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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101)화 (101/106)

101화

드론이 사선 방향으로 쏘아져 올라가고 지상에 발붙인 모든 마력운용계가 각자의 속성을 쏟아냈다. 육체강화계는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했다.

다수에 속하는 그들의 표정은 처음보다 어두웠다. 적이 상공에 있다면 직접 공격할 수단은 속성 공격 혹은 드론을 통한 돌진 공격뿐이다. 그들은 쓸데없는 생각을 지우며 마력운용계의 호위에 열중했다.

콰과광!

콰릉!

온갖 속성이 먹구름 아래서 휘몰아쳤다. 일직선으로 날아오던 하얀 드래곤은 피할 생각조차 없이 그 모든 공격을 정면에서 맞았다. 불과 물이 만나 거대한 수증기를 만들고 그 사이로 전격이 스며 폭발적인 스파크의 폭풍을 만들어냈다.

이현수가 인상을 썼다.

주륵.

코피가 흘렀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드래곤이 날고 있는 위치의 중력을 내리눌렀다.

무겁다.

누르는 쪽에서 무겁다고 느낀다니. 이상하다고 생각할 새도 없었다. 바람에 수증기가 걷히고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얗고 압도적인 거체는 어디 가고 창백한 인상의 은발 남자가 허공에 떠서 헌터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두가 그의 정체를 알았다. 모를 수가 없었다.

헌터들이 침음을 흘렸다.

그들은 드래곤이 갑자기 사람이 된 것보다 그가 멀쩡하다는 것에 더욱 경악했다. 지금 여기 있는 전투원은 S급만 열 명이고, 나머진 A상급 내지 중급이다. 물론 마력운용계의 숫자는 10퍼센트 안팎이지만, 그걸 감안해도 작은 도시 하나쯤은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 화력이다. 그런데 그걸 맞고도 저렇게 멀쩡하다고?

누군가의 머리에 절망의 싹이 텄다. 순식간에 자라난 덩굴은 헌터들 틈바구니를 파고들어 절망을 전염시켰다.

모두가 전의를 잃어가던 때, 하나의 얼음칼이 허공에 만들어졌다. 손가락 두 개를 합쳐 놓은 크기의 날카로운 칼은 서서히 증식을 시작했다. 열 개에서 수십 개, 다시 수백 개. 무수한 얼음칼이 벽처럼 자리했다.

창백한 미남자의 표정이 변했다. 그가 처음으로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콰과과!

희미하게 빛나는 얼음칼이 총알처럼 쇄도했다. 하나하나에 마력이 담긴 칼은 총기류가 통하지 않는 마물에게 총과 같은 효과를 냈다.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공중에 뜬 상태에서 미동조차 없었다.

그의 앞으로 그림자가 나타났다. 여섯의 그림자가 거대한 장막을 펼쳤다. 밤을 잘라 만든 천처럼 검게 일렁인 장막은 쇄도한 얼음칼을 전부 튕겨냈다.

후드득.

부서지고 깨져 아래로 떨어진 얼음조각은 어둑한 날씨에도 희미하게 빛났다. 이제 내 차롄가? 비릿하게 웃은 은발 남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사결이 만들어낸 것과 똑같은 얼음칼이 더 빠르게 만들어졌다. 심지어 그냥 봐도 두 배에 가까운 규모였다. 주춤했던 헌터들의 절망 역시 물에 처박힌 스펀지처럼 순식간에 몸집을 불렸다.

남자가 웃었다. 가늘고 흰 손가락이 가볍게 까닥였다. 그의 공격은 사결보다 조용하고 날카로웠다. 

빠르게 내리는 얼음 비를 미리 대비하고 저항한 건 소수였다. 대부분은 거대한 자연의 재앙을 바로 앞에서 마주한 인간처럼 입을 벌린 채 바라볼 뿐이었다.

스륵.

공허는 소리가 없었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나타난 허무의 공간이 얼음칼을 전부 삼켰다. 크라투스는 눈을 빛냈고 헌터들은 얼이 빠졌다.

그들을 지켜준 거대한 검은 벽의 외양은 블랙미스트와 비슷했다. 하지만 무수한 헌터를 집어삼켰던 그것과 달리, 지금의 벽은 그들의 목숨을 구했다. 목적한 바를 끝낸 벽은 나타날 때 그랬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거기구나.”

크라투스의 시선이 빌딩의 어느 한 지점을 향했다. 창문이 없는 벽면이었다. 그의 신형이 빗살처럼 쏘아졌다. 사결의 안색이 일변했다.

“막아!”

단숨에 벽을 부순 크라투스가 잔해를 밟으며 가볍게 내려섰다. 그곳은 밀폐된 창고였다. 안에서 단말기와 연결된 감시카메라로 상황을 주시하던 여원이 주춤거리며 몸을 물렸다. 폭발의 충격으로 헤드셋은 이미 벗겨진 후다. 저런 것이라도 마음의 위안은 되었는지 여원의 안색은 아까보다 훨씬 나빠졌다.

그는 크라투스를 똑바로 보지도 못했다. 지우려고 애썼으나 끝내 덜어내지 못한 트라우마는 쐐기가 되어 그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바작.

느긋한 걸음이 유리 조각을 밟았다. 여원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크라투스가 손끝으로 여원의 턱을 들어 올렸다.

