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를 잡는 방법 (73)화 (73/106)

73화

펑!

퍼펑!

“능력이 달려서 꼼수 쓰는 거니까. 거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라고!”

“이 미친 새끼들이 진짜…!”

“뭔 길드가 완전히 미쳐 돌아가네. 제정신인 놈이 없어….”

‘본인들도 중독의 위험이 있을 텐데 제정신인가.’

그렇게 생각한 재현의 눈에 습격자들의 가면이 들어왔다. 마기 폭탄을 사용한 직후부터 가면이 희미한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가 경악했다. 그가 아니라 그리샤의 헌터라면 대부분 알아볼 현상이었다.

정제된 마정석을 이용해 마소 중독치료를 할 때면 보이던 바로 그 빛이었다.

‘정화용 마정석을 가면에 심었어!’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임시로 쓰는 거라면 저 정도로 충분하다. 살벌하게 이가 갈렸다. 이 새끼들 작정을 했구나. 

‘진짜로 다 죽일 생각이야.’

“유성!”

“말 안 해도 알아!”

이미 잔뜩 휩쓸린 B급 헌터 대부분은 바닥에 쓰러졌다. 그들의 몸에 거뭇한 자국이 떠올랐다. 급성 마소 중독 증상이었다. 이런 자들은 차라리 나았다. 

“크아아악!‘

“아악!”

그렇지 못한 나머지는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절명했다. 마소 중독이었다. 침범한 마기에 강하게 반발한 몸이 격한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유성과 재현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당장 저 새끼들을 조지고 싶지만 군데군데 떨어진 마기가 넘실거리는 공터를 벗어나는 게 우선이었다. 서로 눈짓을 주고받은 그들이 가장 약해 보이는 곳을 찍어 동시에 몸을 날렸다.

“아. 왜 이쪽으로 오고 그래.”

그 자리에 있던 가면이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거대한 불길이 두 사람을 향해 쏘아졌다. 화염방사기가 따로 없었다.

육체강화계인 두 사람이 차출된 이유는 사실 무척 단순했다. 레프타는 속성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대항할 속성이 없다면 순수한 완력으로 제압하는 게 상책이었다. 

“아 시발 뜨거!”

“아오!”

하지만 상대가 속성 공격을 쓸 수 있다면, 육체강화계는 가능한 전투를 피하는 게 맞다. 결국 상성의 문제였다. 유성의 낯이 어두워졌다.

검게 넘실거리는 마기가 사방에 깔렸다. 남은 곳으로는 불길이 쏘아진다. 어떻게 돌파해보려 해도 정면에서 쏟아지는 A급 화염에 몸을 던지면 아무리 S급이라도 무사할 수 없다.

‘빌어먹을 대체 어떻게 하면…!’

이를 악문 그가 힐긋 옆을 돌아봤다. 어떻게 봐도 리더로 보이는 두 가면이 여원에게 붙어 있었다.

“힘 빼지 말고 순순히 가지. 어차피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배길수의 제안에도 여원은 반응하지 않았다. 도끼를 들고 자세를 잡은 그가 고개를 슬쩍 기울였다.

“말이 많네.”

“…….”

“덤벼.”

배길수는 도발에도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눈앞의 귀환자는 협회에서 F등급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혼자 힘으로 블랙미스트를 해결했다. 따로 확인까지 해 봤지만 조작이나 은폐가 아닌 사실이었다. 그게 뭘 의미하는가.

‘귀환자 전부가 그런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눈앞의 이 사내는 등급의 메커니즘에서 아예 벗어나 있다는 뜻이지.’

다시 말해, 어느 정도의 강함을 가졌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배길수가 김정수에게 눈짓을 보냈다. 먼저 공격하라는 거다. 저 개새끼… 속으로 욕하면서도 별도리가 없다. 김정수는 양손에 불길을 두르고 뛰어나갔다.

그는 틀림없는 화속성 능력자지만 육체 능력도 뛰어났다. 매스컴은 사결의 하위호환으로 부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상대가 어떤 계열이고 속성이든 간에 우위를 점할 만한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김정수도 자신은 있었다. 그가 본 귀환자는 이수영이 유일했다. 마계가 엄청난 곳인 건 인정하지만, 그런 놈도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제까짓 게 아무리 강해봤자 헤스티아의 온갖 더러운 일을 처리해 온 나만 하겠어?’

그게 김정수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퍼벅!

장내에 있던 모든 움직임이 멎었다. 도끼에 머리가 깨진 김정수의 몸이 천천히 허물어졌다. 헤스티아는 각오 없이 일을 벌이지 않았다. 자신들 측에서 사상자가 나올 거라는 것도 예상했다. 하지만 그게 이런 형태일 줄은 몰랐다. 

