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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90)화 (90/106)

90화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중심부를 응시했다. 환희나 감격은 없었다. 어쨌든 목적한 곳에 다다른 것에서 오는 탈력 때문인지, 아니면 기괴하게 꿈틀거리는 암흑의 거체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충분히 볼 만큼 본 것 같으니 일단 돌아가지.”

사결이 제안했다.

굳은 표정과 별개로 그의 머리는 냉정했다. 중심부가 저렇다면 결국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여태 그랬던 것처럼 여원이 홀로 들어가서 해결하는 것.

‘미치겠군.’

사결이 이를 갈았다. 중심부가 설마 저런 상태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드물게 자책했다.

‘여원을 두고 왔어야 했어.’

저건 어떻게 봐도 일반적인 블랙미스트가 아니었다. 느껴지는 기세가 마치 살아 있는 괴물 같다. 저 안에 저걸 만들어낸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절대 일개 마수가 아니었다.

“그래.”

여원이 겨우 레프를 돌려세웠다. 유성은 불안한 표정이었지만 눈치껏 침묵했다. 

셋은 순식간에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드디어 심부에 다다른 것 같다는 희소식과 뭔가 엄청난 게 있다는 정찰 조원의 정보에 술렁거리던 캠프는 돌아온 이들의 표정을 보곤 고요해졌다. 어지간한 일엔 당황조차 하지 않는 두 사람의 굳은 모습에 보통 일이 아님을 짐작한 것이다.

사결은 바로 긴급회의를 열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낙오되지 않은 소수의 타 길드 수뇌부도 참가했다.

테이블 위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여원의 정보를 바탕으로 제작된 수해의 지도였다. 가운데 자리한 붉은 점이 심부였고, 옆의 푸른 점이 베이스캠프였다. 둘 사이의 거리는 불과 3km에 불과했다.

“너무 가까워.”

사결이 푸른 점을 뒤로 당겼다.

“캠프를 뒤로 물려야 해.”

모여 있던 사람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의 눈이 이현수를 향했다. 한숨을 쉰 부길드마스터가 결국 총대를 멨다.

“대체 뭘 보고 오신 겁니까. 그것부터 설명해 주셔야죠.”

사결의 뺨이 굳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떠올리지 못할 만큼 그는 퍽 당황한 상태였다. 사결이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서늘해진 눈빛이 좌중을 향했다.

사결은 그가 본 것을 가능한 객관적으로 설명했다. 전염병처럼 침음이 번졌다. 헌터들은 처음엔 옆 사람과 적극적으로 의견을 교환했지만 오래지 않았다. 막사 내부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모두가 같은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들의 시선이 아닌 척 여원을 향했다.

“내가-”

“일단.”

내가 가겠다, 그 말이 나오기 전 사결은 다급히 회의를 파했다.

“일단 베이스캠프부터 뒤로 물리고 나서 다시 이야기하지.”

“…….”

중심부의 마기는 다른 블랙미스트처럼 고여 있었지만 정적이진 않았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거대한 힘의 흐름, 위협적으로 튀는 스파크, 수십 마리 뱀이 꿈틀거리는 것 같던 그곳에 여원을 혼자 들여보낸다?

‘절대 안 돼.’

사결은 복잡한 머리로도 한 가지는 명확히 새겼다. 절대 여원을 보내선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귀환자님?!”

기함한 부름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불길함이 머리끝까지 치달았다. 사결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다들 이동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레프 위에 올라탄 여원이 있었다.

“잠깐 다시 보고 오겠다.”

“여원!”

사결의 목소리보다 레프의 다리가 한발 빨랐다. 욕설을 삼킨 사결도 레프타를 잡아탔다. 멀리서 뒤쫓아 가면서도 사결은 여원이 저대로 달려 심부로 들어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레프는 아까의 빌딩을 다시 올랐다. 사결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여원의 뒤편에 다가가 섰다.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왜 왔냐고 묻지도 않았다. 정확히는 자신이 온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여원은 중심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틀림없다. 충동의 목소리는 저 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저곳이 모든 일의 시작점이었다. 이명환의 저택과 삼초승달 길드가 있는 곳. 20년 전 대재난이 시작된 곳.

‘그 대재난도 어쩌면….’

여원은 인위적으로 생각을 흐트러뜨렸다. 근거 따위 없는 가정이고 어떻게 한 건지 짐작도 안 가지만 가능성만큼은 크다는 걸 아는 탓이다.

“괜찮아?”

“그래.”

“안 괜찮아 보이는데.”

사결이 뒤에서 여원을 끌어안았다. 단단한 팔에 비로소 안정감이 들었다. 내내 붕 떠 있던 발이 드디어 땅을 밟은 기분이다. 낮게 숨을 내쉰 그가 몸에 힘을 뺐다. 그런 여원을 지탱하며 사결이 나지막이 물었다.

“마족 중에 저런 걸 만들어낼 수 있는 자가 있나?”

“일반적인 마족은 불가능할 거야.”

어딘가 묘한 뉘앙스였다.

“일반적이지 않은 마족이라면 가능하다는 뜻이군.”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다.”

나직한 목소리에 감출 수 없는 불안이 서렸다. 사결은 여원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떠올리지 마.”

“뭘.”

“지금 네가 생각하는 거.”

“…….”

그는 부글거리는 속내를 내색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대답을 듣자마자 바로 한 놈을 떠올렸다. 여원의 심장에 개짓거리한 새끼. 면상도 모르는 놈을 향한 살의가 들끓었다. 여원이 한숨처럼 말했다.

