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를 잡는 방법 (84)화 (84/106)

84화

  

레프타의 수용은 의외로 별다른 잡음 없이 이루어졌다.

수해 토벌에 아주 큰 도움이 될 거라며 침을 튀긴 전문가들의 영향이 컸다. 시민들은 사실 아무래도 좋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크레딧 길드의 철저한 관리하에 있는 데다, 직접 마수를 가까이서 대면할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마정석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것 같다며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레프타와 함께 보조를 맞춰야 할 헌터들의 사정은 약간, 아주 약간 달랐다.

“아악! 이 말 새끼가 내 엉덩이 씹었어!”

“아냐. 그거 먹는 거 아냐. 퉤 해라. 퉤.”

“아 씨발, 피!”

…사소한 문제가 있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사소할 뿐이니 넘어가자.

어쨌든 토벌 속도는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레프타는 신나게 날뛰었다. 아주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었다.

레프타의 가장 큰 장점은 드론을 대체할 지상용 이동 수단이라는 점이었지만, 그들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전투원이었다. 그들은 이동 도중 눈에 보이는 마물을 전부 먹어 치웠다. 

속성공격도 통하지 않고, 하나하나가 A급 헌터나 다름없는 놈들인데 무리 지어 움직이다 보니, 심부에 점점 가까워지는 상황에서도 막을 만한 놈들이 많이 없었다.

쿠웅!

그러다 가끔, S급 마수가 등장하면 타고 있던 헌터들이 앞으로 나섰다.

“으아아!”

그들은 온몸을 굴려 가며 초대형 마수를 간신히 쓰러뜨렸다. 거대한 속성공격이 쇄도하고 온갖 날붙이가 마수의 하반신을 노렸다. 격렬한 전투 끝에 마침내 두 개의 굽은 뿔을 가진 산만 한 마수가 무너졌다. 모로 누운 몸이 지진에 가까운 진동이 일으켰다.

멀리 떨어진 곳에 늘어져 있던 레프타가 하품하며 일어났다. 그러곤 시큰둥한 눈으로 상황을 보더니 앞발을 들어 옆에 있던 놈을 툭 쳤다. 곧 하나둘 일어난 레프타들이 주변을 훑더니 헌터들을 내려다봤다.

마치 높은 신분의 사람이 부리는 자에게 ‘수고했다’라고 치하하듯 거만한 모양새였다.

“허.”

“내 진짜 어이가 없어서.”

이런 건 그래도 웃어넘길 수 있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야! 야 이 말 새끼야! 마정석은 먹으면 안 되지!”

“시체는 왜 안 말려? 저것도 먹으면 안 되잖아.”

“넌 정신머리가 있냐 없냐.”

“…왜 갑자기 시비지?”

난데없이 까인 불 속성 헌터가 도끼눈을 떴다. 바람 속성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마정석은 그냥 고기에 섞인 돌 같은 거고, 고기는 먹고 싶어서 먹는 거잖아. 말리면 내 고기를 먹으려 들 텐데 어떻게 말려?”

불 속성이 현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레프타가 피 칠갑을 해가며 사냥한 마물을 씹고 뜯고 맛보고 있었다.

와그작. 빠작!

콰드득.

그는 순순히 사과했다.

“내가 생각이 짧았다.”

“알면 됐다.”

보다 못한 팀장이 도전을 휘둘렀다. 

“뭘 훈훈한 척하고 있어?! 당장 가서 말려 이 새끼들아!”

무시무시한 파공성을 내는 망나니 칼에 사색이 된 두 팀원이 후다닥 달려 나갔다. 씩씩거리던 윤혜리 팀장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내가 진짜 저 새끼들 때문에 늙는다. 늙어.”

가벼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든 그녀의 시선이 현장 한구석으로 갔다. 레프타를 말리려 가다 말고 사장님… 아니, 사장 새끼한테 백허그를 당한 귀환자가 보였다. 여전히 질릴 만큼 무표정인데 삐거덕거리는 몸짓에서 다급함이 묻어났다.

‘저 사람만 제때 갔으면 저 사달이 안 났을 텐데.’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사장이 키스를 날렸고 앞에선 비명이 들렸다.

“아악! 내 손!”

“악! 발 밟혔어!”

불길이 치솟고 돌풍이 몰아쳤다. 속성공격이 통하지 않는 레프타는 멀쩡했다. 그 주변만 지옥이 되어 갔다.

“으아악! 불! 불이야!”

“물 속성 데려와! 물 속성!”

“악! 부, 불길이…!”

돌풍에 합쳐진 불길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윤혜리가 영혼 없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어디 한 군데에 불이 붙어 사방팔방 뛰는 놈들 전부 크레딧에서 한가락 한다는 상급 헌터들이었다.

그 와중에 한구석의 근육 바퀴벌레 한 쌍은 떨어질 기미도 없다. 귀환자의 삐걱거리던 저항이 완전히 멈췄다. 망설이다 결국 마주 끌어안는 팔을 목도한 윤혜리는 아련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하. 시발.’

불과 연기가 푸른 하늘의 반절을 덮고 있었다.

