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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83)화 (83/106)

83화

  

팔짱을 낀 사결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조건을 좀 붙이면. 아니 그래도 어렵… 아니지, 조건을 좀 세게. 어. 오. 으음. 뭘 생각하는지 표정이 현란하게 변하는 그를 두고 여원이 앞서 걸었다. 저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같이 가.”

그가 키득거리며 따라붙었다. 그리고 그제야 아까 했던 질문의 답을 꺼내 놓았다.

“헤스티아는 해체할 거야. 헌터 시장이 며칠 삐걱거리긴 하겠지만 그깟 길드 하나 망했다고 큰일이 나진 않아.”

그리샤의 2위라는 거대 길드를 ‘그깟’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건, 아마 사결 뿐일 것이다. 황망하게 보자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그 귀환자. 지금 쟁탈전이 어마어마해. 우리야 놈과는 비교하는 게 미안할 만큼 예쁘고, 잘나고, 잘생기고, 능력 좋고….”

“그만. 알았으니 그만.”

사결이 문득 웃음기를 지우며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크레딧에 데려올 수도 있어. 우린 그럴 능력도, 명분도 있거든.”

“…….”

여원은 며칠 전의 일을 떠올렸다. 협회에 몸을 의탁한 헤스티아 귀환자가 자신을 찾는다는 게 일의 발단이었다. 귀환자라는 건 마계에 다녀온 사람을 뜻한다. 호기심이 동한 건 사실이지만 설마 아는 얼굴일 줄은 몰랐다.

‘여, 영주님!’

‘…윈슬럿?’

언제나 질질 끌리는 로브를 입고 서류를 산더미처럼 안고 다니던 문관이 거기 있었다. 그땐 영락없이 유약한 마족이라고 생각했다. 

‘설마 영주님이 인간이셨다니.’

그건 윈슬럿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충격은 그가 훨씬 컸다. 자신은 빌빌거리며 서류처리용 노예로 겨우 목숨을 유지했는데, 그 무시무시한 마족들을 통솔하던 게 인간이었다고?

정말로 같은 인간이 맞나? 이쯤 되면 ‘같은’이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그 단어에 대한 모독 아닌가?

그런 생각들이 전부 표정에서 드러났다.

‘어느 날부터인가 안 보인다 했는데, 중간계에 와 있었군.’

윈슬럿의 얼굴이 하얘졌다 파래졌다 했다. 여원은 뒤늦게 상기했다. 마계에선 어느 성이든 노예나, 노예처럼 부리던 문관이 도주하면 즉결처분이었다.

‘도, 도, 도망치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여원이 손을 들었다.

‘아니-’

‘헉. 흑. 히이익!’

‘…….’

들었던 손이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여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난 더 이상 영주가 아니다. 그러니 너도 처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사결이 끼어들었다.

‘그런 것치곤 둘 다 어딜 봐도 가신과 영주의 대화를 하고 있는데.’

그의 눈썹이 얕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미묘하게 여원의 말투가 바뀐 것도, 그편이 더 자연스러운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원이 고개를 돌려 사결을 봤다.

무감한 시선을 받은 사결은 생각했다. 옆에 있는 것도 잊고 있었다는 반응이면 밤에 여러 의미로 들쑤셔 주겠다고.

‘착하지. 얌전히 있어.’

불쑥 뻗어진 손이 사결의 정수리를 헝클어뜨렸다. 여전히 무감한 눈이지만 사결에겐 보였다. 거기 어린 다분한 장난기를.

장난. 

장난이라고? 여원이 지금 내게 장난을 걸었다고?

사결이 고장 난 고양이처럼 삐걱거렸다. 가슴 어귀에서 달콤한 별사탕이 터진 기분이다. 여원이 제게 장난을 쳤다. 그게 의미하는 바를 하나씩 되새기는 마음이 어린애처럼 들떴다. 

말랑해진 사결이 반쯤 설레는 기분에 취한 사이, 여원은 윈슬럿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아니, 이어가려 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윈슬럿이 대뜸 엉엉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기 시작했다. 

‘…방금도 말했지만. 난 이제 영주가 아니다.’

그러니 네 생살여탈권은 쥐고 있지 않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윈슬럿은 더욱 벌벌 떨며 이번엔 사결의 눈치를 봤다.

‘제, 제가 말했어요. 영주님 사진을 보고 너무 반가운 마음에 배길수, 그 새끼 앞에서 그만 영주님이라고….’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 여원은 나오려는 한숨을 삼켰다. 배길수의 안에 기생충만 없었다면 저 말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윈슬럿의 잘못이라기엔 애매하지만 죽고 다친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난감해하자 윈슬럿이 눈물을 줄줄 쏟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눈치 없이 굴지만 않았어도….’

‘그러게. 죽어도 묘비명에 ‘눈치 없어 뒈짐’이라고 적힐 만큼 눈치가 없었네.’

사결이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와 비아냥거렸다. 가벼운 어조와 달리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딸꾹.’

딸꾹질을 시작한 윈슬럿의 등을 어색하게 두드리곤 사결을 봤다.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누가 죽인대? 그냥 비유가 그렇다는 거지.’

아니. 너는 진심이었다.

무심한 시선을 보내자 그가 씩 웃으며 여원의 손끝을 쥐었다.

“데려올 수 있다면, 데려오고 싶다.”

