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최근 그리샤엔 새로운 활기가 돌았다.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에 떨어진 흥미로운 사건의 연속 때문이었다. 헤스티아에 이어 크레딧에 영입된 귀환자!
한 세대에 한 명만 발견되어도 굉장하다는 인재가 한 도시에서 둘이나 나온 것이다. 시민들은 오랜만의 자극에 들썩였다. 호기심과 기대감이 크레딧의 귀환자를 향했다. 헤스티아의 귀환자가 블랙미스트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게 확인된 직후, 크레딧이 워낙 신비주의로 싸고돌아 더 그랬다.
그의 등급이 F급이라는 게 밝혀졌을 땐 잠깐 사그라드는가 했지만, 혼자서 블랙미스트를 해결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반등해 말 그대로 불길 같은 관심이 일었다.
“매스컴은 대체 뭘 하는 거야?”
“간절함이 없네. 진짜.”
“다들 먹고살 만한가 보지.”
기자들이 들었으면 억울함에 가슴을 쳤을 소리다. 길드 건물 외부로는 나오지도 않고, 나왔다 하면 수해로 들어가 버리는 사람을 무슨 수로 취재하라는 건지.
‘이럴 거면 일이라도 좀 덜 벌이든가.’
기자로서 절대 해선 안 될 생각이지만 상대는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동종업계 종사자들. 즉, 헌터들도 겉으론 태연한 척하지만 내부는 들끓고 있었다.
블랙미스트.
그것이 얼마나 거대한 벽이고 난관인지 그들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이라고 자존심이 없어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우회한 게 아니었다.
그랬던 게 고작 한 명의 귀환자에 의해 해결됐다. 허탈. 격양. 카타르시스.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치고 간 자리엔 어쩔 수 없는 탐욕이 남았다.
그들의 진로를 방해하던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됐다. 공통된 난관 앞에선 다른 어떤 도시보다 강하게 결합하는 그들이었지만 그게 해결된 이상 자신이 속한 길드를 제외한 모두가 경쟁자였다.
문제는 가장 크게 공헌한 귀환자와 그가 속한 크레딧을 무시할 순 없다는 거다.
“크레딧…. 물론 밀어줘야 한다는 건 알지. 하지만 그건 길드를 운영하는 윗대가리들이나 고려할 일이고. 우리 같은 소시민 헌터가 제 몫을 걱정하는 건 당연하잖아?”
“그 말이 맞지.”
“아니 근데 F급이라며. 헌터 협회에서 공증도 했다며.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해결한 거야?”
“마계에서 얻어온 게 마기에 면역인 몸만은 아니란 거지.”
이것도 있잖아, 라면서 한 헌터가 자기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협회에서 공증했으면 F급인 건 확실해.”
“그렇다는 건….”
“크레딧에서도 함부로 쓰진 못해. 귀한 몸이시잖아. 크레딧도 블랙미스트 해결할 때가 아니면 굳이 꺼내지 않을걸?”
많은 오해와 오류가 있었지만, 그들은 더 많은 돈에 눈이 멀어 알아차리지 못했다.
헌터들의 눈알이 굴러갔다. 그들은 서로 견제하다 맹렬하게 수해를 파고 들어갔다. 해결한 게이트의 숫자와 등급은 곧 그들의 수해 토벌 지분과 직결됐고, 지분은 마정석과 부산물의 분배를 결정하는 지표였다.
우회할 수 없는 블랙미스트 등장 이후 주춤했던 공략이 다시 빠르게 재개됐다.
사람들은 여전히 귀환자에 대해 흥미를 보이고 궁금해했지만 그게 오래가진 않았다. F급인데 마계에서 얻은 지식으로 해결했다는 헌터들의 의견이 대세를 이룬 탓이다.
그 F급 귀환자가 한 무리의 상급 마물을 이끌고 도시에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 그랬다.
시작은 마물 떼가 도시에 출몰했다는 신고였다. 연기 같은 검은 갈기를 일렁이는 거대한 마물들이 태연히 도시를 활보한다는 말에 처음엔 다들 장난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같은 내용의 신고가 몇 번이나 이어지자 담당자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인원을 이끌고 나간 현장은 더욱 가관이었다.
기겁해서 달려든 헌터들을 막은 건 마물이 아니었다. 거만하고 익숙한 유명인이 태연히 헌터들을 막아섰다.
“뭐야. 너네 왜 덤벼?”
그걸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닐 거라 믿고 싶다. 구경꾼들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상황을 주시했다.
‘얼음인가.’
‘얼음이겠지.’
‘얼음으로 벽이라도 세우겠지.’
아니었다. 얼음 대신 주먹이 날아왔다.
빠악! 뻑!
“…….”
사결의 맨주먹에 나가떨어진 헌터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그들이 억울한 표정으로 울먹였다. 협회의 헌터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억울하지.
나 같아도 억울해서 미칠 듯.
