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빈의 눈물
“에이 안 바래다 주셔도 되는데.”
고빈은 강 대위가 모는 차를 타고 가면서 히죽거렸다.
“아닙니다. 오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에이, 고생은요.”
그때 을지부루가 입을 열었다.
“이거이 영 맹물이구만?”
“뭐가요?”
“딱 보면 모르간? 어데 사는지 미리 알아놓으려는 거디.”
부루의 말에 빈이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강 대위를 바라보았다.
“그게 좋겠네요. 저도 안전을 보장 받을 필요가 좀 있고요.”
“……뭐라 그러는 거이간?”
“그렇죠?”
부루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되묻고 있었고, 강 대위는 그를 힐끔거리며 살짝 두려워하는 빈을 보며 어색하게 웃어 줄 뿐이었다.
강 대위는 웃었지만,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사실 인적사항이야 어차피 등록이 다 되어 있는 부분이다.
심지어 소환자의 팔에 차고 있는 건 무늬가 아니다.
다 위치저장정보가 담겨 있다.
그걸 모르는 소환자도 없고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확인할 수 있는 것과 직접 확인하는 건 다르다.
거기에 강 대위는 현장에서 오래 굴렀던 버릇 때문인지 직접 눈으로 봐야 직성이 풀렸다.
물론 이런 특이사안의 경우 결에 두고 관찰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게 쉽겠는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쪽의 의도를 모를 리가 없었다.
지금까지 나름 좋은 인상을 심어 주었는데, 여기서 더 욕심을 낼 필요는 없었다.
거기에 어차피 이들에게 해를 끼치려 하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런데 목적지에 다 와서 갑자기 차가 막히지?”
중얼거리던 강 대위의 안색이 굳어졌다.
뿐만 아니라 부루와 빈의 얼굴도 굳어지고 있었다.
창 밖에서 울려오는 경보음.
그것을 떠나 주변으로 내달려오는 사람들.
“균열…….”
빈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순간 이미 강 대위는 차를 한쪽에 대고 있었다.
이어서 차가 멈추는 동시에 트렁크로 가서 무장을 챙겼다.
부루 역시 밖으로 나와 사람들이 도주해 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출동 병력이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로는 시간벌기밖에 안 된다는 것을 잘 아는 강 대위는 부루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물들이 뛰쳐나온 것 같습니다.”
“기런 것 같기는 한데. 기거이 침식지에서나 튀어나오는 거 아이간?”
“균열이라는 게 생깁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자주는 아닌데 왜 나한테만!”
빈이 울상을 지었다.
손에 꼽기는 했다.
그리고 이상현상이 벌어질 때면 미리 감지가 되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간혹 이렇게 이례적으로 기습적으로 열리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이런 경우 나오는 것들은 그리 강한 개체는 아니었다. 수도 그리 많지는 않고 말이다.
그러나 제때 처리를 하지 못하면 그 피해가 크기 때문에 빨리 움직여야 했다.
강 대위가 다급하게 물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뭘 묻고 있네? 빨리 띠라우!”
강 대위의 말에 부루는 먼저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어 강 대위 역시 그 뒤를 따랐다.
그곳에 남은 건 빈이다.
“저, 나는…….”
왠지 빈은 서글퍼졌다.
“난 소환잔데…….”
그런데 별로 의미 없는 느낌이었다.
조금 전 강 대위도 그랬다.
그가 아닌 부루에게 도와 달라고.
“에이씨!”
빈은 울상을 지으며 내달렸다.
콰콰쾅!
건물 한쪽이 파괴되는 소리가 울려왔다.
그 사이 병력들이 도착하여 대열을 갖추었다.
“젠장 뭐가 나온 거야?”
“글쎄.”
병력들이 긴장한 얼굴로 굉음이 울려퍼지는 곳을 지켜보았다.
그때였다.
그워억!
뭔가 진득한 외침이 울려왔다.
“아, 이거 별로 안 좋은데.”
“하아.”
그 소리를 들은 병력들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서렸다.
“E급 푸 엘레펀트다. 푸 엘레펀트다!”
순간 구리한 향기가 풍겨 나오기 시작했다.
Poo Elephant.
