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이현수는 헌터들 쪽으로 몸을 틀어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이들에게 블랙미스트 공략이 완료되었다고 공언했다. 사결은 그러거나 말거나 여원에게 집중했다.
“착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살짝 당황한 여원이 “그래”했다.
“보통 이런 거 잘하면 상 주던데.”
“…….”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물거리던 그가 주머니를 뒤져 뭔가 꺼냈다.
“이것밖에 못 챙겼다.”
주먹만 한 크기에 영롱한 푸른 빛을 띠는 마정석이었다. 보스를 잡고 나온 게 틀림없었다.
“게이트가 닫히면 마기도 흩어질 거다.”
그럼 그때 후처리반을 보내서 남은 걸 회수하면 된다. 그거 다 가져. 여원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결은 비행형 마물이 날아다니는 평화로운 하늘을 올려다봤다. 갈 길이 멀었다.
‘젠장, 내가 어쩌다가 이런-’
“사결?”
“-귀여운 놈한테 반해서는!”
피 묻은 뺨을 쥔 그가 냅다 입술을 맞부딪쳤다. 여원이 흠칫하며 사결의 가슴팍을 밀었다.
“우린 친밀한 비즈니스 파트너 아니었나?”
“맞지.”
여원이 더욱 혼란스러워했다. ‘이런 건 연인 사이에서 하는 게 아닌가?’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온 표정이다.
“몸도 섞었는데 겨우 이 정도 가지고?”
“그건….”
비공정에서의 일은 아직도 가장 큰 불가해로 자리해 있다. 왜 그랬는지 누가 물으면 저도 잘 모르겠다는 대답밖에 할 수가 없다. 그걸 들먹이자 여원은 할 말이 없어졌다.
음흉한 뱀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친밀함의 범위는 주관적이지. 게다가 어떤 도시에선 친밀함의 표시로 키스를 해.”
일반상식도 부족한데 멀리 있는 도시의 인사법 같은 건 모른다. 뱀 아가리에 물린 근육햄스터는 이번에도 그렇구나, 할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목적을 달성한 뱀이 주둥이를 들이댔다. 여원은 이번에도 피했다. 사결의 미간이 팍 찌푸려졌다.
“왜 또.”
“피 묻는다.”
“씻으면 돼.”
“인사는 한 번이면 되지 않나.”
햄스터는 성장했다.
“으와아아!”
때마침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주변에 서 있던 헌터들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그제야 옆으로 돌아갔다. 잔뜩 끓어오른 열기가 몰아쳤다.
블랙미스트.
벽.
미로.
부르는 말은 여럿이지만 그것이 그리샤에 있어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라는 건 이견이 없다. S급 헌터조차 저 검은 벽을 어쩌지 못했다. 수해에 잡아먹힌 헌터 중 반수는 저 마기 때문에 죽었다.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한 사람이 나타났다. 우르르 몰려든 헌터들이 찬사의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당황한 여원은 눈만 끔벅였고 사결의 기분은 수직 하향했다.
콰앙!
결국 거대한 얼음벽이 솟구치고, 날아간 헌터들이 비명을 지르고, 이현수가 울면서 난장판이 된 상황을 수습하며 현장이 마무리됐다.
소식이 전해진 그리샤는 다시 한번 발칵 뒤집혔다.
누가 뭘 했다고?
미친, 그게 정말이야?
모든 길드는 새로운 신성에 주목했고 시민들은 크레딧의 귀환자에 대해 검색하느라 단말기를 두드렸다. 몇몇은 헤스티아의 귀환자를 들이밀며 이 사람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문의 폭주로 크레딧 길드의 응대창구가 마비되었다. 헌터 협회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긴급연락을 했을 때 사결은,
“한동안 대외활동할 생각 없으니 신변 보호 잘 부탁합니다.”
라고 하곤 뚝 끊어버렸다.
가장 애가 닳은 건 기자들이었다. 수해에는 상급 헌터가 아닌 이상 발도 들일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전자기기는 먹통이 된다.
그 때문에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록하려면 헌터가 직접 수해용 단말기로 촬영하거나 드론의 블랙박스를 보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몇몇 헌터가 들어오는 장면과 나오는 장면을 찍어뒀다. 그 영상은 엄청난 가격에 팔려 뉴스와 기사에 실렸다.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그 분야의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죄다 튀어나와 감탄과 극찬을 하며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그것도 전부 추측이었고 정확히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본인밖에 모른다.
대체 블랙미스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태풍을 몰고 온 화제의 중심은 드론을 반납하자마자 길드 건물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 * *
콰앙!
헤스티아의 길드장은 분노했다. 그가 뿜어낸 열기가 집무실을 죄다 불살랐다. 마력으로 만든 불길은 연기도 없이 주변을 살라 먹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리샤에서 가장 소방시설이 잘된 곳은 헤스티아 길드였다. 곧 마력이 연결된 스프링클러가 물을 쏟아냈다.
흠뻑 젖은 배길수의 눈이 무시무시하게 번들거렸다.
“지금 이수영 어디 있어.”
그가 발작하는 내내 구석에 서 있던 김정수가 얼른 답했다.
“자기 방에 있습니다. 끌고 올까요?”
