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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15화 (15/305)

제15화 집념의 구은태

현관문에서 음악소리가 울려왔다.

“응? 뭐 두고 가셨나?”

고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현관으로 다가갔다.

그의 엄마인 마지연이 돌아간다며 간 지 십 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강문호 대위의 신음성이 울려 왔다.

“끄응.”

“응?”

문을 열려던 빈이 고개를 돌려 강 대위를 바라보았다.

강 대위는 도어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숨을 내쉬는 것을 보니 지연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열어요?”

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답변은 문 밖에서 들려왔다.

[당연히 열어야지! 세상에 스승을 밖에 세워 놓는 제자가 어딨는가!]

까랑까랑한 노인의 목소리.

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강 대위를 바라보았다.

빈의 시선을 받은 강 대위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는 사람이 왔다는 의미였다.

빈이 문을 열었다.

“헛헛헛! 강 대위 오랜만이야! 그런데 이 친구는 왜 이렇게 어리버리한가. 빨랑 빨랑 열어야지.”

“어리버리요?”

빈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지만, 구은태 박사는 이미 안으로 불쑥 들어간 상황이었다.

“오셨습니까. 교수님.”

구 박사는 강 대위를 한번 반갑게 안아 주고는 소파에 털썩 엉덩이를 붙였다.

“아이고 덥구나!”

“환절기가 지났으니까요.”

“그래, 뭔가?”

구 박사는 은근한 표정으로 질문부터 던졌다.

주어는 빠졌지만 강 대위라면 모를 리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직은 좀 시간이 필요합니다.”

강 대위의 대답에 구 박사는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허, 시간이 금이잖은가. 말하는 걸로 봐서는 최소한 준영웅급은 되는 거 같은데. 나라에서 일한다는 놈들이 채 가지 않겠나?”

“그 나라에서 채 가는 시스템을 만들고 쫓겨나신 분이 구 박사님이시잖습니까.”

“흘흘흘! 이럴 줄 알았으면 그러지 말 걸 그랬어!”

강 대위가 받아쳤지만, 구 박사는 오히려 너스레를 떨었다.

그때 강 대위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게 빨리 움직이지는 않을 겁니다.”

“응?”

“소수점 아래입니다.”

“청동기쯤 되나?”

간혹 기록이 없는 시기의 강림자 중에 특출 난 힘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물론 희한하게도 그 시기의 인물은 정말 소수다.

아마도 무기의 발달이 미진한 시대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기의 발달이 미진하다는 것은 투쟁에 있어 강력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대신 신체적인 능력이 극대화되기는 했다.

“그러면야 이해는 되지. 자네도 알잖은가. 인지도의 기준이 요즘 어떻게 해석되는지.”

“예. 알지요. 이 세상 역사에 얼마나 영향력을 끼쳤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금 와서 해석하는 인지도는 그것이었다.

강림자의 존재를 아는 현세의 사람들의 기억을 기준으로 무력 기준을 삼았기에 인지도라는 게 붙었다.

하지만 그 인지도의 기준은 곧 이전 삶에서 세상에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끼친 사람인가로 재해석된 것이다.

다만, 인지도가 낮으면서도 강력한 힘을 보유한 이는 그 힘을 가지고도 이전 삶에서 세상에 많은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경우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삼국 후반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런데 전화로 물은 것을 보니 뭔가 행태학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는 건가 보지?”

구 박사는 처음 왔을 때와 달리 약간은 차분해진 모습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준영웅급 이상이라 생각해서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결국 특이해도 소수점 이하라면 한계가 있는 것도 지금까지의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구 박사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쪽을 향했다.

“이거 손님이 있었나? 안녕하신가!”

구 박사는 너스레를 떨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문밖으로 나온 이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어허, 이거 풍채가 아주 대단하신 분이구먼! 강 대위 후임인가?”

구 박사의 질문에 강 대위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의 표정을 본 구 박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선임?”