“왜 이렇게 벌벌 떨어. 마음 약해지게.”

“…….”

“그래도 제 잘못을 아는 걸 보니 확실히 기특하긴 해. 게다가 오는 길에 보니 네 기운이 느껴지는 얼음 속성도 있던데. 그것도 마음에 들어. 내 대용품이겠지? 특별히 그 녀석은 살려주마. 애착 인형 같은 거라 생각해 주지.”

이 와중에도 사결은 살겠구나, 라며 기뻐하는 자신은 비정상일까. 여원은 자조했다. 그는 움직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키를 잃어버린 배처럼 몸은 도통 말을 들어 먹질 않았다.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세상에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넘친다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자기 몸이다. 이것만큼은 제 뜻대로 움직여야 할 게 아닌가!

여원은 어금니가 아플 만큼 이를 꽉 깨물었다. 자신을 위해 이 괴물과 정면으로 맞선 사결을 떠올렸다. 그토록 무겁던 고개가 삐걱거리며 위를 향했다.

그는 마침내 크라투스를 똑바로 마주했다. 다정하게 웃는 하얀 얼굴이 보였다. 결심을 굳힌 그가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전 당신과 가지 않습니다.”

“…뭐라고?”

“저는. 저는 이제 당신 옆에 있지 않을 겁니다.”

크라투스가 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내 귀가 잘못된 건지—”

고개를 까닥인 그가 손을 내저었다.

콰앙!

바닥에서부터 솟구친 얼음기둥이 여원의 옆구리에 박혔다. 튕겨 나간 몸이 벽면에 부딪혔다.

“커흑!”

“겨우 몇 년 나다녔다고 방종해진 네가 잘못된 건지.”

벽이 일부 부서졌다. 비틀거리며 몸을 추스른 여원이 가벼운 기침을 토했다.

“내 생각엔 후자인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

여원의 낯이 파리하게 질렸을 때, 뒤늦게 도착한 사결이 크라투스가 뚫어 놓은 구멍으로 난입했다.

“아, 네 애착 인형이군.”

안 돼. 오지 마.

여원의 머릿속은 이미 전쟁터였다. 이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과연 맞을까. 크라투스를 더 자극하는 건 아닐까. 찰나에 가까운 시간 동안 맹렬하게 생각했으나 결국 답을 내지 못했다.

망설이는 사이, 크라투스가 행동했다.

보지도 않고 발을 구르자 바닥에서 얕게 도드라진 얼음의 선들이 뱀처럼 뻗어나갔다. 익숙한 공격이었다. 여원이 사랑하는 누군가가 즐겨 쓰던 공격이기도 했다.

콰르륵.

콰자작!

사결이 똑같은 공격으로 맞대응했다. 같은 수의 얼음뱀이 입을 벌리며 서로 부딪혔다.

빠각!

마력의 뱀이 충돌로 부서지자 충격파가 생겼다. 비산한 얼음조각이 사결의 어깨와 옆구리를 스쳤다. 크라투스는 자연스럽게 마력으로 막을 만들어 대비했지만, 사결은 구멍 밖으로 튕겨 나갔다.

여원의 입이 벌어졌다. 벙긋거린 입술은 소리가 없다. 색색거리는 숨만 뱉은 그가 뒤늦게 이를 악물고 사결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만.

“……!”

격정적으로 움직이던 근육이 그대로 굳었다. 크라투스가 손끝으로 여원의 뺨을 잡아 자신을 보게 했다.

“진짜가 앞에 있는데 왜 자꾸 저길 보지? 이미 혼날 일만 잔뜩인데, 그렇게 아픈 게 좋아?”

“전… 저는 여원입니다.”

여원이 부들거리면서도 간신히 그 말을 꺼냈다. 마계에서 몇 번이나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는 건 이미 기억나지 않았다. 상대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 그래 예니스 내지는 그래 넌 에이원 예니스지.

그런데 크라투스의 반응이 달랐다. 여원의 뺨에서 손을 뗀 그가 제 턱을 문질렀다.

“예전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 위화감이라고 해야 하나. 이상하게 네 이름인데도 네 이름 같지 않게 느껴졌단 말이지. 여원. 그게 진짜 이름이었군.”

여원은 후회했다.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의 괴리감으로 보호받던 진짜 이름을, 한 번의 말실수로 뺏길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크라투스는 진짜 이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예니스’라 부르기로 한 이상. 넌 예니스야.”

여원은 눈빛만으로 부정했다. 네가 나를 뭐라고 부르든 그게 ‘나’는 아닐 것이란 의지의 표명이었다. 크라투스는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 쳤다.

넌 예니스다.

“예. 전 예니스입니다.”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 튀어나온 말에 여원이 흠칫했다. 가슴에 열감이 있다. 낯선 피가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 같다.

“아니, 나는—”

예니스.

“…예.”

입이 통제를 벗어났다. 여원이 이를 악물었다. 종속의 계약으로 상대를 옭아매는 힘.

생각해보면 계약의 실체를 알게 된 후, 탈출을 시도하며 저항했던 초반을 제외하면 크라투스는 저 힘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잊어버렸다. 저 괴물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잠깐의 자유는 그를 무르게 했고, 저 힘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잊게 만들었다.

제 의지가 아닌 주인의 명령에 따르는 일.

그것의 가장 끔찍한 부분은 아직 드러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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