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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51)화 (51/106)

51화

그렇게 2년이 흐르고 능숙한 직원이 된 여원이 가게 내부를 길게 훑었다. 동준이 건물을 사들인 후 스스로 인테리어를 한다고 달려들었을 때부터 일을 거들었다.

동준은 찻잔에 관심이 많았다. 이름도 연식도 모르는 희귀하고 예쁜 찻잔을 인테리어 소품이랍시고 잔뜩 가져왔다. 그것들은 벽면을 따라 높이 세운 진열장에 들어갔다. 그러고도 남는 것들은 카운터 쪽 테이블에 줄줄이 늘어섰다.

동준이 흐뭇한 표정을 했다. 나중에 손님이 와서 물어주길 바라며 두근대는 모습이었다.

“이것들.”

“아름답고 우아하고 사랑스럽지?”

“…만 안 샀으면.”

제대로 된 아르바이트생을 구할 수 있지 않았겠냐.

어느새 여원의 화법에 익숙해진 동준은 많은 생략에도 재깍 대답했다.

“예전부터 하나둘씩 사 모은 거야. 헌터가 되기 전엔 확실히 좀 부담이었지만 하고 싶은 걸 못해서야 사는 재미가 없지 않겠어?”

헌터로 각성하기 전 그는 택배 기사였다고 했다. 어쩐지 커피 자루가 들어올 때마다 버선발로 마중 나가더라니. 힘들어 봤기에 알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하며 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동준의 취미는 별개였다. 솔직히 안 어울렸다. 차보단 커피를 선호하는 사람이 저러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뭣보다 고작 흙을 구워 만든 기물 아닌가.

“바로 그 부분이 좋은 거야.”

동준이 찻잔에 그려진 수선화를 문지르며 말했다.

“고작 흙으로 이런 아름다운 결과물이 나온다는 게 뭔가 희망적이잖아.”

여원은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도 하나는 확신했다. 동준의 로망에 뭐라 말을 얹고 싶진 않지만 이건 틀림없는 과소비였다.

그는 딱 잘라 경고했다. 이미 산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제 충분하니 앞으론 지양해라.

동준이 말도 안 된다며 항의하자 평소보다 심한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권위라곤 요만큼도 없는 사장은 금세 꼬리를 말았다.

여원은 주어진 일에 충실했다. 맡은 이상 대충할 생각은 없다.

원목의 바닥, 창가에 놓인 도자기 인형과 조화, 벽면에 걸린 그림 액자. 전부 여원의 손길이 닿은 것들이었다. 처음엔 카탈로그의 추천을 그대로 따랐지만, 보다 보니 개중 마음에 드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딸랑.

스테인드글라스의 육각 유리창이 달린 나무문과 그 문이 열릴 때마다 울리는 종은 여원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물건이었다.

“어서 오세요.”

내일모레면 정말로 개점한 지 딱 2주년이다. 새삼 시간의 흐름을 실감했다.

오픈 초반엔 이렇다 할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직원이 필요했다는 건 사실상 그냥 핑계가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동준은 거의 모든 걸 혼자 해결했다. 여원은 틈틈이 기본적인 것들을 배우며 청소나 잡일을 도맡았다.

카페는 3개월 만에 안정됐다. 호수공원에 벚꽃이 만연하던 무렵엔 최고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사업이 정상 궤도에 오르자 사장은 무보수로 일하던 직원의 월급부터 챙겼다. 밀렸던 것에 보너스까지 더해 꽤 큰 금액이었다.

여원은 거절했다.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그의 ID는 여전히 백담의 것이다. 당연히 그리샤의 은행은 계좌 개설이 불가능했다. 무용지물이 된 단말기 역시 추적을 우려해 낙하할 때 벗어던졌다. 눈치 빠른 동준은 그를 모자와 마스크로 무장시킨 뒤 그리샤의 뒷세계로 데려갔다.

이런 곳에 정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익숙하게 골목을 찾아 들어갔다. 우습게도 여원은 그제야 그가 정말 헌터임을 실감했다.

동준은 타투샵으로 위장한 불법 시술소를 찾아가 여원의 ID를 적출하고 그리샤의 위조 ID를 심었다. 이름은 카페에서 쓰는 것과 같은 ‘진’, 성은 단순히 예쁘다는 이유로 ‘유 씨’가 낙찰됐다. 그렇게 ‘김철수’는 ‘유진’이 됐다.

작업은 5분 만에 끝났다. 동준은 작은 유리병을 꺼내더니 내 상처에 들이부었다.

“미, 미친…. 포션?”

시술을 끝내고 장갑을 벗던 가게주인이 경악했다. 나도 덩달아 놀랐다. 확실히 알 수 없는 힘 같은 게 은은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이게 포션이라고?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다. 백담에선 매물조차 없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그리샤에서도 상당히 고가에 거래되는 물건이 틀림없다.