회상을 끝낸 여원이 대답하자 그때처럼 손끝을 쥔 사결이 대번에 사나운 눈을 했다.

“진짜 데려오고 싶어? 왜? 그놈의 어디가 예뻐서.”

눈자위가 새파랗게 빛났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제어하지 못한 마력이 들끓어 하나둘 허공에 얼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여원이 싫어하는 걸 알게 된 후론 나오지 않던 버릇이다. 

바꿔 말해, 지금 사결은 그것마저 잊을 정도로 흥분해 있다는 뜻이었다.

질투냐고 물은 건 그냥 농담이었다.

여원은 나도 이제 농담을 할 줄 안다며 내심 뿌듯해했는데, 새파랗고 차가운 눈을 마주하고서야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 통감했다. 사결이 설마 하며 말했다.

“영주와 신하 사이였다고 하던데. 혹시 마계에 있을 때….”

“그런 거 아니다.”

여원이 고개를 저었다. 

“윈슬럿은 유능한 문관이었지. 받아들이면 분명 네게 도움이 될 거다.”

“그러니까, 순전히 날 위해서다?”

말하는 새 복도가 끝났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문이 열리기 무섭게 대기하고 있던 차가 보였다.

차 내부는 굉장히 넓고 쾌적했지만 한 덩치씩 하는 인간이 둘이나 타자 어쩔 수 없이 좁게 느껴졌다.

“난 아직 대답 못 들었어.”

그 좁은 공간에서 사결이 반쯤 덮치듯 몸을 붙여왔다. 여원은 미는 대로 밀려 구석에 구겨졌다. 그가 사결을 올려다봤다. 약간 풀어졌지만 그럼에도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 않은 눈이다. 머뭇거리며 말했다.

“나는 앞으로 블랙미스트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그래도 마계 생활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니, 옆에 두면 조언자 역할은 하겠지.”

“혹시 내가 못 미더운 거야?”

“그렇다기보단…. 네가 다칠까 봐 걱정된다.”

스윽.

몸통과 팔의 틈새로 손을 밀어 넣었다. 그 손이 사결의 등에 닿자 밑에서부터 끌어안는 모양새가 됐다. 사결은 답지 않게 뻣뻣해졌다.

커다란 손이 탄탄한 등을 느리게 더듬었다. 근육의 생김을 옷 위로 확인하듯 세심한 손끝이 날개 뼈와 등줄기를 매만졌다. 광배를 누를 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몸 어딘가가 간지러웠다. 그게 손끝이 스친 부분인지 가슴 어귀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 기분은 여원이 입을 연 순간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곳이 완전히 파여서 뼈가 드러날 것 같았지. 검게 그을리고 피가 쏟아져서…. 그땐 네가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여원의 입에서 나온 것치곤 꽤 긴 문장이 그때의 감정을 대변했다. 무감하던 눈동자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수압에 뒤틀린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칠 것 같은 눈이다.

“다시는 그러지 마라.”

날 구하겠다고 자신을 던지지 마. 깎아 먹지 마. 

심해어를 담은 눈이 그렇게 말했다. 거기 대답하기 위해선 사결도 같은 깊이로 가라앉아야 했다.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간 사결이 여원의 입술을 삼켰다.

“약속은 못해.”

몇 번이고 가볍게 닿아 떨어지는 사이사이 그가 말을 집어넣었다.

“지금 그러지 않겠다고 말해도 같은 상황이 오면 같은 행동을 할 테니까.”

“사결.”

“네가 좋아.”

아무렇지도 않게 툭 떨어진 말이 선명한 의미를 품은 채 파고들었다. 

“그러니 네가 위험한 걸 그냥 지켜보라는 말은 하지 마.”

손바닥에 입을 맞춘 사결이 운전석 쪽을 눈짓했다. 아닌 척 뒤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운전수가 무감한 눈으로 차단벽 버튼을 눌렀다. 과연, 이현수가 찾은 유능한 인재다웠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아차린 여원의 낯이 굳었다.

“설마 여기서 할 생각은 아니겠지.”

“여기서도 하고 집에서도 할 건데?”

“…….”

그제야 뱀에게 물린 걸 깨달은 근육햄스터가 저항을 시도했다.

“아이고 등이 쑤시네.”

뱀 꼬리를 걷어내던 팔이 멈칫했다. 

“많이 아픈 건 아닌데, 누가 밀어내면 좀 아픈 것도 같고.”

사결이 끙끙거리는 척하며 여원의 눈치를 봤다. 어이가 없단 표정이 바로 보였다. 그는 능글맞게 웃었다.

여원도 안다. 진짜 아픈 게 아니고 그냥 응석이라는 걸. 하지만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받아줄 수밖에 없다. 그는 묘하게 애교나 응석에 약했다. 상대가 그걸 알게 된 게 작은 불행이었다.

사결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없는 수단도 만들어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미 있는 방법을 쓰는 건 그에게 아주 쉬운 일이다.

“이번 한 번만. 응?”

아주 있는 대로 불쌍한 척을 한다. 다 알면서도 여원은 밀어내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

“…이번만이다.”

단단하고 강인한 몸에서 힘이 빠졌다. 뱀은 혀를 쉭쉭 거리며 무해한 척 웃었다. 이 광경의 대가가 등짝 정도라면 몇 번이고 내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생각이 복잡한 근육햄스터의 몸에 상반신도 하반신도 욕망뿐인 뱀의 몸통이 슬슬 휘감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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