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코드명 호크아이
넓은 회의실.
열 명이 안 되는 사람들이 앉아서 유일하게 빛을 발하는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 안에는 강림자라 불리는 이가 괴수를 상대로 싸우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실 싸움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일방적인 학살이라 봐야 했다.
“카거가 저렇게 약한 개체였나?”
국정원장인 주지환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괴물들의 창궐 이후 초기에 가장 많은 자료를 쌓았던 곳은 바로 국정원이었다.
당시에는 그럴 만한 정부조직도 없었고, 그럴 정신도 없었다.
소위 침식이라 불리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일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전 세계에서 절반에 가까운 나라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그 때문에 전 세계의 경제는 크게 후퇴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유일하게 초동대응을 잘한 나라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과 미국 그리고 러시아나 스위스 등의 나라들이었다.
물론 중동이나 이스라엘 같은 경우도 초동대응에 성공적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전쟁준비가 잘되어 있는 나라들이라는 공통점이었다.
대한민국의 경우 계엄과 동시에 전시상황으로 돌입했다.
평소 농담의 대상이었던 예비군은 현직군인 이상의 전투력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민방위나 민방위가 지난 세대까지도 적극 가담해서 초기의 위기를 잘 헤쳐 나갔던 것이다.
물론 화기가 제대로 통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일정 화력을 넘어서게 되면 괴물을 잡는 것이 가능했다.
소총화기는 제압용으로는 쓸모가 없었지만, 최소한 저지력은 갖추었던 것이다.
여기에 착안하여 고무탄을 쏘는 총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진압용이 아닌 살상용에 쓰여도 무방할 위력을 가진 것으로 말이다.
피해는 적지 않았지만, 그 덕에 빠른 대응을 하여 침식지대를 벗어난 도심의 괴물들을 제압해 나갔다.
거기서 더 나아가 괴물들을 침식지대 쪽으로 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소환자들이 생겨났고, 그들이 소환해 낸 강림자라는 이들이 선두에 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괴물들을 침식지대 안으로 다시 밀어 넣는 것에 성공했던 것이다.
그 후에 그곳들을 바로 폐컨테이너에 시멘트와 자갈 등을 채워 넣어 굳힌 것을 쌓아 성벽처럼 만들어 격리한 것이다.
그 와중에 북한이 먼저 무너져 버렸다.
전쟁준비라면 대한민국에 비할 바가 없다던 북한은 침식 초기를 버티지 못했다.
어이없게도 위원장을 포함한 고위급들이 시찰 중 괴물들에게 당해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 덕이라 해야 할지 얼결에 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모든 일련의 일들이 바로 국정원과 군 사령부의 원활한 협조 덕이었다.
지금은 대응부서가 생겼지만 지금의 국정원장 등 부서의 장급들은 당시 역전의 용사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이들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화면이 멈추고 국정원장인 주지환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멈춰진 화면은 조악한 스마트폰의 영상이 아니었다.
당시 인근의 CCTV영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옆에 떠 있는 사진은 강림자를 등록할 당시 찍어 놓은 사진이었다.
바로을지부루의 사진이었다.
“그때 나도 봤지만…… 참.”
지금의 국장은 당시 현역으로 현장에 있었다. 그래서 이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는 분명 활을 썼던 걸로 기억하는데. 별명이 무슨 호크아이 어쩌고 떠들던 거 같던데.”
“예 당시 유행하던 헐리웃 영화에 비교를 했었지요.”
“그래. 그때도 황당하긴 했지.”
주 국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빛과 함께 사라지던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했다.
그리고 그 직전 우중만의 멱살을 잡은 남자의 당당한 음성 또 한 기억에 새겨져 있었다.
“고진천…….”
당시에 그 일은 많은 여파를 몰고 왔다.
일부 창고에서 발견된 수많은 시신들. 하나같이 같은 무기에 죽은 흔적이었다.
“계웅삼…….”
장도를 쓰던 이.
“그리고 마법사…….”