“저 영감쟁이는 와 온 거이네? 시끄럽게 굴디 말라 그러라우.”

그의 말에 구 박사의 얼굴이 벌게졌다.

“영감쟁이? 영감쟁이라 했는가! 북에서 장성 노릇이라도 했나 본데! 나 육참총장이 내 아우야! 아우!”

구 박사가 버럭 하는 모습을 보고 강 대위는 머리를 긁었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보이는 나이만 해도 구 박사가 십 년은 더 먹어 보이니까.

옆에 있던 빈은 눈치 없게 ‘진짜에요?’라고 묻고 있었다.

“진짜긴 하지.”

침식 당시 연구소를 이끌며 많은 해법을 끌어낸 인물이 바로 구은태 박사였다.

혁혁한 공로를 세운 입지전적인 위인이다.

다만 안정화 이후 너무 공격적인 연구방식과 의견제시로 지금은 그 자리에서 밀려나왔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지금 한 말도 사실이다.

다만 육참총장이 그라면 일단 피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지랄 말라우. 육참이니 뭐니 내 알 바 아니니까네. 이 안으로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

그 말을 끝으로 부루가 다시 문을 닫고 들어갔다.

“아니 저놈이!”

“영감님 소용없어요.”

빈이 구 박사를 말렸다.

“젊은이, 저런 싸가지 없는 놈이 하는 말 못 들었나!”

“에이 영감님이 잘못한거죠, 조상님한테.”

“응?”

구 박사가 멍한 표정으로 빈을 바라보다가 그의 팔뚝에 차여 있는 스크린이 달린 장치를 보았다. 소환자들의 필수장비.

“어?”

구 박사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표정으로 빈을 가리키며 강 대위를 쳐다보았다.

“강림잡니다.”

강 대위는 구 박사에게 쓴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해 주었다.

* * *

찬물을 들이킨 구은태 박사는 이제야 정신이 드는 모양이었다.

“강림자라고? 저놈, 아니 저분……. 뭐라고 해야 하지?”

정신은 들었지만 아직 혼란했다.

쉽게 지금의 상황이 정리가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강림자도 시간이 지나며 적응이 되면 자연스러워지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걸 누군가는 게임처럼 레벨업을 한다고 했다.

물론 완전 틀린 건 아니었다.

강림자도 진화를 하니까.

하지만 구 박사는 초기부터 수많은 강림자를 직접 보고 만나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지금 그와 대화를 나눈 을지부루라는 강림자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모를 수 없었다.

일반인들이야 같은 외형에 그런가 보다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자네가 내게 연락한 이유를 알겠구먼.”

강문호 대위는 구 박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위쪽은 어디까지 알지?”

“뭐 침식지에서 난데없는 사건이 생겨서 조사관과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사건만 팠겠군.”

“예.”

강 대위의 대답에 구 박사가 혀를 찼다.

“여하간 공무원 놈들이란, 침식 때만 해도 뭐 하나 더 캐려고 하던 놈들은 다 어디 가고 그런 놈들만 현장에 남아서…… 아니지? 다행인 건가?”

혀를 차며 공무원을 성토하던 구 박사의 표정은 끝에 가서 돌변했다.

“여전하십니다.”

강 대위가 웃으며 말했다.

“흘, 뭐 그렇지.”

이게 구은태 박사다. 자신이 유리하면 장땡인 거다.

사실 이런 부분 때문에 윗사람들이 학을 떼기도 했다.

침식 관련 연구 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니까.

그것을 가지고 일부 연관된 사람들은 손가락질하지만 강 대위는 그러지 않았다.

침식 초기 그의 부인,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들이 전부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을 아니까.

그래서 침식에 관한 거라면 미친 사람처럼 연구한다는 것을 강 대위는 알고 있었다.

“흐음. 난 저 친구 행정병인 줄 알았지.”

“뭐 젊으니 착각하실 수 있지요.”

고빈이 히죽 웃고 있었다.

“자네 이름이?”

