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소환자와 강림자
꿈은 이루어진다.
그 옛날 월드컵 때 써먹은 이후로 시시때때로 써먹던 문구다.
세상이 뒤집히고 민족의 꿈 하나는 이루어졌다.
그건 바로 통일.
하지만 그게 좋게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뭔가 남과 북이 으쌰으쌰해서 이룬 통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이 뒤집히면서 강제로 이루어진 통일이니 말이다.
세상이 뒤집혔다는 말은 말 그대로다.
갑자기 괴물들이 튀어나오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문제가 된 것은 이 괴물들에게는 일반적인 화약 무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예 상대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효율 문제다.
일단 총탄은 저지력만이 발휘될 뿐 살상력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대전차무기로 쓰는 무반동총쯤 되어야 피해를 입힌다.
이때 한동안 알라의 요술봉이라 불리는 RPG-7의 품귀현상이 벌어졌다는 농담마저 생길 정도다.
그러나 그것도 F급이라 불리는 괴물들에게나 통할 뿐이다.
여기서 F급이라 명명된 것은 가장 약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 정확한 건 인간의 화기가 그나마 통한다는 Fire를 내포한다는 점이다.
농담 삼아 그 위의 급이 E급부터는 무기가 오류 난다고 에러급이라 부르기도 한다.
D급은?
죽기 딱 좋다고 데스급이라 농담 따먹기들을 한다.
그 정도로 격차가 크다.
그럼에도 인류는 아직 멀쩡히 살아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튀어나온 것이 괴물들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 만화나 위인전기 혹은 드라마에서나 볼 법했던 그 옛날의 영웅들.
이미 관짝에 들어가서 어디 묻혔을지 확인되지도 않은 이들이 튀어나온 거다.
더 웃긴 건 현대의 무기는 무용지물이지만, 그들이 휘두르는 창칼들은 괴물들에게 제대로 먹힌다는 거다.
이걸 본 검도 고수가 유레카를 외치며 자신의 무기를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괴수에게 팔다리가 뽑혀 몸통만 나뒹구는 처참한 사건이 벌어졌다.
칼이면 다 먹힐 거라는 막연한 생각은 상상만으로 끝냈어야 했다는 걸 증명한 비극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바로 누구나 소환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처음에야 이게 어떻게 벌어지는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결국 그 발현에 대한 상관관계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이 이상해진 지 오 년 만에 인류는 새로이 이것을 정립하게 되었다.
소환 적합자.
즉 소환자는 만 명에 하나 있을까 하는 귀한 재능이다.
만 분의 일의 재능.
그리고 그 소환자가 불러내는 강림자. 즉 고대의 소환물은 인지도에 따라 그 강함의 척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인지도라고는 하지만, 강림시에 사실 발생하는 사념에너지 비슷 한 것을 척도로 삼는다.
많은 이들이 아는 강림자일수록 그 에너지 수치가 높았다.
이는 통계로 대입해서 확인한 수치다.
그래서 인지도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렇게 강림한 위인은 소환자의 명에 따르게 된다.
이것 역시 일정한 법칙이기는 했다.
다행이기도 했다.
기껏 불렀는데 적 앞에서 머리 긁고 앉아 있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 사실을 왜들 주저리주저리 말하고 있는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난 내가 아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눈앞의 강림자 때문에 말이다.
“어이 꼬비니. 라면 좀 끓여 오라우.”
누워서 발을 까딱거리던 강림자가 내게 던진 말이다.
“…….”
소환자를 부리는 강림자.
이것 역시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현상이다.
참고로 내 이름은 고씨 성에 빈자를 쓴다. 고빈.
“손발이 없는 거이간? 쓰기 귀찮으면 말하라우. 당장이라도 떼줄 수 있으니까네.”
심지어 협박도 일삼는다. 문제는 이 강림자는 협박에 그치지 않는 존재다.
지금 양쪽 눈에 새겨진 퍼런 흔적이 그걸 증명한다.
담담히 답변을 뱉어 본다.
“몇 개를 끓일까 생각 중이었어요.”
“일단 열 개만 끓여 오라우.”
“…….”
이것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현상이다.
라면이라니…….
살다 살다 강림자가 음식을 탐한다는 건 처음 듣는 이야기다.
심지어 더럽게 많이 먹는다.
