 역시 오래 버티지 못했다.
양 다리가 잘려 버르적거리는 놈, 팔 하나와 다리 한 짝이 동시에 잘려 나뒹구는 놈, 몸통이 반쯤 갈라져 내장을 쏟아내며 구슬 피우는 놈…….
참상이 따로 없었다.
러닝독을 마저 정리한 군인들은 멍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최소 갑사급 이상은 되어 보이는데?”
“갑사급이 저렇게 잘 싸운다고? 저 정도면 장군급은 되야지.”
다들 혀를 내두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어?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누구? 저 강림자?”
“아, 아니 내가 아는 건 강림자가 아닌데…….”
군인 중 하나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 끝을 흐렸다.
“무슨 소릴하는 거야?”
“호, 호크아이!”
“어벤저스? 야! 언제 적 영화이야기를…….”
그의 말에 몇몇 군인이 피식거리며 말을 했다. 하지만 호크아이 운운한 군인은 다시 질린 얼굴로 외쳤다.
“십 년 전 서울테러!”
그 말에 다들 지금 싸우고 있는 강림자를 바라보았다.
“다큐?”
순간 몇몇이 기억을 끄집어내곤 얼어붙었다.
“그, 그게 진짜였어? 타임슬립 설이?”
제일 처음 호크아이라 외쳤던 군인이 질린 얼굴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퀘렉!
마지막으로 날아간 대부가 부서진 벽의 잔해를 해치고 다시 나서려던 스케빈저의 몸통을 다시 꿰뚫으며 도로 벽으로 처박아 버리고나서야 전투는 끝이 났다.
“화, 확인 사살에 나선다!”
그나마 이렇게 박살이 난 마물은 일반 총기로도 확인 사살이 가능해졌다.
그 와중에 분대장이 경직된 얼굴로 다가가 물었다.
“호, 혹시 성함이…….”
무너진 벽무덤에서 대부를 꺼내 들던 사내가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부루라 부르라우.”
“네? 무슨 말씀이신지…….”
잘못 알아들었는지 되묻는 분대장에게 다시 이름을 밝혔다.
“내래 을지부루야. 조상님이니까네, 깍듯이 뫼시라우.”
대부를 어깨 위로 턱 하니 올려놓으며 당당하게 요구하는 을지부루였다.
“알겠습니다…….”
분대장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부루? 아닌데? 우룬데?”
“잘못 봤겠지. 도끼 들었잖아.”
장내를 정리하던 군인들은 아직도 부루를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그때 한쪽에서 몇몇이 우루루 달려왔다.
“판도라?”
“판도라다!”
“거봐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고!”
군인들이 외치는 소리를 뒤로한 채 판도라 멤버들이 부루에게 몰려갔다.
그리고 장내로 경찰차들이 속속 도착했다.
“경찰왔네? 상황 종료 알려 주고 여기 뒷정리를 맡겨……야 하는데 저 양반들은 왜 저리로 가지?”
분대장은 형사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부루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하, 하하하…….”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서준모 경장은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뭔가 맥빠진 웃음 소리를 흘렸다.
떡 벌어진 어깨.
기둥 같은 팔다리.
그리고 그를 향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달려가는 판도라 멤버들.
“와……진짜였나 보네. 저 양반 돌아온 거.”
마찬가지로 달려가던 최후배까지도 얼굴을 알아보고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먼저 달려나갔던 서 경장이 그 앞에서 허리를 접으며 외 쳤다.
“어르신 안녕하셨습니까!”
“기래. 이것도 안녕이라면 안녕이디.”
서 경장의 인사에 부루는 약간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방금 전 이곳에 오기 전에 보았던 영상에서 본 얼굴이었다.
“어머! 서 경장님? 아니 이젠 뭐라고 불러야죠?”
제이가 놀라 묻자 서 경장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대롭니다. 몇 번 올라가긴 했는데 도로 경장 자리 왔습니다.”
서 경장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인사를 했던 대상을 향해 다시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처음 보는구만. 내래 을지부루야.”
“예? 누구시라고요?”
“내래 을지부루야.”
그 말을 남기고 판도라 멤버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부루.
그 말에 서 경장이 멈추어 서서 중얼거렸다.
“쌍둥이 형제인?”
서 경장이 얼어붙은 듯 서서 중얼거리자 뒤따라 왔던 최 반장이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형님 방금 누구라고요?”
최 반장의 질문에 서 경장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을지부루.”
“예?”
“을지우루의 쌍둥이 형제. 을지부루.”
그에 최 반장이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황당하다는 듯 멍하니 서서 중얼거렸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