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그녀의 기억
“흐으음.”
마지연은 차문을 열고 내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군인들이 주변에 자주 보이는 것이 제대로 온 듯했다.
관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했으니 이곳이 맞을 것이다.
사실 군인 관사라 하면 좁고 낡은 아파트를 많이 떠올린다. 그러나 침식의 시기를 지내오며 군인의 위상이 이전과는 달라졌다.
물론 소환자가 주목받는 세상이다 보니 그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그때 군인들의 희생과 활약을 기억하고 있었다.
전쟁이 잊히고 고기방패니 하는 식의 비하의 대상이 되어 버렸던 군인은 이제 없었다.
총알이 통하지 않는 마물을 향해 총 대신 차를 몰고 육탄 돌격하던 그들의 희생을 기억한다.
물론 그렇다고 으리으리한 건 아니다. 다만, 적당히 넓고 깔끔하다는 거다.
또 이런 관사가 있는 동내는 집 값이 잘 오른다.
왜냐면 즉각 출동이 가능한 전투병력이 주변에 있다면, 심리적인 안정감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환자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그들에게 의지해야 하고 말이다.
이층으로 되어 있는 관사에서 누군가가 털레털레 걸어 나왔다.
“이놈의 새끼! 빨랑 안…….”
마지연이 버럭 소리를 지르다가 입을 다물었다.
걸어 나온 고빈의 얼굴은 딱 봐도 크게 상해 있는 모습이었다.
순간 지연이 내달렸다.
동시에 빈에게 다가가 등짝을 내리쳤다.
“못 싸라! 못 싸라아!”
철썩! 철썩! 철썩!
“어억! 억! 억! 엄마 아파!”
“닥쳐!”
지연은 등짝을 연신 두들겼고, 빈은 그런 지연의 손길을 피해 맴돌았다.
그렇게 팽이마냥 돌던 지연이 눈물을 매단 채 목소리를 높였다.
“야! 너 소환잔지 뭔지 됐다고 네가 영웅이라도 되는 줄 알아!”
“그게…….”
“멀쩡하다며! 멀쩡한 게 이래? 앙!”
“그게 통화할 때까지는 멀쩡했는데…….”
그녀는 빈의 변명도 귓가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여간 속이 상했는지 지연은 빈을 타박하면서도 그의 몸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물론 크게 다쳤다면 병원에 있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그녀가 이렇게 등짝을 두들기지도 않았을 거다.
그럼에도 엄마 된 마음은 다른지 연신 빈이 다친 곳이 없는지 살펴대었다.
“꺄악! 너 등이 왜이래!”
등짝이 불에 덴 듯 벌겋게 변해 있었다.
“엄마가 만들어 놓은 작품이야. 따끈따끈 할걸? 손자국도 있을 거 같은데.”
“…….”
지연은 빈의 말에 등짝에 찍혀 있는 손바닥 자국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대다가 화들짝 놀라 셔츠를 내려 버렸다.
“큼. 어쨌든. 너 때문에 내가 못 살아! 인지도도 소수점 네 자리라며! 제발 나돌아 다니지 좀 말고…….”
그녀는 잔소리를 퍼부으면서도 트렁크를 열어 아까 바리바리 챙긴 것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뭔가 이율배반적인 그녀의 행동에 빈은 익숙한 듯 쓴웃음을 머금으며 짐을 받아들며 대꾸했다.
“이번 건 내가 일부러 간 게 아니라니까. 그리고 나도 독립했으니까 먹고는 살아야지.”
“제발 그냥 시키는 거만 하면 안 되니? 너 코인 떡상할 거라고 몰빵했다가, 다 털어 처먹고 넘의 집 옥상 가건물에서 살고 있었잖아!”
“침식사태도 지났으니 바닥 친 코인이 다시 오를 줄 알았지. 훅 날아갈 줄 알았나.”
“에휴.”