보통 괴수의 이름은 발견한 이가 명명한 이름을 딴다.
개중에는 이런 식의 이름도 있었다.
똥 코끼리.
거대한 몸집이 코끼리를 연상케 하지만, 그보다 코끼리코와 같은 굵은 촉수 하나가 특징이다.
문제는 그 코에서 뿜어지는 악취가 문제였다.
“미쳐 버리겠네. 이걸 가지고 어떻게 막아!”
그리고 또 한 가지.
타격대가 가지고 있는 충격탄으로는 어지간해서 움직이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덩치가 워낙 컸다.
심지어 맞으면 오물이 튄다.
사실 그 존재자체로는 위협이 적기는 하다.
움직임도 느리고 오물은 독성이 있기는 하지만, 누가 농담처럼 던진 말로 똥독 오르는 정도라니까.
그러니 깔리지만 않으면 된다.
문제는 늦은 시간이고 주택가라는 점이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크워어억!
콰콰쾅!
거대한 몸집이 건물을 들이받는 순간 주택 한쪽이 무너졌다.
이것의 문제는 이것이다.
존재 자체가 문제다.
그 몸집으로 여기저기 부딪치면서 건물을 상하게 하여 2차 사고를 부른다.
그때였다.
“똥간에 있어야 하는 거이 와 여기 있네?”
“응?”
그때 뒤에서 울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던 타격대장이 부루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뒤따라오는 강 대위를 보며 반겼다.
“소환자십니까? 다행입니다. 일단 저걸 처리해야 하는데, 혹시 가능하시겠…….”
타격대장이 말을 하는 사이 대원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자, 잠깐요!”
“강림자 아저씨! 멈춰요!”
순간 대원들의 아우성에 타격대장이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어억!”
그의 입이 떡 벌어졌다.
타격대원들이 타고 온 바이크가 날아가고 있었다.
푸 엘레펀트를 향해 말이다.
뻐어억!
그어어억!
멀리서 한 대 제대로 얻어맞은 푸 엘레펀트가 비명을 내질렀지만,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악! 저거 튜닝하느라 얼마가 들었는데!”
하지만 그들의 경악성이 끝나기도 전에 두 대가 더 날았다.
그리고 어김없이 푸 엘레펀트의 머리통을 두들겼다.
그때 뭔가 더 던질게 없나 둘러보던 부루가 도끼를 들었다.
그리고는 힘차게 휘두르는 순간 가로등이 깔끔하게 잘려 쓰려졌다.
“이거 괘않구만.”
부루는 윗부분도 잘라내 버린 뒤 그걸 양손으로 들고 내달리다가 휘둘렀다.
부와아아악!
마치 프로펠러처럼 날아갔다.
그리고 비명을 내지르는 푸 엘레펀트의 몸통을 그대로 반쪽내고 그 뒤의 집까지 박살을 내버렸다.
푸 엘레펀트가 비명을 내지르다가 마치 아이스크림마냥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아, 이거 저러면 아…….”
타격대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타격대원들의 이동수단이 세대나 날아가 버렸다.
듣도 보도 못한 처리 방식이었다.
차라리 가로등은 괜찮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명령을 이렇게 내리시면 어떡합…….”
타격대장이 붉어진 얼굴로 강 대위에게 따지는 순간 빈이 헐떡거리며 내달려왔다.
그를 본 강 대위가 빠르게 답했다.
“소환자는 이분입니다.”
“아저씨!”
타격대장은 화살을 빈에게 돌렸다.
타격대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순간 빈도 맞받아치듯 외쳤다.
“으아악!”
“아, 아니 왜 아직 말도 안 했…….”
“우리집!”
“…….”
“으어어어!”
빈이 그대로 머리를 감싸며 절규했다.
화를 내던 타격대장도 할 말을 잃은 채 웅크리고 울고 있는 빈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부루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손을 털고 있었다.
그때 조심히 다가간 강 대위가 입을 열었다.
“그… 사유재산은 함부로 던지면 안 됩니다.”
“어쩔 수 없었디 않네?”
“하지만 무기가 있으신데…….”
순간 부루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자 강 대위가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니보라. 지금 저 똥구덩이에 드갔어야 한다는 거이간?”
