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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19화 (19/305)

제19화 혹시 아세요?

* * *

“끄응.”

고빈은 한바탕 잔소리를 얻어들은 뒤에야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어졌나?”

강문호 대위의 질문에 빈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지르고 싶은 게 있어서 질렀는데, 그러고 나니 요금비가 없어서 망했죠. 수신차단 당했어요.”

“그게 무슨…….”

“사실 강림자도 생겼겠다, 이제 고생 끝이라는 생각에 일단 질렀던 거거덩요.”

빈이 소곤거리며 말을 하자 강 대위는 쓴 웃음을 머금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강림자는 연금복권이라고.

처음에는 달랐다. 구원자라 불렸다. 하지만, 그건 시간이 지나며 변질이 되었다.

세상이 멸망할 것 같았던 침식 사태가 안정되고, 강림자를 부리는 소환자들에게 시선이 모였다.

강림자는 소환자의 의지에만 따른다.

또한 소환자에 반발을 하거나 불복하지 않는다.

이 변치 않는 사실이 강림자에 대한 인식을 빠르게 바꾸어 나간 것이다.

어쩌면 강림자에게 가려져 있던 소환자들의 자격지심이 발동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일부 소환자들의 인식이 마치 전부인양 잘못 변질되어 가다 보니 이렇게 변해 버린 것이다.

물론 이렇게 행동을 하는 것에는 강림자들의 행동양식에도 관련이 있었다.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강림자는 마치 로봇과도 같은 모습을 보일 정도였으니까.

물론 반대의견도 있다.

강림자가 없었으면 세상이 멸망했을 것이라며 강림자를 물건 다루듯 하는 소환자를 경멸하는 이들도 있었다.

또 강림자는 우리의 조상들이니 더욱 그러면 안 된다고들 했다.

그리고 딱딱한 모습을 보이던 강림자들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마치 학습이라도 하듯 그 행동이 자연스러워진다.

그것을 두고 오히려 강림자에게 더욱 예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상당히 많은 젊은 소환자들은 강림자를 무의식적으로 도구처럼 인식한다.

도구론을 주장하는 소환자들이 다수였으며 그들은 커뮤니티를 장악하다시피했다.

그 안에서 정보를 얻어 온 빈과 같은 이들은 무의식 속에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그나마 빈은 나은 편이다.

“디지고 싶은 거이디?”

“켁!”

순간 빈이 위로 번쩍 들어 올려졌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먹고 살려면 일하라우. 누굴 소처럼 부리려 하는 거이간?”

조용히 나타난 을지부루가 마치 악덕지주마냥 빈의 뒷덜미를 잡아 올린 채로 짤짤 흔들어 대고 있었던 것이다.

“아닙니다!”

“썩어빠진 아새끼래! 조상님을 뵈었으면 모실 줄 알아야디!”

“제 생활비 다 털어서 모셨었잖아요!”

빈이 억울한 듯 외치자 부루가 뒷덜미를 잡은 체 이리저리 흔들어 대며 외쳤다.

“라방했잖네! 라방! 내래 모를 줄 알았네!”

“그, 그건 식비 때문에…….”

“지랄 말라우! 후지를 먹였디 않네! 삼겹살도 아니고 후지! 장난 치는 거이간!”

“…….”

둘의 모습을 보며 강 대위는 적어도 빈이 그런 갑질을 영원히 하기에는 글렀다는 것을 확신했다.

물론 지금 상황으로는 정반대의 경우만이 드러날 뿐.

“그런데 아까 무슨 통화한 거야?”

이제는 말을 편히 놓기로 한 강대위는 빈에게 구원의 동아줄을 내려 주었다.

강 대위가 말을 걸자 부루가 그제야 빈을 놓아 준 것이다.

“아, 그 작업하는 것 때문에 회사서 직접 오기로 했대요.”

“그래?”

“네.”

빈의 말에 팔짱을 끼고 있던 부루가 슬며시 등을 떠밀며 말했다.