널브러진 헌터들을 안쓰럽게 보던 협회 관계자들이 수습에 나섰다. 그들이 주춤거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마물의 콧잔등을 쓰다듬고 있던 사람이 가장 먼저 협회를 발견했다. 협회도 뒤늦게 그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저… 혹시 귀환자님 되십니까?”
“예.”
단답이었다. 당황한 협회 헌터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시 물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니. 딱 보면 몰라?”
아닌 척 듣고 있던 사결이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협회 헌터들은 억울했다. 이 혼돈과 파괴의 현장을 보는 것만으로 어떻게 이해합니까? 예?!
그들이 도움을 구하듯 크레딧 길드원들을 봤다. 그들이 모른 척 시선을 피했다. 아주 그냥 다들 한통속…. 응?
협회 헌터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제 보니 앞에 선 헌터들은 멀쩡한데 뒤쪽은 만신창이가 따로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사결이 픽 웃으며 말했다. 어조는 존대로 돌아왔다.
“헤스티아 길드장 배길수가 죽었습니다. 자기 길드원들을 이끌고 우릴 습격했거든요. 정당방위였죠.”
잠깐 사고가 정지했다. 분명 귀로 뭔가 들었는데 그게 뇌까지 제대로 닿지 못했다. 휘청거린 헌터 협회 직원이 입가를 파르르 떨며 되물었다.
예?
“차라리 농담이라고 해.”
“…지금 속마음이랑 하려던 말이 바뀌신 것 같은데.”
“그딴 건 중요치 않아!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누가 죽어요?!”
“헤스티아 길드장. 아. 부길마도 죽었을 겁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같이 있던 것 같던데요.”
“이런 미친.”
“네. 완전히 미쳤죠. 덕분에 이쪽의 피해도 막심합니다. 크레딧 소속 B급 일부가 죽거나 크게 다쳤거든요. 저희 부길마가 자리에 없는 건 시신을 수습하고 생존자를 인솔하려 동분서주하고 있는 탓이죠.”
입은 웃는데 눈은 싸늘했다. 협회 직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받아들이지 못했던 현실이 뒤통수를 후려쳤다.
지금 사결의 입에서 나온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내 선에서 뭘 어떻게 해 볼 일이 아니야.’
직원의 낯이 파리하게 질렸다. 그러자 사결이 뒤늦게 분위기를 풀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우리 유능하고 깜찍한 귀환자께서 마수들을 길들였죠. 나쁜 소식 하나에 좋은 소식 하나. 플러스마이너스 제로네요. 하하하.”
야 이 진짜로 미친놈아… 그게 어떻게 플러스마이너스 제로냐.
촤좌좍!
어디선가 카메라 셔터음이 들렸다. 사결과 협회 헌터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사복 차림이지만 훌륭한 카메라를 든 행인이 슬쩍 사람들 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협회의 헌터가 해탈한 듯 웃었다.
“허허. 허허허.”
사결이 그런 헌터의 어깨를 두드렸다.
“뭐, 수고하시죠.”
“허허허. 쿨럭. 개습기! 쿨럭. 허허.”
“…방금 뭐라고?”
“가습기요. 기침이 자꾸 나는 걸 보니 집에 하나 들여야겠습기!”
“…….”
마물들은 일단 헌터 협회로 인도됐다. 자신이 없으면 통제가 곤란할지 모른다는 귀환자의 말에 서둘러 협조도 요청했다. 귀환자를 애지중지한다는 게 사실인지 사결의 눈이 귀신처럼 일그러졌지만 일단 건물 내부로 들이는 덴 성공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협회 관계자들이 달려왔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들조차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수십 마리의 A급 마물 위용도 위용이지만, 그들이 잘 훈련된 군인처럼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모습은 경이 그 자체였다.
넋이 빠진 관계자들의 옆에 누군가 소리 없이 다가와 섰다. 사결이었다.
“헤스티아 길드 건은 잘 해결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놈들이 죽이겠다고 달려드는데 별수가 있습니까? 현장에 가 보면 가면이랑 옷이랑 증거 다 남아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증언도 해 드리죠.”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리샤의 시민들이 사결의 좋은 모습만 봤다면 헌터 협회의 관계자들은 사결의 악랄한 모습만 봤다. 그들이 하나씩은 달고 있는 탈모, 위장병, 고혈압은 전부 눈앞의 악마가 선물한 질병이다.
“아니 그래도. 증언 정도는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수를 쓰든 저희 선에서 끝내겠습니다.”
사결이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물심양면으로 도와드리려고 했는데 정 그게 편하시다면야.”
저 양아치 같은 놈.
악마도 손절할 새끼.
관계자들이 분을 못 이겨 부들부들 떨었지만 사결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그가 레프타 무리를 향해 턱을 까닥이며 말했다.
“저놈들도 최대한 빨리 크레딧에 인도해주시죠. 제어는 저희 귀환자만 가능하거든요.”
살아있는 마수들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는 소식에 헐레벌떡 달려온 연구부가 눈치 없이 손을 들었다.
“그럼 귀환자께서 협회에 상주하시면 되잖습니까.”
사결이 생글거리며 말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