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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62)화 (62/106)

62화

머리는 분명 그렇게 생각하는데 가슴은 긴장으로 바짝 조였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속이 울렁거렸다.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온 사결이 손을 뻗었다. 팔을 단단히 잡더니 슬쩍 당긴다. 순순히 걸음을 옮기자 몸을 붙인 그가 입술을 내 귓가에 댔다. 

“그리샤에서 F급이면 그냥 일반인이나 다름없어.”

심장이 철렁했다. 사결은 여전히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위험하니까 앞으로 집 밖으로 나오지 말고 어디 가도 나랑 꼭 같이 가.”

“…….”

분명 딱딱하게 굳은 표정인데 왜 내 눈엔 웃는 것처럼 보일까. 심지어 건수 하나 잡은 사채업자의 모습이 잔상처럼 겹쳐 보였다. 

“당장 호위 인원부터 선별해야겠네. 아니다. 그냥 아예 같이 출근하자.”

자기가 말해놓고 이거다 싶었는지 ‘그래, 그럼 되겠네.’라며 중얼거렸다. 멀미는 심해졌고 철렁한 심장이 부끄러웠다.

심각한 건 이현수뿐이었다. 그는 올 때보다 더 퀭해진 낯으로 비척거렸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사결은 여전히 신나서 내가 그와 가깝게 지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피력했다. 

이현수는 더욱 괴로워했다. 그는 일이 완전히 어그러졌다고 앓는 소리를 냈다가 사결의 눈총을 받았다. 

* * *

헤스티아의 길드장 배길수는 입이 귀에 걸렸다. 

“하하하! F급이란 말이지?!”

크레딧 길드에서 간신히 찾은 귀환자가 F급이었다는 소식이 온 그리샤에 파다해서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수전노로 유명한 그가 보너스를 뿌렸다. 길드원들은 웬일이냐고 수군거리면서도 일단 준다니까 좋아했다. 

배길수가 일주일 내내 입만 열었다 하면 그 이야기를 하기 전까진 분명 그랬다.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생각했다. 저 주둥아리를 지져서 붙일 순 없을까. 물론 직접 실행에 옮길 순 없으니 다들 상상으로만 끝냈다. 

“크레딧 놈들. 귀환자 찾았다고 좋아하더니 꼴좋게 됐습니다!”

개중에 단 한 명. 진심으로 동조하는 사람도 있었다. 흥분해서 얼굴을 붉힌 40대 남자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부길드마스터인 김정수였다.

그는 과거 사결에게 잘근잘근 밟힌 이후, 크레딧과 사결에 대한 악감정이 정점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김정수의 옹호에 배길수가 더욱 큰 소리로 웃었다.

크하하하!

크헬헬헬!

듣기 싫은 두 웃음이 하모니를 이뤘다. 한참 웃던 배길수가 손가락을 튕겼다.

전면에서 거대한 불길이 번졌다. 열기에 그대로 익어버린 비행형 마물이 날다 말고 떨어졌다. 몸에 불이 붙은 마수가 고통에 찬 울음을 뱉으며 달려들었다.

옆에 선 김정수가 불로 만들어진 길고 두꺼운 창을 띄웠다. 맹렬하게 회전한 창이 거북이를 닮은 마수의 입과 목을 꿰뚫었다.

쿠웨에엑!

마수는 비명과 함께 절명했다. 속성우위 때문에 비교적 쉽게 잡았지만 무려 A 상급이다. 분류번호 A-32. 헌터들은 ‘나무거북이’라고 부르는데 이름처럼 몸이 거대한 나무로 이루어졌고, 등에는 돌로 만들어진 딱지를 얹은 터틀 드래곤이었다. 

“끝났다. 진화해.”

대기하고 있던 수속성 헌터들이 일제히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헤스티아의 수해 공략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소속 헌터도 불속성 비율이 8할 이상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배길수가 학연도 지연도 아닌, 속성연에 꽂힌 탓이었다. 그는 그와 같은 불 속성 헌터는 우대하고 그 외 속성은 배척했다. 

그럼 더러운 꼴을 보며 여전히 헤스티아에 붙어 있는 나머지 2할의 헌터들은 죄다 호구들이냐. 그렇지 않다. 그들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범죄 이력이 있는 사람, 그리샤에 불법으로 이주해 온 중급 헌터, 헤스티아 캐피탈에 빚을 지고 이자감면 조건으로 들어온 사람, 이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헌터는 다른 길드보다 돈을 많이 받았다. 

이런데도 그리샤 길드 랭킹 2위다. 무식하고 생각 없어 보이는 그의 경영 능력도 다시 생각해 볼 일이라고 수속성 헌터들은 생각했다.

“좋아. 오늘은 회식이다! 3차까지 갈 거니까 중간에 빠질 생각 말고!”

…확실히 사연 없이 붙어 있을 만한 곳은 아니다.

그때, 불길 속에서 손톱만 한 게 풀쩍 뛰어오르더니 배길수의 목덜미에 붙었다. 커다란 손이 제 목덜미를 짝 때렸다.

“아 뭐야.”

미간을 찌푸린 남자가 손을 탈탈 털었다. 하얀 재 같은 게 날렸다. 김정수가 물었다.

“뭐였습니까?”

“몰라. 마계 곤충이었나 보지.”

“돌아가면 병원에 가 보시는 편이….”

“됐어. 어차피 어지간한 독은 안 통해.”

불속성에 대한 자긍심이 넘치다 못해 뚝뚝 떨어졌다. 사실이기도 했다. 고열로 타오르는 속성은 어지간한 독쯤은 태워 없앤다. 김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길수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린 곳을 긁적였다.

