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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85)화 (85/106)

85화

  

“…….”

절로 한숨이 나왔다. 어쩔 수 없이 그의 옷깃을 당겼다. 다들 헌터 뿐이다 보니,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려면 이런 난리 통에도 귀에 대고 속삭여야 했다.

“막사에선 해도 되니까….”

그러니까 밖에선 좀 참으라는 뜻이었는데.

그걸 곡해한 사결이 대뜸 날 둘러메곤 막사로 직행했다. 잡혀가는 와중에도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눈을 끔벅거렸다. 어리석었다. 이때 바로 정신 차리고 튀었어야 하는 것을.

결국 꼬박 다음 날까지 막사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 * *

심부가 가까웠다.

그 증거로 마기가 부쩍 짙어졌다. 미로도 훨씬 복잡하고 촘촘하게 변했다. 후발주자를 위한 길이 어느 정도 뚫린 후, 여원은 최전방의 베이스캠프에 머물렀다.

어느 시점부터 조금만 이동해도 블랙미스트가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결국 여원이 없으면 기껏 추가로 합류한 토벌대가 엉덩이를 뭉개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결은 몇 번이고 무리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차라리 도시로 돌아가 며칠 쉬다 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여원은 거부했다. 조금도 무리가 아니라는 걸 행동으로 증명했다. 그는 여태 해 온 것처럼 도끼 한 자루만 쥔 채 검은 벽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찢어지는 마물의 비명이 들리고 오래지 않아 거짓말처럼 블랙미스트가 흩어졌다. 

사결은 그때마다 양가감정을 느꼈다. 

심부를 보는 덴 여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 와 다른 귀환자를 찾을 수도 없거니와 헤스티아의 귀환자를 직접 만나보고 확신했다. 저런 건 오직 여원만이 할 수 있는 신기였다.

하지만 매번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투성이가 되어 덤덤하게 돌아오는 그를 볼 때면 어쩔 수 없이 속이 끓어오르는 거다.

작은.

아주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그걸 핑계로 빼돌려 크레딧의 집에 묶어두고 싶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욕망에 휘둘렸다.

여원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호응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노출이 늘어날수록 관심과 애정은 커져만 갔다. 속이 끓은 사결이 이현수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울먹인 그가 볼멘소리했다. 

“아니. 보통 그렇잖습니까. 이건 제 판단이 잘못된 게 아니라 여원 님이 너무 유능하신 겁니다!”

사결이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수긍했다.

“음. 그건 그렇지.”

“…….”

다 때려치우고 싶다 진짜. 이현수는 뭐 씹은 표정으로 정강이를 문질렀다.

“다녀왔다.”

때마침 여원이 돌아왔다. 반색하며 달려간 사결이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단단한 몸이 품 안에서 꿈질거렸다.

“피 묻는다.”

“묻으라지.”

“넌 정말….”

“뭐가.”

전혀 모르겠다는 듯 더 세게 안았다. 그 뻔뻔함에 여원이 체념의 한숨을 쉬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 궁금하게 해 놓고 그러기 있어?”

“그래. 착하지. 일단 씻고 오겠다.”

손을 들어 머리를 토닥이자 또 순식간에 고장 나선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이현수가 턱을 떨어뜨렸다. 저 사장놈을 저렇게 쉽게 다루다니. 아무리 봐도 놀랍다.

그런데 이번엔 레프타가 기다림에 질렸는지 펄쩍거리기 시작했다. 여원은 또 익숙하게 도닥거렸다.

이현수는 마침내 깨달았다.

“역시 영주는 거짓말이고 마수 조련사였던 게….”

다 들린다. 빼어난 귀는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았다. 여원은 한숨을 참으며 도망치듯 샤워부스로 갔다. 

멍때리다 뒤늦게 달려온 사결이 임시로 설치된 부스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다 씻으면 얼른 나와.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 갈 거야.”

“…씻고 나가서 이야기하지.”

“씻고 나서 설득하겠다는 것 같은데, 안 돼. 절대 안 돼. 오늘은 뭘 내밀어도 돌아갈 거야.”

그동안 여기 남기 위해 내밀었던 교환목록이 뇌리를 스쳤다. 하나 같이 살색 가득한 것들이었고, 사결이 결코 거절하지 못했을 내용들이었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겼다. 

‘새로운 게 없어.’

한 번 한 건 잘 안 먹혀서 새로운 걸 꺼내다 보니 점점 수위가 높아진 탓이다. 여기서 더 나간다?

‘그냥 집에 가는 편이 낫다.’

냉정하게 판단한 여원이 몸에 비누칠했다. 검고 거대한 그림자가 흥분한 허스키처럼 부스 주변을 빙빙 돌았다. 사결이었다. 

“갈 거지? 응?”

“…알겠으니까. 제발 저쪽에 가 있어라.”

“너 알겠다고 했다? 무르기 없어?”

왜 가면 갈수록 애 같아지는 건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알겠다고 했다. 사결의 그림자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여원은 비눗기를 씻어내며 생각했다.

