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그래도 이리 보니 좋다.
* * *
퍼스트 엔터 사옥으로 차 한 대가 들어왔다. 아까 나갔던 판도라 일행을 태웠던 차였다.
차 문이 열리고 일행들이 말없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선두에서 일행을 이끌 듯 걸음을 옮기는 이승배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응, 영상실. 싹 비워 두고. 그거 준비해 놔.”
[그거라뇨?]
“우리가 가끔 보던 거.”
[아, 예.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어지자, 걸음소리 외에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주변의 소음만이 간간히 울려 올 뿐이었다.
어둠이 깔린 방 안에는 오로지 커다란 화면만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승배나 전창걸 대표 그리고 판도라 멤버들은 외울 정도로 보고 또 본 영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한없이 그리운 시선으로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을지부루가 있었다.
그리고 그 양옆으로 고빈과 강문호 대위가 앉아서 영상을 보고 있었다.
화려한 영상.
빈은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이걸 보니 기억이 나는 것이 있었다.
물론 그때는 초등학생이었던 때였다.
당시 부모님과 본 친구들이 자랑하던 기억이 있었다.
물론 당시 빈은 애니메이션에 빠져 있을 때라 흘려들었지만. 하지만 스치듯 본 기억은 있다.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인 마지연이 가끔 보던 영상인 것은 기억했다.
이 화려함과 긴박감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빈은 영상 속에서 말을 달리며 화살을 날리는을지우루를 보다가 멍한 얼굴로 옆의 부루를 바라보았다.
똑같고 또 똑같았다.
아니 지금 저 안에 출연한 이가 바로 옆에 있는 부루라 해도 안 믿을 사람이 없을 만큼.
그때 거칠고 목석같은 부루가 눈에 힘을 주었다.
보기에 무서울 만치.
부릅뜬 두 눈.
커다란 두 눈동자에 서리는 걸 보았다.
습기다.
얼마나 이를 앙다물었는지 그의 턱의 양쪽 하악골 부근의 근육이 불퉁불퉁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막지 못한 듯했다.
무게를 이기지 못한 눈물 하나가 굴러떨어졌다.
평소 까불거리긴 했지만, 이런 분위기도 파악 못 할 만큼은 아니었다.
빈이 고개를 돌려 화면을 보았다.
군세를 이끄는 한 사람이 있었다.
고집스럽게 보이는 입매.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압도하는 듯한 분위기가 풍기는 이가 있었다.
그때 부루가 중얼거리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내레 너무 늦게 왔습네다.”
묵직하게 깔려나온 음성.
하지만 그 목소리는 마치 뭔가를 누르다 누르다 거칠어진 듯, 뭔가가 틀어박혀 꽉 매어진 듯 느껴졌다.
“기래도 이래 보니 됴습네다.”
부루의 입가가 살짝 올라가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말을 달리는 동료들의 모습이 투명하게 비추어지고 있었다.
“기래도 이래 보니 됴습네다.”
그렇게 중얼거리는 부루. 이 안에 있는 이들은 그런 부루를 모두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어떤지 알고 있었다.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하지만 이렇게나마 볼 수 있어 위로가 된다.
그러나 이 다음도 안다.
보고나니 말하고 싶고 만지고 싶은 욕심.
“어흑!”
결국 참지 못한 세인이 가슴을 움켜쥐고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렇게 영상은 끝을 향해 달려갔다.
영상이 끝이 났다.
화면도 어두워졌다.
그러나 아무도 불을 키려 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쿨쩍이는 소리가 울려올 뿐.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부루의 음성이 들려왔다.
“불 키라우.”
그 말에 승배가 일어서서 불을 켰다.
불을 켜고 나니 가관이었다.
판도라 멤버들은 눈가가 다 번져 있었다.
그중에 압권은 바로 전 대표였다.
“흐으읍!”
그래도 어른이라고 참는 줄 알았더니만 손수건을 입에 쳐막고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던 것이다.
