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관찰일기
게시판 어디에도 도움이 되는 답변을 얻을 수는 없었다.
“밥 차리라우. 한 무대기 뽑으니까네 속이 허하구만 기래.”
“……먹은 지 얼마나 되셨다고요.”
“아까 국물이랑 같이 먹던 괴기가 맛나더구만 기래.”
“…….”
빈은 통장을 확인했다. 잔고가 얼마 없었다.
“뭐하는 거이네?”
부루가 눈알을 부라린다.
빈은 폭력에 굴복한다.
“하아.”
빈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보상금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보상금이 들어와도 문제다.
소환자가 강림자를 굴려서 돈을 버는 구조는 균열이 생겼을 때 나오는 걸 사냥하는 게 아니다.
침식지라 불리는 곳을 직접 강림자와 들어가서 사냥을 했을 때 돈이 된다.
그곳의 부산물이 더 가치가 있다.
무시무시한 것은 같다.
다른 건 사망 시 환경이다. 그 환경 때문에 죽은 뒤의 부산물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침식 내부에서 죽었을 때 괴수의 사체는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질기고 단단하다던지 그런다.
그러나 침식지가 아닌 균열을 뚫고 나온 것들은 죽는 순간 그 부산물이 일반 짐승의 것 마냥 바뀌어 버린다.
당연히 소환자들도 돈이 되는 쪽을 노리지 돈이 안 되는 것을 노리지는 않는다.
물론 권리와 함께 의무가 있기에 지근거리에 균열이 형성되면 거기서 나오는 것을 처리해야 하는 법이 있다.
의무기에 위협을 무릅쓰고 처리한다 해도 나오는 부산물이 없다.
이를 달래기 위해 소정의 보상금이 있는 거다.
물론 보상금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짜다.
이번에 잡은 카거의 가치만 해도 열 배가량이 난다.
침식 안에서 잡았을 경우 한 마리의 가치는 백만 원에서 백오십가량이지만, 균열을 뚫고 나오는 것을 잡았을 때에는 마리당 십만 원이 전부다.
즉 보상금은 백만 원이 전부다.
짜다.
물론 혼자 살 때의 빈이라면 크다.
그런데 군식구가 있다.
빈은 부루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들을 보며 지진이 나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했다.
알고 보니 지진은 아니었다.
빈은 거울을 봤다.
흔들리는 건 자신의 눈동자였다.
음식을 찾는 부루를 위해 고기를 샀다.
수입산 삼겹살이다.
그게 Kg(키로그램) 단위로 사라지는 중이다.
빈이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저 그거 아직 핏물이 떨어지는 것 같은데요?”
실제로 그랬다.
부루의 입가에 덜 익은 삼겹살에서 베어 나온 핏물이 맺혀 있었다.
‘얼마나 처먹으면 저렇게…….’
덜 익은 삼겹살 몇 개를 쥐어짜 봐야 핏물이 얼마나 나오겠는가.
덜 익었다 해도 불에 닿은 건데. 그러나 부루는 생식을 하는 사람 마냥 피를 뚝뚝 흘리며 먹고 있었다.
“응?”
“그거 생거 잘못 먹으면 죽는다던데…….”
실제로 그런 기사도 있다.
그래서 말했으나 답은 단순했다.
“지랄 말라우. 굶어서 뒈지는 거이 숱하게 봤디만, 먹어서 뒈지는 꼴은 보디 못했어야. 거 모르네?”
“뭘요?”
“잘 먹고 뒈진 놈이 때깔이라도 곱디.”
“옛날에도 그런 말이 있었습니까?”
“상식 아이간?”
빈은 한숨을 내쉬며 집게를 들었다.
“제가 구워 드릴 테니 천천히 드시죠.”
“큼.”
“이거랑 싸서 드시고요.”
빈이 상추를 내밀자 부루가 반색했다.
“이거이 천금채 아이간? 귀한 거 아이네?”
“천금채요?”
일단 듣기로는 귀해 보인다. 빈은 상추를 더 내밀었다.
“그럼 많이 드세요.”
“됐어야. 이런 건 아껴먹어야디.”
“아니 그게…….”
