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여러분 안녕하세요! 위드 유 헌터 위드(Weed)! 네, 여러분의 재간둥이 잡초가 돌아왔습니다! 썸네일 보고 헉, 하고 눈치챈 분들 있으실 텐데요. 맞습니다. 제가 지인 찬스로 요즘 정말 핫한 분을 모시게 됐어요!”
심장이 두근두근한다며 바로 옆에서 오두방정을 떠는 크리에이터를 본 여원의 눈이 미세하게 떨렸다. 화면에 잡히지 않을 각도에서 여원만 보고 있던 사결은 터지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자기 팔을 세게 꼬집었다.
마침내 여원에게 눈길을 준 크리에이터가 놀랍다는 듯 손으로 입을 막았다.
“우와. 와. 형. 진짜 잘생기셨네요.”
“…….”
“어. 하하. 일단 자기소개부터 해 주시죠.”
“서여원. 귀환자입니다.”
“저 말고 저기 저쪽. 카메라 보면서 부탁드려요!”
“서여원. 환자입니다.”
잠깐.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크리에이터가 제 귀를 탁탁 때렸다. 하지만 잘못 듣지 않았다. 당황해서 여원을 봤다. 왜 보냐는 시선이 되돌아왔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순수한 초심자의 눈이었다.
위드는 생긋 웃었다. 그는 프로였다. 여태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을 잃지 않고 크리에이터로서의 본분에 충실했-
“다 끝난 겁니까.”
…었는데 지금은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힐긋 본 채팅창은 아직 호의적이다.
- 끝나긴 뭘 끝낰ㅋㅋㅋ이제 시작했는데
- 와 귀환자라더니. 세상 물정 모르시네.
- 저건 뭔 설정이지.
- 사결! 사결님은요?! 오늘은 싸장님 안 나와요?(우는 이모티콘)
동시 시청자 수는 이 순간에도 무섭도록 치솟고 있었다. 그가 A급 마물에게 통째로 삼켜질 뻔했던 사건 이후 최대치였다. 방송이 시작하고 아직 5분이 채 되지 않은 걸 감안하면 앞으로 못해도 열 배는 늘어날 게 뻔했다.
그가 마른침을 삼켰다.
‘절대 망치면 안 돼.’
크리에이터가 전의를 다잡으며 귀환자를 봤다.
왜. 뭔데.
그는 자기가 잘못 말한 것도 모른 채 삐걱거리고 있었다. 크리에이터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나 이거 할 수 있을까.’
그는 내적 비명을 질렀다.
목석 내지는 돌부처를 앞에 뒀어도 이것보단 인터뷰가 잘 흘러갈 것 같았다. 그것들이 침묵하는 건 납득이라도 시킬 수 있지. 고민하는 와중에도 시간을 착실히 흘렀다. 연출 담당이 보드에 뭔가 빠르게 적어 머리 위로 들어 보였다.
[그냥 진행해.]
등이 식은땀으로 푹 젖었다. 그가 연출 담당…아니, 본업은 크레딧 길드 마스터인 사내를 보며 눈으로만 말했다.
‘길마님! 이건 이야기가 다르잖아요!’
[그냥 하라고. 집요하게 물어봐.]
집요하게 물어보라니. 첫 질문이 뭐더라.
‘…이상형이었지 분명.’
사결의 눈이 타올랐다. 공식 석상에서 여원이 제 입으로 “제 이상형은… 사결입니다.”라고 말하는 걸 어떻게든 보고 싶었다.
물론 여원의 성격상 그렇게 직접적으로는 말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그럼 하다못해 비슷한 말이라도!’
그러나 욕망의 시그널은 왜곡되어 전달됐다.
‘어떻게든 방송 분량을 뽑으라는 뜻인가? 그렇다면….’
크리에이터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뗐다.
“음. 그럼 가볍게 시작해 볼까요? 혹시 이상형은 있으십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안 그래도 굳어 있던 여원의 낯이 더욱 딱딱해졌다.
“아뇨. 딱히.”
