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8장. 고백
길드 건물을 나서자마자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이쪽 한 번만 봐 주세요!”
“새로운 귀환자를 어떻게 발견하신 겁니까?”
“이번에도 크레딧 길드에서-”
이현수를 위시한 A급 헌터들이 몰린 기자들을 헤치며 길을 열었다. 대부분 일반인에 기껏해야 하급 헌터인 이들이 우르르 밀려났다. 거친 행동에 반발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사결이 노려보자 그대로 찌그러졌다.
차 문이 닫히고 차체가 움직였다. 목적지는 바로 옆에 있는 헌터 협회였다. 5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곳을 차로 가야 한다는 게 웃겼지만, 도저히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차에 타서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밖의 경호원들이 길을 텄다. 차체는 그 틈새를 느리게 나아갔다.
선팅이 짙게 된 차창 너머로 멍하니 밖을 보며 어제를 회상했다.
계약서에 사인하고 쇼핑까지 마친 후 돌아오는 길. 나는 동준의 신변에 관해 물었다. 웃음이 떠나질 않던 사결은 기분이 급격히 나빠졌지만, 대답을 피하진 않았다.
‘정말 아무 짓도 안 했어. 아마 지금쯤 집에 가서 쉬고 있을걸?’
내가 못 믿겠다는 듯 묵묵히 보자 사결이 어깨를 으쓱였다.
‘며칠 연락하지 말라고 협박하긴 했지만 그게 다야.’
나는 그 즉시 동준에게 연락했다. 신호가 두 번이 채 가기도 전에 단말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에 대한 걱정과 염려를 쏟아내던 목소리는 옆에서 불쑥 뻗어 나온 사결의 손과 함께 사라졌다. 그가 연락을 끊은 것이다.
‘무사한 거 확인했으니 됐지?’
‘…전할 말이 있다.’
‘뭔데.’
‘카페.’
‘카페가 뭐-’
아마 나와 같은 장면을 떠올렸을 사결이 입을 다물었다. 카페는 난장판이었고 문도 잠그지 않았다. 내일 출근할 동준이 그걸 보면 매우 놀랄 게 분명했다.
‘사람 보내서 수습해두라고 하지. 이제 됐어?’
사결이 이를 갈며 말했다. 전혀 되지 않았지만 여기서 타협해야 한다는 건 알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수가 말했다.
‘우선 여원 님의 정확한 등급을 측정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리샤의 헌터 협회에서 정식으로 헌터 등록을 하고 공식적 활동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결이 내 손목을 노려봤다.
‘그 전에 ID부터 적출하고 새로 넣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더 숨길 이유도 없으니 진짜 이름을 쓰는 게 당연하잖아.’
진짜 이름.
듣고 보니 묘한 기분이다. 인간쓰레기 같았던 아버지는 나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고 마계에선 ‘에이원 예니스’였다. 목숨을 걸고 중간계에 귀환한 후엔 ‘김철수’라는 가명을 썼다.
그리샤에 와선 가명을 다시 가명으로 바꿨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무뚝뚝한 카페 직원인 유진이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서여원’은 내게 무척 낯설었다. 오히려 이름의 주인인 나보다도 이 사내가 더 애착을 가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헷갈리기도 하고. 혹시 공식 석상에서 실수하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그가 은근히 속삭이며 몸을 내 쪽으로 슬쩍 움직여 거리를 좁혔다. 나는 가만히 사결을 응시했다.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할 말이라도 있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네 말대로 하지.’
옆에 앉아 있던 그가 씩 웃으며 은근슬쩍 더 붙어 앉았다. 조금만 자세를 틀어도 몸이 닿을 거리였다.
‘유능한 업자를 수소문해 보죠.’
이현수가 많은 걸 내려놓은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큰 줄기는 사결이 설명한 것과 같았다. 마기가 응축된 부분은 내가 해결하고 그 외 부분은 사결을 중심으로 한 그리샤의 헌터들이 해결한다.
‘일단 여원 님의 존재에 대해선 대대적으로 공표해야 합니다. 그래야 추후 다른 길드 관할의 블랙미스트가 나올 때도 쉽게 양도받을 수 있어요. 무엇보다, 그렇게 해야 길드장님이 원하시는 것처럼 감히 어떻게 해 보려는 놈들이 없겠죠. 그리샤에서든 다른 도시에서든.’
나는 스윽, 손을 들었다.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귀환자가 귀하다는 건 알지만 크레딧과 척을 질 정도의 가치가 있나?’
‘음, 본인이라 실감이 잘 안 나실 수 있는데. 결론만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그리샤는 오히려 덜하지. 걱정하는 건 다른 도시 놈들이야.’
사결이 으르렁거렸다.
‘특히 청왕 같은 마피아 새끼들.’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탰다.
‘헤스티아의 경우, 저희와는 정반대되는 전략을 펼쳤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완벽하게 숨기려 들었죠.’
그러고 보니 들은 적 있다. 헤스티아가 귀환자를 영입했다는 말이 퍼지며 한 차례 그리샤가 들썩였다. 카페에 오는 손님마다 그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헤스티아는 귀환자를 찾은 것만 공표하고 그 후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나중엔 거짓말 아니냐는 말이 나오다 어느 순간 잠잠해졌다. 소스가 없으니 대중의 흥미가 떨어졌고 소문도 사그라들었다.