정적이 흘렀다. 도끼를 휘둘러 피를 털어낸 여원이 다시금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뚜둑. 뚜둑. 목을 이리저리 꺾은 그가 천천히 헤스티아 길드원들을 돌아봤다. 

“덤벼.”

눈이 마주친 가면들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뭐야.’

‘뭔데. 왜 떨고 지랄이야.’ 

‘겁을 먹어? 내가? 고작 사람 죽는 거 봤다고?’

당연히 아니었다. 그건 본능이 보낸 신호였다.

그들은 어떤 환영을 봤다. 살얼음이 낀 음습한 늪이다. 발이 푹 빠졌다. 순식간에 검게 잠긴 몸이 뻣뻣하게 얼어붙었다. 죽음. 절망. 그보다 짙은 공허.

전신에서 쭉 뽑힌 식은땀이 물이 되어 흘렀다.

‘내가 지금 뭘 마주하고 있는 거지…?’

가늠도 되지 않을 만큼 아득했다. 

여원은 다시금 가볍게 도끼를 휘둘렀다. 피와 뇌수가 날을 타고 미끄러져 바닥에 뿌려졌다. 방금 사람을 죽였다곤 믿을 수 없게 무심한 모습이다.

피투성이가 된 여원이 싸늘한 눈으로 남은 자들을 훑었다. 시선을 받은 자들은 오금이 저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사냥을 시작한 맹수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전부…” 

여원은 하얗게 질린 길드원들을 향해 도끼를 들었다.

“머리를 쪼개주지.”

담담한 사형선고였다.

* * *

배길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으아악!”

“오, 오지 마!”

불길이 사방으로 솟구쳤다. 본래 작전은 가능한 신속하고 조용하게 베이스캠프를 제압하고 귀환자를 납치해 도망치는 거였다.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여원이 빛살같이 쏘아져 도끼를 휘둘렀다. 한 번에 한 명씩. 그가 움직일 때마다 반드시 죽는 사람이 나왔다.

심지어 귀환자답게 마기가 자욱한 곳에도 아무렇지 않게 발을 들였다. 최고의 공격 수단이었던 마기가 눈앞의 괴물에겐 무용지물이었다. 헤스티아 길드원은 그 의미를 목숨으로 체감했다.

퍼걱!

또 하나의 머리가 터졌다.

이제 가면 무리는 그 누구도 웃지 않았다. 장내의 공기가 변했다. 전염병 같은 공포가 순식간에 퍼졌다. 

“크아악!”

여원은 늑대 무리를 휘젓는 한 마리 대호와 같았다. 바로 옆에 있던 동료가 뇌수를 흘리며 죽었다. 이미 수가 반 이상 줄어버린 헤스티아 길드원들은 패닉에 빠졌다. 

그들은 언제나 사냥하는 입장에 있었다. 게이트 공략은 철저히 등급에 맞춰 배정됐다. 이기지 못할 적은 상대해 본 적이 없다. 자신보다 강한 자를 상대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당연히 알지 못했다.

“하, 항복. 항복하겠습니다!”

퍼억!

겁에 질려 양손을 위로 든 사내의 머리가 깨졌다. 같이 깨진 가면이 부서져 떨어지고 죽은 사람의 얼굴이 드러났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유성의 눈이 빛났다. 

‘역시 헤스티아였나.’

그도 아는 얼굴이었다. 이런 자리에 온 게 신기할 정도로 보신주의에 입이 깃털보다 가벼운 놈이기도 했다. 살려서 정보를 뽑아낼 걸 이라는 생각은 여원을 보자마자 사라졌다.

도저히 말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도끼날이 번뜩일 때마다 피가 비처럼 뿌려졌다. 

“커허헉!”

“사, 살려주십쇼.”

눈치를 보던 몇몇이 유성과 재현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바닥에 납죽 엎드린 자세였다. 마기를 피해 포위를 돌파하려던 그들의 면전에 불길을 쏟아내며 낄낄거렸던 놈도 있었다. 

“너희가 아주 좋은 말을 했지.”

우리가 무슨 말을 했더라. 욕하고 비웃은 기억밖에 없는데. 

가면 아래로 열심히 굴러가는 눈을 보며 유성이 씩 웃었다.

“죽여서 입막음.”

“……!”

“나도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퍼억!

무릎을 꿇고 있던 맨 뒷사람의 머리를 도끼가 갈랐다. 어느새 주변을 정리한 여원이 남은 자들을 처리하기 위해 와 있었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한 모습에 같은 편인 재현과 유성조차 등골이 서늘했다.

‘미친. 진짜 혼자서 열 명 넘게 죽였어.’

‘머리를 다 깨 놨네. 그나저나 정말로 다 죽일 생각인가?’

그들은 저도 모르게 발을 몇 걸음 뒤로 물렸다. 연이어 도끼를 휘두르는 여원의 신색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사람 머리가 아니라 수박이라도 깨는 모양새였다. 두 S급은 좀 전보다 몇 배는 더한 한기를 느꼈다.

