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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64)화 (64/106)

64화

“이런 짓. 해도 괜찮나.”

“괜찮아. 그리샤에서 난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거든.”

자신을 ‘자원’이라고 말하는 게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걸 굳이 언급하진 않았다. 대신 해야 할 일을 상기했다. 

“블랙미스트는 계약대로 내가 해결하겠다.”

“안 돼.”

말문이 막혔다. 애당초 그가 귀환자라는 이유로 끈질기게 달라붙었던 사결이 아닌가. 그런데 계약까지 해 놓고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여원이 차게 식은 눈으로 사결을 쳐다봤다.

“그건… 네가 F급일 줄 몰랐으니까.”

사결이 변명했고,

“등급은 내게 의미가 없다.”

여원이 사실을 말했다.

등급은 인간들이 마나를 기준으로 매긴 분류표다. 애당초 마나가 아닌 마기를 사용하고 탈피를 통해 강인한 육체를 가지게 된 그에겐 아무 상관이 없다. 

“그래도 안 돼.”

“…….”

둘의 실랑이는 훈련을 마치고 나와서도 계속됐다. 때마침 길드 본관에서 맞닥뜨린 이현수가 합류하며 저울추가 살짝 기울었다.

“사장님이랑 싸워서 이겼다면서요. 그런데 뭘 걱정합니까.”

“싸운 게 아니라 훈련….”

“그게 그거죠.”

사결이 사납게 눈을 치뜨자 이현수가 모른 척했다. 말주변이 없는 거지 눈치는 있는 여원이 이때다 싶어 입을 열었다.

“나는 전 마계 군단장이었다. 마족도 아니고 마물을 상대하는데 다칠 일 따위 없어.”

“그게 정말입니까?”

이현수가 눈을 빛냈다. 여태 사결에게 가로막혀 말 꺼낼 기회가 없었을 뿐, 마계라는 미지의 세계는 모두가 알고 싶어 하는 불가해의 영역이었다.

여원은 마계 구석의 작은 영지를 다스리던 시절의 일화를 몇 개 꺼냈고,

“흥미롭네요.”

이현수는 눈을 빛내며 그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마찬가지로 재밌게 들은 사결은 새삼 깨달았다.

자신과 이현수는 두뇌 타입처럼 보여도 어디까지나 현장에서 몸으로 때우는 게 일이다. 그런 자신들도 이럴진대, 본격적으로 마계학을 파고든 학자들의 눈에 귀환자는 어떻게 보일 것인가.

헤스티아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제발 면담 한 번만 하게 해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던 그들은 이번에도 역시 눈을 뒤집고 달려들었다.

예약을 잡으려다 거절당하자 우르르 길드 본관에 몰려온 것이다. 사결은 당연히 강압적인 명령을 내렸다. 조금이라도 선을 넘으면 다소 과격해도 상관없으니 다 쫓아내라고 성질을 부렸다.

헤스티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F급이라고 공표했음에도 학자들은 여원이 금덩이라도 되는 양 굴었다. 처음에는 한심하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들 심정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고나 할까.

‘물론 그런다고 만나게 해 줄 생각은 없지만.’

학자 중에도 헌터는 있다. 

대부분 하급이고 끽해야 중급이지만 F급에겐 충분히 위협적이다. 그들이 힘으로 어떻게 해 보려고 하면 순순히 당할 듯해 걱정…이 됐는데.

“왜 그렇게 보지?”

여원은 자신을 이겼다. 순수한 육체 능력만 보면 A급 못지않을 것이다.

“내 연인이 너무 잘난 것 같아서.”

“……?”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무표정이라 알아차리기 쉽지 않지만, 저건 분명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여원이 되물었다. 

“연인?”

사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잠깐, 그 반응은 뭐야.”

“우리가… 사귀는 사이인가?”

두 사람 다 말을 잃었다. 길고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저, 전 이만 일이 있어서.”

이현수가 파란을 예감하고 도주했다. 사결의 집무실에는 두 사람만이 남았다. 주변 온도가 급격히 냉각됐다. 여원의 표정도 그에 맞춰 싸늘하게 식었다.

“하지 마.”

“뭘.”

“그거.”

눈을 가늘게 뜬 사결이 잠깐 침묵하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한순간에 공기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여원은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다.

지금 화를 내야 할 사람이 누구인데. 답답함에 팔짝 뛰고 싶은 심경을 꾹 눌러 참았다. 

눈앞에 있는 건 20년을 마계에서 보낸 마계 사람이다. 다른 차원에서 왔으니까 외계인이라고 해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사는 도시만 달라도 문화 차이에 언어 차이까지 발생하는데 차원까지 달랐으니 오죽하겠나.

사결이 습관처럼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여원에게 접근했다. 슬쩍 몸을 밀어붙이자 미는 대로 순순히 밀린다. 곧 여원의 엉덩이가 책상에 닿고 그의 상반신이 살짝 뒤로 기울었다.

그냥 분위기만 잡을 생각이었는데 바로 앞에서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를 보자 한 발 더 내디뎌도 되겠다는 확신이 섰다. 그가 굳게 닫힌 입술을 입술로 덮었다. 별 반응이 없다. 심지어 꽉 닫은 채 절대 열어주지 않았다.