마법이라고 하니 더 웃겼다. 그렇게 떠들썩한 미스테리 사건이기에 각국의 정보원들이 전부 대한민국으로 날아왔다.
그렇게 미궁으로 빠져가던 사건이 잊히게 된 이유가 바로 이 년 후 발생한 침식 때문이었으니까.
빛과 함께 사람이 사라진 것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충격이었다.
그런 대사건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마당에 그 일에 연연할 수 있겠는가.
아니 기억할 여유 따윈 없었다.
그리고 안정이 된 이후에는 완전히 잊히게 된 것이다.
그랬던 것이 지금 다시 화면으로 찾아온 것이다.
당시 그 일을 벌였던 일 인이 강림자가 되어서 말이다.
“일단 확인을 해 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확인? 무슨 수로? 인지도도 소수점에서 한참 밑인데 뭘 기억하겠나.”
사진 아래의 인지도.
0.00001.
물론 인지도에 비해 보인 활약은 이레귤러라 할 수 있지만, 그건 연구자들이나 입맛을 다실 일이다.
“그렇긴 합니다만. 일단 다음 화면 보시지요.”
앞에 선 사내가 화면을 바꾸었다.
“응?”
주 국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질문〉님들 강림자는 밥도 먹나요? 전 먹는데. 뭔가 이상해요.
-왜? 똥도 싼다고 하지.
-네 다음 관종.
-님들 먹이주지 말죠.
-그래! 똥도 쌌다! 그것도 엄청! 야이 개#[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들아!
인터넷의 게시판이었다.
“뭔가?”
주 국장이 의문을 표하자 앞에 서 있던 사내가 대답했다.
“코드명 호크아이의 소환자가 그날 올렸던 질문이었습니다.”
“……먹으니 싸는 건 당연한데. 강림자가 밥을 먹는다는 헛소린 뭔가?”
주 국장의 질문에 사내는 다른 화면을 돌렸다.
[빈입니다! 형님들 강림자 먹방 오늘은 라면 열 개 시작합니다.]
-빈하!
-강림자 코스프레 오지고!
-오 비쥬얼 갑!
-캐스팅 ㅇㅈ!
[이거이 뭐이간?]
[신경 쓰지 마시고 그냥 드시면 되요. 식비라도 벌어 보게요.]
[지랄말라우. 상자때기 켜놓고 있으면 돈이 떨어진다네? 나가서 몸으로 띠라우.]
[요즘은 먹방이 대세라니까요! 요즘 형님들도 많이 늘었고, 파프리카도 많이 쏴주신다고요!]
[먹방은 또 뭐간? 먹다 방구 뀌는 거이네?]
-ᄏᄏᄏ! 졸귀!
-아재 북에서 왔시오?
그 후에는 라면 열 개를 딱 열 입에 작살 내는 장면과 파프리카가 쏟아지는 모습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후 빈이라는 사내가 눈물을 흘리며 넙죽 절하다가 코드명 호크아이에게 뒤통수를 후려 맞는 모습이 이어졌다.
“…….”
주 국장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는 눈가를 한번 비비더니 옆에 있는 사내에게 질문을 던졌다.
“강림자에게 먹으라고 지시하면 먹기도 하나?”
“아시잖습니까. 초기에 소환자들이 그들도 먹어야 하는 줄 알고 먹으라고 했었는데, 음식을 안 먹지 않았잖습니까.”
“나도 아는데 요즘은 바뀌었나 했지. 그럼 저건 뭐지?”
“그게…….”
“…….”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혹시 강림자인 척하는…….”
“그럴 듯하긴 한데, 등장 시 모습은 강림이 맞잖아. 그리고 긴급 균열 대항팀이 바보도 아니고 말이야.”
주 국장의 말에 다시 주변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더 이상 대답이 없자, 주 국장이 입을 열었다.
“확인해 봐. 아 그리고…….”
명령을 내리던 주 국장이 신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조심해. 자료 봐서 알 거야. 그들은 괴물들이라는 거.”
“알겠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회의는 마무리되었다.
