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기억하지 못해도 좋아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이 끝나고 난 뒤 세인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저…….”
“아, 정말 팬입니다!”
세인이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져 왔다.
그는 바로 고돌발의 소환자인 강기봉이었다.
“감사합니다. 항상 위험한 곳에서 활동하시느라 힘드시죠?”
세인의 인사말에 강기봉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에이, 아닙니다. 이게 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아닙니까.”
“안녕하세요?”
그때 세인이 고돌발을 보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시오.”
“영광입니다.”
“과찬이오.”
“그런데 혹시 그 당시 기억나시는 이름이 좀 있나요?”
“음.”
세인의 질문에 강기봉이 끼어들며 크게 웃었다.
“와하하! 에이, 세인 씨. 돌발은 그런거 잘 기억 못해요! 다 컨셉이라니까요?”
“예?”
강기봉은 의기양양한 듯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제가 없으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해요. 사실 누구는 강림자가 싸우고 소환자는 뒤에서 돈이나 번다는데 실제로는 안 그래요.”
“아, 예.”
세인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강기봉은 이내 고돌발의 등을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사실 억울한 면도 있어요. 안그래?”
“맞소.”
강기봉의 질문에 고돌발은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그 모습에 세인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혹시 하는 마음에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고진천이라는 이름 아세요?”
“……고진천?”
세인의 질문에 고돌발이 조용히 그 이름을 읊었다.
“응? 그게 누구에요?”
“아니면을지우루라던지…… 혹 계웅삼은 아시나요?”
“저기 세인 씨?”
강기봉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세인을 불렀다. 그때 마침 제이가 다가와 강기봉에게 음료를 건넸다.
“와우! 오늘 고생하셨어요! 아예 이쪽으로 쭉 나가도 되겠어요!”
“아하하! 감사합니다! 정말 팬입니다!”
제이의 말에 강기봉은 활짝 웃음을 머금었다.
그렇게 제이가 시간을 벌어 준 사이 세인은 고돌발의 답변을 기다렸다.
“……희미하오.”
“아시는 이름이에요?”
“내게 과거는 희미하오.”
“아…….”
“아쉽구려. 그대에게 제대로 설명을 해 주지 못해.”
고돌발이 쓴웃음을 머금자 세인은 애써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럼…….”
세인이 뒤돌아 간 뒤 강기봉이 히히덕거리며 되돌아왔다.
“아싸!”
그는 스마트폰을 들과 실실 웃고 있었다.
제이와 사진 찍은 게 그의 손에 들려있었다.
“하하, 세인 씨가 역사에 관심이 많다더니 진짠가 봐?”
“그런가 보오.”
“그런데 그 뭐지 그 성에 있던 사람 일부만 기억하잖아.”
“그렇소. 희미하게 말이오.”
“그럼 가자고! 우리 다음 스케줄 뛰어야 해!”
“알겠소.”
고돌발은 강기봉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응? 왜? 왜 안 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던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세인이 있던 자리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곳을 바라보던 고돌발의 입술이 들썩거렸다.
“버림받은 이들의 수장…….”
그렇게 중얼거린 고돌발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리고는 이내 뒤를 돌아 걸음을 옮겼다. 강기봉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 * *
“아니 휴식기에 뭐하러!”
전창걸 대표가 안으로 들어서는 판도라 멤버들을 보며 타박했다.
물론 정말로 타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녀들을 걱정해서 하는 말에 더 가까웠다.
“자자, 들어갑시다!”
그런 전 대표의 등을 제이가 떠밀었다.
“응? 왜! 왜!”
“아우! 우리 대표님 여성호르몬이 철철 넘치나 자꾸 잔소리질이야!”
“내가 언제!”
그때 제이가 전 대표의 귓가에 말을 뱉었다.
“도졌어요. 세인이.”
“아…… 고구려 강림자가 나온대서. 그래서 나간 거죠.”
“잊은 거 아닌가…….”
전 대표가 침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제이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그게 잊혀져요?”
“…….”
“대표님은 잊었어요?”
“아니…….”
“창밖에 매달려서 오줌도 싸고 막 그랬는데 잊는 게 더 이상…….”
“그런 건 잊어 주면 안되겠냐?”
“어머? 그걸 어떻게 잊을까나?”
“끄응!”
그때 제이가 전 대표의 얼굴 옆으로 불쑥 고개를 내밀더니 뭔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오늘 왜 갑자기 이렇게 마중까지 나오셨대? 한창 바쁘다고 우리 끝물이라고 새로운 연습생들 키운다더니?”
“누, 누가!”
“뭔가 수상한데?”
“아, 아니야! 그, 그런 거!”
전 대표가 화들짝 놀라면서 거의 뛰듯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농담인데. 뭐지 저 수상쩍은 발연기는?”
제이가 황당하다는 듯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때 레이니가 뒤따라 들어오며 물었다.
“대표님 배 아프시대?”
“아니.”
“근대 왜 저리 급히 뛰신대?”
“뭐 숨기는 게 있는 거 같은데?”
제이의 말에 레이니가 히죽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래? 그럼 다음에는?”
사무실한쪽에서 물을 따라 마시는 척하면서 둘이 눈을 흘겼다.
이승배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대표실로 달리듯 들어갔다.
“맞네. 뭔가 숨기는 거.”
둘이 악당처럼 짓궂은 표정을 짓고 살금거리며 대표실로 향했다.
그 모습에 몇몇 직원들이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
판도라 멤버는 이 퍼스트 엔터에서 절대 권력이었다.
심지어 지분도 가지고 있었다.
아이돌이자 회사의 이사이기도 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들의 행동을 대놓고 저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이런 장면이 꽤나 익숙하기도 했고 말이다.