불쑥 치솟은 장난기에 상의 아래로 손을 쑥 넣었다. 그러자 당황한 눈이 크게 뜨이고 입이 살짝 벌어졌다. 사결은 즐겁게 감상했다. 그가 기다렸다는 듯 혀를 밀어 넣었다. 손은 긴장으로 단단해진 복근을 지나 가슴팍을 더듬었다. 

여원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귀엽네.’

이런 것마저 귀엽게 생각되자 정말 글러 먹었다는 확신이 섰다.

“왜 이건 하지 말라고 안 해?”

“하지 마.”

“정말?”

“…….”

사결이 두툼한 가슴팍을 꽉 쥐었다. 여원이 잇새로 신음을 삼켰다. 느린 손끝이 유두를 지분거렸다. 그는 일부러 왼쪽 가슴엔 손을 뻗지 않았다. 거긴 아직 여원이 허락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는 백담의 영화관에서 여원이 보인 반응을 똑똑히 기억했다. 

‘뭘까.’

아래로 내려간 그가 목덜미를 잘근잘근 깨물고 빨아들였다. 

‘네가 여기에 담고 있는 게.’

숨이 거칠어진 여원이 처음으로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여기서 더 하면 안 되겠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사결은 순순히 떨어져 나왔다. 

사내는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을 한 채 손바닥으로 턱과 뺨을 길게 문질렀다. 태연한 움직임이다. 그런다고 미세하게 달뜬 숨까지 감춰지진 않았지만 말이다.

픽 웃은 사결이 눈앞의 근육햄스터에게 슬금슬금 꼬리를 감았다.

“일단 묻겠는데, 그럼 넌 우리가 무슨 관계라고 생각한 거지? 철저한 계약관계? 아니면 동질감을 느끼는 비즈니스 파트너?”

“나도.”

여원이 눈을 내리깔았다.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게 눈에 보였다.

“나도 잘 모르겠다.”

여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대답이었다. 그게 오히려 사결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아니야. 침착하자.’

끓어오르는 걸 억지로 내리누른 사결이 여원에 대한 걸 되새겼다. 그는 아주 어릴 때 마계에 떨어졌고 무려 20년을 머물렀다. 중간계에 돌아오고 이제 겨우 2년째. 백담에서보단 나아졌지만 여전히 상식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건 결국 이런 쪽에 대한 눈치나 지식도 부재하다는 뜻이다. 사람의 관계가 계약서의 문구처럼 칼같이 설정할 수 없단 것도 모를 만큼.

“우린 계약을 했다. 목적을 이루면 너는 내 삶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고, 나 역시 그럴 생각은 없어. 그러니 적어도 연인이라곤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저런 소리를 진지하게 늘어놓고 있는 거겠지. 답지 않게 말이 길다는 것도 그가 동요했다는 것을 뜻했다.

그걸 알아도 기분이 나쁜 건 나쁜 거다. 사결이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흠칫한 여원이 눈치를 보며 어물거렸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사결이 180도 달라진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원은 흠칫하며 경계했다. 이 인간이 또 뭘 어쩌려고. 상식은 없지만 사결에 대한 경험은 있는 근육햄스터가 눈을 가늘게 떴다. 

“생각해보니 우리 사이가 말 한마디로 정리될 사이는 아닌 것 같네. 내가 경솔했어.”

경계가 심해졌다. 사결은 요만큼도 개의치 않았다. 그가 돌 같은 여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하기엔 여러모로 얽힌 게 많으니까. 일단 임시로 친밀한 비즈니스 파트너 정도로 해 둘까?”

그걸 그렇게 정해도 되는 건가.

은근하게 깔린 심계를 알아차릴 능력이 있었으면 애당초 지금 같은 상황도 없었을 것이다.

사결은 뱀처럼 웃었다. 서서히. 몸이 조여든 줄도 모르게 잡아먹어야지. 인내심이 조금 필요하긴 하겠지만 상관없다. 완전히 선 밖에 있다면 모를까. 영역 내에 먹이가 있는 이상 그는 얼마든지 느긋해질 수 있었다.

“알겠다.”

친밀하지만 어쨌든 서로의 목적을 위한 공적 관계라는 건가. 그 정도라면.

그런 표정으로 근육햄스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뱀은 그런 맹함이 사랑스러웠다. 

“어쨌든 블랙미스트는 내가 해결하겠다.”

…하나가 해결되자 잊지도 않고 냉큼 원제로 돌아가는 부분은 조금 짜증 난다. 사결은 혀를 찰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이렇다 할 대답이 없자 여원이 재차 말했다.

“소원. 아직 안 말했지.”

맞다. 훈련 때 대결에서 이긴 여원은 아직 소원을 말하지 않았다. 더 물러날 곳이 없어졌다.

“그 소원으로 네가 블랙미스트를 해결하게 해 달라고 하려고?”

말에 살짝 날이 섰다. 여원은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날 믿어달라는 소원을 빌겠다.”

사결은 진지하게 생각했다. 이걸 한입에 넣을 수 없을까. 좀 크고 단단하긴 한데 어떻게 입에 넣기만 하면-.

“사결?”

“하아아.”

욕심 많은 사내는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절대 다쳐오지 마. 그게 조건이야.”

“노력해 보겠다.”

지극히 여원다운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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