“아닙니다. 그냥 여기 가로등이 많았기에…….”
강 대위는 서둘러 말을 돌렸다.
그 와중에 집을 잃은 빈은 목 놓아 울었다.
“어흑허어어어엉!”
한쪽에 훌쩍이고 있는 빈에게 타격대장은 무미건조한 음성을 내뱉고 있었다.
“일단 보상금의 경우 타격대 기물 파손비를 제하고…… 하아. 이건 뭐 위에서 알아서 하겠지요.”
타격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작전을 하다 보면 뭔가 부서지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마물에 의해 부서진 게 아니라 강림자가 집어 던져서 부서진 거다.
그 배상책임은 소환자에게 있다.
하지만 긴급상황이니 이에 대해서는 아마도 조사관의 결정에 따라야 할 것이다.
“아니 왜 그걸 그렇게 운용을 하셔가지고는…….”
타격대장은 혀를 차다가도 고개를 내저었다.
영혼이 빠진 듯 주저앉아 있는 빈을 보며 할 말을 잃었던 것이다.
다른 건물들도 피해가 많았지만 가장 많은 피해는 바로 빈의 옥탑이었다.
부루가 마지막에 날린 가로등에 완전 파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오물을 청소하고 소독을 해야 했다.
강 대위가 한숨을 내쉬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일이 이렇게 되면 빈의 거처가 불분명해진다.
그렇다고 그에게 섣불리…….
“아…….”
“응?”
“아저씨……?”
빈이 콧물을 매달고 강 대위의 바지 한쪽을 엄지와 검지로 잡아서 슬며시 당기며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재워 주세요.”
“예?”
반문하는 강 대위에게 빈은 눈물과 콧물을 동시에 흘리며 말했다.
“가, 갈 데가 없어효…….”
의도한지는 모르겠지만 목소리 끝이 떨려 나오며 애처롭게까지 들려오는 빈의 음성이었다.
* * *
“아저씨 같은 사람은 깜방 가야 해요.”
“닥치라우.”
“아흑흑흑! 그 집이 어떤 집인데…….”
고빈의 울음에 을지부루가 버럭 소릴 질렀다.
“찔찔 짜디 말라우! 기래 밤에 울어 싸면 기신 나오는 법이야!”
“아저씨도 따지면 귀신이 거덩요!”
“귀신한데 데져 볼 거이간?”
“어허어엉! 내집!”
부루의 협박에 빈은 눈물로 대항했다.
“…….”
강 대위는 운전을 하면서도 뒤에서 들려오는 지방방송에 머리를 감싸며 한숨을 내쉬었다.
원하는 그림이기는 했다.
그러나 갑자기 후회가 되기도 했다.
알고 보니 빈이 살던 집은 무허가였다.
옥탑에 지은 무허가 건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박살이 난 거다.
“에, 에 에해이이이잉…….”
하도 울어서인지 빈의 목소리가 가늘게까지 변했다. 마치 안 울려고 하는데 자구 울음이 나오는 듯한 모습이다.
심지어 목소리도 세어 버렸다.
결국 부루도 참다가 목소리를 높였다.
“기까이꺼 내래 지어 주면 되디! 그만 울라우!”
“사진……”
“뭐라는 거이간?”
“울 엄마 사진요.”
빈이 퉁퉁부은 눈으로 부루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진은 또 뭐이간?”
“사진은 일종의 초상화 같은 겁니다. 이런 거요.”
강 대위는 말없이 자신의 휴대폰에 있는 사진을 보여 주었다.
빈이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거기 컴에 다 있는데…….”
“…….”
뭔지는 모르지만 부루는 더 이상 뭐라 말을 하지 않았다.
미안한 감정이 든 것이다.
“야동도 졸라 많은데.”
“…….”
뭔가 감동이 깨진 느낌이다.
강 대위가 입을 열었다.
“야동은 야한 동영상의 줄임말 입니다. 아까 사진 같은 걸 말합니다.”
친절하게 부루에게 꼰질러 주었다.
그러자 부루가 말했다.
“기건 어서 구하는 거이간?”
“…….”
강 대위는 더 이상 저들과 대화를 섞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