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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11화 (11/305)

제11화 아버지는 말하셨지

외진 곳에 쭈그리고 앉은 두 남자가 있었다.

바로 서준모 경장과 최후배 경위였다.

“창진이는 아냐?”

“저도 아까 정미에게 받았어요. 걔는 모를걸요?”

“그런데 걔는 이걸 어디서 구했어? 그 마물팀 아니야?”

서 경장의 질문에 최 경위가 복잡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강림자랍니다.”

“뭐가?”

“이 양반요.”

순간 서 경장이 놀란 눈을 했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정말 타임슬립해 왔던 건가?”

“마법은 어쩌고요.”

“아…….”

탄성을 흘렸다가 서 경장이 다시 얼굴을 굳혔다.

“이거 그 폐하랑 다 다시 오시는 거 아냐?”

서 경장의 말에 최 경위가 헤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모르죠. 그때도 한명 왔다가 줄줄이 왔다고 했었으니까.”

“그, 그건 그렇지.”

어쩌면 그때의 일을 가장 많이 아는 이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물론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을 빼고 말이다.

* * *

이정미 경위는 골몰하고 있었다.

“역시 알고 있어.”

당시 테러에 대한 자료는 인터넷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경위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격무에 시달리던 최후배 경위를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만났을 때는 특이하다고만 했지만, 십년 전 떠들썩하게 돌아다니던 동영상에서 본 기억이 희미하게 났었다.

그걸 확인하고자 한 만남이기도 했다.

그걸 당시 깊게 파고들었던 최 경위였기 때문이다.

“하아. 정말 싹 다 지웠네.”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에 뭐라도 남을 줄 알았던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침식이라는 대사건이 벌어지며 전 세계의 인터넷은 한동안 단절되기도 했다.

심지어 서버들도 일부 날아가고 말이다.

아마 그 시기를 지나며 자료들이 사라졌을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외부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당시에도 영상이 갑자기 내려가고 했었으니까. 뒤에 미국이 있다던 괴담도 돌았지만, 이 경위는 그게 꼭 괴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술 마시고 퍼진 최 경위에게 들은 기억으로는 분명 미국이 연관되었다고 했었으니까.

“뭐, 연락 오겠지. 다음엔 술이나 한잔할까아?”

갑자기 분위기가 붕 뜬 이 경위였다. 자료 때문인지 아니면 최 경위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 * *

새로 지은 퍼스트 엔터의 사옥으로 들어서는 전창걸 대표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으흥~”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십년 동안 위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어엿한 대한민국의 엔터 사업을 이끄는 한 축이 되었으니까.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던 전 대표의 눈에 뭔가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 못하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승배야아~! 너 무슨 사고라도 쳤느냐아!”

“어? 대표님……하, 하하 제가 짬이 얼만데.”

“왜 요즘도 몸이 근질거려? 액션 좀 하고 싶냐?”

“에이. 이젠 몸이 굳어서 안 되죠.”

전 대표의 말에 승배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 그나저나 요즘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네?”

“예?”

순간 승배가 살짝 떨리는 음성으로 되물었다.

“그 뭐냐, 너 옛날에 회사 옥탑에 살 때 그때 말야. 그땐 회사가 이렇게까지 클 줄은 몰랐잖냐. 그렇지이?”

전 대표의 말에 승배가 어색하게 웃었다.

“하, 그, 그쵸!”

“그분들은 잘 있을까?”

“쿨럭!”

순간 승배가 사레 걸린 듯 기침을 터트렸다.

“응? 너 좀 이상하다?”

“이, 이상하기는요. 에이, 왜 그러십니까.”

손사래를 치며 웃어넘기는 승배를 가자미눈을 하고 흘겨보던 전 대표가 갑자기 그의 뒷덜미를 잡았다.

“너 좀 따라와.”

“컥! 왜, 왜요!”

그렇게 전 대표는 승배의 뒷덜미를 잡아끌고 대표실로 향했다.