위드는 평소 하던 것처럼 주먹 쥔 양손으로 턱 밑을 짚으며 과장된 애교를 부렸다.
“그럼 연하는 어때요?”
사결이 들고 있던 보드를 냅다 집어 던졌다. 그가 가타부타 말도 없이 인터뷰 자리에 난입해 크리에이터의 멱살을 잡았다. 지켜보던 다른 스텝과 헌터들이 기함해서 달려들었다.
“놔. 안 놔?!”
“아, 아, 아니 왜요! 하라면서!”
“이 xx 새끼가 진짜! 누가 그거 하래?!”
“아이고 사장님!”
“지금 생방중이라고요!”
“꺼! 카메라 커!”
팟!
화면이 검게 물들었다. 작은 카페에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뭐여.”
“내가 지금 뭘 본거지.”
“사결… 맞나? 지금 욕하고 멱살 잡은 거.”
“나도 그렇게 봤는데.”
“…….”
잠시 후 화면이 다시 켜졌다. 카메라가 넘어갔던 건지 옆으로 보이던 화면이 흔들리며 제 자리를 찾아갔다.
“자, 잠시 방송사고가 있었습니다.”
아까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화면이었지만 묘한 어수선함까진 감출 수 없었다.
“다, 다른 질문입니다. 많은 분이 가장 궁금해하는 바로 그것! 이번에 마수 무리를 데려와 길들이신 것 말인데요. 대체 어떻게 성공하신 건가요?”
침묵하던 여원의 눈동자가 스르륵 굴러갔다. 초점이 맞지 않던 눈이 어딘가에서 멈췄다. 그 상태로 여원이 말을 줄줄 늘어놓기 시작했다.
“다른 마물이나 마수는 제가 아니라 누가 시도했어도 실패했을 겁니다. 개는 공생 및 훈련이 가능하지만, 늑대는 불가능한 것처럼. 마물도 길들이기 가능한 개체가 있고 아닌 개체가 있습니다.”
말에 영혼이 없다. 심지어 끝나기 무섭게 눈이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읽었네.”
“그러네.”
“저거 백퍼 누가 써 줬네.”
그런데 그것마저도 길어지니 힘들어한다.
‘진짜 안 어울리는데.’
‘귀엽네….’
‘미친. 저런 시커먼 놈이 귀엽다니!’
티를 내진 않았지만 촬영하는 스텝도, 실시간 시청자들도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할 때, 이미 여원의 그런 부분을 알고 있던 유일한 사람은 기분이 나빠졌다.
팔짱을 낀 팔에 힘이 들어갔다. 셔츠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마족을 연상케 하는 음울한 아우라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물론 여원은 귀엽다.
문제는 저걸 이제 남들도 안다는 거다. 사결의 복장이 뒤집혔다. 슬슬 한 번 풀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 알아도 기분이 나쁜 건 나쁜 거다.
평소 같았으면 주변을 얼려도 열두 번은 얼렸을 텐데, 사결이 이를 갈면서도 그러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마계에서 제일 생각났던 중간계 음식은 뭔가요?’ 같은 질문에도 쩔쩔매는 연인 때문이었다.
사결은 다른 방식을 택했다. 그에게서 한기 대신 살기가 풀풀 날렸다. 마물을 찢을 때처럼 살기등등한 최고 권력자의 모습에 크리에이터는 삐걱거리고, 카메라는 흔들렸으며, 연출은 보드를 떨어뜨렸다.
한 마디로 개판이었다.
“이, 이만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 앞으로도 위드 유 헌터 위드! 채널 구독! 좋아요! 부탁드려요~”
경련이 일어나는 입꼬리로 연신 손을 흔들던 젊은 크리에이터는 화면이 꺼졌다는 말을 듣자마자 장렬히 전사했다.
“으아아. 위드 씨!”
“위드 씨, 정신 차려요!”
몰리는 사람에 밀려 어느새 가장자리로 오게 된 여원은 멀뚱히 있었다. 여기 온 이후로는 누가 뭘 지시하기 전에 움직이기 어려워진 탓이다.
