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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8화 (8/305)

제8화 폐급 침식지

“그럼 저 갑니다!”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가는 빈과 부루를 보며 요원들은 똥 씹은 얼굴을 했다.

“어쩌죠?”

“뭘 어째. 일단 되돌아가야지.”

“젠장. 욕을 바가지로 먹을 건데.”

후배 요원이 그렇게 툴툴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강 대위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에초에 이들은 빈을 구속할 만한 권한이 없었다.

테러용의자인데 무슨 말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상대는 진짜 테러용의자가 될 수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강림자는 테러용의자가 될 수 없으니까.

국가에서 인정한 기관 등에서 모두 강림자로 인정했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테러 용의자라고 끌고갈 수는 없었다.

물론 그를 둘러싼 의혹 등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의혹은 의혹이었다.

물론 이름이 다르다는 것은 인지했다.

그런데 그것도 누가 봐도 의혹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정도다.

을지우루와 을지부루.

그 연관 없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가 봐도 친족의 냄새가 진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정체가 들통 난 덕에 조용한 조사는 물건너 가게 되어 버렸다.

후배 요원이 억울한 듯 강 대위를 바라보았지만, 솔직히 그 대화를 들었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다.

누굴 탓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단 가자.”

“어디로요?”

“깨지러.”

“아…….”

둘은 힘없이 걸음을 옮겼다.

멀어져 가는 국정원 요원을 보며 강 대위는 미간을 찌푸렸다.

일단 고깝게 대응하기는 했지만 뭔가 찜찜했다.

강 대위는 다시 복장을 챙기기 시작했다.

“어? 오늘 근무 끝나셨지 않습니까?”

“그냥. 연장근무라고 생각해.”

“그래도 야근비 안 나가지 말입니다!”

“안 받아!”

안쪽에 있던 행정병의 외침에 강 대위는 귀찮다는 듯 외치고는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침식지 입구로 돌아온 고빈은 을지부루에게 슬며시 입을 열었다.

“정말 그게 들렸습니까?”

“길티.”

“와…….”

벽 하나를 넘어 거리가 꽤 되었는데도 그들의 말소리를 들었다는 것이 신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빈의 얼굴은 급속도로 굳어져 갔다.

그리고도 모자라 밀랍인형처럼 하얗게 굳어져 갔다.

그런 빈을 향해 부루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내래 좀 처먹디.”

“…….”

“똥 만드는 기계라는 말도 좋은 말은 아닌 거 같고 말이디.”

“그…….”

“내래 밥값 정도는 해 주갔어.”

“……가, 감사합니다.”

“딱 거까지만 봐주갔단 말이디.”

“…….”

빈의 안색은 되돌아 올 줄 몰랐다.

지금까지 부루가 했던 말.

전부 부루가 화장실 가 있거나 안방에서 뒹굴 때 혼자 떠는 말들이었다.

반쯤은 신세 한탄이었고, 반쯤은 욕이다.

빈은 이로써 자신은 화려한 소환자가 아닌 누군가의 하인으로 서 인생이 결정되었다는 확신을 했다.

그때 눈앞의 교관이 설명을 하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퇴근 안 하십니까?”

“아, 일단 이분들이 좀 특이해서 동행하려고.”

다시 나타난 강 대위는 한 손에 구경이 커다란 총과 탄띠를 엑스자로 매고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장비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강림자가 아닌 일반 군인이 제압을 위해 사용하는 병기들이었다.

그래봐야 이곳에 출몰하는 최하급의 마물들을 상대하는 정도지만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빈 씨. 설명 다 들으셨지요?”

“예에…….”

교관의 확인 질문에 빈은 혼이 나간 얼굴을 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도 들은 게 아닌 표정이었다.

반면에 부루는 말없이 교관이 보여 주었던 차트를 뚫어져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강 대위가 함께한다는 것 때문인지 교관은 카드키를 건네 주었다.

“그럼 입장 체크는 여기 강 대위님이 도와주실 겁니다.”

원래라면 자신이 따라가서 문을 열어 주고 들여보내면 끝이다.