* * *

레프타는 사람을 태우는 걸 거부했지만 그것도 A 중급까지였다. 상급부턴 짜증은 내도 물어서 떨어뜨린다거나, 갈기로 휘감아 던져버린다거나, 뒷발로 차 버린다거나…. 어쨌든 공격하지 않고 태워는 줬다.

“마수도 결국 마계 태생이니까. 특히 레프타는 자존심이 세서 자기보다 강한 놈이 아니면 태우지 않는다.”

“오호라.”

사결이 눈을 빛내며 레프를 노려봤다. 레프의 갈기가 위협적으로 넘실거렸다. 둘 사이에 새파란 불꽃이 튀었다.

“…개인적인 호오도 물론 있다.”

2주간 레프타 무리는 그들의 효용성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거대한 수레바퀴가 굴러갔다. 지난했던 수해 토벌이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주로 블랙미스트를 해결했는데, 개중에서도 뱀처럼 꿈틀거리며 이동하는 걸 우선했다. 애벌레를 닮은 저급한 마물 무리였다. 저항도 미약해서 도끼를 몇 번 휘두르자 한 군락이 몰살되곤 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미로 곳곳에 구멍이 뚫렸다. 그 사이로 정체된 다른 길드의 상급 헌터들이 밀려 들어왔다. 수해 심부에 다다르는 게 그리 머지않을 것 같다.

이때쯤 문제가 하나 생겼다.

수해 공략이나 헌터들에 관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다. 

“크르르르.”

“으르르릉.”

“…….”

과거 첫 만남에서 나는 사결과 내가 상극이라 생각했다. 크나큰 착각이었다. 그건 그냥 서로 조금 안 맞는 구석이 있었던 것뿐이다.

“크롸롹!”

레프가 입을 쩍 벌리며 불시에 사결을 습격했다. 예의주시하고 있던 사결은 코웃음을 치며 레프의 콧잔등을 후려쳤다.

“이 말 새끼가 미쳤나?!”

“크르르릉!”

콧등이 벌게진 레프가 눈을 뒤집으며 달려들었다.

“너 이 새끼. 내가 기필코 썰어서 냉동 말고기로 만들고 만다!”

“크르르락!!”

“…….”

이게 진짜 상극이다.

나는 마물과 인간의 레슬링을 영혼 없는 눈으로 응시했다. 쉼 없이 이를 드러내며 성질을 부리는 레프와 그런 레프를 향해 마주 으르렁거리는 사결. 그 모든 걸 신기하게 바라보는 헌터들까지.

한 손을 들어 얼굴을 덮었다. 뭐 셋만 있을 때 저러면 말도 안 한다.

‘정말 얽히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레프. 그만.”

내가 부르자 레프는 언제 사납게 굴었냐는 듯 총총거리며 돌아와 내 가슴팍에 제 얼굴을 비볐다.

“저 새끼가?!”

사결이 씩씩거리며 득달같이 달려왔다. 어째 가면 갈수록 망가지는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그를 향해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뒤늦게 날뛰는 레프타 다루듯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결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순순히 멈춰 섰다.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는 걸 보니 진짜 짐승 같… 관두자. 일단 계속 가슴팍에 박치기해 대는 레프를 슬쩍 밀어냈다. 불만스레 푸릉거리면서도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가서 애들 통솔해.”

불만이 강해졌다. 녀석이 거부하기 전에 얼른 덧붙였다.

“너 아니면 못 하는 일이잖아.”

멈칫한 레프가 불현듯 사결을 봤다. 프흥. 명백한 비웃음이다. ‘나에 대한 신뢰를 봤느냐 인간.’ 같은 느낌이다. 그러곤 고개를 홱 쳐들더니 보무도 당당하게 자기 무리를 향해 돌아갔다.

빠지직.

공기는 그대로다. 대신 사결의 피부에 얼음꽃이 피었다.

“사결.”

“…….”

“사결.”

“…왜.”

화난 걸 숨기지도 않는다. 왜 저 말 새끼를 먼저 챙겼냐고, 그가 눈으로만 물었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레프를 먼저 보내야 둘만 남으니까.”

그에게 따로 해야 할 말이 있었다. 그런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꽁해 있던 사결이 봄바람 맞은 서리처럼 순식간에 녹더니 흐느적거리며 다가왔다.

“내 연인은 똑똑하기도 하지.”

아니, 그게 아니라.

촉촉 거리는 가벼운 입맞춤이 떨어졌다. 눈동자를 굴리자 화들짝 놀라 분분히 흩어지는 시선들이 보였다. 

“밖에선 싫다고 했지.”

“괜찮아. 보는 사람 없어.”

그럼 저건 뭐냐. 입간판들이냐.

어이없어하자 사결이 주변을 둘러봤다. 안 그래도 다른 곳을 보던 헌터들이 어기적거리며 어색하게 딴짓했다.

잘 묶인 신발 끈을 왜 풀어. 멀쩡한 땅은 왜 파는데. 나무에 뭐가 있다고 자꾸 만져대.

“어? 으악?!”

“헉!”

그러다 누가 식인식물을 잘못 건드렸는지 줄기에 휘감겨 허공에 떴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허둥거리는 사이 잡힌 사람의 상반신이 식물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으아악!”

“젠장, 당장 밑동부터 잘라!”

짜게 식은 눈으로 난장판을 보는데, 사결이 당당하게 말했다.

“봤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