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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5화 (5/305)

제5화 하늘 아래 한 분

고빈과 을지부루는 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택시가 잘 안 잡히네요?”

“한 마리 키우디?”

“……저건 그냥 저절로 움직이는 마차 같은 거에요.”

“기래?”

부루가 신기한 듯 되물었다.

“예.”

이 정도 질문쯤은 예상범위다.

누가 말한 건지 몰라도 멈춰 서 있는 자동차가 차갑게 식은 걸 보고, 죽었다고 했던 사람도 있다고 했었다.

빈은 부루의 눈치를 보았다.

일단 사냥을 나간다고 하니 반갑기는 한데, 불안하기도 했다.

소환자는 강림자를 부린다.

공격과 방어를 함께 해야 한다. 그렇기에 소환자는 초반에 강림자와 합을 맞출 필요가 있다.

강림자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빈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과연 부루가 자신을 잘 보호해 줄지가 의문인 상황이다.

물론 첫날 일단 자신을 보호하며 싸움을 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 후…….

빈은 조심스럽게 다시 확인을 했다.

“확실히 저 보호해 주시는 거지요?”

“……살려는 주디.”

저렇게 말을 하니 일단 죽게 내버려 둘 것 같지 않기는 했다.

거친 면은 있어도, 뭐랄까 성질 더러운 상전 같은 느낌이었다.

느낌이 아니라 딱 그것이다.

갑자기 지금에 와서 느낀 거지만, 부루와 함께 하던 나날이 뭔가 기시감을 불러왔다.

“아…….”

빈의 얼굴이 참혹하게 구겨졌다.

“와, 똥씹은 얼굴을 하는 거이간?”

“아닙니다.”

“여기가 안이네? 밖이디?”

“…….”

기시감의 정체는 바로 군대였다.

‘씨파!’

갑자기 가슴이 꽉 막힌 듯하면서 눈에 습기가 가득해져 왔다.

‘군대라니…….’

남자들이 꾸는 악몽 중 하나가 다시 군대 들어가는 꿈이다.

“차라리 꿈이 낫지.”

이건 현실이다.

그때 택시 한 대가 멈춰 섰다.

“타시지요.”

“기래.”

택시가 둘을 태운 채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둘을 따르는 차량이 있었다.

고빈과 을지부루는 초소처럼 생긴 곳에 멈추어 섰다.

“여기가 거기네?”

“아뇨. 여긴 민통선요.”

“민통선이 뭐디?”

“민간인통제구역 같은 거요. 이 안에는 군인이나 우리 같은 강림자를 동반한 소환자만이 들어갈 수 있어요.”

빈은 초소에서 정식으로 발급받은 라이센스를 확인하고 있었다.

확인은 팔에 있는 액정을 통해서 한다.

“확인했습니다. 처음 진입이십니까?”

“예.”

“그럼 안쪽에 가서 교관의 지시를 따라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예.”

“뭐이간?”

“절차요. 절차.”

빈은 부루를 달래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미리 소양교육은 받았다.

물론 절반만 도움이 되었다.

도움이 된 절반은 바로 침식지 내부의 상황과 대처 방안 등이었다.

도움이 안 된 절반은 바로 강림자를 다루는 방법 팁 같은 거다.

교육을 받고 와서 바로 써먹고, 욕을 한 바가지 먹은 다음부터는 의미 없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다음날 강림자가 말을 안 듣는다며 강사에게 가서 진지하게 문의를 넣었지만, 그냥 웃으며 잘하시면 돼요, 라는 개소릴 듣고 왔다.

“하아.”

그때 빈의 눈앞에 교관과 이야기 중이던 남자가 보였다.

개소릴 지껄였던 그 강사가 와 있었던 거다.

“강사님?”

“응? 아, 그때 그…….”

강사가 웃으며 다가왔다.

소환자가 넘쳐나는 것도 아니기에 빈을 기억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빈에게 웃으며 다가가 아는 체를 한 후 뒤에 이리저리 구경 중이던 부루를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이야, 인상 죽이는데요? 오우 포스 죽이네.”

그렇게 말하며 팔뚝이며 갑주를 매만졌다.

