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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69)화 (69/106)

69화

동준은 단순한 반가움을 넘어선 격한 반응을 보였다. 죽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왔어도 저 정돈 아니겠다. 돌아온 사결의 분노를 마주할 생각에 세상 모든 것이 삐뚤어져 보이는 이현수였다.

여원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냥 잘 지냈냐는 통상적인 말 몇 마디를 하고 카페를 꼼꼼히 훑어보더니, 카운터 바 쪽에 늘어놓은 찻잔에서 조금 멈칫했다.

“뭐 줄까? 뭐 마실래?”

“난 밀크티로….”

그렇게 말하며 여원이 이현수를 돌아봤다. 너는 뭘 먹겠냐는 질문이었다. 이현수는 메뉴판을 훑어보곤 말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부탁하죠.”

생긋 웃은 동준이 이현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진은 공짜지만 부사장님은 아닙니다.”

“…….”

이현수는 구시렁거리면서도 카드를 냈다. 그 손을 동준이 꽉 잡았다.

“그땐 감사했습니다.”

그건 동준이 퇴사를 통보했을 때를 말했다. 크레딧 같은 대형 길드에선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을 이현수가 본인 권한으로 모든 절차를 해결하고 동준이 그만둘 수 있게 배려해준 거다.

“그러면서 커피 한 잔 못 사주나?”

“대신 디저트는 제가 살게요.”

서글서글한 웃음에 이현수도 결국 어깨를 내리며 같이 웃었다. 헤집어진 과거의 상처가 완전히 아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의 동준은 괜찮아 보였다. 그거면 된 것 아니겠는가.

애매한 시간이라 테이크아웃 손님을 끝으로 마침 가게가 비었고 동준은 이현수의 만류에도 close 팻말을 걸었다.

“어차피 잠깐 닫아 놓고 부족한 재료를 사러 가야 했습니다. 카페나 좀 봐 주고 계세요.”

서글서글하게 웃은 동준이 지갑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카페엔 여원과 이현수만 남았다. 여원은 음, 하고 밀크티만 홀짝였다. 이현수와 이런 식으로 단둘이 있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묘하게 어색했다.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 듯 이현수도 서류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연신 커피만 마셨다. 

“혹시.”

“예…예?!”

“…….”

어색하긴 하지만 그게 긴장까지 할 일인가. 삑사리가 난 이현수가 어이없었지만 이내 하려던 말을 마저 했다.

“사결과 어떻게 알게 됐는지 궁금해서.”

급격히 어두워지는 안색에 실수한 건가 했는데, 곧 한숨을 내쉰 이현수가 보고서를 한쪽으로 정리해 치웠다.

“어차피 언젠가 말하려고 하긴 했습니다. 그게 지금인 것도 나쁘진 않겠죠.”

한 모금 남은 커피를 마저 비운 이현수가 잔을 내려놨다. 살짝 녹은 얼음이 달그락거리며 서로 몸을 기댔다.

이현수는 “저는 이씨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입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촌수도 멀고 분가에 가까운 개념이었지만 어쨌든 이명환의 친척이고 핏줄이었다. 그는 이명환이 붙인 사결의 가문 내 친구이자 감시자였다가, 대재난 이후에는 사결의 가장 큰 협력자이자 조력자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거기서 한 꺼풀 더 감춰진 진실이 있었다.

이현수는 이명환이 두 모자의 존재를 알기 전부터 사결과 알고 지냈다. 놀이터에서 만난 또래 중 가장 늦게까지 남아 놀던 게 두 사람이었다. 

사결의 어머니는 인간처럼 살기 위해 홀로 일을 하고 있었고, 이현수의 집은 그때쯤 아버지가 사업을 말아먹어 한창 주먹을 휘두를 시기였다. 이현수의 어머니는 그를 집에서 네 블록이나 떨어진 놀이터에서 놀게 하고 아버지가 나가거나 잠들면 데리러 왔다.

일의 발단은 이레귤러 게이트였다. 놀이터 옆에서 게이트가 열리고 다행히 사결을 데리러 온 사결의 어머니가 마물을 처치했다.

이현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며칠 후 다시 만났을 땐 흥분해서 너희 어머니 헌터셨냐고 물었다. 사결은 가슴을 펴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그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비밀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듣고서야 꺼낸 말은.

‘헌터는 아니라고 하셨어. 근데 헌터보다 대단한 건 맞아.’

‘와.’

두 사람은 한동안 그녀의 정체에 몰두했다. 그러다 그건 하나의 놀이로 자리 잡았다. 사결이 어머니를 관찰하며 일지를 작성하고, 나중에 둘이 만나 토론하는 수순이었다. 물론 일지는 그림일기 수준이었다. 

둘은 세상 진지했다. 금세 식을 줄 알았던 놀이는 꽤 오래 이어졌다. 그러다 한 번은 이현수가 독감을 앓았다.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났을 땐 사결의 기록이 놀이터에서 다 못 읽을 만큼 방대해져 있었다.

이현수가 머뭇거리다 말했다.

‘나 앞으로 며칠은 또 못 와. 본가에서 정기 모임이 있거든. 그러니까 일지 좀 빌려줘. 가서 읽고 돌려줄게.’