그렇게 짐을 다 챙긴 그녀는 마찬가지로 양손에 무겁게 뭔가를 든 빈을 따라 들어갔다.
빈이 신세를 지는 강문호 대위의 집은 일층이었다.
빈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녀가 따라 들어가며 조신하게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빈이 엄마에요. 우리 빈이가 신세를 많이 지고 있지요?”
“아닙니다. 혼자 있는 것보다는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호호호호! 그래요? 너무 친절하…….”
웃음과 함께 인사를 했던 그녀가 허리를 펴며 말을 하다가 놀란 눈을 했다.
“강문호 씨?”
“네?”
“청계천 방어전의 영웅!”
그녀의 말에 강 대위가 어색하게 웃었다.
“영웅이라뇨…….”
“어머! 그날 방어선 뚫렸으면 서울전선이 무너졌을 건데. 영웅이죠. 그때 제가 기자였을 때에요. 당시 사진을 제가 찍어서 똑똑히 기억하잖아요.”
“그러셨습니까?”
강문호 대위가 환하게 웃었다.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공감대가 생기는 모양이었다.
“그때 트럭을 몰아가다가 일부러 쓰러트려 마물들을 밀어내고, 그걸 성벽삼아 버티던 그 작전 정말 장관이었죠.”
“하하하.”
그녀의 말에 멋쩍은 웃음을 터트렸던 강 대위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삼십 중반이라 해도 안 믿겠습니다. 이런 큰 아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아하하!”
그녀는 강 대위의 말이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고등학교 때 사고쳤거든요.”
“엄마! 자랑이야!”
“널 갖다 버렸으면 창피한 거지! 이만큼 사람 만들었으면 자랑인 거야!”
“아이씨잉! 다 늙어서!”
실제 그녀의 나이는 아직 사십 초반이었다.
“호호홋! 아직도 얼굴에 분장 잘 하면 클럽도 들어간다.”
“헐, 요즘도 다녀?”
“기분전환이지.”
모자간의 살가운 대화를 뚫고 익숙잖은 음성이 들려왔다.
“누가 왔네?”
그때 안쪽에서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나왔다.
동시에 빈은 지연의 뒤에 몸을 숨겼다.
“비니. 니 오마이 온 거간?”
“이, 이분은 누구신지?”
지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왠지 군인 같지는 않았다.
“반갑구만. 고생이 많갔어.”
부루의 말에 지연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굳어졌다.
지금 그는 어디서 구했는지 포댓자루만 한 티를 걸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마치 쫄티마냥 팽팽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그 덕에 비현실적인 근육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를 보며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호, 혹시 십 년 전…….”
“엄마 저 아저씨가 내 강림자야.”
“아…….”
그제야 지연은 표정이 풀어지며 중얼거렸다.
“그렇겠지. 아니겠지.”
지연은 챙겨온 음식을 펼쳤다.
자식이 신세지는 곳에 빈손으로 올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것 치고는 진수성찬이었다.
갖은 밑반찬은 둘째 치고, 불고기에 간장게장 등등 요즘 집에서 잘 해 먹지 않는 음식들이 즐비했다.
그것을 차려 놓은 지연은 한쪽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
“아저씨 진짜 조금씩만 드셔야 해요.”
“그만하라우. 한번만 더 떠들면 싹 다 먹어 버리갔어.”
“끄응.”
지연은 멍한 표정으로 둘의 대화를 지켜보다가 강 대위를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이 보는 게 실화냐는 표정이었다.
그녀 역시 기자출신이기에 강림자에 관한 지식은 기본 이상이었다.
심지어 침식 당시 전장에서 활동하던 기자 출신이면 반 전문가라 봐야 했다.
“행동이 소숫점 네 자리가 아닌데요?”
“사실 이런 부분 때문에 안 그래도 제가 좀 고빈 씨와 자주 접촉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진짜 식사도 하는 건가요?”
“예. 실제 봤으니까요. 저도 놀랐습니다. 아참, 그리고 강하기도 합니다. B급 분류의 언더로드도 잡았으니까요.”