“알겠으니까 너도 생각하지 마.”

“티 났어?”

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거 더 숨길 필요가 없어진 사결이 대놓고 으르렁거렸다.

“혹시 마계의 그 개새끼가 나타나면 내장을 얼려버리겠어.”

여원은 저도 모르게 사결과 둘의 싸움을 가정해봤다. 아무리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도 사결이 이기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상정할 수 있는 모든 경우에서 그는… 잔혹하게….

‘그만.’

일어나지 않은 일이고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다. 그렇게 되뇐 여원이 사결의 팔을 두드렸다.

“꿈도 꾸지 마라. 절대 안 돼. 녀석은….”

“규격 외라고? 알아. 귀에 못 박히겠다.”

사결이 투덜거렸지만 여원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만약 정말 그런 일이 생기면, 뒤도 안 보고 도망치겠다고 여기서 맹세해.”

심부를 보던 눈이 드디어 자신을 향했다. 그럼에도 마냥 좋아할 수가 없다. 쓰게 웃은 사결이 순순히 답했다.

“네 말대로 할게.”

그 직후, 몸을 돌린 여원이 사결에게 입을 맞췄다. 잠깐 눈을 크게 뜬 사결은 이내 어느 때보다 열중해서 달려들었다. 

푸륵!

레프가 방해하지만 않았어도 아주 길고 긴 입맞춤이 되었을 거다.

“네가 좋다.”

사결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생각했다. 내 생일인가? 아, 심부를 발견하긴 했지. 근데 그게 이렇게까지 행복해도 되는 일인가?

“나도….”

흐물거리며 풀어진 그가 대답을 위해 입을 연 순간.

쿠르릉.

심부가 꿀렁거리며 작은 폭발이 일었다. 마치 태양의 흑점이 폭발하듯 거대한 마기의 덩어리가 위로 솟구쳤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마기는 정확히 빌딩으로 쇄도해, 여원의 하반신을 낚아챘다.

“……!!”

사결이 손을 뻗어 얼음을 발출했다. 반사적인 대응이었다.

챙강!

하지만 공격에 특화된 속성은 끌려가는 그를 효과적으로 잡지 못했고, 마기도 막을 수 없었다. 여원의 모습이 순식간에 심부 안쪽으로 사라졌다.

충격으로 굳은 사결의 뇌리로 비공정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그가 주먹으로 제 옆머리를 퍽 쳤다. 이딴 쓸데없는 걸 떠올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옆에 있던 레프가 사결의 다리 사이로 머리를 쑥 들이밀었다. 허공에 들린 몸이 말목을 미끄러져 내려가 등에 안착했다. 갈기로 사결의 허리를 단단히 붙는 레프가 빌딩 아래로 뛰어내렸다.

덩굴을 두어 번 밟은 걸로 땅에 다다른 녀석이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둘은 어느새 심부의 코앞에 섰다. 여원이 삼켜진 바로 그 자리였다.

레프에서 내린 사결은 잠깐 그곳을 노려보다 망설임 없이 심부로 뛰어들었다.

퉁!

“뭐야…?”

사결은 그대로 튕겨 나왔다. 마기가 아니라 단단한 젤리에 몸을 던진 것 같다. 다시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여태 겪은 블랙미스트와는 결 자체가 달랐다. 

그는 더 움직이지 못했다. 딱딱하게 굳은 낯으로 꿈틀거리는 심부를 노려볼 뿐이었다.

* * *

하반신을 휘감았던 마기는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다른 마기에 동화되어 사라졌다. 동시에 이곳이 여태 지나쳐온 블랙미스트와 근본적으로 다른 장소임을 알아차렸다. 

사아아아.

검은 입자가 모래폭풍처럼 몰아쳤다. 몸을 스쳐 지나가는 게 느껴질 만큼 밀도 높은 마기였다. 눈을 뜨고 있어도 보이는 게 없다. 햇빛마저 삼켜버린 완전한 어둠. 그럼에도 내딛는 걸음엔 거침이 없었다.

발을 들인 순간부터 느껴졌다. 저 안쪽에 자신을 부르는 존재가 있다는걸. 스쳐 지나가는 환청에 가깝던 목소리가 이젠 정말 귓가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이쪽.

이리로.

널 아주 오래 기다렸다.

그렇게 이끌리듯 걸음을 내딛던 어느 순간.

훅.

마기가 걷히고 시야가 트였다. 나타난 건 폐허가 된 저택이었다. 묘한 느낌에 주변을 둘러봤다. 이상을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마계로 테라포밍된 수해에서 이곳만 식물들이 멀쩡했다. 그리샤에서 흔히 보던 중간계의 풀과 나무들이었다. 다만 회색빛이었다. 슬쩍 건드리자 그대로 재처럼 바스러졌다. 오래된 드라이플라워 같다.

여기다.

한눈팔지 말고 오라는 듯 목소리가 재촉했다. 손끝에 묻은 재를 털어내고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놀랄 만큼 멀쩡했다. 어디 부서지거나 빛바랜 곳도 없다. 초상화나 장식품도 그대로다. 방금까지 사람이 산 것처럼 은근한 생활감까지 느껴졌다.

‘정말로 여기 누가 사는 건가?’

가능성은 있었다. 계속 머릿속으로 말을 거는 목소리의 주인이라든가.

이끌리듯 걸어 저택의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미로 같은 복도의 끝. 화려한 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 바로 이 너머였다. 그게 뭐든, 내가 여태 걸어온 모든 이유와 목적이 이 건너편에 있다.

“…….”

여기까지 온 이상, 망설임은 의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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