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7화 (7/305)

제7화 가끔은 소설이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하아…….”

고빈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븅신이지.”

빈은 스스로를 자학했다.

지금 그는 막사 한쪽에 앉아서 한숨을 연신 내뿜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지를 아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디.”

빈은 억울한 시선으로 을지부루를 노려보았다. 물론 부루가 시선을 느끼고 돌아보는 순간 눈깔에 힘을 뺐지만.

“꼬나보는 거간?”

“쳐다보는 거죠. 그냥.”

“억울하면 댐비라우.”

“그럼 맞기만 하실 건가요?”

빈의 말에 부루가 활짝 웃으며 대꾸했다.

“궁금하면 댐비라우.”

마치 ‘난 심심하니 너라도 패야겠다.’라는 표정이었다.

빈이 이렇게 스스로를 자책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아무리 궁금했어도 이래서는 안 되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소설이 그냥 소설이 아니었어.”

심심풀이로 보던 소설들이 있었다.

침식지가 생겨나고 그 전에 나왔던 장르소설들은 성지순례의 대상들이 되었다.

느닷없이 세상이 뒤집히고 그런 가운데에 갑자기 헌터니 뭐니 하면서 생겨나서 거기서 계급이 생겨나고…….

당시에는 킬킬거리며 킬링타임으로 읽던 소설들이 이제는 현실 기반 장르소설이나 마찬가지가 된 거였다.

그런데 그때마다 고구마라고 욕하던 장르가 있었다.

바로 ‘나의 강함을 알리지 말라.’는 이순신 장군 류의 주인공 행동들.

그런데 지금 보니 그게 이해가 되었다.

그들은 뒷구녕으로 돈도 벌고 그런 뒤에 나중에 짜잔하며 세상에 등장한다.

“하아. 나도 그럴걸.”

빈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막상 여기 오고 나니 뭔가 복잡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돈 버는 것도 물 건너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이 더욱 바보 같았다.

앞으로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오늘 사냥은 파장이 될 가능성이 높은 눈치니까.

그리고 뭔가 전화가 오가고 하는 모습이 따라오기 전에 상상하던 것과는 달랐다.

막 따라오기 전에는 별 상상을 다했다.

‘오! 이런! SSS급 강림자였어!’

‘지쟈스! 전설을 눈으로 보다니!’

뭐 이런 호들갑과 함께 연구원들이 나타나고……는 망상일 뿐이었다.

눈앞에는 군복 입은 아저씨들이 동사무소 직원들마냥 전화통과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그리고 둘은 꿔다놓은 보릿자루 마냥 앉아 있었다.

물론 부루가 답답하다고 난동을 피울 만도 하지만…… 그는 취향 저격을 당했다.

“이거이 병사들에게 식량대용으로 줘도 돼갔어.”

“원래 그런 용도였기는 합니다. 여기 음료수도 드시면서 드십시어.”

“자세가 됐구만.”

교관아저씨는 접대에 능숙한 모습으로 보급품인 건빵과 쥬스로 부루를 회유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 나오니 밥값은 된 거 아이간?”

“차라리 파프리카 풍선을 받는 게 나았겠…….”

그렇게 중얼거리던 빈은 갑자기 남은 건빵더미를 보더니 스마트 폰을 켜기 시작했다.

“후우.”

진입교관인 강문호 대위는 한숨을 내쉬었다.

특이사항이라고 위에 보고를 하기는 했지만, 반응이 영 더뎠다.

인지도 소숫점 네자리라는 게 그렇다.

이제는 평화가 제법 정착돼서인지, 뭔가 예전처럼 빠릿하게 일이 결정되는 상황은 없었다.

결국 시간이 지나 받은 서류는 당분간 출입을 통제하고 재조사를 거친다는 답변이 왔다.

나름 중요한 사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 열을 올렸던 결과가 이거라는 것이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소숫점 네 자리라 해도 과거의 기억을 하는 것도 이상하고, 또 상황 인지 대응 능력 자체가 일반인과 거의 다름없는 강림자가 나타났는데도 이따위라니.”