‘좋아. 대신 절대 다른 사람이 보면 안 돼.’

사결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들은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일지가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짐작도 하지 못했다.

‘애들에게 물어보니 이게 네 거라고 하더구나.’

창문 앞에 선 이명환이 표지가 찢긴 일지를 들어 보였다. 이현수는 지루한 본가 모임의 소일거리로 사결의 일지를 챙겼고 그걸 본가의 아이들이 본 게 화근이었다.

뺨에 멍이 든 이현수는 겁에 질려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맞았지만 때리기도 많이 때렸다. 본가 애들 눈에서 눈물을 뽑았다고 호되게 혼나는 건 아닐까. 머릿속으로 그런 걱정이나 하고 있었다.

‘왜 대답이 없지.’

이명환은 무표정이었지만 어린애가 감당하기 어려운 위압감을 줄기줄기 뿜어냈다. 거기 눌린 이현수는 종래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비, 빌린… 빌린 거예요. 그거.’

‘그래? 누구에게?’

처음으로 사내의 눈이 빛났다. 너덜거리는 일지는 글씨도 그림도 엉망이었다. 내용도 그랬다. 어린애가 엄마를 상대로 히어로적 망상에 빠진 내용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어른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길만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이명환은 그러지 않았다.

‘친구요. 집 근처에 사는데-’

이현수는 눈을 꽉 감았다 떴다. 역광을 받으며 서 있던 이명환은 사라지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동요를 감추는 그의 연인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사결 모자는 불행해졌다.

이현수의 집안은 아버지의 사업실패 따위 애당초 없던 일이 될 만큼 많은 돈을 받았고 그는 사결의 곁에 붙여졌다.

다시 만난 사결은 눈이 죽어 있었다. 악에 받쳐 네 인생을 바쳐서라도 갚으라고 소리치던 그는 이제 더 이상 이현수를 비난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그게 더 사람을 미치게 했다.

“그래서 저는….”

사결은 자신을 누설자라고 했고, 이현수를 밀고자라고 했다. 그 말은 틀렸다. 애당초 배신자는 저 하나였다.

“…그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갚으려 하고 있습니다.”

“…….”

쾅!

밖에서 굉음이 울렸다. 놀란 행인들이 비명을 질렀지만 이현수도 여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강 짐작이 간 것이다. 여원만이 전면유리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드론을 큐브로 되돌린 사결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여원은 과거 시비가 걸렸을 때 그가 어떻게 타이밍 좋게 등장할 수 있었는지 알게 됐다.

‘드론이었군.’

사결은 분노로 가득 차 들이닥쳤고 카페 문은 과자처럼 부서졌다. 멀리서 동준의 비명이 들린 것도 같았다. 이현수는 또 시작이라며 한숨지었다. 그 모든 걸 지켜본 여원은 어째선지 웃음이 났다.

으르렁거리며 들어오던 사결이 그걸 보고 딱 멈춰 섰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상황도 그렇고 과거의 비극도 그렇고. 빈말로도 평화롭다곤 할 수 없었지만 그게 곧 불행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꽤 좋은 것 같아.’

여원은 지금 그가 느낀 걸 사결과 공유하고 싶었다. 그건 바람보다 의무감에 가까웠다. 반드시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이것도 나쁘지 않네.”

“…….”

“기다렸어. 어서 와.”

“……!!”

이현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별말도 없이 사결을 지나쳐 카페를 나섰다. 반쯤 도망이라도 치는 모습이었다. 아주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는 듯 진저리를 쳤다. 소란에 모인 사람들이 미친 헌터인가 싶어 거리를 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결과 여원은 세상에 남은 게 둘뿐인 것처럼 서로를 봤다. 여원에게 순식간에 붙어선 사결이 허리를 숙였다. 여원은 익숙하게 입맞춤을 받아들였다.

* * *

수해 토벌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헌터들은 무서울 게 없다는 듯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때마다 여원이 언급한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마물들이 나왔다.

사결은 여원이 그린 ‘수해 지도’에 대해선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대신 헌터들이 고전할 것 같은 마물이 예상될 때 슬쩍 조언을 흘리거나 지원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시일이 흘렀다. 지도 작업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삼초승달 길드의 본관 위치도 알게 되었다. 다름 아닌 여원의 영지였다.

우연일까? 아니, 우연이겠지만 그래도 기분이 묘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여원은 지도에 그린 붉은 동그라미를 한참 들여다봤다. 

“왜 그런 표정이야.”

쪽. 쪽.

잠깐 우울해하자 바로 입술이 뺨과 목덜미를 바쁘게 쪼았다. 여원은 어이없어했지만, 곧 포기했다.

사결은 이제 최소한의 체면마저 버리고 여원에게 달라붙었다. 행동에 거침이 없다. 밤에 옆자리가 꿈틀거려 눈을 떠 보면 사결의 얼굴이 보였다. 마치 지금처럼.

“…….”

“왜.”

심지어 뻔뻔하기까지 했다. 여원은 한숨을 쉬었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담담한 외견과 달리 그의 속내는 그 어느 때보다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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