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F급 귀환자의 블랙미스트 단독공략.
기사가 쏟아지고 다시금 크레딧 길드 주변으로 인파가 북적이기 시작했다. 그리샤의 모든 사람이 이번 일에 대해 떠들었다.
헤스티아의 D급도 해결 못 하고 포기했는데 F급이 무슨 자신감이냐. 크레딧을 등에 업고 기세만 등등한 거 아니냐. 이런 의견은 소수였다. 대부분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결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와 지지가 그만큼 높다는 뜻이었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F급 귀환자는 믿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귀환자를 블랙미스트에 혼자 보내기로 사결이 판단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그런 믿음이다.
그리샤 전체에서 가장 강하고 믿음직스러운 남자. 그게 바로 사결이라는 뜻이다.
여원이 묵묵한 낯으로 그를 돌아봤다. 체면도 잊은 그가 안절부절못하며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사결.”
“응. 왜?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걱정 마. 매스컴이 뭐라고 떠들어대건 내가 전부-”
“…진정해라.”
수해 내에 자리한 베이스캠프. 드론을 통해서만 올 수 있는 이곳은 수해 안쪽으로 들어갈 때마다 하나씩 새로 세우는 이동식 캠프였다.
여러 방향에서 길드별로 그룹을 나누어 들어가는 만큼 베이스캠프도 항상 여럿 있다고 했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남동쪽의 [호텔]로 ‘파도의 자장가’ 길드를 비롯한 세 개 길드가 주축이 되는 곳이었다.
같이 온 사결은 뒤늦게 불안해졌는지 계속 뭔가 말하려다 말고, 또 말하려다 말길 반복하고 있었다. 저 하려다가 만 말이 뭔지 여원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사결.”
조용히 부르자 우뚝 멈춰선 그가 잘 훈련된 개처럼 달려와 섰다. 멀찍이 선 이현수가 다 포기한 얼굴로 이쪽을 보다 다른 길드 사람과 다시 말을 나눴다.
“진정해라.”
“젠장. 그게 내 마음대로 안 돼.”
그는 답지 않게 초조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했다.
“날 믿나?”
“당연히… 믿지.”
“그래. 착하군.”
여원이 손을 들어 살짝 위에 있는 사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순간 주변에 끔찍한 정적이 흘렀다.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말도 없었다. 목격자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숨을 죽인 채 사결의 반응을 기다렸다.
누군가 마른 침을 삼켰다. 그가 아는 사결은 한 마디로 대의를 가진 미친놈이었다.
그리샤를 구한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영웅적인 일이다. 업계에서 조금 떨어진 시민 다수는 사결을 영웅시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헌터들은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저건 미친놈도 아니고 미친개였다. 그렇게 처 맞… 당하고도 끈질기게 엮이려 드는 헤스티아 길드장이 대단해 보일 정도다. 모든 사람이 사결을 봤다.
그래도 소문으로는 저 미친 새끼가 귀환자라고 애지중지한다는데. 과연 어떻게 나올 것인가.
“내가 착한 걸 이제 알았나?”
사결이 부루퉁하게 답했다. 헌터들이 입을 쩍 벌렸다. 몇몇은 무기를 꼬나쥐었다. 뭐지 저건. 길드장의 탈을 쓴 마물인가? 모습을 바꾸는 종류의?
“아니. 알고 있었지.”
태연하게 대답한 여원이 희미하게 웃었다. 여태 사결이 봐 온 것 중 가장 짙은 웃음이었다.
“계속 착하게 기다리고 있어.”
사결은 새삼 깨달았다. 아, 나 이 새끼 진짜 좋아하네.
여원은 뒤도 보지 않고 저벅저벅 블랙미스트로 걸어 들어갔다. 뒤늦게 헌터들이 경악했다.
“뭐, 뭐야?!”
“저길 저렇게 들어간다고?!”
“이런 미친. 진짜 미친.”
그런 반응을 해 봤자 들어간 사람은 이미 넘실거리는 마기에 삼켜져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물과의 보이지 않는 전투가 시작됐다.
캬우아악!
크르아악!
…분명 포효로 시작했는데 끝나는 건 비명이다. 착각인가 했지만 아니었다. 갈수록 포효는 줄고 마물이 지르는 비명만 사방에 울려 퍼졌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그렇게 생각했던 헌터들의 뇌리로 방금 아무렇지도 않게 저 마기를 헤치고 들어간 사람의 등이 떠올랐다.
당당했다. 진짜 무서운 점은 두려움이고 뭐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등이었다는 거다. 마치 어디 마실이라도 나가는 분위기였다.
귀환자.
헤스티아 소속 귀환자의 무능을 한 번 겪었던 탓일까. F급이라는 말에 그냥 퍼포먼스라고 생각했던 이들이다. 여원이 들어간 자리에 시선이 모였다.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거 어쩌면.
“설마 정말로….”
누군가 조용히 중얼거린 말에 장내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말한 사람이 당황해서 입을 다물었다. 자신도 소리 내어 말한 줄 몰랐던 것 같다.
