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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57)화 (57/106)

57화

선택한 업종이 ‘카페’라는 것에 별 의미는 없다. 멈춘 가게가 미용실이었다면 미용 자격증을 땄을 거고, 소품 가게였다면 요즘 유행하는 아이템이 뭔지 찾아봤을 거다. 그는 헌터로서의 기억을 잊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일에 몰두했다.

‘이왕 차리는 거 내 취향대로 하면 더 좋겠지.’

어차피 돈은 많았다. 도피로 시작했던 처음과 달리 동준은 카페 자리를 고심하며 점점 진지해졌다. 그러나 마음에 딱 맞는 곳이 없었다.

개중 그나마 마음에 든 건 호수공원의 호수가 보이는 자리였다. 건물이 단층인데 위치 때문인지 너무 고가라 여태 비어 있는 곳이기도 했다. 나이가 많은 주인이 매매를 고집하는 것도 마음에 드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금전적인 문제는 A급 헌터로 몇 년을 살았던 동준에겐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가 고민하는 건 다른 이유였다.

‘이제 그쪽과는 연관되고 싶지 않은데.’

호수공원이 있는 곳은 도시의 중심부인 만큼 인구 밀도가 높았다. 아는 얼굴이 돌아다니다 카페를 찾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만나면 어색함은 둘째 치고 떠올리고 말 것이다.

정화의 가호를 받고 죽었던 헌터들이.

잊어선 안 된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매일 떠올리며 고통받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동준은 한숨지으며 교외에 가까운 외곽으로 땅을 보러 나왔다. 만개한 유채꽃밭과 시골 전경으로 SNS에서 유명한 곳이었다.

하지만 막상 직접 와 보니 동준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유채꽃밭의 면적이 너무 작았던 것이다. 겨울이라는 걸 감안해도 마찬가지였다. 꽃이 없어 황량할 뿐이지 밭이 넓어지진 않으니까.

이런 곳에서 유채꽃 평야의 느낌을 낸 SNS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쉬움에 옆 마을까지 보러 왔다가 더욱 실망하여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진눈깨비가 날리는 저녁 하늘 아래. 한 사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행색보다도 진눈깨비에 스치는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런 한밤의 시골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생각했을 땐 이미 발이 브레이크를 밟고 있었다.

사내는 옆에 차가 멈춘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동준은 예술품을 감상하는 기분으로 그를 응시했다. 심장이 예고도 없이 뛰기 시작했다. 대충 봐도 보통이 아닌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는 분위기였다.

바위 같은 묵직함과 칼날 같은 냉정이 한데 섞여 강직함을 만들어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무너지지 않을 굳건함이 보였다. 사납게 흩날리는 진눈깨비가 그를 위해 내리는 것만 같았다.

동준은 바로 알았다. 이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제 한 몸 지키고도 여력이 남아 주변 사람까지 지킬 수 있는 사람이다. 나약한 자신과는 다르다.

동준은 입술을 떨면서도 온 힘을 다해 태연함을 가장했다. 조심스럽게 클랙슨을 누르고 차창을 내렸다.

“이봐요. 괜찮아요?”

행색이 보인 건 말을 건 다음이었다. 옷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해진 점퍼에는 털지도 않은 먼지와 낙엽 조각이 묻어 있었다.

동준은 불가해한 인력에 이끌리듯 수상한 사내를 주웠다. 그는 말수가 적었고 표정 변화는 아예 없었다. 이너시티로 가는 내내 아닌 척 그를 훔쳐봤다. 답지 않게 말을 걸고 혼자 안달복달했다.

불쌍한 사람에게 쉽게 흔들릴 것 같아서 거짓말로 돈 없는 척까지 했다. 이제는 특색 없으면 성공하기 힘든 카페 개업에 뛰어들려는 사람이 직원 월급 줄 돈이 없다니. 어린애도 안 믿을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의문도 표하지 않고 바로 믿었다. 동준은 그때 단단해 보이던 사내의 허술하고 무른 부분을 발견했다.

거기에 실망하긴커녕 오히려 더 좋아졌다. 

호수공원에 있는 건물로 그를 데려갔을 때 사내가 넘어올 기미를 보이자 그토록 오래 고민한 카페 자리를 바로 낙점할 만큼.

처음부터 호감으로 시작한 마음은 사내를 알아가며 삽시간에 짙어졌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달아 더는 인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불쑥 느껴지는 예감에 고백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마음을 전하면 미련 없이 떠나버릴 거라는 그런 확신에 가까운 예감.

동준은 비겁하게 침묵했다. 그저 이번에도 시간에 기대 그것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다. 자신의 죄책감을 희석해주었듯이.

‘괜찮아. 시간은 충분하다.’ 

그는 확실히 그랬다. 하지만 여원은 달랐다. 

그가 모르는 여원의 과거가 턱 밑까지 두 사람을 쫓아왔다. 홀로 카페를 나온 동준은 계약한 사설 보호 회사에 연락했다.

“예. 오늘부터 보호 등급 높여주세요. 추가금은….”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자신의 차 옆에 선 사람을 발견한 동준이 눈을 부릅떴다. 여보세요? 고객님? 단말기 너머의 목소리가 몇 번 이어지다 사라졌다.

“오랜만이군.”

그리샤의 모든 사람은 그를 자신들의 왕이라 여겼다. 하지만 보다 가까운 곳에서 그를 본 동준의 생각은 달랐다. 이 도시의 모든 것을 뜻대로 할 수 있는 전능한 신.

그 신이 악마처럼 웃고 있었다.