소파에 앉은 전 대표가 소파 끄트머리에 죄지은 듯 앉아 있는 승배를 말없이 노려보았다.

“말해.”

“예? 뭐, 뭘요?”

“후우.”

승배의 발뺌에 전 대표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솔직히 너랑 나랑 한두 해 됐냐?”

“그, 그렇죠.”

“너 우리 회사에 취직시킨다니까 의찬이 그놈이 내 멱살 잡았던 거 기억나지?”

승배의 이직에 서울액션스쿨 대표인 육의찬 감독이 당시에 길길이 날뛰었었다.

그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지 승배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죠…….”

“그래도 멱살 잡힌 값으로 너랑 나 여기까지 왔잖느냐. 솔직히 후회는 안 하지?”

“예…….”

대 퍼스트 엔터의 실장이다.

후회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난 지금 후회된다.”

갑자기 전 대표의 말에 승배의 눈이 흔들렸다.

“대, 대표님?”

“솔직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려 했지. 네가 먼저 말해 주길 바라면서.”

“대표님…….”

승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미안함에 가슴이 메어져 온 것이다.

“알아. 인마. 그래도 우린 전우나 마찬가지 아니냐? 그 옛날 그 일을 겪으면서 함께 지내온.”

“후우. 죄송합니다.”

“그래. 그래도 내가 제일 먼저 네 입으로 듣는 게 맞는 거 같다. 그렇지?”

“……예.”

승배가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전 대표의 넓어진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나이가 들면서 긴장하면 나오는 신체적 반응이다.

“그래. 말해.”

마치 뭘 이야기해도 다 용서하겠다는 듯한 전 대표의 푸근한 음성에 승배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 확실한 건 아니고요.”

승배의 입이 떨어지자 전 대표의 얼굴이 살짝 밝아지며 입이 열렸다.

“그래? 아직 결정난 거 아냐?”

“우루 형님을 본 것……네.”

“……구성 그룹에 그런 사람 이름이 있었냐?”

“…….”

전 대표의 반문에 승배는 자신이 낚였단 것을 알았다.

“아씨! 독립 안 한다니까요! 구성그룹 제의 걷어찬 지가 언젠데요!”

“아, 그, 그래?”

전 대표는 안도의 숨을 내쉬다가 다시 얼굴이 굳어졌다.

“그, 그런데 방금 우루라고 했냐?”

“아…….”

전 대표의 질문에 승배가 당황한 얼굴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전 대표의 얼굴이 점점 시커멓게 변해 갔다.

“아니지?”

전 대표의 질문에 승배가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모르겠어요.”

“…….”

시커멓게 변한 전 대표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얼굴에는 뭔가 복잡한 표정이 서렸다.

슬픈 듯 반가운 듯.

그런 전 대표의 마음을 아는지 승배가 그를 꼭 안아 주었다.

* * *

지글지글.

불판위에 삼겹살이 잘 구워지고 있었다.

그 향기에 을지부루는 침을 꿀떡 삼켰다.

“냄새 죽이는구만!”

“하, 하하하. 드십쇼! 최상급 대팹니다!”

“기런데 어케 괴기를 이래 종잇장처럼 자른 거이간?”

“빨리 익혀 드시라고요.”

“기래?”

부루가 환한 얼굴로 익은 삼겹살을 입에 넣었다.

순간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이거이 맛 됴쿠나야!”

“하, 하하하!”

그 옆에서 고기를 한 점 먹던 강문호 대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왜 여기로…….”

사실 이 자리는 강 대위가 사는 자리였다.

이들에 대해 좀 더 알기 위하여 식사자리를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굳이 무한리필 삼겹살집이어야 한다고 해서 온 거다.

“내래 후지가 가장 맛난 부위인 줄 알았는데 기게 아니구만?”

“하하핫! 후, 후지는 후지대로 풍미가 있고, 이건 이거대로 있지요!”

