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엄마아아!
* * *
강문호 대위는 이른 아침 몸을 일으켰다.
“끄응.”
다른 때와 달리 몸이 찌뿌둥한 느낌이 컸다.
“하긴…….”
전날 하도 많은 일을 겪은 탓이 컸다.
방문을 열고 나온 강 대위는 멀거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을지부루를 볼 수 있었다.
“일찍 일어나셨습니다.”
“알디 않네. 자도 자는 게 아니라는 거.”
“예.”
강 대위가 쓰게 웃었다.
강림자는 사람이 아니다.
당연히 먹지도 자지도 않는다. 그저 눈을 감고 시간을 보낼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살아생전의 흐름대로 반복하는 것일 뿐이라는 연구 논문이 있을 뿐이다.
다만, 그 논문의 일부인 먹는다는 부분만큼은 해당 안 되는 이가 바로 눈앞의 부루였다.
해당 안 되는 것이 그거 하나뿐이겠는가.
그 때문에 강 대위도 착각을 하게 된 거다.
강 대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얼 보십니까?”
“뭐 기냥 보는 거이디. 희안한 세상이니까네.”
“아마 사셨던 때와는 많이 다를 겁니다. 기억이…… 나신다면요.”
“비슷한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디. 기거야 어느 세상이나 비슷하디.”
담담한 답변이었지만, 강 대위는 이 짧은 질문 속에서 뭔가를 얻어 낼 수 있었다.
강 대위가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와 부루에게 주며 옆에 앉았다.
“이리저리 돌리디 말라우.”
“예?”
“묻고 싶은 거이 많아 이리 끌고 온 거 아니네?”
“아…….”
강 대위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역시나 만만치 않았다.
딱 봐도 본능적으로만 움직이게 생긴 것과는 달리 깊은 통찰력이 있어 보였다.
이 역시 영웅급 존재에서나 볼 수 있는 행동이었다.
“이전 생의 기억이 있으십니까?”
“있디.”
“그러면…….”
“내 질문도 받아야 되디 않간?”
“예?”
순간 강 대위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강 대위에게 부루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디 않간?”
“아, 아예.”
강 대위는 부루에 대한 평가를 대폭 수정해야만 했다.
그를 대할 때는 강림자가 아닌 하나의 인격적 개체로 인지해야 편하다는 결론으로 말이다.
“질문하십시오.”
“그 강림자와 소환자가 와 있는 거이간? 내래 여기 끌려온 이유가 뭔디 모르갔어.”
부루의 질문에 강 대위가 쓴 웃음을 지었다.
이런 질문은 그 어떤 강림자들에게서도 나온 적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무언가 사명감 비슷한 것이라도 있는 듯, 함께 싸우는 데에 집중할 뿐이다.
묻고 따지고가 없다.
마치 체내에 들어온 병원체를 몰아내는 항체와 같이 마물들을 박멸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부루의 존재는 이레귤러다.
“정확한 것은 없습니다. 과학적으로 설명이 된 것도 없고요. 다만 이 세상이 원래부터 이랬던 건 아닙니다.”
“기건 들었디. 갑자기 뚝 떨어졌다고 말이디.”
“예. 저도 그 시기를 현역으로 복무했었습니다.”
부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 대위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다만, 당시의 인연으로 인해 이쪽 관련 연구를 했었습니다. 현장에서 파악한 것을 연구원에게 협조하는 형태였지만, 이게 나름 적성에 맞았습니다.”
“기렇군.”
“마찬가집니다. 이렇게 모셔 놓고 질문하는 이유도요. 일단 소환자와 강림자는 우리가 붙인 명칭일 뿐입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게 가능한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다만…….”
강 대위는 부루의 시선을 마주한 채 잠시 흐렸던 말을 이었다.
“아마도 이 세상의 방어기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기건 또 뭐이간?”