“일하라우.”

“한다고요!”

“소처럼.”

“알았다고요!”

“기래서 꽃등심을 먹는 거이디.”

“…….”

순간 강 대위와 빈의 얼굴이 헤쓱해졌다.

창백해진 얼굴의 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건 어디서 봤어요?”

“유튜브.”

“…….”

빈이 할 말을 잃었다.

“무한리필집은 사절이디. 꽃등심은 한우 아이간?”

“아…….”

빈이 주저앉았다.

왠지 강림자 덕에 돈방석에 오르는 건 고사하고, 등골까지 쪽 빨리며 생활하는 노예가 될 것 같았다.

그런 불길한 미래가 눈앞에 점점 선명하게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 * *

차가 멈추었다.

먼저 문을 열고 내린 이승배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그녀들이 유명하기에 주변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도 됩니다.”

그 말에 전창걸 대표가 발을 내딛었다.

“음.”

그런 전 대표를 밀치고 판도라 멤버가 후다닥 뛰어내렸다.

그리고 제일 먼저 제이가 뛰어 들어가며 외쳤다.

“102호랬죠!”

물론 대답은 듣지 않고 그냥 뛰어 들어갔다.

그녀뿐이 아니었다.

세인과 레이니도 뭔가 피난이라도 가는 것마냥 달려 들어갔다.

“가자.”

전 대표가 뭔가 전장에 나서는 사람마냥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 역시 점점 빨라졌다.

승배는 웃었다.

표현은 안 하지만, 그게 기대감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냐면 자신도 어느새 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띠리리리리~!

벨소리에 강문호 대위가 현관화면을 살폈다.

“응?”

그가 눈을 비볐다.

잠시 텔레비전이라도 본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안쪽에서 고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작업 확인하러 오셨을 거예요!”

강 대위는 빈의 말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사진수정작업을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대상이 연예인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큼.”

강 대위는 빠르게 매무새를 매만지고 문을 열었다.

“어서 오십…….”

순간 세 여자가 그를 스치며 안 쪽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어, 그 지금 무슨…….”

순간 강 대위는 신개념 예능인가 하는 표정으로 이리저리 둘러 보는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뒤이어 들어온 사람이 그런 강 대위에게 죄송스럽다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 왔다.

“죄송합니다. 이런 결례를…….”

그때 빈이 작업하던 방의 문이 열리더니 찢어지는 듯한 외침이 들려왔다.

“오라버니!”

빈은 멍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튀어나온 여자들 때문이었다.

방금 전까지 그가 수정작업을 하던 여자들이었다.

“대박…….”

그녀들은 바로 판도라였다.

실제로 그녀들을 볼 줄은 빈도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뭐지?”

하나같이 그녀들은 을지부루를 얼싸안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 어르신!”

“형님!”

뒤이어 나온 남자 둘도 그를 보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뭔 일이래?”

빈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뒤따라온 강 대위의 표정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황당한 표정을 하고 있는 이는 빈이나 강 대위가 아니었다.

바로 그 중심에 있던 부루였다.

부루는 당황했다.

갑자기 뛰어든 여자 셋이 그를 부둥켜 안은 채 엉엉 울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엉엉! 오라버니! 정말 보고 싶었다고!”

요란하게 떠들어 대며 우는 여자.

“히이잉!”

그리고 뭐가 서러운지 강아지 낑낑거리는 것마냥 우는 여자.

그리고, 뭐가 서러웠는지 말 없이 눈물만 줄줄 흘리며 붙잡고 있는 여자.

부루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남자 둘도 있었다.

그들도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부루가 입을 열었다.

“이거이 뭐 하는 거이네?”

그의 말에 남자 둘의 얼굴 위로 실망감이 스쳤다.

“이 에미나이들 와 이러는 거이네?”

부루가 재차 묻자 빈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당황하신 것치고는 꼭 껴안고 계십니다.”

“응?”

