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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56)화 (56/106)

56화

어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대로 거칠게 흔들며 추궁해 묻고 싶었다. 대체 누굴 만난 거냐고. 누구를 봐서 그런 얼굴을 하는 거냐고.

동준은 이를 악물며 태연함을 가장했다.

“오늘은 쉬어. 아니, 카페도 일찍 닫자.”

“그럴…수는.” 

“그럼 내가 쉬고 싶어서 닫는 걸로 하자.”

동준이 밖으로 나갔다. 아까 본 게 있는 손님들은 양해를 구하는 그의 말에 순순히 가게를 나섰다. 개중엔 진을 걱정하는 단골도 있었다. 동준은 좀 놀라서 그런다고 둘러댔다.

사실은 무슨 상관이냐고, 꺼지라고 하고 싶었다.

초조해서 그런지 마음에 날이 섰다. 그에게 관심 갖지 말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다. 제 꼴이 새끼 가진 짐승 같다는 자각은 있다. 그저 우스울 따름이다. 하얀 에이포용지에 임시휴무라는 글자를 크게 적어 문에 붙이고 가게 불을 껐다.

방으로 되돌아가자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있는 여원이 보였다. 박제 같다. 겉모습보단 세월의 흐름을 비껴간 마음이 더욱 그렇다.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하고 성립된 관계였다. 그래서 동준은 그가 케이크 같은 디저트를 좋아하는 것과 모자와 마스크로 무장하고서라도 꼬박꼬박 영화관에 가는 건 알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선 조금도 알지 못했다.

그런 동준이라도 알 수 있었다. 지금 그의 마음이 2년 전과 같다는 걸. 그게 어떤 마음이라고 할지라도.

“진.”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못 들은 척을 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목소리가 그에게 닿지 않은 거다.

동준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자신이 2년을 공들여 쌓아 올린 모든 것이 사라졌다. 동준은 묻고 싶었다.

단숨에 두 번의 겨울을 되돌아갈 만큼 네게 큰 의미가 있는 사람이 있었느냐고. 

“…….”

어떤 대답이 나올지 두려워 물을 수가 없다. 꽉 쥔 주먹에서 힘이 풀렸다. 만난 적도 없는 상대에게 진 기분이다. 비참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진.”

조금 더 크게 부르자 여원이 작게 덜걱거리곤 고개를 들었다. 뒤늦게 자신을 알아챈 게 분명한 움직임이다. 동준은 치미는 모든 것을 억누르며 다정하게 말했다.

“정말 괜찮아? 같이 있어 줄까?”

뭘 생각했는지 여원의 눈이 흐려졌다. 고작 몇 초에 지나지 않는 시간이 아득히 길게 느껴졌다. 고민 끝에 나온 답은 ‘아니’였다.

“혼자, 있을 수 있다.”

“그래.”

동준은 더 묻지 않고 몸을 돌려 가게를 나왔다.

* * *

세상이 이렇게 바뀐 후, 중간계엔 긴 과도기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초기엔 헌터가 세상을 지배할 것처럼 숭배받았다. 중기엔 그 역풍을 맞아 헌터에 대한 인식이 바닥을 쳤고, 초기 헌터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세력과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 간에 충돌이 있었다.

무력을 가진 자들의 반목은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이트의 마물보다 서로의 손에 죽는 헌터가 더 많았다. 암흑기였다. 패배한 건 일반인에 대한 지배 사상을 가지고 있던 ‘유지파’였다. 그들은 새로운 체계를 받아들이거나 아우터(도시에 속하지 않고 밖에서 야인처럼 살아가는 헌터)가 되어 도시를 떠났다.

헌터 간에 생긴 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한동안은 승리한 ‘개혁파’가 비교적 온건한 ‘유지파’였던 자들을 낙인찍어 멸시하고 천시했다. 어느 고등급의 유지파가 분을 견디다 못해 개혁파 헌터를 차례로 습격해 살해하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몇 년 시끄럽다 조용해지고 다시 시간이 흘렀다. 그들은 똑같이 나이를 먹었고 계파에 관계없이 하나둘 은퇴했다.

암흑기를 겪은 사람보다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기억하는 사람보다 잊은 사람들이 더 많아졌을 때 자연스럽게 지금과 같아졌다.

어쩌면 자본주의에서 가장 당연했을 형태. 선망의 대상이자, 고소득 직종의 대표주자 말이다.

자유가 기본인 타 도시와 달리, 거의 모든 헌터가 길드에 속해 월급과 인센티브를 받는 그리샤에서도 그것만큼은 다르지 않았다.

동준은 택배기사였다가 헌터로 각성했다. 곧바로 무수한 길드가 영입을 제안했다. 그는 별 고민 없이 크레딧을 택했다.

동준은 꿈꾸지 않는 헌터였다. 그에겐 지켜야 할 사람도, 중화제를 필요로 하는 가족도 없었다. 그저 많은 돈을 벌고 좋은 대우를 받는 게 그가 원하는 전부였다.

그는 헌터가 짊어져야 할 게 뭔지 조금도 몰랐다.