강문호 대위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강문호 대위는 지금 여기서 교관 노릇을 하고는 있지만, 침식 초기 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경험자다.

심지어 당시에는 병 출신이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초기 제대로 뭔가가 정립되기 이전부터 강림자를 겪어왔던 경험이 있었다.

그 경험이 지금 상황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신호를 보내왔던 것이다.

그가 공손했던 이유.

그건 인지도 상급 이상의 강림자들을 다루듯 다룬 것뿐이다.

상급 이상의 존재는 에고가 강했다.

지금 소환자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강림자들과 그 행동이 달랐다.

“교수님에게 전화를 해?”

강 대위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강림자에 관해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이가 하나 있었다.

그럼에도 섣불리 지금 연락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이곳이 군대기 때문이었다.

완전 기밀은 아니지만 보안 사항은 맞기에 바로 연락을 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차라리 그냥 지켜보라고나 해라. 연락이라도 하게.”

강 대위는 오늘따라 더딘 일처리에 더욱 갑갑할 뿐이었다.

“일단…….”

강 대위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을 생각해서 빈과 부루에게 말이라도 해 주려고 그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

면회실 안쪽.

거기서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형님들 감사합니다! 우리 부루 형 건빵 삼십 봉지 돌파 오지고요!’

강 대위가 인상을 팍 구겼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알았는지 상황병 하나가 뒤늦게 면회실 문을 열며 외쳤다.

“아저씨! 여기서라방하시면 안 돼요!”

“헛! 형님들 걸렸습니다! 그럼 여기서 오늘 방종합니다!”

“……문제는 강림자가 아니라 소환잔가.”

강 대위는 조사 대상을 바꾸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 * *

국정원 7팀이라 적힌 사무실 안쪽에서는 요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일단 군무원 쪽은 지연시켜 놨습니다.”

“잘했어. 혹시 그쪽에서 눈치깔지 모르니까, 그 뭐지? 빈? 그 친구 신상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둘러쳐서 일단 이쪽으로 끌고 와.”

“민간인 사찰이라고 하면요?”

요원의 질문에 부팀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걸리면 바보지! 일단 계열사쪽 남아 있는 곳 있을 거 아냐! 그쪽으로 돌려서 컨택부터 하라고!”

“탈탈 텁니까?”

“이 새끼! 컨택 몰라? 컨택? 너 정신부터 탈탈 털어 줘? 네 입으로 민간인 사찰 어쩌고 한 거 까먹었냐?”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 한번 잘못했던 요원이 정신을 탈탈 털리고 있었다.

그들 사무실 한쪽 벽면에는 갓 프린팅해 나온 사진들이 가득 메워지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한 사내의 사진들로 도배되었다.

“후우. 이 얼굴을 다시 보다니.”

그 앞에서 팀장은 안색을 굳히고 사진의 인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팀장님은 이때 직접 겪어 보셨지요?”

그때 한 요원이 다가와 차를 한 잔 건네며 물었다.

“그렇지. 그땐 이게 사람인가 괴물인가 싶었는데.”

“진짜 괴물은 그 후에 아예 쏟아져 나왔잖습니까.”

침식을 언급한 거다.

그때는 정말로 세상이 망하는 줄 알았으니까.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팀장은 차를 마시며 대답했다.

“그러니 묻혔지. 이 엄청난 일들이…….”

많은 의미가 숨겨져 있는 대답이었다.

* * *

강문호 대위는 눈앞의 사내들을 보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국정원? 강림자 관련 업무는 완전 이관된 것으로 아는데요?”

“조사 대상은 고빈 씨입니다.”

강 대위의 질문에 사내는 짧게 대답했다.

“……흠.”

강 대위는 면회실 안쪽을 바라보았다.

하품을 하고 있는 고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사 대상을 바꾸어야겠다고는 했지만, 그건 농담이었다.

정말 그를 조사 대상 삼아 국정원에서 나올 줄은 몰랐다.