“전에 몸담았던 길드에서 지급 받은 물건입니다. 되파는 건 불법이고 은퇴해서 쓸 일도 없을 테니 이렇게라도 소비하는 편이 좋겠죠.”

이런 곳에 익숙하게 드나드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딱히 뭐라 하진 않았다. 이걸 팔아서 내 월급을 줬으면 되었던 거 아니냐는 말도 말이다.

잠깐 눈치를 보던 동준은 여원이 아무 반응이 없자 안심하고 나아가 상처를 살폈다.

“예쁜 피부에 흉 남으면 안 되는데….” 

“…….”

아무래도 상관없는 여원이 손을 탈탈 털었다.

“으아, 뭐 하는 거야! 상처 벌어지면 어쩌려고!”

“괜찮다.”

“내가 괜찮지 않아.”

손 주인이 괜찮다는데 네가 괜찮지 않을 건 뭐냐. 그런 의미를 담아 보자 동준이 서글픈 강아지 같은 얼굴을 했다. 하는 수 없이 손목을 보여줬다. 고작 그 정도 상처에 포션을 썼다. 말끔하게 안 낫는 게 이상하다.

만족한 동준이 그제야 남은 볼일을 봤다. 그가 대포 단말기를 구매했다. 돈 지랄도 신기하게 한다고 몰래 혀를 차던 주인이 활짝 웃으며 ‘감사합니다. 고객님!’을 외쳤다. 계좌 개설까지 끝마친 동준이 돈을 이체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여원이 천천히 입을 뗐다. 

“됐다.”

“뭐가?”

“월급. 안 줘도 괜찮아.”

주인이 세상 해괴한 것을 보듯 여원을 봤다. 동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난 불공정계약이나 악덕 영업주 같은 걸로 신고당하기 싫어.”

“신고 안 할….”

“너 말고 손님들이 할 수도 있지.”

“……?”

손님들이 신고를 왜 해.

“물어보는 사람이 있으면 어쩔 건데. 너 거짓말 더럽게 못 하잖아.”

“…….”

할 말이 없어진 여원은 결국 순순히 월급을 받았다.

* * *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딸랑.

“우리 직원님 일 잘하고 계시나?”

동준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첫 월급 이후 나태해진 사장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폐점에 가까운 시간이다. 여원은 싸늘한 무표정과 침묵으로 그를 맞았다.

“차라리 욕을 해라. 네가 그렇게 볼 때마다 세상에서 제일 불결한 벌레가 된 기분이라고.”

여원은 말없이 눈으로만 뜻을 전했다.

‘밟을까. 벌레.’

동준이 흠칫하며 쪼그라들었다.

“저녁 사줄게. 오랜만에 고기 먹을래?”

“…….”

“불판에 지글지글 구워지는 삼겹살 어때!”

“…….”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좀 있으면 카페 안에서 눈이 내릴 것 같은 분위기가 되고서야 동준이 싹싹 빌었다. 여원은 한숨을 쉬었다.

“이번만이다.”

“감사합니다. 제가 정말 부족함 없이 모시겠습니다.”

동준이 굽실거리며 카페의 마감을 도왔다.

“나머진 내가 할게. 가서 옷 갈아입고 나와.”

고개를 끄덕인 여원이 카운터 뒤편으로 돌아 들어갔다. 길게 드리운 검은 커튼의 뒤편에는 짧은 복도와 문이 있었다.

문을 열자 작은 현관과 함께 카페와 비슷한 크기의 원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층 건물을 통째로 쓰는데에 비해 내부가 협소한 이유가 여기 있다.

본래는 잠깐 쉬기 위한 공간과 창고로 쓰던 걸 합쳐서 다시 리모델링했다. 여원이 동준의 집에 얹혀산 지 한 해가 다 되어가던 무렵이었다.

동준은 자신이 앞으로 여기서 지낼 테니 여원에게 계속 자기 집을 쓰라고 했다. 여원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매사 무감한 여원이라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굳은 얼굴로 캐묻자 망설이던 동준이 말했다.

“네가 내 집에 있는 게 불편해서 그런 게 아니야. 그러니까 오해는 안 했으면 좋겠어.”

여유도 장난기도 없었다. 오히려 평소답지 않게 어물거렸다.

“어떤 의미론 불편한 게 맞는데, 네가 아니라 내 문제니까.”

그는 여원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리샤에서 카페 아르바이트로 한 해를 보냈다. 이젠 이런 방면으로도 눈치라는 게 생긴 여원은 그 문제가 뭔지 대강 알 것 같았다.

동시에 자신을 보는 동준의 시선에서 어린 열망을 보았다.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시발점은 무엇이었을까.

머리로는 무의미한 의문을 떠올리면서,

“그럼 내가 여기 있겠다.”

입으로는 협상의 여지가 없는 말을 뱉었다.

“아니면 카페는 그만두겠어.”

“…….”

동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후회가 사무치는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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