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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100)화 (100/106)

100화

너 같으면 사귀는 사람을 내놓으라는데 순순히 내놓겠냐. 비서는 파랗게 질린 와중에도 제 상사를 조금 한심하게 보다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아마 크레딧 측에도 소식이 전해졌을 테니, 뭔가 움직임이 있겠죠.”

비서는 B급 육체강화계였고 협회와 크레딧 길드 건물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나란히 서 있었다. 벽면 대부분이 유리로 이루어진 건물은 창가에 바짝 붙어서면 반대편 창 너머로 복도가 보이곤 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크레딧 건물을 주시했다. 내부를 바쁘게 뛰어다니는 인원들이 보였다. 뭔가 분주하다.

“어쩌면 딱히 걱정할 필요 없을지도 모르죠.”

협회장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비서를 돌아봤다.

“크레딧 길드가 못 막는다는 건, 이 근방에서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니까요.”

뭐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앓는 소리를 낸 협회장이 다시 지시했다.

“일단 사람들부터 대피시켜.”

“어디로요?”

냉소적인 어투였다. 협회장은 다시 한번 말을 잃었다.

“도시를 벗어나는 건 외려 자살행위입니다. 황무지엔 몸을 숨길 곳도 마땅치 않아요. 그리샤의 시민이 몇 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인원을 다 통제하고 보호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정론이었다. 중년의 사내는 대답 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비서는 그가 크레딧 길드를 본다고 여겼지만, 아니었다. 협회장은 빌딩과 빌딩 사이의 틈새를 보고 있었다.

“…수해.”

“예?”

“심부에 가까운 곳은 아직 마기가 많이 남았지만 초입은 괜찮아. 거긴 식물도 거의 복구됐어. 무엇보다 게이트도 다 사라졌고 이젠 블랙미스트도 없잖아.”

“……!!”

“위험 요소는 적은데 몸 숨길 곳은 많지. 거기만 한 한 곳이 없어.”

협회장의 말대로다. 살아 움직이는 식물군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 정도는 하급 헌터만 있어도 해결할 수 있다.

“어차피 전투가 벌어지면 도움도 안 될 텐데. B급 이하는 전부 사람들이랑 같이 수해로 들여보내.”

비서가 단말기를 두드렸다. 잠시 후, 사이렌 소리와 함께 피난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그리샤 전역에 퍼졌다.

* * *

백담은 반파되었다. 도시의 절반이 무너지고 사상자는 셀 수 없다. 남은 자들이 어떻게든 수습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듯하다.

소식을 전해 들은 여원은 가장 먼저 박명석과 후처리과를 떠올렸다. 속이 얹힌 듯 답답했다.

여원이 아는 자들이 남은 자 중에 있는지, 그들이 거두는 시신 중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오래지 않아 피난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리샤의 시민들은 패닉에 빠졌다. 시위대는 다시금 크레딧 길드를 향해 몸을 던졌다. 사결은 자신을 무슨 숭고한 역사의 희생양쯤으로 생각하는 듯한 시위대의 행태에 기가 찼다.

결국 죄 없는 사람 하나 희생해서 많은 사람을 구하자는 논리를 흠 없는 정당성인 양 들이밀고 있다. 아주 속이 뒤틀렸다. 성질 같았으면 어디 한군데 얼려서 바닥에 몇 시간쯤 붙여 놓고 싶다.

여원이 그런 사결의 곁에 붙어 섰다. 평소 앞에서 무슨 재롱을 피워도 무관심하던 근육햄스터가 오래간만에 먼저 와서 비비적거린 것 같다. 연인 상대로 느끼기엔 다소 슬픈 감동을 받으며 사내는 다정하게 웃어 보였다.

여원은 더 이상 자신을 던지겠다고 말하진 않았다. 정확히는 말 자체가 사라졌다. 정말 필요한 게 아니면 입도 뻥긋 안 했다. 사결은 그의 내면의 시간이 역행하고 있다고 느꼈다. 분침과 시침을 억지로 되감듯, 여원은 점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마다 말을 걸거나 흔들어 정신을 분산시켜도 이미 가 버린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물끄러미 보는 시선이 백담의 병원에서 자신을 보던 것과 비슷해, 사결은 가슴이 철렁했다.

“너….”

돌아본 여원이 의아함을 표했다. 그 반응을 본 사결은 침묵을 택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이 일이 끝나면 돌아올 거야. 분명 돌아올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그렇게 되뇌며 이를 악물었다. 저건 여원의 자기방어였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전투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가장 마음이 단단하던 때로 돌아간 것뿐이다. 사결 또한 마음을 다잡았다. 이건 전쟁이다.

“현수야.”

“여기 말씀하신 물건입니다.”

이현수가 내민 건 무선 헤드셋이었다. 크레딧 기술자들을 하룻밤 갈아 만든 주문제작품이다. 쓰면 대부분의 소리를 차단하고 지정된 음성 통신만 가능하다.

“직접 전투는 금지야. 소리가 안 들리면 싸우는 데 불리해. 멀리서 속성으로 지원만 해 줘.”

과연 영혼에 새겨진 종속의 계약을 귀 좀 막는다고 막을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여원은 순순히 헤드셋을 받았다.