“치라우.”
결국 풀 먹이는 걸 포기한 빈이 고기를 대신 구우며 은근슬쩍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저, 어디서 오셨습니까?”
“내래 천당에서 왔디.”
“…….”
빈은 속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쌍욕을 참아냈다.
했다가는 처맞을 거 같았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기는 싫었다. 특히 강림자에게 처맞은 최초의 소환자라는 기록도 싫었다.
“어, 어쩐지 천당에서 오셨을 거 같습니다. 거기는 어떻습니까?”
뭔가 신기한 탓에 질문을 던졌다. 지금 천당 운운하는 걸 보니 평화로운 시기일 수도 있다.
그러면 이렇게 강한 이가 인지도가 낮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무장의 인지도가 당연히 낮은 게 정상이다.
그렇다면 인지도가 소수점 한참 밑인 것이 이해가 된다.
“그 정도로 평화스러운 곳입니까?”
“정말 천당 모르네? 뒈지면 가는 곳 말이디. 안 가 봤네?”
“가 봤으면 제가 여기 있겠습니까?”
“아! 클클클! 길쿠만! 내래 넝담이야!”
빈은 저게 진담이라는 것을 느꼈다.
강하긴 한데 심하게 머리가 나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지도가…….’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죽은 다음을 기억하신단 말입니까?”
이건 또 새롭다.
다들 사후의 기억은 없다. 아무리 인지도가 높아도 말이다.
생전의 기억을 일부 하는 강림자도 사후에 대해서는 그저 먹물 같다던 말이 전부였다.
“누굴 바보로 아는 거이네? 당연히 기억하디. 여기 오기 전에만 해도 신나게 썰다 왔구만.”
“썰어요?”
“길티. 심심티 않게 매번 덤벼드는 것들이 있어 기분이 좋았디.”
“천당이라면서요?”
빈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질문했다.
그러자 부루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내래 매일 원없이 싸웠어야. 기거이 천당 아니고 뭐이간?”
“…….”
빈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에이, 씨! 그럼 그렇지. 그게 지옥이지 천당이냐!’
빈은 일그러지는 얼굴을 애써 감추며 웃었다.
“아새끼 처음 웃어 보네? 와 똥 씹은 것 마냥 웃는 거이간?”
“죄, 죄송합니다.”
빈은 옆에다 메모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름 을지부루.
특징
1. 먹고 싸기까지 한다. 둘다 많이.
2.말 안 들음.
3. 치기까지 함.
그 밑에 출신이라는 항목을 적으며 방금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정리했다.
출신 : 지옥
그렇게 적은 빈이 다 익은 고기를 한 움큼 넘겨주며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살아생전에는 어디 계셨어요?”
“개문산성에 있었디.”
“개문산성요?”
들은 바 없다. 물론 빈이 역사에 해박하진 않은 탓에 모를 수도 있었다.
“개문산성이 어느 나라 겁니까?”
슬며시 질문의 방향을 틀었다.
“가우리.”
“가오리요?”
“미틴 거이네?”
“…….”
“가우리.”
“그 이름은 알긴 하는데…….”
그가 아는 건 일본 애니의 케릭터 이름이었다.
다시 찾아보니 그것 말고도 있었다.
“고구려?”
빈은 고구려에 대한 설 중 가우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얼굴이 상기되었다.
을지부루.
바보 아닌 이상 그와 연관된 이름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을지문덕.
고구려의 명장.
“호, 혹시 을지문덕이라고 아세요?”
그때 고기를 먹던 부루가 멈칫하더니 그를 바라보았다.
둥그렇게 떠진 눈.
부루가 먹던 고기를 놓으며 말했다.
“우리 아바이를 어케 아는 거디?”
“……대박.”
순간 빈은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굽던 고기를 내팽개치고 컴퓨터에 들러붙어서 검색을 시작했다.
“개문산성…….”
없었다.
“그, 그럼 을지문덕 장군 자손…….”
딱히 자료가 없었다.
그때 아래에 뭔가가 있었다.
“어?”
을지부루 역 손중길.
“에이씨.”
영화였다.
한숨을 내쉰 빈은 머리를 긁적였다.