* * *

여원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지금 이렇게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밀크티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떨리는 손으로 싱크대에 잔을 놓고 반쯤 뛰듯이 방으로 돌아왔다. 언젠가 쓸 일이 있지 않겠냐며 동준이 준 스포츠 백에 옷가지를 쑤셔 넣었다.

그러다 고장 난 인형처럼 움직임을 뚝 멈췄다.

동준. 뒤늦게 그에게 생각이 미쳤다.

여원의 낯이 파리하게 질렸다. 아무리 충격받았다고 해도 그를 그냥 보내다니…!

스포츠 백을 내팽개친 여원이 허둥거리며 카페로 뛰어나왔다. 발이 꼬여 휘청인 몸을 다시 바로 세웠다. 문을 향해 걸으며 단말기의 화면을 열었을 때였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분명 [임시휴무]라고 적힌 종이가 붙었을 문이다. 여원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육각 유리창 너머로 흐릿한 인영이 보였다. 모호한 형체만으로도 여원은 단번에 알아봤다. 흠칫한 그가 주춤거리며 발을 뒤로 물렸다.

똑똑.

그가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렸다. 여전히 정중하고 아까보단 힘이 들어간 소리였다. 여원은 발에 쇳덩이를 매단 죄인처럼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떨리는 손이 문을 열었다.

딸랑.

들을 때마다 좋다고 생각했던 종소리가 처음으로 경종처럼 들렸다. 천천히 열리는 문 사이로 사결이 들어왔다. 바로 어제 헤어진 것처럼 변함없는 모습이다. 그가 나른하게 웃었다.

“2년 만이군요. 잘 지냈습니까?”

“…….”

여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 그리고 이거.”

사결이 불쑥 우유 팩을 내밀었다. 가슴팍에 꾹 들이밀어 얼결에 받아들었다. 사결은 목에 둘렀던 머플러를 풀며 천천히 카페를 돌아다녔다.

이곳저곳 살피는 모양새가 꽤 신중하다. 가끔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는 손님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모습이다. 여원은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침내 사결이 입을 열었다.

“이건 뭐죠?”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그의 검지는 벽면에 걸린 액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벼룩시장…에서 산 그림.”

“이건요?”

“소품샵의 드림캐처.”

그 뒤로도 몇 개 짚어본 사결이 흐음, 하며 말했다.

“여기 있는 것들 전부 당신이 고른 겁니까?”

여원은 머뭇거리다 말했다.

“전부는 아닙니다.”

“그럼?”

오랜만에 직감이 경고를 보냈다. 사실대로 말하면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나리란 예감.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 동준도 못 속이는 서툰 거짓말에 사결이 넘어갈 리 없다.

짧게 고뇌한 여원이 입을 다물었다. 사내의 기분이 상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침묵을 택했다.

찰나, 그의 시선이 찻잔으로 향했다. 아주 짧은 틈새의 사소한 실수였다. 그러나 사결에겐 그것으로 충분했다.

“여기 찻잔들. 이것도 당신 취향입니까.”

그가 진열장 유리를 톡톡 두드렸다. 여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다시 집어넣은 사결이 카운터 앞으로 갔다. 진열된 찻잔들 때문에 평소엔 방치된 것이나 다름없는 자리였다. 의자를 부러 소리 나게 끌어내 앉은 그가 손으로 턱을 괴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

“물론 당신이 사는 거야.”

* * *

그라인더가 작동하며 원두가 갈렸다. 여원의 심정도 저 원두와 같았다.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지?”

자리에 앉은 이후 사결의 말은 반 토막이 났다. 여원이 아는 사결은 존대밖에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히려 이게 더 자연스럽다. 저게 사결의 본모습에 더 가깝다는 뜻이다.

“뭐, 보면 알겠네. 더럽게 잘 지냈나 봐?”

사결은 여원이 커피를 만드는 내내 그 등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셔츠가 다 담지 못한 근육이 작은 움직임에도 자기주장을 했다. 날개 뼈 사이로 난 허리는 움푹 들어갔다. 그 밑에는 탄탄하게 올라붙은 엉덩이와 그 사이의 좁은….

탁.

머그잔이 사결의 앞에 놓였다. 그가 싱긋 웃으며 컵을 들었다. 카페 내부에 은은하게 맺혀 있던 커피 향에 새로운 향이 더해졌다.

그가 홀짝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생각보다 맛있었다. 사결의 한쪽 눈썹이 위로 들렸다. 흐음, 하는 소리를 낸 그가 옆으로 치운 잔을 그대로 떨어뜨렸다.

쨍그랑.

하얀 머그잔이 조각나며 검은 액체가 원목 바닥을 적셨다. 안 그래도 굳어있던 여원의 낯이 더더욱 경직됐다.

“혼자 떠들려니 재미가 없네.”

빠자작.

엎어진 커피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팽창된 원목이 삐걱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주변 공기가 미미하게 식었다. 피부로 느껴지는 위협적인 변화에도 여원은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을 뿐이다.

반응은 그게 다였다. 사결은 웃었다. 기분이 아주 더러웠다. 우두커니 서서 고개를 살짝 숙인 사내의 모습이 병원에서 처음 만났던 그 날과 같아서 더욱 그랬다.

“박동준.”

그 이름을 듣고서야 처음으로 변화랄 게 생겼다. 눈이 살짝 크게 뜨이고 눈썹은 위로 올라갔다. 사결은 창자가 꼬이는 것 같았다.

“날 버리고 선택한 게 고작 그딴 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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