난 라면에 물을 올리며 한쪽에 카메라를 세팅했다.
영상을 남기기 위해서다.
“뭐하는 거이간?”
“라면 값이라도 벌기 위해섭니다.”
“기럼 열심히 일하라우.”
“……예, 장군.”
덤덤하게 대답을 하며 난 카메라를 세팅하고 컴퓨터를 열었다. 그리고 라면을 끓이며 입을 열었다.
“형님들 반갑습니다. 비니가 왔습니다. 우리 강림자께서 배가 고프시답니다. 오늘은 라면 열 개를 끊이라시네요.”
저 강림자 양반이 비니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BJ 비니.
앞에 꼬를 붙이는 건 그냥 억양 차 같다.
어쨌든 내가 마이크에 말을 내뱉는 모습에 한쪽에 누워 있던 강림자 양반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린다.
“미친 거 아이간? 판때기 앞에 앉아 작대기에 주절거리는 거이 말이야.”
뒤통수가 따가워도 할 말은 한다.
“컨셉 재미있으시다고요? 저도 이게 컨셉이면 정말 재미있겠습니다.”
물론 모니터를 바라보며 말이다. 지금 하는 건 바로 파프리카 티비 먹방이다.
이게 좀 쏠쏠하다.
사실 라면 값 이상 나온다.
지금 이 라면도 지원받은 거다. 하지만 처음에는 라면 값에 정말 파산할 뻔했다.
“오! 파프리카 백 개 감사합니다! 달곤행님 나이샤~앗!”
박수와 함께 파프리카를 쏴 준 분과 파프리카 티비 운영자분들께 그저 감사 인사를 드릴 뿐…….
“쯧쯧, 제대로 미쳤구만 기래.”
뒤에서 들려오는 혀 차는 소리.
정말 내가 미친 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도 생생하다.
인지도 0.00001의 기적을 말이다.
일단 내가 살긴 했으니 기적은 기적이라고 봐야 하니 말이다.
멱살을 잡고 눈알을 부라리는 강림자.
얼결에 튀어나온 ‘북에서 오셨어요?’라는 질문에 답변이 오갈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함께 튀어나온 카거들이 번들거리는 눈알을 하고 동족을 쓰러트린 존재를 향해 내달려왔다.
카거 하나하나는 사실 D급 괴수들 정도의 신체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C급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바로 집단성에 있었다.
좋게 말하면 동료애고, 나쁘게 말하면 개떼처럼 몰려다닌다는 점이다.
나름 조직적이기도 했다.
“저건 뭐이간? 털 빠진 개 대가리 같은 거이…….”
“풉!”
절체절명의 순간이지만 고빈 자신도 모르게 멱살을 잡힌 채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이것도 잠깐이었다.
“우와와와와왁!”
몰려오는 카거를 향해 강림자가 몸을 돌렸다.
문제는 고빈의 멱살을 잡아 올린 채로 몸을 돌린 거다.
한 손에는 커다란 도끼에 다른 손에는 대롱대롱 매달린 소환자.
예전에는 단순 비유로 쓰였고, 최근까지는 일부 여성단체가 군인을 비하하는 의미로 변질시킨 단어인 ‘고기방패’라는 것이 떠올랐다.
다 떠나 지금 단어의 구조 그대로 사용되게 생긴 것이다.
고빈은 소환자 메뉴얼대로 강력한 의지를 담아 외쳤다.
“아흐흐흑! 명령한다아! 이거 놔라아아아아!”
“미틴 거이간?”
단박에 거절당했다.
부리부리한 눈동자가 노려보는 순간 명령은 간절한 부탁이 되었다.
“사, 살려 주세요오오오!”
“기냥 닥치고 있으라우, 뒈지지는 않을 꺼이니까네.”
그렇게 못 믿을 말을 남기고, 달려드는 카거들을 향해 한손에 인간방패와 다른 한손에는 대부를 들고 달려나갔다.
그때 사방에서 쏟아지는 외침들.
“강림자?”
“그런데 소환자가 누구기에 시민을 방패로 삼게 하는 거야!”
“미친 거 아니야?”
“…….”
멱살을 잡힌 채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던 고빈은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며 외쳤다.
“제가 소환자예요! 살려 주세요 오오오오!”