토벌에 나서는 이들은 모두 부상과 죽음을 각오한다. 그들을 지원하는 보조형 헌터들은 현장 근처의 베이스캠프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비교적 안전했다. 대신 자신이 보조한 헌터의 부상과 죽음에 대한 부채감을 떠안았다.

정화의 속성을 가진 동준은 특히 그랬다. 순식간에 마음의 빚이 쌓여나갔다.

“크으아악!”

“빌어먹을, 또 마소 중독이야!”

일반인에게 마소 중독이란 발작할 때 빠르게 중화제를 먹어야 하는 불치병일 뿐이었지만 헌터에겐 두 종류였다.

헌터 내부의 마나가 침투한 마나를 상회할 땐 급성 마소 중독으로 완치할 수 있지만….

“으아악! 아악!”

“세원아!”

마소 중독은 마나를 압도한 마기가 멋대로 날뛴다. 헌터의 몸은 달군 물처럼 끓어오르고 내부는 진탕된다. 이러면 중화제도 소용이 없다. 끝은 정해져 있다.

온몸을 뒤틀며 피를 쏟던 헌터가 곧 절명했다. 사위가 조용해졌다. 파랗게 질린 동준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죽은 헌터가 있는 곳부터 숲의 안쪽까지. 붉은 물감을 붓으로 찍어 그은 듯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동료들이 전투 현장에서 그를 급하게 끌어낸 흔적이다. 그러고도 구하지 못했다.

죽은 자의 손을 붙들고 오열하던 헌터가 뒤를 돌아봤다. 눈물을 흘리는 눈이 형형한 분노를 담고 동준을 응시했다. 어떤 말도 없었다. 그게 더 깊은 창이 되어 저를 찔렀다.

다른 헌터들이 그 주변을 둘러싸 벽을 만들었다. 그제야 멈췄던 숨을 다시 쉴 수 있었다.

턱.

팀 리더가 어깨를 쥐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손아귀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잘못된 건 저 빌어먹을 수해니까.”

되묻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하지만 입은 떨어지지 않았고 리더는 멀어졌다. 동준은 망연하게 서 있었다.

저 사람만이 아니다. 모두가 동준에게 같은 말을 했다. 너는 최선을 다했어. 너는 잘못한 거 없어. 죄책감 느끼지 않아도 괜찮아.

텅 빈 위로의 말들은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동준의 눈에선 점점 빛이 사라졌다. 영혼은 거듭된 상실을 견디지 못했고 마음은 무너져갔다.

그리고 절망이 나타났다.

동준의 정화를 받고 정찰에 나선 팀이 임무 중 실종됐다. 수해에서 그 말은 사망과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어깨를 꽉 쥐었던 헌터가 팀장으로 있던 바로 그 팀이었다.

동준은 도망쳤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가야 할 곳도 없으면서 무작정 거리로 나왔다. 잿빛이 된 눈으로 대낮의 도심을 배회했다. 멍하게 길을 가로지르다 빨간불에 건넜다.

빠아앙!

급정거한 차가 미친 듯이 클랙슨을 눌렀다.

“이 미친 새끼가 뒈지려고 환장했어?! 어디 남의 인생을 조지려고!”

“……!”

남의 인생.

그 말에 소스라쳐 내달렸다.

“어딜 도망가 이 새끼야!”

자신이 망쳤다. 가벼운 마음으로 돈을 위해 온 저 따위가. 신념과 소중한 사람을 가진 이들을 죽게 했다.

위안에 기대 은연중 부정하던 것들을 스스로 인정한 순간, 동준은 한 발자국도 더 걸을 수 없게 됐다.

곧 죽을 것 같은 얼굴로 길에 우두커니 서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 번씩 시선을 던지고 갔다. 그 모든 눈이 자신을 비난하는 것 같다. 사색이 된 동준은 옆에 있던 가게로 무작정 들어갔다.

딸랑.

머리 위로 종이 울렸다. 코로 커피 향이 확 끼치자 약간 정신이 들었다. 여전히 멍한 상태로 커피를 주문하고 볕이 잘 드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애매한 시간이라 그런지 매장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피로한 눈을 들어 통유리 너머를 봤다. 높은 빌딩들 사이 이질적으로 자리 잡은 호수공원이 보였다.

입김과 함께 런닝을 하는 사람과 두껍게 껴입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이 보였다. 종종걸음으로 달려가던 작은 아이가 강아지를 보고 웃었다.

고사리 같은 손이 흔들린다. 저를 예뻐하는 줄 아는 짐승은 목줄이 팽팽해지도록 앞으로 나서며 꼬리를 흔들었다. 강아지 주인과 아이 엄마가 해사한 미소로 인사를 나눴다.

그 풍경 위로 헌터의 피와 시신이 가득하던 수해의 모습이 겹쳤다.

참을 새도 없이 눈물이 났다. 고개를 숙인 동준이 어딘가로 연락을 넣었다.

“저… 그만두겠습니다.”

[…예. 수고하셨습니다. 퇴사절차는 이쪽에서 알아서 하도록 하죠. 그간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끅끅. 숨이 넘어갈 듯 울면서 동준은 잠정 은퇴했다. 그리고 카페를 차리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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