이제 곧이라는 걸 그라고 모를 리 없다. 그가 수해의 심부에 집착하는 이유를 생각하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 그럼에도 사결은 어떻게든 한 번 멈췄다 가려고 했다.

‘내가 걱정되니까.’

무리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정말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여전히 걱정한다. 그래서 강하게 밀고 나가기가 어려웠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바로 레프부터 찾았다. 나 없어도 문제 일으키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자 불만스레 투레질을 했다. 

자기 불리할 땐 짐승인 척하고 내킬 땐 사람인 척하는 녀석이라 못내 걱정되긴 한다.

“레프. 부탁이야.”

진지하게 말하며 이마를 부딪치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래. 착하다.”

꼬리가 격하게 펄럭였다. 아까부터 뒤에서 느껴지던 송곳 같은 시선이 좀 더 선명해졌다. 여원은 다른 짐승이 폭발하기 전에 몸을 돌렸다. 

“끝났나?”

“그래.”

“그럼 가지.”

사결이 큐브를 던졌다. 그렇게 열심히 훈련하고도 레프를 만나 잘 써먹지 못했던 드론이었다. 두 사람은 검은 벽의 미로를 따라 도시로 돌아왔다. 멀리 외곽의 격벽이 보일 때까지도 여원은 남겨진 레프타 무리를 걱정했다.

정확히는 놈들이 칠 사고에 대한 염려였다.

‘사람만 잡아먹지 마라.’

누구 하나를 물거나 던지는 건 이미 기정사실이다. 레프가 잘 통제한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지만 녀석은 좋게 말해 똑똑했고 나쁘게 말해 영악했다. 아마 자신을 만나지 못하는 날이 길어지면 패악을 부릴 게 틀림없었다. 그것도 저를 부르기 가장 좋은 방식으로.

분명 애완동물로 키울 땐 참 순하고 착한 아이였…

“…….”

여원의 사고가 부자연스럽게 끊겼다. 그 틈새로 여태 놓치고 있던 사실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떻게 레프가 수해에 있는 거지?’

대재난으로 수해가 생긴 건 20년 전이다. 여원이 마계에 던져진 것도 같은 해였다. 레프를 만난 건 거기서 몇 년이 더 흘러 영주의 자리에 앉은 후.

다시 말해, 레프는 20년 전 대재난 때 넘어온 게 아니다.

그래서 사전회의 때도 레프타는 있을 수 있다고 했지만 레프가 있을 거라곤 전혀 생각지 않았던 건데.

‘성주.’

쇠 긁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던 기생충이 떠올랐다. 녀석은 여원을 알고 있었고 의도적으로 노렸다. 자신이 다스리던 영지의 인접한 곳에 살던 것들이니 전자야 그렇다고 치지만.

‘기생충 따위에게 날 노릴 이유가 있나?’

몸을 빼앗기 위해서? 굳이?

‘게다가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어.’

속이 울렁거린다. 한동안 잊고 있던 마왕과의 계약이 제 존재를 피력했다.

사결이 앞에서 가고 있어 다행이었다. 드론을 잡지 않은 왼손을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 아니면 애꿎은 가슴팍을 쥐어뜯을 것 같았다. 지긋지긋하다. 희망도 끝도 없다는 점이 더욱 그랬다. 

‘이젠… 더 미룰 수 없어.’

언젠가 말하겠지, 그럴 만한 때가 오겠지 하다가 결국 여기까지 왔다. 적당한 시기는 오지 않았다. 그와 아무 사이가 아닐 때는 괜찮았는데, 이젠 숨 쉴 때마다 진실이 가슴을 압박했다. 

‘돌아가면 말해야겠지.’

그렇다고 너무 가선 안 된다. 쓸데없는 불안은 이성적 사고를 방해한다. 레프는 이레귤러 게이트를 통해 온 거다. 절대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닐 거다. 여원은 몇 번이고 되뇌었다.

마음이 곧 넘칠 것처럼 출렁이는 와중에도 드론은 착실히 이동했다. 오래지 않아 두 사람은 그리샤에 당도했다.

“저 차야. 타자.”

여원의 머릿속은 온통 레프에 대한 걸로 가득했다. 그는 습관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 올랐다. 차체가 움직이고 여원은 생각에 매몰됐다. 사결은 드물게 조용했다. 덕분에 여원은 온갖 가정과 복잡한 상념에 몰두할 수 있었다. 해답이 없는 수레바퀴가 그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였다.

“도착했다.”

“……?”

사결이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쏟아지는 햇살에 여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이상했다. 도심의 텁텁하고 탁한 냄새 대신 메마른 나무껍질의 냄새가 났다. 찬바람을 맞으며 차 밖으로 나온 여원은 잠깐 말을 잃었다.

쌓인 눈이 채 녹지 않은 침엽수림과 숲의 틈새를 비집고 자리한 통나무 별장이 우두커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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