섬뜩한 시선이 김정수를 향했다. 등 뒤로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사내는 어색하게나마 웃었다. 저 분노의 끝이 자신을 향해 있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는 의외로 배길수를 제법 냉정하게 볼 줄 알았다.
남의 불행과 고통엔 세상 낄낄거리며 즐거워하지만 그게 자신이 되면 불같이 화를 내며 날뛰는 자.
‘크레딧 길드장에 대한 열등감으로 뭉쳐 있는 것도 그 때문이지.’
사결의 ‘사’자만 나와도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소인배. 그게 김정수가 보는 배길수였다.
“당장 끌고 와!”
김정수가 얼른 튀어 나갔다.
복도를 내달린 그는 금세 목적한 곳에 당도했다.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던 B급 헌터들이 두말없이 몸을 비켰다.
안으로 들어가자 초조하게 다리를 떨던 사내가 벌떡 일어났다. 김정수를 맞이한 낯이 절망으로 거멓게 죽었다.
평범하고 왜소하고 심약했다. 헌터답지 않고 헤스티아에는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길드장이 찾는다.”
사내의 얼굴은 바로 사색이 됐다. 그가 곧 졸도할 것처럼 숨을 헐떡이다 간신히 말했다.
“아, 안, 안 가면….”
“네가?”
“…….”
김정수의 비웃음에 귀환자의 낯이 파래졌다가 하얘졌다가 했다. 코웃음을 친 부길마가 먼저 몸을 돌렸다. 오래지 않아 등 뒤에서 시체 같은 인기척이 뒤따랐다.
김정수는 혀를 찼다. 속으로는 배길수도 천시하는 그였지만 그래도 길드장의 강함만큼은 인정했다. 반면 지금 뒤에서 강아지풀처럼 팔랑이는 녀석은 그가 제일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대체 저런 자가 그 ‘마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지? 똑같은 생각을 했던 배길수가 물었고 그때 이수영은 힘없이 답했다.
‘그곳은 머리 쓰는 놈이 귀합니다. 그래서 펜 잡을 줄 아는 약한 놈들은 할 일만 잘하면 죽이지 않습니다. 암묵적인 합의 같은 거죠.’
그는 배길수의 옆에서 주워들은 마계의 정보들을 떠올렸다. 신기하면서도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이수영의 말에 따르면 거긴 중세판타지와 비슷했다. 계급과 신분이 있고 철저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그리고 이수영은 기사계급 마족에게 노예로 거둬져 서류처리를 하다 이레귤러 게이트에 몸을 던져 돌아왔다.
그야말로 운이 좋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갈 때는 게이트를 넘어가면 되지만 한 번 넘어가면 같은 게이트로는 넘어올 수 없다. 다른 게이트를 찾아야 하기에 생환율은 더욱 낮았다.
‘어쨌든 마기에 적응은 했다는 거니 대단하다고 해야 할….’
김정수의 생각이 채 끝나기 전, 과한 긴장 상태였던 이수영이 엘리베이터 소리에 놀라 튀어 올랐다.
“흐어억!”
“…등신.”
하나는 확실했다. 이수영에게서 전해 들은 마계는 김정수조차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지옥이었다. 그런 곳에서 이런 심약한 사람이 살아남은 건 진짜 운이 좋았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 밥버러지 같은 놈!”
그리고 이수영은 평생 운을 거기서 다 쓴 모양이었다.
배길수는 아직도 열이 올라 있었다. 그가 다짜고짜 이수영을 핍박하기 시작했다.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갔다. 마력운용계라지만 S급이다. 거기에 얻어맞은 허약한 D급 육체강화계가 바닥을 뒹굴었다. 억, 억 하는 소리와 매타작 소리만 울려 퍼졌다.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이지만 배길수의 가장 좆같은 점은 그런 척만 하고 철저히 이성적으로 팬다는 거다. 아마 좀 있으면 그만둘….
퍽! 퍽!
그만둘 때가….
퍼버벅!
뭔가 이상했다. 눈에 핏발이 선 게 진짜 돌아버린 사람 같았다. 김정수가 다급하게 나섰다.
“아이고 길드장님 그만하십쇼. 그러다 진짜 죽습니다.”
“후욱. 훅.”
거친 숨을 몰아쉰 배길수가 김정수를 봤다. 그가 흠칫했다. 평소에도 제정신은 아니었다. 또라이처럼 굴지만 눈은 사자 같은 자. 그게 헤스티아 길드장이었다. 그런데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은 미친 소리 같지만, 배길수가 아닌 것 같았다.
‘뭐여?’
순간 등줄기가 선뜩했다.
“어?”
바닥에 엎어져 있던 이수영이 꿈틀거리며 일어나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화면이 깨진 패드였다. 길드장이 크레딧 귀환자에 대한 기사를 보고 열 받아서 패대기친 물건이기도 했다.
거기엔 무표정한 귀환자의 모습이 크게 확대되어 있었다. 이수영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중얼거렸다.
“서, 성주님?”
“뭐?”
배길수가 되물었다. 이질감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눈빛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김정수가 탐색하듯 길드장을 훔쳐봤다.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잘못 봤나.’
“그게 뭔 소리야. 이 녀석이 성주라고?”
뭔가 느낀 배길수가 이수영을 을렀다. 그는 더듬거리며 믿을 수 없는 소리를 했다. 옆에서 같이 들은 김정수도 귀를 의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