부루의 말에 사람들이 힐끗 쳐다보자 빈이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는 텬국이구만? 이런 음식을 파는 곳도 널렸고 말이디!”

“맘껏 드십쇼!”

“됴아! 말리지 말라우!”

부루는 불판에 고기더미를 한 번에 부었다.

와글와글.

한쪽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응 뭐지?”

‘막 먹어도 돼지’ 무한리필 삼겹살집의 사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님들이 식사를 안 하고 한쪽에 몰려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점원이 창백한 얼굴로 내달려왔다.

“사, 사장님!”

“응?”

“고, 고기가 다 떨어져 갑니다!”

점원의 말에 사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냉동고에서 꺼내서 썰면 되지?”

“내, 냉동고에 고기도 이미 다 떨어졌습니다!”

“무슨 소리야? 고기가 어제 들어왔는데. 일주일치 받았잖아.”

“그, 그게 오늘 다…….”

그 말에 사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한쪽을 바라보았다.

“……아니지?”

사장이 불안에 떨며 묻자 직원이 고개를 푹 숙였다.

‘막 먹어도 돼지’의 사장은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는 곳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몇 년 전 무한리필집을 시작할 때 말리던 아버지의 음성이 귓가로 스쳤다.

‘이눔아! 무한리필은 안 된다! 이 세상엔 아귀가 있어! 아귀가 있다고오!’

결사적으로 말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아닐 거야.”

그는 인파를 헤쳐 나갔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시 귓가를 스쳤다.

‘좌우로 떡 벌어진 그 모습! 절대 잊지 못해! 나만 당한 게 아니야! 뒷집 점심 뷔페 사장도! 건너편 무한생고기집 사장도! 모두 당했다고!’

인의 장막이 걷히며 누군가의 팔뚝이 보였다.

‘잊지 말거라! 사람 몸통만 한 팔다리를 달고 있는 아귀를! 꼭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보았다.

사람 몸통만 한 팔다리를 달고 입에 음식을 쓸어 담는 아귀를.

사장은 털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아, 아버지 말이 맞았어…….”

빈과 강 대위는 고기를 집어먹을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그저 부루가 먹는 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치이이익!

대패삼겹살은 불판에 잠시 스쳐갈 뿐이었다.

강 대위는 이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보며 빈에게 감사했다.

자신이 큰일날 뻔한 것을 빈이 구해 주었음을 알았다.

“정말 이 정도일 줄은 저도…….”

빈조차 부루가 이 정도로 먹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강 대위는 진심을 담았다.

“고맙습니다.”

“아, 예. 별말씀을…….”

빈은 앞으로도 무한리필이 아니면 고기를 먹을 생각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누군가가 주저앉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가끔 와서 먹었기에 저 얼굴을 안다.

이 가게의 젊은 사장.

그의 눈에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빈은 괜히 미안해졌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단골집 하나를 잃었다는 사실.

“아!”

그리고 놓친 사실 하나가 또 그의 머리를 스쳤다.

“아아아!”

빈이 비명과 같은 울음소리를 흘리며 비틀거렸다.

그 모습에 강 대위가 살짝 놀라 빈을 부축하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러자 빈이 세상 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라…….”

빈의 눈에 눈물이 살짝 맺힌다.

“라?”

“라방 할걸!”

“…….”

강 대위는 순간 불판으로 빈을 한 대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 * *

“죽는다.”

살벌한 기세가 목소리에 실려 있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침울한 목소리.

“죄송합니다.”

“진짜야. 어디 가서 국정원 요원이라고 하면 니들 다 죽일 거야.”

마치 두 요원은 새모이라도 쪼듯 고개를 연신 숙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띠링~ 띠링~!

실패의 책임을 통감하며 두 요원이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한쪽에서 문자가 들어왔다.

미행팀이었다.

“응?”

문자를 본 국정원 팀장이 다시 눈을 비비고 보았다.

“돼지고기 무한 리필집을 문 닫게 해? 이건 또 뭐야?”

뭔가 진의를 알 수 없는 보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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