셋을 보듬어 안고 있는 부루의 모습이 빈의 눈에는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그때 가장 먼저 뛰어들었던 여자가 말을 연달아 쏘아내었다.

“엉엉! 역시 머리론 몰라도! 몸은 기억하는 거야! 오라비이이이!”

“히이잉!”

“흑흑흑!”

그리고는 더욱 세 여자가 부루의 몸뚱이를 놓지 않겠다는 듯 파고들어 왔다.

“내래 이거이…….”

차라리 덤볐으면 패면 되는데 뭔가 서럽게 매달려서 우니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남자 중 하나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우루 형님. 저 승뱁니다. 기억 못 하시나요?”

순간 부루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때 눈치없는 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형 우루 아닌데요. 부룬데요.”

순간 사방의 시간이 멈춘 듯했다.

제일 먼저 떨어진 것은 제이였다.

“아……죄, 죄송.”

이름이 달랐다. 같은 얼굴인데 말이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세인은 달랐다.

“혹시 을지부루?”

그제야 제이도 레이니도 다시 표정이 바뀌었다.

그녀들은 그 이름을 알기 때문이었다. 본 적은 없어도 기억하는 이름이다.

을지우루의 형제.

그때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부루가 입을 열었다.

“에미나이들이 우루를 어케 아는 거이간?”

순간 세인을 비롯한 세 여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비록 우루는 아니지만 그 접점을 찾았다는 생각에 말이다.

그때 눈치 없이 끼어들려던 빈의 입을 강 대위가 막았다.

“강 대위 손님이…….”

일을 보고 들어오던 구은태 박사가 고개를 내밀었다가, 강 대위의 입술 중앙에 놓인 손가락 하나를 보고 서둘러 입을 닫았다.

아까의 격렬한 만남과 달리 이번에는 뭔가 어색한 침묵이 돌고 있었다.

그때 제이가 분위기를 조금 바꾸려는 듯 웃으며 말문을 먼저 열었다.

“고빈 씨?”

“아, 예!”

“호호호! 마 작가님이 말한 내놓은 자식…… 아!”

분위기는 어색함에서 삭막함으로 변해갔다.

그때 세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빈씨 죄송하지만 여기 이분과 대화를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세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나 하고 말하는 걸 와 비니한테 묻는 거이간?”

부루가 미간을 찌푸리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아…….”

세인은 약간 당황했다.

소환자들 중에는 자신을 통하지 않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기에 빈에게 질문을 한 것이었다.

또 일부 강림자는 소환자의 허락하에 대화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돌발의 경우는 연예계활동을 하는 강림자이기에 약간 달랐지만 말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부루의 행동은 일반적인 강림자와 달랐다.

그녀이기에 눈치챌 수 있었다.

그때 제이가 끼어들었다.

“저, 그럼 혹시 진천 오라버니도 알아요?”

“…….”

진천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부루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런 부루를 향해 사람들이 조마조마한 시선을 보내었다.

부루가 입을 열었다.

“어케 모르간.”

순간 사람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때 부루의 말이 이어졌다.

“에미나이 같은 동생도 없다는 것도 알디.”

“아, 그게 좀…….”

제이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럼 계웅삼…….”

“구라쟁이도 아는 거이간?”

대답을 하던 부루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뒤쪽의 구은태 박사를 바라보았다.

그를 통해 여러 가지를 알아봤지만, 사서에는 그들의 이름이 없다는 것만 확인했었다.

그런데 그들을 아는 이들이 나타났으니 부루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리셀 님도…….”

그 이름까지 나오자 부루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동시에 부루는 그 질문을 던진 전 대표의 멱살을 잡아 올리며 으르렁거렸다.

“불라우. 그 이름 어케 아는 거인지.”

“켁!”

전 대표의 위기였지만 이 안의 사람들의 표정은 환해졌다.

전 대표는 그들을 향해 힘겹게 외쳤다.

“마, 말려 줘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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