“어쩐지 아무리 철밥통이라 해도 일 처리가 늦더라니.”

강 대위의 중얼거림에 국정원 요원이 어색한 웃음을 머금었다.

“정확히 무슨 일입니까.”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럼 본인에게 일단 통보하고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강 대위의 말에 요원이 난감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단은 함구 부탁드립니다.”

요원의 말에 강 대위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이거 절차 문제 있는 건 아시죠?”

“부탁드립니다. 나랏일입니다.”

“나도 나랏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럴수록 절차에 문제가 없어야만 합니다만.”

강 대위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 참.”

그때 뒤쪽에 있던 요원 하나가 한숨을 쉬며 구시렁거렸다.

마치 까다롭게 군다고 귀찮아하는 표정이었다.

“협조 좀 합시다.”

요원이 딱딱한 어투로 다시 말을 붙이자 강 대위가 한숨을 내쉬었다.

오지랖이다.

사실 국정원과 옛날에 함께 작전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들의 생리를 잘 아는 편이었다.

옛날 안기부 시대와 다르다고는 하지만, 사안에 따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향이 없어진 건 아니다.

그때 강 대위가 면회실을 바라보았다.

빈이 면회실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을지부루가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함께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아서 하시겠지만 분명 말씀 드립니다. 의혹만 있는 상황이라면 본인에게 통보하시는 게 정식 절차라는 걸 말입니다.”

강 대위의 촉은 이들이 와 있는 이유는 빈이 아닌 부루 때문일 거라고 반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느낌이지만, 부루는 일반적인 강림자와는 그 궤를 달리하는 이라는 판단이 섰다.

“상황병. 면회실로 안내해 드려 인계받아 가신단다.”

강 대위의 지시에 상황병이 그들을 면회실로 이끌고 갔다.

“까다롭게 굴긴.”

“쉿.”

“예.”

면회실로 가면서도 요원 하나는 투덜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침식의 시기를 지나며 국정원의 위상은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던 안기부 시기의 오명을 지나 민간사찰부터 댓글 조작 등으로 그 이미지가 추락했던 국정원이었다.

하지만 국정원은 침식을 계기로 다시 위상이 솟구쳐 올랐다. 군대와 더불어 괴물을 상대로 위기를 잘 헤쳐나간 덕이다.

지금은 관련 업무를 이전했다지만, 그때 굳혀 놨던 힘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국정원은 초법적인 위력을 일부 발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강 대위의 뻣뻣한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말 조심해.”

“알겠습니다.”

후배 요원과 달리 선배 요원은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고빈이 그들을 보자마자 질문부터 했다.

“국정원이세요?”

“…….”

“…….”

순간 국정원 요원 둘은 할 말을 잃었다.

후배 요원이 상황병에게 질문을 했다.

“여기 방음이 이렇게 안 됩니까?”

“아뇨.”

상황병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방음이 안 되면 진즉에라이브 방송하는 것을 늦게 알아차리지 않았겠는가.

그때 부루가 한쪽 귀를 툭툭 치며 말했다.

“내래 귀가 좀 좋디.”

순간 요원 둘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계열사로 이동시켜 국정원임을 밝히지 않고 기초 조사를 하라는 명령을 받고 온 그들이었다.

그러나 초장부터 물 건너가게 되어 버렸다.

“그런데 제가 뭘 잘못했나요?”

“아니 그게…….”

빈이 반쯤 울상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저 교관님이 불법이라고 하셨다는데…….”

순간 요원 둘이 얼굴을 구기며 동시에 강 대위를 바라보았다.

강 대위는 그냥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때 또 들려오는 음성.

“내가 말해 주었디.”

둘이 다시 부루에게 휙하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부루가 다시 자신의 귀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귓구녕이 막힌 거간? 내래 말했디 않아. 귀가 좋다고.”

요원들의 얼굴이 똥 씹은 것마냥 일그러졌고, 뒤쪽에 있던 강 대위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억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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