마치 물건을 품평하듯 말이다.

그 모습을 본 빈이 안색이 하얘지며 경고의 말을 건넸다.

“조심하시는 게 좋은데요.”

“하핫! 아시면서 왜 그래요. 강림자는 기본적으로 소환자들을 적대하지 않아요. 소환자가 명령을 내린다면 모를까.”

한껏 미소를 지으며 부루의 당판을 탕탕 치는 강사를 보며 빈은 눈을 질끈 감았다.

부루가 천천히 그의 멱살을 잡아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누가 기런 개소릴 지껄이디?”

“커헉!”

순간 강사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대로 멱살이 잡혀 그의 몸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 이게 무슨…….”

“어이, 비니.”

“놓고 말씀하시면 안 돼요?”

“이거이 죽여도 되는 거이간?”

“당연히 안 돼죠!”

“반 정도는?”

“그것도 안 된다니까요!”

둘의 대화를 듣던 강사는 뻘게진 얼굴로 빈에게 외쳤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그때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제 말 드럽게 안 듣는다고요!”

빈이 빼액 하고 소릴 질렀다가 멱살을 같이 잡혔다.

“니보라우. 드럽다고 한 거이간?”

“쿨럭! 혀, 형님 그게 아니고…….”

그때 뒤에서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 손 놓아라.”

강사도의 강림자가 본능적으로 보호를 위해 나선 것이다.

“이건 또 뭐 이간?”

그제야 부루가 양손에 쥐고 있던 멱살들을 풀어 주었다.

강사의 강림자도 갑주를 입고 있었다.

조선시대 출신이며 두정갑을 착용하고 있었다.

당시 교육을 받을 때 강사의 자랑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인지도 12의 강림자라며 은근히 자랑했었다.

12이면 딱 중간이다.

보통은 한자리수고 두 자리부터는 어깨 좀 피고 다닌다고 한다.

딱 그 정도지만 인지도 0.00001 과 12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쿨럭! 너 이 개새끼!”

강사가 벌게진 얼굴로 욕설을 뱉었다.

그걸 본 부루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입을 열었다.

“뒈지고 싶어서 미친 거이디?”

부루가 다시 강사를 향할 때 그의 앞으로 차가운 칼날 하나가 가로막고 섰다.

“거기까지.”

부루의 시선이 칼날을 따라 흐른다. 칼을 쥐고 두정갑을 입은 무인.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에게 부루가 입을 열었다.

“님자는 빠지라우.”

“마지막 경고다. 물러서거라.”

“명령하는 거이간?”

부루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러자 강사의 강림자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경고하는 것이니라.”

그 말에 부루가 온몸을 뒤틀었다.

까드드득!

온몸의 뼈가 뒤틀리는 듯한 소음이 울려왔다.

“내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이는 말이디.”

부루가 눈을 부릅뜨며 말을 이었다.

“하늘 아래 한 분밖에 없어야.”

그 말을 뱉으며 천천히 대부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오라는 듯 대부를 까딱거리며 입을 열었다.

“뎀비라우.”

강사는 숨을 몰아쉬며 뒤로 물러서 있었다.

“고빈 씨 지금 뭐하는 겁니까!”

“봤잖아요!”

“교감지시라도…….”

교감지시.

굳이 명령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명령이 가능한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자신이 말을 꺼내고도 말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굳이 눈앞의 빈의 억울한 표정이 아니어도 말이다.

교감지시의 커트라인이 바로 인지도 두 자리 수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존재는 빈의 말대로 소수점 이하다.

멱살에 풀려나면서 반사적으로 확인한 것이 바로 상대 인지도였다.

소환자의 손목에 있는 것은 일종의 감지기 역할도 한다.

강림자들의 지표를 확인 할 수 있는 감지기인 것이다.

초기에는 한쪽에 차는 안경 형식도 있어, 유명 일본 애니메이션의 기기 이름인 스카우터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기종은 소지의 불편함 때문에 지금의 워치형태로 변경이 되었다.

‘질 리가 없어. 그런데 뭐 이런 게 다 있지?’