고빈의 진실된 외침은 그저 안쓰러운 눈빛으로 되돌아올 뿐이었다.
대답은 없었지만, 충분히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고빈이 버럭 소릴 내질렀다.
“나 안 미쳤다고!”
고빈은 그냥 미칠 것 같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부와아악!
순간 고빈의 몸뚱이가 반 바퀴를 돌았다.
마치 SF영화에서 우주선이 워프를 할 때처럼 세상이 선으로만 보일 정도로 빨랐다.
그렇게 멈추며 본 광경.
자신의 눈앞에 여전히 멱살을 잡고 있는 강림자가 있었고 그 앞에 그가 휘두른 대부가 있었다.
그리고 카거의 상체가 붕 떠올랐다. 물론 아래쪽은 잘려나갔다.
“아…….”
민들거리는 피부와 기다란 주둥이가 쩍 벌려져 있었다.
털 빠진 개라는 말이 좀 와 닿았다.
사실 체형은 고릴라를 닮았다.
부와아악!
다시 고빈의 몸뚱이가 돌아갔다.
그리고 또다시 보인 광경은 강림자가 대부를 그대로 내리찍은 모습이었다.
카거의 몸뚱이가 세로로 쩍 갈라지며 내장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고빈의 뱃속은 맹렬하게 역류하기 시작했다.
“우웁!”
먹은 것을 확인하기 직전 그의 멱살이 풀어졌다.
아니 풀면서 몸을 빙그르르 돌렸다.
터덕!
여전히 잡혀는 있었다.
멱살 대신 뒷덜미다.
그 덕에 달려드는 카거의 번들거리는 눈알과 쩍 벌어진 입과 날카로운 이빨 등등이 확실하게 더 잘 보였다.
그러나 그 공포의 광경도 넘어 오기 시작한 것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우웨에에엑!”
뱃속에서 반쯤 소화되던 음식들이 마치 소방사들이 뿌리는 물줄기마냥 앞으로 뿌려졌다.
“키에에!”
그 토사물들은 달려드는 카거의 안면에 적중했다.
그와 동시에 카거들이 멈칫했다. 더러워서인지 아니면 눈이 가려서인지는 모르지만 멈춘 것은 확실했다.
“길티. 이건 좀 쓸 만하구만.”
와작!
그와 동시에 다시 날아든 대부가 카거의 왼 어깨부터 오른 허리까지 사선으로 쩍 갈라 버렸다.
한 방에 한 마리씩.
그 강렬한 모습을 보며 고빈은 자신도 모르게 팔에 달려 있는 액정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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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도 : 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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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본 건 아니었다.
그러나 실력은 믿을 수 없었다. 뭔가 이 시대의 상식을 무너트리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여유는 잠깐일 뿐이었다.
남은 카거들이 마치 포위하듯이 사방에서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쪽! 이쪽! 아! 저기!저기! 저기!”
다급해진 나머지 고빈은 마치 인간레이더마냥 달려드는 카거들을 바라보며 외쳐 대었다.
그 순간이었다.
부와아악!
“히에에에엑!”
고빈은 다시금 비명을 내지르며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정확히는 강림자가 집어 던진 거다.
강림자의 머리 위로 솟구치는 순간 고빈의 시야는 확 넓어졌다.
마치 탑뷰 시점에서의 액션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사방에서 거의 동시에 도달하는 카거.
한 놈은 대부로 쪼개는 동시에 다른 한 놈과는 깍지를 낀다.
“까, 깍지?”
칼날 같은 발톱이 달린 카거의 손에 깍지를 끼는 모습에 고빈은 다시 놀랐다.
그러나 놀람은 끝나지 않았다.
그대로 깍지를 낀 채 마치 레슬러마냥 꺾어 버리는 강림자의 괴력에 다시 놀랐고,
또 그걸 그대로 잡은 채 맴돌리는 괴력에 더 놀랐다.
콰두두두!
카거가 다른 카거를 두드리는 무기가 되는 순간이었다.
허공에 뜬 고빈은, 만약 자신이 하늘로 솟구치지 않았다면, 저기에 강림자의 손에 잡혀 동료들을 두들겨 대는 카거 대신 자신이 살신성인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소름 끼치는 상상을 했다.
그래선지.
몸이 부르르 떨렸다.
따듯한 물이 하체에서 생성되어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