결론부터 말해 헤스티아의 귀환자 발견은 사실이었다. 귀환자의 존재는 업계에서도 대형 길드의 수뇌부들에게만 알음알음 알려졌다.
‘청왕과 크레딧을 견제해서죠. 배길수가 조금만 더 현명했으면 발견 사실 자체를 숨겼겠습니다만.’
‘그러자니 나를 엿 먹일 기회가 눈에 밟혔겠지.’
대놓고 비웃은 사결이 새로운 사실을 알려 줬다.
두 번째 블랙미스트가 발견된 직후, 헤스티아에서 자신들이 해결해 보겠다고 나섰다. 결과는 실패였다. 한 명의 사망자와 세 명의 부상자만 내고 팀은 철수했다.
보도규제를 강하게 먹여 민간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그 이후 헤스티아는 조용했다. 물론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물밑에서 조금씩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겨우 D급 귀환자 따위를 믿고 나서니 그런 꼴을 당하는 거야.’
기어이 몸을 바짝 붙인 그가 내 허리에 팔을 둘렀다. 제 딴엔 굉장히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슬쩍 떼어 내보려고 했는데 꿈쩍도 안 했다. 무슨 빨판도 아니고. 가만히 보자 뻔뻔하게 눈을 마주쳐왔다.
‘왜.’
‘…아니다.’
포기하고 이현수를 향해 말했다.
‘그럼 우리도 그냥 감추면 안 됩니까.’
‘이미 발표 지시를 해 둬서 그건 어렵습니다.’
벌써?
‘그편이 여러모로 낫습니다. 청왕도 청왕인데, 헤스티아에서 우리가 본인들의 귀환자를 뺏어갔다고 오해를 한 모양이라.’
‘그러니까 D급을 어디다 쓴다고.’
사결이 재차 혀를 찼다. 나는 머뭇거리다 말했다.
‘오해가, 하나 있는 것 같은데.’
두 개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 닿았다.
‘…난 F급이다.’
이현수는 뻣뻣하게 굳어버렸고 사결은 당황했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아니, 설마….’ 하다가 물었다.
‘진짜?’
고개를 끄덕였다. 사결이 다급하게 말했다.
‘등급이 뭐가 중요해. 귀환자인 게 중요하지.’
방금 ‘D급 귀환자 따위’라고 한 것과 완벽히 상충되는 발언이다. 못지않게 당황한 이현수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 일단 내일 협회에서 정확히 측정해보고 그다음에 이야기를 계속하죠!’
그렇게 지금이다.
차에서 내려 협회 건물로 들어섰다. 내부는 한산했다. 일부러 우리의 방문에 맞춰 사람을 비운 게 티가 났다. 사결이 위압감을 숨기지 않으며 홀을 가로질렀다. 협회 직원들이 절절매며 얼른 따라붙었다.
본래 안내역을 맡았을 게 분명한 이들이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사결은 거침이 없었다.
헌터는 각성하게 되면 협회에 신고를 하는 게 원칙이다. 아우터가 될 생각이 아닌 이상 대부분 이 규칙에 따른다. 그럼 직원이 파견된다.
그들이 전용 단말기로 임시 측정을 하고, 헌터임이 판별되면 그때 협회에서 정밀 측정을 한다. 이곳은 임시 측정에서 A급 이상으로 나온 사람들이나 오는 특실이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과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거대한 방의 중심에는 한쪽 면이 뚫린 거대한 원통형 기구가 있다. 사람이 안에 들어는 구조였다.
‘저게 측정기인가.’
처음 보는 거대한 기계에 신기해하는데 준비가 끝났다며 직원이 나를 불렀다. 안에 들어가 정면을 봤다. 이현수는 자기가 더 떨며 안절부절못했다.
F급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설마 정말 그렇겠어, 라고 생각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그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허언을 하지 않는다. 뒤늦게 생각이 미쳤는지 그의 낯이 파리해졌을 때, 기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측정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쪽의 패널 앞에서 웅성거림이 번졌다. 무리에서 작은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다 반쯤 밀쳐지듯 튀어나온 한 사람이 죽상을 하고 사결과 이현수에게 다가갔다.
“아, 아무래도 기계에 오류가….”
“몇인데.”
직원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거리다 F…하고 주워섬겼다.
“오류가 아니다.”
“예?”
“그대로 공표해. 우린 이만 돌아가겠다.”
기계를 벗어나며 그쪽을 봤다. 눈이 마주쳤다.
생각해보면 그는 항상 내가 등급을 속이고 있다고 믿었다. 그땐 그저 귀환자라는 걸 숨기는 게 바빠 오해를 정정해 줄 새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니라고 해도 사결이 믿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확실한 결과가 나왔다.
나를 향해 사결이 다가왔다. 가만히 서서 그를 바라봤다.
어제는 D급이라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말했지만 이렇게 수치로 표현되면 또 다르다. 수해에 대한 그의 집착은 언뜻언뜻 비쳤던 열망만으로도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반응은 어떨 것인가.
우리의 첫 만남은 철저히 그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니 마지막이 같은 이유라도 이상할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