그러나 강 대위가 함께하기에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문 열립니다! 일보 뒤로 이동하십시오!”

성벽 위의 병사가 외치는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벌써 세 번째 문이다.

이번이 마지막 문인 듯 열려진 곳에 더 이상 그들의 시야를 가로 막는 것은 없었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한 백여 미터 전방의 지형이 눈에 띄게 다른 것이 보였다.

검 보라빛 색상을 띠는 흙부터 듬성듬성 나 있는 풀도 검거나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빈은 그걸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침식지 견학은 초반 소환자 적합 판정을 받고 기초 교육과정에 한번 겪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꽤 이전 일인지라 다시 밟은 침식지는 묘한 긴장감마저 서리고 있었다.

사실 당시에는 강림자 여럿이 호위를 서 주었던 상황이기에 무섭다기보다는 신기하기만 했다.

또 들떠 있었다.

금방이라도 그들의 곁을 지켜주는 강림자 같은 존재와 함께 이곳을 누비리라 상상했으니까.

빈은 부루를 보았다.

확실히 강해 보였다. 그리고 끝.

든든해 보인다든지, 같이 있으면 두렵지 않든지의 감정이 쥐새끼 오줌만큼도 솟구치지 않았다.

내가 눈이 멀어 괜히 들어왔나 하는 생각 반.

그래도 살려는 주겠지 반.

그런 심정이었다.

‘아니지. 내가 그동안 떠든 말을 다 들었다고 했으니…….’

빈이 온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강 대위의 뒤를 따라 침식지에 발을 들인 부루가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눈살을 한껏 찌푸린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한쪽으로 걸어가 발끝으로 땅바닥을 파재꼈다.

강 대위는 부루를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아까도 느꼈지만 이들의 관계는 기존 소환자와 강림자의 관계와 달랐다.

마치 별개처럼 느껴졌다.

영웅급 강림자도 보았던 그였다. 분명 영웅급이라 불리는 강림자는 달랐다.

대화도 문제없이 나눌 정도의 인지력도 갖추고 있었고, 자신의 판단도 내비치기까지 했다.

심지어 알아서 문제가 생기기 전에 경계를 자처한다든지의 적극적 행동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었다.

소환자의 허락.

물론 영웅급 소환자는 교감을 통해 굳이 입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강림자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절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빈이 묻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가만 있어 보라우.”

“예.”

부루는 이내 기괴하게 나 있는 풀을 뜯어내어 씹었다.

“아저씨! 아무거나 먹으면 탈나요!”

빈이 화들짝 놀라 외쳤지만 부루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뜯어낸 풀의 뿌리를 뽑아 손끝으로 뭉개었다.

그리고 다시 입으로 맛을 본다.

다시 퉤 하고 침을 뱉어낸 부루가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미치겠구나, 야.”

“네, 네.”

부루의 말에 빈은 뚱한 표정으로 건성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마치 원래 미친 건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강 대위는 이들의 관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뭔가 아시는 겁니까?”

말도 안 되는 질문이지만, 이들을 따라 나설 때 그런 것은 배제하기로 했다.

사실 강림자의 성향에 대해 많은 정보를 확보한 건 소환자가 아니라 바로 함께 작전을 뛰던 군인들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강림자가 그저 신기한 사람으로 보였다.

또 단순히 전우로 인지될 뿐이었다.

그렇기에 접근자체가 연구원이나 소환자들과는 달랐던 것이다.

그런 강 대위의 질문에 부루가 미간을 찌푸린 채로 되물었다.

“침식지라는 거이 다 이런 거이간?”

“예. 대동소이 하지만 환경 자체는 좀 비슷합니다. 어둡고 침침하고, 공기는 끈끈하죠.”

“길티. 풀떼기에는 죄 독성이 있는 편이고 말이디.”

부루가 강 대위의 말을 이어받으며 설명을 하자 빈이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그걸 알면서 드신 거예요?”

빈이 질문에 부루가 혀를 차며 말했다.