검색으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있는 사실 하나는 부루가 이전 생에 대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것만 해도 학계에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었다.
컴퓨터 검색을 계속하면서 물었다.
“그럼 당시 왕이 누구였어요?”
“폐하 말이네?”
“네.”
“고진천.”
“…….”
다시 검색을 해 보았다.
그리고는 부루를 노려보았다.
“에이씨. 장난하나.”
“미틴 거이간?”
“아…….”
빈은 그제야 알았다.
속으로 해야 할 말을 육성으로 내뱉었다는 것을 말이다.
빈이 기름 묻은 손에 처맞는 동안 그가 검색한 컴퓨터에는 이렇게 나와 있었다.
고진천 역 나정훈.
* * *
“실장님 이거 봤어요?”
“뭔대?”
이승배는 부하직원이 내미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응?”
“새로 등장한 강림자라던데 웃기게 생기지 않았어요?”
“으응?”
승배는 눈을 감았다 떴다.
뭔가 잔상이 많고 흔들리는 것이 많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뭔가 익숙한 체형이었다.
“와, 사람이 이렇게 생길 수도 있나?”
“이거…….”
승배의 얼굴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졌다.
머릿속에 잊을 수 없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던 것이다.
“우루 형님?”
“예?”
부하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을 때는 승배가 그의 스마트폰을 낚아챈 다음이었다.
그리고는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찰갑에 육중한 체구.
거침없는 전투.
하지만 이내 승배의 얼굴이 살짝 풀렸다.
“아니구나.”
커다란 도끼.
그의 몸 어디에도 을지우루가 분신처럼 들고 다니던 활과 화살은 없었다.
하지만 왠지 아쉬웠다.
“이거 얼굴 나온 건 없냐?”
“이 와중에 이거 찍은 사람도 용자죠. 까딱하면 죽는 판에.”
“그건 그러네.”
승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이 이상하게 바뀐 후 유독 생각나는 사람들이었다.
승배는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아니겠지.”
그렇게 고개를 내저으며 뒤돌아섰다.
* * *
긴급 균열 대항팀 이정미 경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어디라고요?”
“국정원입니다.”
“국정원이 여긴 왜요?”
국정원. 즉, 국가정보원이다. 문 제는 긴급 균열 대항팀과는 접점이 없었다.
“아까 넘어왔던 자료를 확인하러 왔습니다.”
“아 그 특이한 강림자요? 그걸 왜 국정원이?”
이 경위는 점점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외비입니다. 테러 용의자와 연관이 있습니다.”
“소환자가요?”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국정원에서 나왔다는 이는 목석마냥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이 경위는 고개를 내저으며 자료를 찾았다.
일단 정식 협조 요청이었고, 그리 대외비라 부를 만한 자료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사람 같지는 않은데.”
이 경위는 약간 얼빵하게까지 보이던 고빈의 얼굴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료를 넘겨받은 국정원 요원은 뭔가를 꺼내어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던 이 경위가 방긋 웃는 얼굴로 배웅을 하다가 얼굴을 굳혔다.
“소환자 자료를 확인한 게 아니고 강림자 자료를 확인해? 대체 뭐지?”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들이 찾는 자료가 소환자가 아닌 강림자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테러. 테러라.”
순간 이경미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테러와 거리가 먼 나라다.
하지만 테러라 불릴 만했던 일이 벌어졌던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도 거의 십년 전.
이렇게 세상이 뒤집어지기 전을 떠올렸다.
“그게 자료가 남았을까?”
어느 순간 싹 사라진 테러 영상들을 다시 한 번 뒤지기 시작했다.
어딘가에는 뭐든 자료가 남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말이다.
수사관의 촉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움직였던 것이다.
* * *
강림자와의 만남 사흘째 되던 날.
고빈은 울었다.
“아흑!”
잔고가 비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사이 보상금이 들어왔다. 그러나 그건 공과금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밥 차리라우.”
빈은 맞아도 상관없다는 듯 처절하게 외쳤다.
“돈이 없다고요!”
빈의 외침에 부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벌면 되디.”
빈은 점점 미쳐 가는 자신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