알아듣기 힘들다는 표정을 하는 부루에게 강 대위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병이 걸려도 몸이 알아서 낫는 거 있잖습니까. 그런 거 말입니다.”
“기렇게 말하니 좀 이해가 가는구만. 하지만 와 연관없는 내가 끌려왔는디 도무지 알 수 없어야. 기게 궁금하단 거디.”
“연관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응?”
강 대위가 조심스럽게 설명을 이었다.
“강림자는 이 땅에 살았던 우리들의 조상님들로 구성되었으니까요.”
“……기거이 뭔 소린 거이네?”
부루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다시 질문을 던졌다.
“여기가 하이엔 대륙이란 말이네?”
“예?”
“레간쟈 산맥 모르는 거이간?”
“예에?”
강 대위는 뭔가 옛 지명인가 하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하지만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고빈이 문을 열고 나오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게,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일단 하드를 복구할 수 있는지 확인부터 할게.”
빈의 목소리가 끝나는 순간 뾰족한 외침이 그가 들고 있는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꽤 화가 나 있는 모습이었다.
빈은 울상을 하고 스마트폰을 귀에서 멀찍이 떨어트려 놓았다.
그래서인지 내용은 모르겠지만 히스테릭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연신 터져나오고 있었다.
“그, 일단 나중에, 나중에 연락할게요!”
서둘러 전화를 끊은 빈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강 대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군데 전화가 그렇게…….”
강 대위의 질문에 빈이 울먹이며 대답했다.
“엄마요.”
“…….”
순간 강 대위의 얼굴이 굳어졌다. 부루는 이게 또 뭔가 하는 표정으로 빈을 바라보았다.
“후우. 미치겠네.”
한숨을 내쉬며 죽을상을 하고 있는 빈에게 강 대위가 굳은 얼굴로 다시 질문을 했다.
“돌아가신 거 아닙니까?”
“울 엄마요? 멀쩡하게 살아계신 분을 왜 죽여요. 죽는 건 당장 내가 되게 생겼구만.”
툴툴거리는 빈을 보며 부루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비니.”
“예.”
“어제 집에 어마이 그림인지 사진인지가 죄 사라졌다고 운 거 아이간?”
“그랬죠.”
“돌아가신 어마이 사진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디?”
“제가 죽겠다고요!”
뭔가 정리가 안 되는 상황에 강 대위가 물었다.
“그럼 그 사진은 뭡니까?”
그러자 빈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알바요. 엄마가 프리랜서 사진 작가거덩요. 방송스냅사진 찍는 분인데, 그거 보정 알바 제가 대신 하고 있었거덩요.”
“…….”
“그런데 그 사진 원본이 집에 있었어서. 미치겠네…….”
부루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강 대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뭔디는 모르갔지만 말이디.”
“예.”
“내래 지금 패야갔어.”
“예.”
강 대위가 담담하게 대답하고, 빈은 위기감을 느끼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응? 두 분 무슨 말씀 하시는 거에요?”
“말리지 말라우.”
“그냥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집기만 부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강 대위가 몸을 일으켰다.
빈은 그를 향해 당황한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저기요!”
그런 빈을 향해 부루의 커다란 손이 뒤덮여 갔다.
끄아아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강 대위는 밖으로 나와 흡연장소에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소환자가 정상이 아니라서 강림자도 이레귤러인 거였나?”
뭔가 말도 안 되는 상상마저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런데 하이엔? 한? 레간쟈? 이런 지명들이 있었나?”
뭔가 미국이나 유럽 쪽 지명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름들이었다.
강 대위는 스마트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접니다.”
[어 강대위.]
“뭔가 여쭈려고요.”
[갑자기 뭔데? 뭔가 이상징후라도 있나?]
전화를 받은 이는 바로 구은태 박사였다.
침식지와 강림자 연구로 권위가 높은 연구자였으며 강 대위의 은사나 마찬가지인 사람이었다.
“그것보다 옛 지명 중에요.”
[우리나라?]