“호들갑 말라우. 뒈질 정도는 아니니까네. 기러고 독성이 있다고 다 독은 아이야. 알간?”

부루의 말에 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예?”

그때 부루가 먼 곳을 바라보았다.

“듣는 거보다는 보는 거이 났겠디.”

부루가 먼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빈은 뭔가 하는 표정으로 그곳을 바라보았고, 강 대위는 자신의 무장을 점검했다.

그런 강 대위를 보며 빈이 놀란 눈으로 질문을 했다.

“오나요?”

“아마. 이 지역이 폐급이니만큼 그에 맞는 놈들이 올 겁니다.”

Fire.

총알이 통하는 존재라 F급.

또 총알에 맞아 걸레가 되어 죽은 개체들이 많아 쓸모가 적어 폐급.

그게 F급을 언급하는 말들이었다.

멀리서부터 울려오는 소리들.

컹 커엉!

개소리와 닮은 소리.

다른 점이 있다면…….

“웅장한 바리톤의 개소리라더니. 진짜네요?”

테너와 베이스 사이의 음색으로 화려함과 남성적인 깊이를 함께 갖춘 걸 뜻한다.

그런 음색이 개소리로 펼쳐지기에 그런 비유를 든 것이다.

또 그 소리만큼 덩치 또한 한 덩치를 했다.

그때 강 대위가 중얼거렸다.

“다섯 마리…….”

“어케 알았네?”

“아, 처음 소리와 대꾸하는 소리 들을 구분한 겁니다.”

“와! 개소리도 구분이 되요?”

빈이 신기하다는 듯 질문을 던지자 강 대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구분됩니다. 그런데 맞는 데에는 이유가 있긴 하네요.”

강 대위가 부루를 슬쩍 보며 말하자, 빈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그때 부루가 말했다.

“일단 애 좀 보라우.”

“알겠습니다.”

인지도가 아무리 낮아도 이 정도 숫자라면 사실 문제가 안 된다.

잠시 후 송아지 크기의 괴수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폐급의 대명사 쿠라우탄.

개의 소리와 닮은 음색과는 달리 생긴 건 개와 다르면서도 비슷했다.

오랑우탕 같은 커다란 두상을 하고 있어 달랐고, 개처럼 사족보행을 하는 모습이 닮았다.

그러나 꼬리가 마치 전갈마냥 앞쪽으로 반원을 그리며 흔들리는 것이 또 달랐다.

그걸 본 부루가 먼저 달려 나갔다.

부와아악!

쩌저적!

부루의 대부가 휘둘러지면서 빈의 입에서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와아…….”

이어 내지르는 쿠라우탄의 꼬리를 한 손으로 잡아 이리저리 휘두른다.

케엥! 켕!

중후했던 개소리도 맞다 보니 가냘프게 들려왔다.

다섯 마리 정도는 순식간이었다.

다들 바닥에 뒹굴며 낑낑거리고 있었다.

가장 상태가 안 좋은 건 꼬리를 붙들려 무기로 활용된 개체다.

그때 부루가 쿠라우탄들의 꼬리를 한손에 모아 쥐고는 어디론가 끌고 가기 시작했다.

반항할 법도 한데, 대차게 맞아서인지 낑낑거릴 뿐이었다.

“어디 가세요?”

빈의 질문에도 부루는 그저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렇게 커다란 나무가 둘러싼 움푹 꺼진 지형이 있는 곳에 던져 놓더니 다리를 토막내기 시작했다.

“저, 꼬리로 개체 수 증명하는 건데…….”

쿠라우탄은 돈이 안 되어 꼬리로 숫자를 줄였다는 증거로 제출한다.

그걸로 상금을 지급하는 게 전부다.

그런데 부루는 다리를 자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빈이 강 대위에게 물었다.

“뭐 하시는 거얘요?”

그러자 강 대위도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글쎄요.”

그때 부루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쪽도 모르는 거이간?”

부루의 질문에 강 대위가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예.”

“미끼다. 미끼.”

부루의 대답에 빈과 강 대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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