“빈입니다. 고빈.”

“그래, 자네 강림자 좀 불러 보게나.”

구 박사의 말에 빈이 똥 씹은 표정을 했다.

“제가요?”

그의 반문에 구 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처음에 실수해서 그런가? 미안하네. 내 나이 먹다 보니 꼰대 짓만 늘었네.”

“저 어르신. 못 합니다.”

빈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미안하다니까.”

“예, 그런데 못 해요.”

“아니 젊은 친구가! 왜 이리 꼬리가 길어! 미안하다니까!”

“아니 영감님은 조금 전에 미안하다면서 바로 버럭 소릴 지릅니까! 못 한다고요!”

“이, 이 친구 보게? 어르신이랬다가 영감님이랬다가, 누구 약 올리나!”

“일단 진정하시고…….”

점점 언성이 높아지는 둘 사이의 다툼에 강 대위가 끼어들었다.

“어허! 놔 보게!”

“영감님이 뭘 안다고요! 차라리 직접 불러 보시든가요!”

“이건 갑질이야!”

“살려는 발버둥입니다아아!”

말려도 소용없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두 사람의 모습에 강 대위가 한숨을 쉬며 다시 중재를 했다.

“일단 진정하십시오. 사실은 다른 문제가…….”

터엉!

강 대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거칠게 열렸다.

터엉.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다시 한걸음 내딛는 부루.

그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순간 강 대위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돌렸다.

“오, 을지부루라고 했나?”

구 박사는 환한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녕감. 내래 시끄럽게 굴디 말라 했디 안네?”

“허, 허허, 미안하네. 그런데…….”

구 박사의 말이 이어지려는 순간 부루의 커다란 눈알이 부릅떠졌다.

순간 쏘아지는 살기.

부루가 말했다.

“조용하라우. 더 떠들면 앞으로 고부라진 어리를 반대로 접어 버릴 거이니까네.”

움찔!

순간 구 박사가 몸을 떨었다.

“비니. 얼음물 좀 가뎌 오라우.”

“넵!”

빈이 얼어붙어 있는 구 박사를 스쳐 지나가며 냉장고로 달려갔다.

잠시 후 얼음물을 받아든 부루가 다시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구 박사는 얼어붙어 있었다.

그런 구 박사에게 빈이 아까와는 달리 안쓰러운 시선을 보내며 다가가 입을 열었다.

“어르신.”

“으, 응?”

“지리셨네요.”

“…….”

순간 구 박사가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가랑이가 축축했다.

김도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건 창피하지도 않은 듯 구 박사가 빈을 보며 귓가에 소곤거렸다.

“자네가 명령한 거지? 그런 거지?”

강림자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건 소환자뿐. 구 박사의 귓속말에 빈이 울상을 지으며 귓속말로 대답했다.

“그래 보이시나요?”

“아니.”

구 박사의 대답에 빈이 눈물을 글썽이며 소곤거리며 물었다.

“약 같은 건 없나요? 저거 고치는 약…….”

빈의 질문에 구 박사가 강 대위를 바라보며 부탁했다.

“남는 바지 좀 주게.”

“예.”

강 대위는 구 박사를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 * *

“이것 참.”

한때는 하도 많이 먹어서 문제였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다.

강문호 대위는 닫혀 있는 문을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틀째 저 문이 열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빈이 준 얼음물을 가지고 들어간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때 구은태 박사가 앞치마를 하고 조심스럽게 문 앞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저, 장군님. 제가 된장찌개를 기가 막히게 끓여 놨는데, 식사 좀 하시지요?”

“끙.”

강 대위는 한숨을 내쉬었다.

구 박사는 그날 이후 아예 이곳에 자리를 잡아 버렸다.

그리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문 앞을 서성였다.

이 정도면 대단한 집념이었다.

그때였다.

“응?”

지금까지 고기를 굽고 해도 열리지 않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억!”

강 대위가 놀랐다.

구 박사가 금기의 문을 스스로 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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