‘길드장님이랑 사귄다고 했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미쳤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있지?’

마지막 사람이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손은 도끼를 막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성이 사라진 그는 필사적이었다. 

“하, 항복하겠다고 했잖습니까! 세상 어디에도 이런 경우는 없습니다!”

“항복은 승자의 권리다. 패자가 강요할 순 없지.”

여원의 도끼가 허공을 갈랐다. 잘린 손과 함께 시체가 된 몸뚱이가 옆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난 전쟁의 항복은 받아도, 전투에서의 항복은 받지 않는다.”

그만한 각오도 없이 습격한 건가. 한심하군. 

하지 않은 뒷말이 표정에서 드러났다. 유성이 마른침을 삼켰다. 재현은 완전히 뻣뻣하게 굳어서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살아남은 B급들은 거의 졸도할 것 같은 표정으로 구석에서 벌벌 떨었다. 

여원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그들을 훑어보곤 다시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성과 재현의 시선도 자연히 따라갔다.

“음?”

아직 살아있는 가면이 있었다. 여원이 왜 죽이지 않고 뒤로 미뤄뒀는지 알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은 채 이리저리 몸을 꺾었다.

“…저건 또 왜 저래?”

“몰라. 너무 무서워서 미쳐버렸나?”

마지막 가면은 배길수였다.

그는 원래 김정수가 죽은 직후 나서려 했다. 그런데 발바닥이 땅에 뿌리박힌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공포에 잠식된 게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신체가 의지를 벗어난 것에 가까웠다. 

당황한 그가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 애쓸 때 머릿속에 어떤 목소리가 울렸다. 

[영주]

“윽.”

배길수는 반사적으로 이마를 부여잡았다. 시야가 빙글 돌았다. 허리가 앞으로 숙어졌다. 순식간에 식은땀으로 푹 절은 그가 몸을 뒤틀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으어어어.”

허우적거린 손이 가면을 쳐 냈다. 

“헉.”

배길수의 얼굴을 본 유성이 헛숨을 삼켰다. 헤스티아 길드장을 봐서 놀란 게 아니었다. 눈은 흰자위를 보였고 뺨에는 촉수 같은 것이 뚫고 나와 있었다. 여원이 역시 그랬다는 투로 말했다.

“기생충.”

“예?”

유성이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여원은 그래도 같은 편이라고 친절하게 답해줬다.

“마계 기생충이다.”

“이런 미친.”

눈치껏 알아들은 유성의 낯이 거멓게 죽었다. 수해를 토벌하며 어지간한 일은 다 겪었다고 자부하는 그였지만 기생충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뇌에 기생해 숙주를 조종하는 종류라니. 

“우웩.”

B급 중엔 토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여원은 난장판의 중심에서 흐트러짐 없이 배길수를 응시했다. 뭘 할지 일단 지켜보겠다는 태도였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내의 뒤틀림이 뚝 멎었다. 그의 고개가 꺾일 수 없는 각도로 꺾여 여원을 봤다.

“여, 여, 영주.”

입을 헤벌쭉 벌려 웃은 배길수가 손가락으로 여원을 가리켰다.

“여, 여, 영주!”

여원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건 기세뿐이다. 담담하던 그의 전신에서 숨 막히는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콰앙.

여원의 모습이 사라졌다. 남은 건 움푹 팬 발자국뿐이었다. 그는 곧 배길수의 앞에 나타났다. 새파란 안광이 번득였다. 긴장된 몸의 근육이 꿈틀거리며 그가 원하는 길을 그렸다. 도끼가 머리를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나갔다.

콰아아!

배길수의 전신에서 불길이 뿜어졌다. 폭발에 가까운 화력이었다. 팔로 얼굴을 가린 여원이 뒤로 튕겨 나왔다.

“귀환자님!”

당황한 유성이 목소리를 높였다. 여원은 발을 길게 끌며 착지했다. S급의 불길을 정면에서 받았음에도 조금 그을렸을 뿐 큰 상처는 없었다. 

“어…….”

유성이 어물거리며 뻗은 손을 거둬들였다. 거리를 벌린 여원은 중심을 잡기 무섭게 다시 포탄처럼 쏘아져 나갔다.

콰르륵!

“영주. 잡는다.”

스친 것만으로도 초목이 불살라질 고온의 화염이 기생충을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저대로 두면 나중엔 완전히 섞여서 오히려 겉보기엔 멀쩡해지거든요. 그럼 기생충은 자기 의지로 마족의 힘을 쓰게 되죠.’

그 말을 했던 기사가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진저리쳤던 이유를 뒤늦게 이해했다.

유성과 재현은 감히 가까이 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반면 여원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도끼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로질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