놀란 그녀의 얼굴은 이내 어두워졌다.
걱정이 그대로 그녀의 표정 위로 드러났다.
소환자.
솔직히 말해 요즘 영웅처럼 띄워 주기는 하지만 위험도가 높은 편이었다.
상위로 갈수록 그 위험도는 커진다.
물론 강림자의 특성상 이차 강림 등이 이루어져 소환자의 보호에 문제가 없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곳을 들어가야 한다.
의무진입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침식지대를 들어가기도 하지만, 항상 적당한 정도만 출입한다.
강림자의 무시무시한 능력에 비해 소환자는 그 신체적 능력이 크게 상승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구성이 오른다는 거다.
물론 그것도 강림자의 위력에 비례하지만.
그렇게 안정적으로 침식지대를 돌며 침식지의 마물점유율도 낮추며 돈도 번다.
소재공학에 쓰이는 마물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의무진입은 그게 아니다. 군사작전에 준한 것이 바로 의무 진입이다.
쉽게 말해 자신의 실력에 맞는 상대를 잡으러 가는 것이다. 다 쉬운 것만 찾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일단 지금은 제가 관찰 때문에 따로 논외로 전력을 빼놓았습니다. 그 정도 권한은 있어서요.”
그녀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이해한 듯 강 대위가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위로가 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후우. 세상 날로 먹을 순 없잖아요.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다행히 그녀는 쓴웃음을 머금으며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식사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부루의 폭식이 없었다.
적게 먹는다고 쓰러져 죽는 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식사를 하던 중 그녀가 부루를 슬쩍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그런데 어느 시대에요?”
“가우리, 아니 고구려래.”
빈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강 대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도 나중에 자료를 받아서 확인했다.
보통 그런 자료는 강림자 복식 특색에 따라 구분되어 기초적으로 작성되어 나온다.
그 역시 부루의 갑주를 보았기에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확인차 던진 질문에 혼란이 온 것도 사실이었다.
“네. 그런데 듣기로는 지명 정보가 좀 달라 애를 먹고 있습니다.”
강 대위의 말에 빈은 뭔가 또 떠올랐다는 듯 끼어들었다.
“그런데 을지문덕 장군 자손이래요!”
순간 강 대위는 물론이고 지연마저 놀란 눈을 했다.
“뭐어!”
음식을 먹던 부루가 잠시 수저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기러고 보니 내 아바이는 어케 아는 거이간?”
“당연히 알죠. 고구려의 명장이신데.”
빈의 대답에 부루는 물을 마시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기가 가우리네?”
부루의 질문에 빈이 입을 열었다.
“뭐, 후손이라고 해야지요.”
“…….”
부루는 입을 다물었다.
“이 세상에서의 가우리는 망한 거이간?”
부루의 질문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부루의 얼굴이 씁쓸하게 변했다.
빈의 입에서 을지문덕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부루는 묻고 싶은 게 많았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확인하고 싶지가 않았다.
부루는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가우리는 말이디.”
덤덤한 음성.
항상 까불거리던 빈마저 지금은 입을 다물고 부루가 하는 말을 들었다.
“망하디 않았어야.”
아무도 부루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부루는 그게 자신에 대한 배려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었다.
“잘못 알고 있는 거이야. 망하디 않았어.”
다시 한 번 반복하며 말을 뱉은 부루가 뒤돌아 나오며 중얼거렸다.
“내래 죽어 먼저 고향에 왔군 기래.”
그렇게 중얼거리는 부루를 보며 빈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좀 많이 쓸쓸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식사가 끝이 나고 강 대위의 집에서 돌아오던 지연의 얼굴이 여전히 편치 못했다.
“강림자랬는데.”
하지만 지연은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분명 그 얼굴은…….”
그녀는 지금은 폐쇄된 팬 카페 하나를 떠올렸다.
전신이라는 이름의 카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