“부르셨습니까?”
이승배가 들어서자 전창걸 대표가 새하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승배야!”
“예?”
“세인이가 오늘 예능 왜 간 건지 알았냐?”
전 대표의 말에 승배가 멀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리턴 투 무모한 도전이야 굳이 이유가 없어도…….”
“고구려 강림자 보러 간 거라더라.”
그제야 전 대표가 놀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 또 물어보았겠네요.”
“그러니까 그 사실은 비밀로 해라. 혹시 강림자로 이 땅에 그분들이 오신 걸 알면. 하아.”
“그야 당연하죠. 그런데 그건 언제 들으셨어요?”
“조금 전 제이한테…….”
전 대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승배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닫힌 문이 있다.
승배는 그 문을 확하고 열어 재꼈다.
“……후우.”
“어억!”
동시에 승배의 한숨과 전 대표의 비명이 튀어나왔다.
열려진 문 밖에는 제이와 레이니가 얼음처럼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 하하하하! 왜, 왜들 이래! 난 니들 딱 거기서 엿들을 줄 알았다니까? 내, 내가 하, 한두 번 당했어야지.”
최선을 다해 아무것도 아닌양 말을 돌리는 전 대표였다. 그를 바라보며 제이가 서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표님. 그 발연기란 별명 누가 붙여 줬는지 기억 안 나요?”
“그…….”
“뭐, 알겠어요. 나도 세인이에게 이런 농담 던져 봐야겠네.”
그 말을 끝으로 제이가 몸을 일으켰다.
“아아악!”
순간 전 대표가 소파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그녀의 다리를 붙잡았다.
“안 돼! 안 돼!”
그런 전 대표의 반응에 제이가 힘없이 주저앉았다.
“미치겠네.”
그리고는 제이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이건 발연기가 아니네.”
“아직 다 확인은 못했지. 그런데…….”
“고진천 오라버니가 온 거에요?”
“아니…….”
“그럼 구라 오빠?”
계속 이어진 질문에 전 대표가 힘없이 대답했다.
“우루 어르신.”
“어디?”
전 대표의 대답에 제이가 흥분한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전 대표가 물었다.
“너는 왜!”
“나?”
전 대표의 질문에 제이의 눈꼬리가 초승달마냥 길게 휘어졌다.
“나도 보고 싶으니까.”
웃고 있었다.
그 미소 끝에 울먹임도 있었다.
눈꼬리 끝에는 천천히 습기가 몰려들었다.
“나도. 보고 싶다고.”
끝내 모인 습기를 이기지 못한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세인에게 그들은 그리움의 상징이라면 제이에게는 새 삶의 상징이었다.
위기의 순간 그녀를 구해 준 슈퍼맨이다.
지금 그녀가 있게 만든 은인이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을 그리워한 것은 세인만이 아니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나도 갈 거야.”
열린 문에는 반쯤 울상을 하고 있는 레이니와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세인이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제이가 활짝 웃었다.
“당근이지.”
그녀들을 보며 전 대표가 고개를 숙이며 울먹였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한 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숙여진 머리에서 덜 닫힌 수도꼭지마냥 눈물이 후둑 후둑 떨어졌다.
“알아. 우리 대표님도 보고 싶었던 거. 그런데 괜찮아.”
제이의 말에 전 대표가 고개를 들었다.
눈물에 콧물에 범벅이었다.
미안하고 서러운 모습.
그녀들은 그런 전 대표에게 다가가 조용히 안아 주었다.
원망하기에는…….
그녀들은 전 대표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는지 전 대표의 방에는 판도라들과 승배가 다 함께 있었다.
“아직 우리도 확인은 못했다.”
전 대표의 말에 그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릴 기억 못할지도 몰라.”
이어진 전 대표의 말에 그녀들이 멈칫했다. 세인이 입을 열었다.
“……알아요.”
그녀만큼 강림자와 대화를 많이 해 본 연예인도 없을 것이다.
또 강림자에 대해서는 그녀 역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혹은 강림자를 깎아 내리고 본인이 더 잘나 보이기 위해 떠들어 대는 소환자는 항상은 아니어도 종종 존재했으니까.
“아마 기억이 있으셨다면 우릴 찾으셨을 거다. 사실 그래서 말 못 한 거고.”
순간 다들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세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래도 볼래요.”
“괜찮겠니?”
“우리는 기억하잖아요.”
“…….”
세인이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영원히 볼 수 없던 사람 보는데…….”
목소리 끝이 떨려왔다.
하지만 애써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기억 못하면…… 어때요.”
목소리가 마치 곽 막힌 듯 눌려서 나온다.
눈물을 참듯.
아니 눈물이라도 보이면 안 된다고 할까 봐.
애써 누르며 말이다.
“그럼, 내가 전화해서 부탁해 보마.”
전 대표가 결정을 내리자 다들 얼굴이 환해졌다.
그때 레이니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가은 언니한테도 말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녀의 말에 다들 입을 닫았다.
세인 이상으로 아파했던 또 다른 사람이었다.
그때 전 대표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일단 우리부터. 만약 이걸 내가 들키지 않았다면 니들한테도 숨겼을 거다. 물론 내가 먼저 가서 만나는 봤을 거고.”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다는 듯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보자. 그리고 기억 못 하더라도, 송 작가에게는 말해 주자. 숨기지는 않으마.”
전 대표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승배야.”
“예.”
승배는 미리 받아 둔 고빈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순간 다들 호흡마저 정지한 듯 숨을 죽였다.
벨 연결음이 들렸다.
스피커 폰도 아니었지만 그 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들렸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
-삐 고객님의 사정으로 인해 잠시 착신이 중지되었으니…….
“…….”
승배가 어색하게 웃으며 일행들을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