그런 여원의 곁에 누군가 자연스레 붙어 섰다.
“끝났어. 가자.”
사결이 태연히 문을 턱짓했다. 여원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 미미하게 화색이 돌더니 삐걱거리면서도 착실하게 움직인다. 사결은 결국 웃음이 터졌다.
이 무뚝뚝한 사내가 지금 상황을 얼마나 껄끄러워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사결은 장난기가 동했다.
“흠. 생각해보니 온 김에 사진 촬영까지 끝내고 가는 편이 나을 것 같기도 하고.”
“사진… 촬영?”
여원이 들은 적 없다는 듯 눈가를 떨었다. 당연하다. 사결이 방금 생각해 낸 거니까. 그런데 뱉고 보니 아주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았다.
여러 테마를 잡아서 촬영하는 거지. 청바지에 흰 티를 입은 청순한 여원. 스리피스 정장을 입은 섹시한 여원. 가터벨트에 중요 부위만 가린-
콰직.
사결이 손에 들고 있던 물병이 찌그러졌다. 물은 튀지 않았다. 대신 얼음조각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사진 촬영은 다음에 하지.”
여원의 어깨를 움켜쥔 그가 핏발 선 눈으로 말했다.
“꼭 할 거야. 이건 해야만 해!”
“…뭔지 모르겠지만, 알겠으니까 진정해라.”
“방금 알겠다고 했어. 무르기 없다.”
여원의 동공이 속절없이 흔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의 대답에 기분이 좋아진 사결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촬영장을 나섰다.
여원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어쩌다 이렇게 됐나. 막무가내인 사결에게 끌려 나가며 생각해보니, 일의 발단은 이현수의 의견이었다.
싸고돌기만 하면 오히려 관심만 집중된다. 차라리 한 번 풀어주는 게 낫다. 그런 의견은 줄곧 있었다. 이현수는 거기에 구체적인 방향도 제시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쓸데없는 정보를 제공하되, 자주 얼굴을 비출 것.
‘그럼 대중도 금방 익숙해지겠죠.’
일종의 이미지 소비를 역으로 이용하자는 거다. 그때 사결은 네가 웬일이냐는 듯 말했다.
‘그럴듯한데?’
‘…사장님은 대체 절 뭐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식충이?’
‘거 너무하시네. 진짜.’
오늘은 그 계획의 첫 단추였다. 네가 겪기엔 다소 힘든 일이 많을 거니까 자기 손 꼭 잡고 있으라고 사결이 신신당부했었다.
뭘 그렇게까지. 전장에 서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서 말 몇 마디 하는 것뿐이다.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다, 라고 우습게 봤던 과거의 제 머리에 도끼를… 그럼 죽겠지.
“무슨 생각해?”
“…….”
“대답하기 곤란한 걸 생각했다는 거군.”
말을 돌릴 필요성을 느꼈다. 여원은 다른 궁금했던 걸 질문했다.
“헤스티아는 어떻게 되는 거지?”
“네가 묻고 싶은 게 헤스티아야 아니면 그 귀환자야?”
“…….”
단숨에 가라앉는 분위기에 사결이 뒤늦게 아차 했다.
“화낸 거 아냐.”
그가 눈치를 살폈다. 여원은 아무렇지 않게 중얼거렸다.
“그럼 질투인가.”
조금도 예상치 못한 질문에 사결의 눈이 툭 불거졌다. 입까지 살짝 벌렸던 그는 물에 물감이 풀어지듯 스르륵 표정을 바꿔 웃었다. 촉, 가벼운 입맞춤이 여원의 입술을 훔치고 사라졌다.
“밖에선 안 하기로 하지 않았나.”
“밖에서 못하게 하는 건 누가 볼까 봐 그러는 거잖아. 여긴 아무도 없어.”
그 말대로 포스터로 장식된 복도엔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었다. 여원이 한숨을 쉬었다. 그가 옆을 걷는 사결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번엔 무슨 생각해?”
“내가 널 말로 이길 날이 올까 하는 생각.”
“흠.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
빈말로도 가능하다곤 안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