“알겠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절대 현장에 뛰어들면 안 돼. 저쪽에서 노리는 게 너라는 걸 잊지 마.”

“그러겠다.”

“대답도 잘하고. 예쁘네.”

“…….”

여원의 무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과거의 여원에서 사결이 알던 여원이 엿보였다. 의외로 되돌리는 건 어렵지 않겠다고 걱정을 덜었을 때, 머뭇거리던 사내가 말했다.

“항상 잊어버리는 것 같은데. 내가 연상이다.”

“뭐?”

따져보니 정말 그랬다. 한 살 차이지만 확실히 여원 쪽이 연상이었다. 사결은 온화하게 웃었다. 이 귀여운 놈을 어쩌면 좋냐 진짜.

“그게 신경 쓰였습니까. 그럼 지금부터라도 존대할까요?”

“…그냥 하던 대로 해.”

여원은 소름이 돋는다는 듯 어깨를 떨었다. 서로 아무렇지 않게 존대했던 초반은 다 잊은 모양이다. 사결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여원의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가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둘의 시선이 같은 곳을 향했다.

“온다.”

거멓게 먹구름이 낀 하늘. 그보다 더 검은 그림자와 그림자보다 불길한 흰색이 날아오고 있었다.

* * *

가늘어진 크라투스의 동공에 마침내 그의 모습이 들어왔다.

정말로 예니스였다. 거대한 종으로 정수리를 내려친 것처럼 울림 있는 충격이 그의 전신을 강타했다. 그림자에게 전해 듣고 강해진 연결을 느꼈음에도 얻지 못했던 일말의 확신. 그걸 지금 얻었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펼쳐지던 온갖 핏빛 공상이 먼지처럼 스러졌다. 크라투스는 당장 여원을 품에 안고 그 체온을 느끼고 싶었다. 뺨과 입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반드시 그래야 할 것 같은 충동을 느꼈다.

평생 부수고만 살아온 용은 그 감정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가 여원에게 가졌던 모든 집착이 그 감정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선이었다는 것도.

“예니스으!”

당장은 자신에게서 떨어진 그를 당장 곁으로 데려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무수한 인영이 크레딧 길드에 나타났다. 빌딩 옥상, 창문 앞, 1층 로비의 전면. 몇몇은 드론을 타고 허공에 떴다.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크레딧 길드원만이 아니라 지원을 오겠다는 다른 길드원까지 합쳐진 숫자였다.

일부 대형 길드는 크레딧의 결정에 반발해 시민들과 함께 수해로 들어갔지만, 친분을 유지해 온 몇몇 길드는 사태가 여기까지 오자 크레딧에 모였다.

“아뮬렛은?”

“수해로 갔습니다. 영감님이 끝까지 버티시는 바람에 기절시켜 모셔갔다더군요.”

“잘했어. 거긴 반드시 무사해야 해.”

마정석을 가공해 마소 중독 중화제를 만들 수 있는 곳은 그리샤에 딱 두 곳 있다. 아뮬렛 길드와 그 길드로부터 기술지원을 받는 크레딧 길드였다.

사실상 아뮬렛 길드에서 그리샤 내 모든 마소 중독 환자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귀환자 문제로 크레딧을 못마땅하게 보던 이들조차 아뮬렛 길드 호위에는 두말하지 않고 힘을 보탰다.

“S급이 몇이나 붙었습니다. 직접 전투하는 것도 아니니 그쪽 걱정은 접어두세요.”

이현수가 질린 표정으로 하늘을 봤다.

“그보단 저희 걱정이나 하는 게 낫겠군요.”

“맞는 말이야.”

“…….”

여원은 조용히 사결의 옆에 섰다. 사결은 그가 제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깊은 안정감을 느꼈다. 높은 체온이 공기로 전해지는 것 같다.

모두가 긴장으로 말이 사라졌다. 살면서 별일 다 겪은 베테랑 헌터들조차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덕분에 움직임도 거의 없다. 희미하게 뿜어지는 하얀 김이 아니라면 수백의 마네킹이라고 섬뜩해 할 장면이었다. 

유일하게 숨에 입김이 없는 사결이 하얗게 웃었다.

“얼음 쓰기 좋은 날씨네.”

우르릉.

하늘이 울렸다. 정오부터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오후가 지나가는 지금은 온통 먹장구름이다. 그 사이로 파도를 타듯 모습을 드러냈다 감췄다 하며 용이 다가왔다. 이젠 정말 코앞이다.

하얀 용의 날개 뼈와 날카롭게 돋은 손톱, 사납게 빛나는 황금빛 눈동자가 한눈에 보일 만큼 가까웠다.

“전원 전투 준비!”

미동도 없던 헌터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폐허가 된 성에서 한꺼번에 깨어난 석상들처럼 그 장면은 조금 섬뜩했고, 조금 감동적이었다. 한 헌터가 모인 면면들을 돌아봤다.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전력이다.

백담의 소식도 들었고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도 알지만, 솔직히 이 인원이면 용 한 마리와 여섯 개의 그림자 정도는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공격!”

사결의 입에서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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