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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93)화 (93/106)

93화

“저… 저!”

“미친.”

무섭게 소용돌이치던 마기가 순식간에 옅어지기 시작했다. 검은색이 빠지며 탁하던 시야가 트이고 어느새 거대하고 위협적이던 심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뒤늦은 환호성이 터졌다. 개중엔 감격했는지 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원은 겨우 진정한 사결의 팔을 두드렸다. 놓아보라는 뜻이었지만 느슨해졌을지언정 결박을 풀진 않았다. 

“사결.”

“안 놔.”

겨우 말문이 트였나 했더니 첫 마디가 저렇다.

“사결.”

“뭐라고 말해도 안 돼. 절대 안 놔.”

“연결되어 있기만 하면 되는 건가?”

그렇게 말한 여원이 사결의 손에 깍지를 끼었다. 사결이 침음을 삼켰다. 이런 요망한….

“자. 이러면 되지 않나. 이제 팔 좀 풀어 봐라. 널 데려가겠다고 약속했어.”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심부에서 약속을 했다고? 대체 누구와?

의문을 표하면서도 심장이 뛰었다. 본능에 새겨진 예감이 저 ‘누군가’의 정체를 스포했다. 자연스럽게 힘이 풀린 팔 사이로 빠져나온 여원이 사결을 잡아끌었다.

“가자.”

일곱 살.

과거에 붙박여 있던 발이 움직였다. 그 무수한 사건과 세월을 겪었음에도 이번이 첫걸음이었다. 오래지 않아 잿빛으로 박제된 정원과 거대한 저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사이로 희미한 그림자가 보였다. 온화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는 20년 전 그대로였다. 사결의 숨이 멎었다. 마치 유령과 같은 반투명한 모습이었지만 틀림없는 그녀였다.

“어머…!”

그러나 눈을 한 번 깜박일 찰나에 저택을 배경으로 서 있던 그녀는 사라지고 놀라서 자신을 돌아보는 연인만이 남았다.

사결은 울면서 웃었다. 허망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신은 마침내 목적한 곳에 당도했고, 어머니를 묻어줄 수 있게 됐다. 또 그 사실만큼이나.

“사결. 뭔가 본 건가?”

너를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결은 대답 없이 활짝 웃었다. 아주 어릴 적 잃어버렸던 본연의 웃음이었다.

* * *

희소식은 레프타를 통해 단숨에 그리샤에 전해졌다.

수해 완전 토벌.

사람들은 흥분했다. 온 도시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는데, 그게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기사가 쏟아지고 며칠 되지 않아 음울한 술렁임이 물밑에서 일기 시작했다. 

게이트 때문이었다. 하나둘씩 줄어들던 게이트가 전멸했다. 이제 그리샤의 어디에서도 마계와의 통로는 열리지 않았다. 수해의 상황도 비슷했다. 비공정으로 교류한 주변 도시도 마찬가지였다.

대재난 때문에 게이트라면 치를 떨었던 그리샤다. 하지만 게이트가 완전히 사라지자 상황은 바뀌었다. 마물과 마기에 고통받던 이들은 사라진 게이트에 오히려 애를 끓였다. 지독한 아이러니였다.

여러 학자가 의견을 내놓았다. 개중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건 ‘게이트 에너지 고갈설’이었다. 게이트는 일종의 에너지체로 힘의 총량이 정해져 있으며 그걸 다 소모할 때까진 정해진 주기에 열리게 된다. 

다시 말해, 에너지가 고갈되면 그 게이트는 죽은 게이트가 된다는 이론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렇다면 100년 전에 출몰했던 게이트와 20년 전 출몰한 수해의 게이트가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죽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주장이 힘을 얻은 건 학자의 침중한 마지막 경고 때문이었다.

[앞으론 게이트가 열리지 않는 시대가 올 겁니다.]

예상은 비관적이었다. 마정석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도시정부와 헌터 협회가 통제권을 잃어 무정부상태가 도래한다. 그러고도 언젠가 마정석이 고갈되어 기존의 마소 중독 환자가 절멸하고 세상엔 헌터만이 남게 된다.

마지막은 비약에 가까웠지만, 중간까지는 꽤 그럴듯했다. 실제로 마정석의 가격 변동은 이미 시작됐다. 당장 그리샤에서도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었다.

“아직은 괜찮지만 제대로 된 해결책이 없다면 결국 폭동이 일어날 겁니다.”

“하나를 해결하면 또 하나가 튀어나온다더니.”

사결이 이를 갈며 만년필로 서류를 툭툭 두드렸다. 그는 정말 오랜만에 길드장의 집무실에 앉아서 일 처리를 하고 있었다. 거의 평생을 바쳐 목적한 바를 이루었다는 감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감동은 짧았고, 현실은 그의 등을 찌르며 재촉해 댔다. 기계적으로 서류에 사인을 갈기는 그에게 이현수가 말했다.

“계획을 바꿔 잔존한 블랙미스트라도 빨리 공략해야 합니다.”