눈물이고 콧물이고 물이란 물은 이미 홍수 난 것처럼 넘쳐 흘러 버렸다.
“하아.”
그런 전 대표를 보며 승배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때 부루가 뒤돌아섰다.
그의 표정이 꽤나 풀어져 있었다.
뭔가 맘에 안 든 듯 뚱했던 표정이 아니었다.
마치 속이 후련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부루가 입을 열었다.
“됴쿠만.”
짧은 답변이었지만, 그의 표정이 왜 그리 풀려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 반 다큐 반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고진천 일행들을 그리워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중에 세인이 부루와 눈이 마주쳤다.
“니보라. 울디 말라우.”
부루의 말에 세인의 눈물은 다시 터져 버렸다.
“어어엉! 따라갈 걸 그랬어어어! 어어어엉!”
“안 돼! 언니 가지 마아아!”
“어형!”
결국 그녀의 눈물을 시작으로 다시 울음이 터져 버리는 그녀들이었다.
그때 한쪽에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빈의 손목에 찬 액정에 요란한 빛이 돌았다.
“대체 요즘 왜 이러지?”
빈이 질린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문호 대위 역시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이해할 수 없군.”
침식지대가 안정된 후 돌발적으로 발생되던 균열이 점점 잦아지고 있었다.
최근에는 그게 더 심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승배가 서둘러 뉴스를 틀었다.
화면 아래로 균열경보라는 자막이 흐르다가 이내 화면이 바뀌었다.
-속보를 알려드립니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 일곱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균열 경보가 전파되었습니다.
이는 사 년 전 있었던 월드브레이커 사건과 같은 전조가 아닌가 하는 분석이 있습니다.
이에 균열대책 위원회에서는…….
월드브레이커.
세상이 절단날 것 같았다고 붙인 이름이었다.
물론 침식지대가 생성될 때야말로 세상이 망할 거라는 말이 돌았지만, 월드 브레이커는 어떤 의미로는 침식사태보다 더 위험했다.
침식 때는 침식지대를 중심으로 군 병력을 투입해서 밀고 들어가면 되었었다.
명확하게 최전선과 후방이 구분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균열은 달랐다.
전방 후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디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도 몰랐다.
그나마 균열직전 에너지가 급상승하면서 대피할 시간이라도 벌 수 있는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 아무리 대피를 종용한다 해도 못 듣는 사람들이 태반인 경우가 많았다.
“균열위치 특정은 아직 안 되었는데…….”
빈이 손목의 액정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아직 시간이 남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강문호 대위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 정도 반응이면 아주 가까운 곳에서 균열이 생성될 수 있어.”
“아…….”
그때 부루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차에서 내 되끼 가져오라우.”
“그거 보통은 소환하던…….”
“띠라우!”
“옛!”
부루의 윽박지름에 빈이 벌떡 일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강 대위는 그 모습조차 이체를 띄고 바라보았다.
강림자의 복식은 항상 그대로다.
물론 다른 옷을 입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강림하면서 가져온 무장은 보통 전투시에 저절로 소환이 된다.
그런데 부루는 마치 사람처럼 그것을 입고 장비한다.
더 불편함이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 부분이 부루가 인간과 똑같다고 느껴지는 것과 관련이 있을 수 있었다.
동시에 부루가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우루루 따라 나가려는 순간 부루가 멈춰서며 말했다.
“기 나오지 말라우.”
서늘한 음성.
“하, 하지만…….”
“위험하니까네.”
서늘하지만, 걱정하는 감정이 물씬 묻어나는 음성이었다.
“강 대위.”
“예.”
“내래 부탁 하나 하디.”
“예.”
“여기 지키라우.”
부루의 말에 강 대위가 고개를 숙였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부루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더헙!”
빈이 도끼와 장비를 가지고 뛰어왔다.
부루는 그가 준 도끼를 받아들고 말했다.
“강 대위 옆에 있으라.”
“예? 전 소환잔데…….”
“밥버러지 주제에 뭘 어쩐다 그러네? 밥값하게는 내래 만들어 줄 테니까네, 강 대위 옆에서…….”