“예. 혹시 하이엔 대륙이나 레간쟈라는 지명이 있습니까?”
강 대위의 질문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하이에 대륙은 모르겠고, 레간쟈는…….]
“아십니까?”
강 대위가 반색을 하며 재촉하듯 묻자 약간 자신 없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 옛날에 소리 없이 나왔다가 소리 없이 사라진 자동차 이름 아닌가?]
“…….”
[어이. 강 대위. 문호야! 문호야! 농담이다! 농담이야!]
스승에 대한 예는 아니지만 강 대위는 소리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때 또다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관사 상황병이 다가와 그의 집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뭐 잡습니까?”
“응.”
“무, 문제는 없겠죠?”
“죽진 않을 거야.”
강 대위의 담담한 답변에 상황병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멀어져 갔다.
* * *
“아, 이 친구 간만에 농담 좀 했더니. 융통성이 없어. 융통성이.”
구은태 박사는 끊어진 전화를 보다가 피식 웃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나라는 아닌데.”
강림자 관련 연구를 하다 보면 우리나라의 옛 지명에 대한 학습은 기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모든 옛 지명을 알 수는 없다.
남아 있는 기록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걸 떠나 이런 지명이 국내에 있을 리는 없다.
“외국에 나가 있던 강림자라도 있나.”
물론 그런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옛날이라 해도, 유럽 등 서방 세계에까지 진출했던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다 문득 뭔가가 생각났는지 구은태가 놀란 듯 벌떡 일어섰다.
“뭐야? 영웅급 강림자라도 나온 건가!”
이전 세상의 지명을 안다는 것.
그건 바로 기억이 남아 있다는 의미였다.
그 말은 최소한 영웅급에 준하는 강림자가 새로 발견됐다는 의미였다.
왜 새로 발견됐다는 말이냐면, 그가 모르는 영웅급 강림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영웅급 혹은 그에 준하는 강림자는 이 땅에 스물이 채 안 되었다.
그만큼 희귀한 존재인 것이다.
희귀하기에 그들에 대한 데이터는 이미 수집되어 있었고 말이다.
구은태는 재빨리 옷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 * *
이승배는 보고를 받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작가님!”
[사본이 있으니까 다시 작업해서 드릴께요. 죄송해요.]
“아, 진짜…….”
들려오는 사과 목소리에 승배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판도라 엘범 제작관련 스냅사진이 늦게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사고만 아니면…….]
“끄응.”
이게 문제다.
사고.
균열 관련 사고라는데 이걸 또 뭐라고 따지기도 그랬다.
마음을 가라앉힌 승배가 입을 열었다.
“다치신 곳은 없고요?”
[예. 다행히…… 작업자가 자리에 없었어서.]
“다행입니다. 아드님이죠?”
[예. 어찌 되었든 죄송해요.]
“그래도 사본이라도 있어 다행입니다. 다시 작업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승배의 말에 사진작가는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
[최대한 빨리 해 놓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전화를 끊은 승배가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뭐가 가슴이 꽉 맥힌 느낌이지? 뭘 잘못 먹었나.”
승배는 한숨을 내쉬며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 * *
전화를 끊은 마지연은 이를 갈았다.
“꼬비니 이 자식! 매일 조금 남았다고 구라 치며 미룰 때마다 알아봤어!”
마지연은 씩씩 거리며 가방을 챙겼다.
“해 놓은 것부터 보내라니까, 한 번에 보낸다고 매일 구라 치더니…….”
그렇게 씩씩거리며 그녀는 냉장고 문을 열고 뭔가를 챙기기 시작했다.
반찬통으로 보이는 것들이었다.
“가만 두나 봐라. 이놈의 새끼!”
이를 빠득 빠득 갈며 홍삼까지 알뜰하게 챙기는 그녀였다.
물건을 다 챙긴 그녀가 문자를 보냈다.
-주소 보내라. 위치 추적해서 찾아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