그때, 조용한 경고가 날아왔다.
“탐내지 마.”
묵직하게 울리는 목소리였다.
“내 거야.”
사결은 나른하게 웃었다.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 검은 눈동자가 위험한 빛을 냈다.
기겁한 헌터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돌이켜보면 꽤 부끄러운 짓이었지만 헌터로서의 감이 소리치고 있었다.
이건 네 목숨이 달린 일이라고.
영 탐탁지 않은 듯 보던 사결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가 여원이 들어간 자리를 조용히 응시했다. 이젠 블랙미스트 전체가 들썩이고 있었다.
벽처럼 자리하고 있던 마기의 안개가 일렁이며 사방으로 손을 뻗쳤다. 형태가 뭉그러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마치 마기 자체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크아아아!
그때, 지금까지의 포효와는 질이 다른 포효가 사방을 뒤흔들었다. 헌터들의 표정이 일변했다.
“보스?”
“보스가 껴 있었다고?!”
불길한 예감이 든 이현수가 사결에게 붙어 섰다. 여원이 들어갈 때까지도 반신반의하다가 마물의 비명이 꾸준히 들려오는 것에 한시름 놨던 그였다. 하지만 보스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C급 마물 무리라도 놈들을 이끄는 대장은 대부분 A급이다.
출몰하는 경우는 그만큼 드물지만 그놈 하나 때문에 본래 C급이어야 할 게이트가 A급 딱지가 붙는 형편이다.
그런데 블랙미스트에 사는 마물의 보스라니!
아니나 다를까 표정이 굳은 사결이 순식간에 전투태세가 되어 블랙미스트를 향했다. 이현수가 뒤에서 덮치듯 저지했다.
“네가 들어가면 안 되지!”
얼마나 급했는지 반말이다.
“안 들어가.”
“그 발이나 멈추고 말하십쇼!”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존대했지만 그런 건 귀에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아니 이현수의 말 자체를 안 듣고 있었다.
그 증거로 사결은 이현수를 매단 채 앞으로 뛰어갔다. 식겁한 이현수가 중력으로 사결을 내리누르며 소리쳤다.
“믿는다면서요!”
저승의 악귀 같은 표정으로 나아가던 그가 멈칫했다. 사결은 바로 앞에서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는 블랙미스트를 노려봤다. 너울거린 마기가 뺨을 스쳤다.
치직.
그 부분이 급성 마소 중독 증세를 보이며 까맣게 변했다.
“으으.”
이현수는 질색하면서도 잡은 팔을 놓지 못했다.
사결은 지금 자신이 비이성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맨몸으로 이 안에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다.
그럼에도 발길이 자꾸 앞을 향했다. 안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보스급 마물의 비명만 아니었다면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걸어 들어갔을지도 몰랐다.
카아아악!
“지, 지금?”
누가 들어도 그건 단말마였다. 보스와 조우하고 대략 20여 초. 객관적으로 얼마 되지 않을 그 수십 초가 사결에겐 엄청나게 길게 느껴졌다.
그 후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사방으로 뻗치던 마기도 잠잠해졌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렸다. 자리에 있던 모두가 아는 소리였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진저리를 쳤던 마기 덩어리로 두려움도 없이 걸어 들어갔던 사내가 되돌아오고 있었다.
마침내 여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한 손에 쥔 도끼에서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사결의 표정이 굳었다. 어깨를 잡으려다 피투성이인 것을 보고 멈춘 그가 어딜 다쳤냐고 다그치듯 물었다.
“다치지 않았다.”
“…안 다쳤다고?”
여원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게 다 마물의 피라는 건가?”
“오랜만에 하려니 조절이 잘 안 돼서.”
민망한 손등이 피가 묻은 턱 부근을 문질러 닦았다. 왜 변명하는지도 모르면서 변명하는 게 티가 났다.
“원래는 한 방에 머리를 쪼갰다.”
“…….”
“진짜다.”
‘공허’는 대규모 전투가 아니고선 잘 쓰지 않았다. 냅다 가서 도끼로 머리를 찍는 것. 그게 여원 특유의 전투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안에 들어가니 마기가 짙어도 너무 짙었다. 침입자를 향한 음험한 살기 덕에 적의 위치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으나 세세한 생김새까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 쪼개서 잡느라 시간이 걸려버렸다.”
둘의 대화를 잠자코 듣던 헌터들이 몸을 떨었다.
‘쪼개? 뭘 쪼개?’
‘저런 말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저 크레딧 길드장은 데려와도 꼭 저 같은 괴물을….’
‘그래. 저 사결이 데려왔는데 정상일 리가 없지.’
‘이, 이거 좋아해야 하는 일인 거 맞지? 그렇지?’
여원이 미묘한 분위기를 읽고 좌중을 둘러봤다.
“이쪽에도 뭔가 일이 있었나?”
“아니. 아주 평화로웠다.”
평화는 개뿔.
이현수는 울컥했지만 꾹 참고 뒤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