부루는 잠시 멈칫했다가 말을 이었다.
“가티 지켜 주라.”
“아, 예.”
빈은 그의 당부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대부 하나를 쥔 부루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나갔다.
에에에에에엥!
싸이렌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이리저리 뛰고 있었다.
한쪽에는 바이크를 탄 군인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바이크는 초동대응을 위한 병력들의 필수품이다.
그때 누군가가 부루를 보고 놀라 외쳤다.
“아저씨! 피해요!”
부루가 도끼 한 자루를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 모습에 놀란 군인이 달려와 말했다.
“일없어야.”
“아니, 위험하다고요! 아저씨가 강림자도…….”
말을 하던 군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끼를 보니 왠지 강림자 같았다. 하지만 또 입고 있는 건 청바지에 면티다.
“강림자에요?”
“강림자건 뭐건 내 걱정 말라우. 니엔장, 저 수레 끄는 에미나이 위험하잖네!”
“어헛!”
부루의 외침에 군인이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유모차를 부둥켜안고 있는 젊은 엄마가 있었다.
군인들이 달려가 보았다.
도망치는 사람들에게 부딪히면서 뭔가가 망가진 모양이었다.
인근 군인들도 발견했는지 달려와 그녀를 돕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균열이 빨랐다.
“젠장!”
순간 군인 둘이 유모차를 중심으로 좌우로 펼치듯 섰다.
재수 없게 최종적으로 균열이 그들이 있는 곳에서 생겨났던 것이다.
“꺄아아아!”
아이 엄마는 아이를 꺼내다 말고 비명을 내지르며 아이를 부둥켜 안았다.
다급한 마음 때문인지 손만 벌벌 떨며 허둥대다가 안전벨트를 제때 풀지 못했던 것이다.
거기에 운도 나빴다.
균열이 그녀에게서 십여 미터도 안 떨어진 곳에서 생겨났던 것이다.
군인들이 긴장한 얼굴로 균열을 바라보았다.
그때 균열을 박차고 뭔가가 튀어 나왔다. 동시에 욕설이 튀어나왔다.
“에이 씨! 개떼다!”
“연사! 연사로 날려!”
일명 개떼.
학술명 러닝독.
개가 떼로 나오는 건 아니다. 생긴 게 개처럼 생긴 것들이 항상 튀어나오면 떼로 몰려나온다.
키는 일 미터에서 일 미터 이십 남짓하다.
초등생 저학년 크기.
하지만 초등생과 달리 빠르고 위험한 턱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 크기가 거의 키의 삼분지 일이다 보니 악력이 대단했다.
그에 비해 맷집은 약해서 따져 보면 하나의 개체 자체는 F급이다.
그러나 개떼 자체의 위험도는 C 급에 해당되었다.
수가 많고 재빠르기 때문이었다.
투두두두둥!
동시에 연사음이 울려퍼지며 개떼들의 비명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샷건! 샷건!”
충격력을 위주로 활용하는 무기는 이런 개떼들에게 어울리는 무기가 아니었다.
연사속도가 그리 빠른 것도 아니고, 맞춰도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이런 개체는 이전 화약 무기가 더 어울렸다.
그중에서도 샷건.
아이와 아이엄마를 구하러 온 이들은 바이크에서 샷건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금방 아이엄마만 구해서 이탈할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욕설이 튀어나왔다.
개떼가 위험한 또 하나의 이유.
본능적으로 약한 곳을 물어뜯을 줄 안다는 것이었다.
사방에서 개떼들이 그들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콰앙! 쾅!
한쪽에서 샷건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샷건이 발사되면 하나씩은 반드시 피떡이 되어 자빠졌다. 그게 어쩌면 개떼가 이쪽으로 몰리게 만드는 원인일지 몰랐다.
이쪽에는 그게 없었으니까.
“씨파!”
군인들은 다른 한손으로 손도끼를 뽑아들며 나직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원치 않는 백병전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