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6화 (6/305)

제6화 그를 기억하는 이들

“어, 어떻게?”

강사의 입이 떡 벌어졌다.

한 방이다.

그것도 도끼에 몸통이 쪼개진 것도 아니다.

강사의 시선은 조금 전 자신의 강림자가 얼굴을 파묻었던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그때 염장을 지르는 목소리 하나.

“바닥에 부조가 생겼네? 아니 음각이라 하던가? 뭐였지?”

강사가 울컥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신기한 듯 바닥을 바라보던 빈이 그의 시선에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는 선명하지는 않아도 얼굴의 형태와 닿았던 신체의 일부가 푹 패여서 예술작품마냥 새겨져 있었다.

“내래 뒈져서 흙으로 돌아간단 소린 들었어도 이리 빨리 돌아가는 건 처음이구만 기래.”

“죽은 건 아니고 일종의 역소환이에요.”

“기래? 기럼 기렇디. 살살 쳤는데 디지면 기거이 어디 써먹을 대가 있갔네?”

들으면 들을수록 울분이 차오르는 소리다.

“가, 감히.”

“감히는 무슨. 니 차례라우.”

“헙!”

순간 강사의 얼굴이 푸르죽죽하게 변했다.

그때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이가 있었다.

진입을 처음 하는 이들을 안내하는 교관이었다.

“멈추십시오.”

교관의 얼굴은 심각하게 변해 있었다.

이어서 그는 다시금 자신의 스캔워치를 들어 확인했다.

“말리는 거이간?”

부루가 미간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말을 뱉자 교관이 탄식을 흘렸다.

대신 교관은 부루가 아닌 소환자인 빈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그동안 그 질문을 게시판에 숱하게 올렸는데 돌아온 건 ‘네, 다음 관종.’ 혹은 ‘먹잇감 주지 마!’라는 답변뿐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빈은 강사를 보며 퉁명스럽게 다시 말을 이었다.

“물론 누군가는 제게 ‘노오오오력!’이 부족하다고 하셨지만요. 저도 미칠 것 같아요.”

교관은 이 초유의 사태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사이 빈은 부루에게 다가가 최선을 다해 설득을 시작했다.

“이제 그만 좀 하세요.”

“내래 아직 시작도 안 했어야.”

“잘 하셨어요. 때론 시작조차 하지 말아야 하는 일도 있다고요!”

“화는 쌓으면 병되는 거이야.”

“그거 매번 풀다 보면 별만 늘어난다고요!”

“기거이 좋은 거 아이간?”

“깜방! 아니 감옥요!”

“누굴? 나를? 미틴 거디? 어디 해보라우. 죄 까부숴 주갔어.”

“왜! 뱉는 대사마다 기승전 까부숨이에요!”

빈이 버럭 소릴 질렀다.

그도 갑갑한 상황이다.

이제 돈 좀 제대로 버나 싶었더니 돈은커녕 진입도 전에 사고부터 치는 부루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빈이 부루의 귀에 속삭였다.

“참으시면 삼겹살 구워 드릴게요.”

“삼겹살은 뭐이간? 기거도 돼지 굽는 거간?”

“최고죠.”

“후지보다 최고인 부위가 있었네?”

“예!”

그동안 싸게 먹인다고 후지를 덩어리로 사서 먹이며 이게 최고의 부위라고 속여 왔던 빈이다.

“사실 삼겹살은 귀해서. 오늘 안에 들어갔다 오면 그때 해 드리려고 했었어요.”

빈이 넘어오는 듯하자 살살 달래갔다.

그러자 부루가 혹한 표정을 지었다.

“기래?”

“예!”

“큼.”

그제야 부루의 안색이 펴졌다.

그리고는 몸을 돌리며 교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안내하라우.”

부루의 말에 교관이 고개를 내저었다.

“협조 좀 해 주셔야 할 듯합니다.”

“협조? 해 줄 터이니 일단 안으로 안내부터 하라우.”

교관은 고개를 내저으며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통제되지 않는 상황은 허가할 수 없습니다.”

“이거이 뭔 소리야?”

부루가 인상을 팍 쓰며 빈에게 물었다.

빈은 울상을 지으며 교관에게 말했다.

“방금은 강사님이 먼저 실수를 하신 거잖아요! 딱 봐도 기분 나쁠 만했잖아요!”