소실은 게이트뿐 아니라 블랙미스트에서도 일어났다. 심부에 가까워질수록 사라졌던 미로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다. 개중엔 마물이 사라지고도 꽤 오래 유지되는 성질의 ‘둥지’가 있었을 뿐.

심부 공략에 성공하자 기다렸다는 듯 검은 미로도 함께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지금 여원이 이곳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마정석을 하나라도 더 건지기 위해 다시 수해로 향했다.

“안 돼. 지금도 충분히 무리하고 있어.”

만년필을 내던지듯 내려놓은 사결이 이현수를 봤다. ‘하지만’이라고 말하려던 그는 혀끝에 걸린 말을 천천히 입 밖으로 뱉었다.

“많은 사람이 죽을 겁니다.”

“그건 여원과 상관없는 문제야.”

맞는 소리였지만 여원이 무리해서 공략을 서두르면 약간의 시간은 더 벌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걸 알면서도 사결은 선을 그었다. 이현수는 더 말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사결이 내던졌던 만년필을 다시 잡았다.

“마정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정말로 그렇게 되겠지. 나도 알아. 그 전에 해결법을 찾아야 해.”

막연한 말이었지만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었다. 침묵이 흘렀다. 집무실엔 한동안 사각거리는 펜촉 소리뿐이었다.

“장례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민감하지만 반드시 물어야 하는 문제였다. 만년필이 멈칫했으나 잠깐뿐이었다.

“외곽에서도 제일 외진 곳에 사둔 땅. 거기에 건물을 하나 지을 거야.”

“설마….”

“거기 안치할 거다.”

“시신을 그대로요?”

“결정화돼서 화장도 어려워. 그렇다고 어머니를 내 손으로 깨부술 순 없잖아.”

사각. 그는 아무렇지 않게 또 하나의 서류에 사인했다.

“무엇보다 ‘게이트’가 될지도 모르는데. 평범한 장례를 치를 순 없어.”

“…….”

일레이스는 저택의 지하에서 발견됐다.

모종의 연구를 한 것이 분명한 거대시설. 연구원 가운을 입은 시신과 무장한 백골들 틈새에서 그녀는 홀로 생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재질이 달랐다. 피부부터 머리칼까지 전부 하얗고 투명한 수정처럼 변해 있었다. 손대면 얼음처럼 차가웠고, 보석처럼 오묘한 빛을 발했다.

여원은 안색이 파래졌다 하얘졌다 하더니 복잡한 표정이 되어 그녀의 비밀을 털어놨다. 사결은 굳어버렸다. 귀로 들으면서도 자신이 뭘 듣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어머니는 마족, 그것도 왕족인 용마족이었고 지금은 게이트가 될 수 있는 에너지 덩어리가 됐다. 그 사실마저도 부차적인 것들이었다.

‘내가… 마족 혼혈이라고?’

처음엔 기겁했던 사결은 오래지 않아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깨닫고 나자 짚이는 게 많았던 탓이다. 가장 큰 건 비공정에서의 일 직후 검은 미로 일부를 해결했을 때다.

아무리 얼음산으로 찍어 눌렀다곤 해도 마기의 폭풍에 휘말렸는데, 그는 급성 마소 중독 정도로 끝났다.

‘그게 그저 요행은 아니었다는 뜻이지.’

“매장할 생각이다. 위치는 나와 여원만 알게 할 거야.”

끼익. 정리된 서류를 손에 든 사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을 돌아 이현수에게 다가간 그가 서류 뭉치를 건넸다.

“섭섭한가?”

“아뇨.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습니까.”

눈을 내리 깐 그는 무표정하게 답했다. 사결이 픽 웃었다.

“절대 갚을 수 없을 것 같던 네 빚을 이렇게 갚은 것처럼?”

“…….”

“비꼬려는 거 아니니까 표정 좀 풀어. 막말로 정말 빚을 다 갚았으면서 왜 그런 반응인데?”

사결이 지나가는 말처럼 툭 던졌다.

“너도 이제 그만 편해질 때가 됐어.”

“……!”

띵.

조용히 움직인 엘리베이터가 사람을 토해냈다. 막 수해에서 돌아온 여원이었다. 천천히 걸어 들어오던 그가 경직된 분위기를 느끼곤 멈칫했다. 사결이 서류를 던지고 달려왔다.

“왔어, 자기?”

여원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부르는 건 그만둬 달라고 했을 텐데.”

“그럼 뭐라고 불러.”

“그냥 이름이면 되지 않나.”

“사귀는 사인데 딱딱하게 이름 부르면 애정 없어 보이잖아.”

“그게 어떻다는 거지. 애정의 여부는 너와 나만 알면 된다.”

멈칫한 사결이 못 이기겠다는 듯 웃었다.

“네 말이 다 맞아.”

이상한 낌새를 느낀 여원이 도망가기 전에 사결은 재빨리 달라붙었다. 팔로 허리를 휘감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여원이 난감해하며 이현수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현수는 짜게 식은 얼굴이 됐다. 그냥 다 개같이 망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저 더러운 커플 한 쌍만이라도 떨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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