“회식이나 하러 가자. 삼겹살 괜찮지 다들?”

안 괜찮아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애매하게 웃은 길드원들이 철수 준비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몸을 돌린 배길수의 목 뒷부분이 잠깐 불룩해졌다 가라앉았다.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다.

* * *

등급 측정 이후, 여원은 본격적인 훈련을 받게 됐다.

측정 때 속성이 뜨지 않아 그는 자연히 육체강화계로 분류됐다. 선호하는 무기로는 도끼를 골랐다. 헌터들이 잘 쓰는 무기는 아닌지 트레이너가 연신 괜찮냐고 물었다. 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계에서 썼던 무기입니다.”

근육질 사내가 흠칫했다. 그 순간엔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몰랐다.

훈련 일주일 차. 트레이너와는 미묘한 거리감이 생겼다.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사결에게 상담했다간 트레이너가 이유도 없이 잘릴 것 같아 여원은 홀로 고민했다. 아무래도 ‘마계’에 대해 언급한 게 지뢰였던 것 같다.

귀환자라고 머리로만 알고 있다가 피부로 체감해 버린 것 같다고 할까. 눈앞의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아득한 괴물의 세상을 헤매다 돌아온 같은 괴물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헌터. 그것도 현장을 벗어난 곳에서 트레이너로 활동하는 헌터라면 마물과 관련된 트라우마 한둘쯤은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니까.

‘딱히 상관은 없지.’

여원은 그에게서 배울 게 아무것도 없었다. 트레이너도 첫날 그가 도끼를 휘두르는 걸 보자마자 깨닫고 자율 트레이닝으로 방향을 잡았다. 어쩌면 거기서 한층 더 괴리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후웅!

날 없는 도끼가 허공을 갈랐다. 일개 F급이 보일 만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트레이너가 질린 표정을 했지만 상관 않고 훈련에 집중했다.

훈련 때는 특수소재로 만들어진 무기를 썼다. 무게는 있으나 날도 둔탁하고 색도 인위적인 녹색이라 처음엔 다소 불만이었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주무기를 손에 쥐고 마음껏 몸을 움직이자 갑갑함이 좀 풀렸다.

점점 몰두한 여원은 누가 온 줄도 몰랐다. 문득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자 트레이너는 어디 가고 사결이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트레이너는 필요 없겠군.”

여원은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실력을 봤으니 적어도 트레이너가 오해로 인해 잘리진 않을 거라 믿으면서.

“그럼 대련 상대는 어때.”

의문을 표하자 사결이 겉옷을 벗고 셔츠를 돌돌 말아 올렸다. 

“네가?”

“왜. 마력운용계라 약할 것 같나?”

여원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카페에서 스치듯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사결은 마물을 찢는다.’

가볍게 도끼를 돌린 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결이 픽 하고 웃었다. 

그걸 보자 오랜만에 호승심이 생겼다. 마계의 근본 없는 전쟁은 질려 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실력을 겨루는 대련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여원은 약자로 시작해 강자로 거듭났다. 직접 기른 힘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이 있었다.

“잠깐.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내기를 하지. 진 사람이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 어때?”

사결이 가볍게 몸을 풀며 말했다.

“대신 속성사용은 금지. 나는 이것도 착용하겠어.”

포션 보다 귀하다는 아티팩트였다. 그것도 범죄를 저지른 헌터를 구속하는데 쓰는 구속구다.

후회할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여원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 불필요한 핸디를 안고 가겠다는데, 그러라고 하지. 소원을 뭐로 할지 고민하며 도끼를 움켜쥔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사결의 눈이 커졌다. 자기가 제안하고도 받아들일 줄 몰랐다는 반응이다. 그가 정말이냐고 되물었다. 여원이 희미하게 웃었다.

“번복하면 물릴 생각은 있고?”

“…….”

당연히 없다.

커다란 손이 도끼를 가볍게 휘둘렀다. 후웅. 훙. 날 없는 도끼가 허공을 가르며 범상치 않은 소리를 냈다. 전 마계 군단장이 경고했다.

“죽지 마라.”

“…잠깐만.”

뭔가 이상함을 느낀 사결이 중얼거렸지만 이미 늦었다.

약 5분 후, 뺨과 어깨에 푸른 멍이 든 사결이 숨을 헐떡이며 비틀거렸다. 여원은 멀쩡했다. 훈련복이 좀 찢기고 생채기가 나긴 했지만, 걸레짝 같은 상대를 감안하면 그야말로 온전하다고 할 만하다.

도끼를 갈무리한 승리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패배자는 허탈하게 웃으면서도 결과에 승복했다.

무기를 정리한 후에도 몸이 후끈후끈했다. 오랜만에 만끽하는 전투 감각이 신경을 달궜다. 여원이 손을 반복적으로 쥐었다 폈다.

좋다. 아주 좋다. 고양된 감정을 감추지 못하며 숨을 고르는데 바로 옆에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 흠칫한 그가 고개를 돌렸다.

“괜찮나?”

너무 심했나 싶어 묻자 사결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렇지도 않다.”

그렇게 대답하는 사결의 뺨은 푸르딩딩했고 다리는 갓 태어난 사슴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좀 심했던 게 맞다. 너무 오랜만의 대결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여원이 머뭇거리며 입을 뗐다.

“소원으로 뭘 말하려 했지?”

“내기는 네가 이겼어. 네 소원을 말해야지.”

“듣는 건 상관없지 않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여원은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음험한 소원들을 떠올렸다. 괜히 물었나. 미약한 후회가 일기 직전 사결이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해 달라고 하려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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