그러자 강사가 벌게진 얼굴로 버럭 소릴 질렀다.

“사람도 아닌 걸 가지고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강사의 외침에 부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지금 뭐라고 한 거이네? 사람도 아이야?”

“그럼 니가 아직도 사람인 줄 알아? 넌 이미 죽어 자빠진 존재라고! 여기선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병기에 불과하고! 그게 강림자의 정의야!”

강사가 교관의 뒤에 서서 한 맺힌 사람마냥 소리를 내질렀다.

그 말을 들은 부루가 석상마냥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한참 서 있다가.

빈에게 고개를 돌렸다.

“기렇게 생각하네?”

“예?”

“비니. 저치랑 같이 생각하냐 물었어야.”

“그…….”

부루의 눈동자는 그 어떤 때보다도 가라앉아 있었다.

과연 이를 단순한 도구로 칠 수 있는가.

따지고 보면 강림자는 단순한 도구가 맞았다.

그리고 병기가 맞았다.

그런데 그 말을 부루에게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아는 부루는 다른 강림자와 달랐다.

약간 이상하게 기억이 꼬인 듯해도, 자신을 잃지 않은 존재다.

심지어 어딘가에서 살던 존재가 통으로 소환되어져 온건 아닌가 하는 착각도 하게 된다.

아니 이젠 착각이 아니고 반쯤은 의심할 정도다.

“형. 난 아니에요.”

빈은 이번에는 진심을 담아 보았다.

부루는 그런 빈을 잠시 지켜보다가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었다.

“기래. 솔직해서 좋구만.”

하지면 여전히 씁쓸한 표정이다.

“결국 나란 존재는 여기서 도구에 불과하다는 말이디?”

부루가 시선을 돌려 교관과 강사를 바라보며 말을 뱉었다.

“결국 나란 존재는 여기서 도구에 불과하다는 말이디?”

부루의 질문을 들으며 교관은 복잡한 시선을 보냈다.

만약 입고 있는 복장과 또 스캔 워치를 통해 인지도 확인을 하지 않았다면, 사람인 줄 알았을 거다.

다른 강림자들도 질문을 한다.

하지만 인지하는 그 안에서의 질문이다.

존재나 이런 복잡한 관념적인 것에 대한 대화는 거의 없다.

소위 최상위급 강림자라 불리는 존재들은 그런 경우가 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눈앞의 존재는 확실히 달랐다.

존재감은 소환을 통해서 생겨난 것이지만, 지금 품고 있는 의지는 오로지 강림자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하디.”

부루가 도끼를 어깨에 턱하니 기대어 올리며 말했다.

교관은 긴장한 표정으로 그런 부루를 바라보았다.

“전쟁은 말이디. 가끔은 사람을 숫자처럼 판단하디. 오늘은 몇을 쏟아붓고, 그 결과 몇을 죽였는지, 또 몇이 상해서 못 쓰는지 말이디.”

부루의 말에 교관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역시 군인이다.

작전판을 들여다보며 마치 장기판의 말처럼 병력을 대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 그게 말처럼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숫자로 판단하고 도구처럼만 생각하면 말이야. 전투에는 이길지 몰라도 언젠가 전쟁의 끝에서는 패배하는 법이야.”

마치 가르침 같았다.

이 역시 익숙지 않았다.

신기했다.

교관은 그래서 더욱 무어라 답하지 못했다.

고빈은 신기한 눈으로 을지부루를 바라보았다.

먹고 싸고 손찌검만 할 줄 알았던 부루가 갑자기 선인마냥 말을 하는 것이 위화감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아까 어깨를 두들겨 주었을 때 왠지 선생님께 칭찬받는 아이마냥 기분도 좋았다.

그게 뭐라고.

그때 부루가 다시 입을 열었다.

“길코. 병기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을 하갔어. 그 병기 또한 어떤 아새끼가 들고 있는가에 따라 다르다는 것쯤은 알디? 내래 님자를 보니 병사 같은데 말이야.”

부루의 시선은 교관 뒤에 숨어서 벌건 얼굴로 열을 올리고 있는 강사를 향했다.

“지금 뭐라는 거야!”

“가끔 이런 아새끼들이 있디. 뭐라도 들으면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듯 거들먹거리는 놈 말이디. 병기? 병기 고마운 줄 알라우. 창칼 없이 맨몸으로 전쟁터에 나갈 거이간?”