회의실을 나오던 주 국장이 다시 자료를 펼쳐보며 중얼거렸다.
“죽을 놈들이 죽었던 사건이기는 하지만…….”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모른 체할 수는 없잖아.”
주 국장이 머리를 벅벅 긁어대며 발걸음을 옮겨 나갔다.
* * *
을지부루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산해진미가 펼쳐져 있었다.
“자 드십쇼!”
그 음식을 들이미는 이는 바로 일주일 전만 해도 먹는 것 가지고 타박하던 고빈이었다.
부루는 빈의 멱살을 잡았다.
“누굴 돼지로 아는 거이간? 와 만날 먹으라고 하는 거이야!”
“컥! 혀, 형님!”
“닥치라우. 내래 너 같은 동생 없어야!”
“이, 이게 의외로 돈이 되니까…….”
빈의 지나친 과욕이 매를 불러왔다.
그리고 그날은 비방용 영상만 잔뜩 올라가며 파프리카 방송으로부터 한 달간의 징계를 당했다.
동시에 빈의 꿈도 사라졌다.
음식은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화는 화고 먹는 건 먹는 거였다.
음식을 다 먹은 부루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갑주를 챙겨 입기 시작했다.
“어, 어디 가세요?”
“이러다 돼지 돼갔어. 대충 세상 돌아가는 꼴을 봤으니 몸 좀 풀어야디.”
부루의 말에 빈의 얼굴이 살짝 펴졌다.
“그럼 침식지역 가시는 겁니까? 제가 사실 초보존이라 불리는 곳들을 미리 찾아봤거든요?”
빈은 그제야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동안 미칠 것만 같았다.
명령은커녕 부탁도 들어주지 않던 부루였다.
그런데 스스로 무기를 챙기며 일어서니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흐음.”
부루는 빈을 바라보았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일상처럼 마물들을 때려잡던 중에 갑자기 이곳으로 날아온 것이다.
그런데 또 마물이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복장은 요상해도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도 다수 보였다.
심지어 눈앞의 놈은 뭔가 끈적한 것이 이어진 느낌마저 들었다.
자신을 이곳에 끌어온 이라는 것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사실 조금 기분이 나빴다. 다시 새로운 곳에서 적응을 해야 할 팔자니 말이다.
일단 처음에는 이곳에 대해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주로 본 것은 텔레비전이라는 기물이었다.
다행스럽게 세상 돌아가는 것들이 줄줄 나왔다. 가끔 눈이 호강을 하기도 했지만, 그건 그뿐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지켜본바 부루는 결론을 내렸다. 이곳은 또 다른 세상이라는 것이다.
자신 또한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거라는 것쯤은 느끼고 있었다.
그건 저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천당 이야기를 했지만, 그가 있던 곳은 지옥일 것이다. 평생을 전장에서 사람을 잡아 죽인 벌로 매일 하루하루 전투가 이어지게 만드는 그런 지옥.
그런 그에게 지금의 짧은 평화는 큰 휴식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슬슬 움직여야 했다. 뭔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알아야 했다.
궁금한 것은 누구든 못 참을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누구의 의지로 불려 다니는 것은 딱 질색이었다.
이제는 그걸 알아볼 참이었다.
“채비하라우.”
“예!”
빈은 신이 나서 뭔가를 챙겨입기 시작했다.
뭔가 갑주 같은 느낌도 나는 옷이었다. 다만 꽤 낡았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부루의 시선을 느꼈는지 빈이 웃으며 답했다.
“이, 이거 대여품이에요. 돈 벌면 좋은 걸로 사면 돼요.”
“안 물어봤어야.”
뭔가 이어진 것 때문인지 영 대답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특히 빈이 싫지 않게 느껴지지는 것이 더 불쾌한 부루였다.
“챙겨 입었으면 가자우.”
부루가 나서자 빈이 허둥지둥 뒤를 따라나섰다.
“날씨 됴쿠만.”
“비 오는데요?”
비가 오고 있었다.
“정말 됴아.”
비가 오는 날은 피가 잘 씻겨 내려가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