교육당시 빈의 질문을 들었을 때는 뭐 이런 병신이 강림자도 못 다루나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정말이었다.

멱살을 잡힌 것은 그뿐 아니라 빈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제압 중에 불상사가 일어나도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 말로 하시면 안 됩니까?”

빈이 울상을 지으며 물었지만 강사는 붉어진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저게 말로 될 거 같습니까?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습니다.”

강사는 이를 갈았다.

강림자는 생명체가 아니다.

실체는 있으나 정확히 따지면 소환을 통해 이루어진 존재.

그게 아니라면 부활자라 해야 맞다.

진신에 큰 타격을 받으면 역소환 되는 게 바로 강림자고 그 타격에 따라 짧게면 며칠에서 길게는 한두 달까지도 소환불능에 빠지기도 한다.

강사는 정신을 집중하며 자신의 강림자에게 교감지시를 내렸다.

[완전히 부숴 버려!]

[뜻대로 하겠소.]

강사는 목덜미를 매만지며 자신의 멱살을 잡은 빈의 강림자를 바라보았다.

인지도에 비해 강하다고 들었지만,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강사의 강림자가 환도를 들어올리자 부루가 질문을 던졌다.

“이름이 뭐 이간?”

“최천우. 그대는?”

부루의 질문에 강사의 강림자는 자신의 이름을 내뱉고는 반대로 이름을 되물었다.

“을지부루. 영광으로 알라우.”

부루의 말에 최천우가 험악한 인상을 쓰며 환도를 휘둘러 왔다.

기억이 없다 해서 감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모든 희노애락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지도가 두 자리쯤 되면 최소한의 감정 정도는 가지게 된다.

지금의 분노 같은 것 말이다.

쩌엉!

“피죽도 못 먹은 거이간?”

최천우의 환도는 부루의 대부에 막혔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환도가 부루를 난도질이라도 하려는 듯 거침없이 뿌려져 나갔다.

카강! 캉!

하지만 어느 하나 부루의 몸에 닿는 것은 없었다.

둘의 전투를 바라보는 강사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힘에서 차이가 날 건데?”

인지도의 차이는 절대적 힘의 차이다.

그런데도 부루가 모조리 막아 내는 모습에 당황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 제압만 하신다고 했잖아요! 저게 무슨 제압이에요! 완전 절단 나게 생겼는데!”

그때 강사의 옆으로 다가온 빈이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빈을 보며 강사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알아서 할 테니까 좀!”

“온 힘을 다 한 거 맞는 거이간?”

평온한 음성.

강사는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부루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또 다른 위화감이 있었다.

어투.

기기를 통해 확인하지 않았다면 모를 정도의 다채로운 감정이 담긴 어투.

소수점 아래의 강림자는 그저 명령하는 것만 따르는 백지의 상태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존재는 그게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아까 멱살을 잡았던 것도 확실히 이상했다.

한 자리는 물론이고 두 자리의 강림자도 그 정도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서, 설마 아니겠지?”

위인급이라 불리는 강림자.

먼발치에서나 본 적 있는 그런 존재.

그게 갑자기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크아앗!”

최천우가 혼신의 힘을 다해 일격을 날렸다.

하지만 이미 부루의 표정에는 흥미가 사라진 뒤였다.

머리를 쪼갤 듯 떨어져 내리는 환도를 부루는 그대로 손날로 후려쳤다.

따아앙!

환도가 부러져 나가며 잘려진 부분이 모래 부서지듯 흩어져 나갔다.

동시에 부루가 칼날을 부러트렸던 손을 다시 휘둘렀다.

최천우가 막으려 했지만 부루의 손이 더 빨랐다.

쩌억!

부루의 손바닥이 안면을 강타했다.

콰아앙!

“……이기 뭐 이래?”

부루의 싸대기가 최천우의 안면을 강타하는 순간 그의 머리통이 땅바닥으로 날아가 박혔다.

마치 땅속에 머리만 묻은 것 마냥.

그리고 천천히 모래가 무너지듯 부스러져 나갔다.

그걸 보던 부루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빈에게 물었다.

“이거이 뒈진 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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