부루가 눈알을 부라렸다.

그러자 강사가 찔끔하며 교관의 등 뒤로 고개를 숨겼다.

그때 교관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말씀하셨듯 저는 병삽니다. 명령에 따라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귀하를 이 안으로 통과시켜 드릴 수 없습니다.”

“…….”

“어디서 오셨는지는 모르지만, 이곳에는 이곳의 법이 있습니다.”

교관의 정중함에 부루는 어깨에 대어놓았던 대부를 툭하고 내려놓았다.

기세가 누그러드는 듯하자, 교관이 다시 말을 이었다.

“조사가 필요할 뿐입니다. 이해 바랍니다.”

이번에는 빈을 바라보았다.

빈은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부루에게 말했다.

“일단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은데요?”

“기렇구만.”

부루가 고개를 끄덕이자 교관이 겨우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부루가 말했다.

“앞장 서라우.”

“그럼…….”

교관이 한숨을 돌렸다는 듯 그를 인도했다. 그리고 그 사이 강사는 부루에게서 멀찍이 떨어져서 질린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부루가 발걸음을 옮기면서 말했다.

“내래 가우리에서 왔어야.”

순간 교관은 물론이고 강사마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 죽기 전에 말이디.”

그런 둘을 보며 부루가 별것 아니라는 듯 말을 뱉었다.

그런 부루의 대답이 둘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빈은 이제야 같은 고민거리를 가지게 된 둘을 반기는 표정을 지었다.

“거봐. 내 말이 진짜라니까…….”

* * *

“국정원? 국정원이 왜?”

이정미 경사의 앞에 앉은 남자가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몰라. 그러니까 이제 좀 알아보려 그러지.”

“아 진짜! 안 된다니까!”

“좀 알아봐 줘!”

“이거 민간인 사찰이야!”

남자는 이 경위의 부탁에 버럭 소릴 내질렀다.

“아이잉!”

“한 번 더 하면 때린다.”

“아, 진짜!”

“난 남자나 여자에게 항상 공평한 사람이야.”

그런 남자를 보며 이정미가 혀를 차며 말했다.

“지랄하십니다. 예쁜 여자에게는?”

“……때론 불합리한 게 인생이라고 생각해라.”

남자의 말에 이 경위가 버럭 소릴 질렀다.

“나도 예쁘잖아!”

“맞아. 그런데 너 내 애인 할 거냐?”

“미쳤어?”

“그치? 내 애인 될 가능성 낮은 여자는 여자가 아니야. 예뻐도 의미 없는 거지.”

“아이씨!”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대답하는 남자에게 이 경위는 인상을 구겼다.

“그냥 괴물들이나 잡는 거에 집중해. 니가 지금도 경찰청 소속인 줄 아냐?”

“쫌! 나중에 나도 이쪽에서 협조할 것 있으면 해줄게! 밥도 산다니까!”

“공무원이 청탁 받으면 작살난다. 떽! 밥이라니!”

깐죽거림에 극을 달리는 남자에게 이정미는 부르르 떨었다.

남자는 낄낄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가지 마!”

“가야 한다. 오늘 이틀 잠복하느라 잠도 잘 못 잤다.”

그때 이정미가 그의 주머니에 고이 접은 서류를 밀어 넣으며 말했다.

“제발 좀! 나 궁금해 미친다고 오오!”

그렇게 외치며 일어선 남자의 뒷주머니에 서류를 집어넣었다. 그러자 남자가 그녀의 손등을 탁 치며 혀를 찼다.

“어허! 어디에다 손을!”

“주머니!”

“엉덩이잖아!”

“선배 엉덩이 만져서 내가 뭘 하는데!”

“성추행이야!”

그러는 사이 그녀가 주려 했던 서류가 나풀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아, 정말 치사한 인간!”

“니가 오 년 전에 날 찼을 때부터 난 치사해지기로 작정했단다.”

“됐어!”

이 경위가 버럭 소릴 지르며 종이를 집으려 했다.

그때 남자가 한발 빨리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이 경위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아니 그건 강림자고, 이 사람을 확인해 주면 되거든?”

그렇게 말을 하며 고개를 들어 올린 이 경위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이, 이 사람이 왜…….”

남자의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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