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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50)화 (50/106)

50화

그는 자신을 박동준이라고 소개했다. 나이는 스물여덟. 여원과 동갑이었다. 외곽마을에는 카페로 쓸 만한 집을 찾아보기 위해 왔다고 했다. 처음엔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소 울음소리가 들리는 동네에서 카페라고?

“멋진 풍경과 예쁜 카페가 있다면 거기가 얼마나 멀던 사람들은 찾아오거든요.”

이해하지 못했다. 머릿속으로 논바닥을 배경으로 자리한 세련된 카페와 그 앞을 지나가는 누렁소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난해해 하는 게 티 났는지 운전대를 잡은 그가 웃었다.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보셔도 됩니다. 이너시티까진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요. 전 수다 떠는 거 좋아합니다. 이런 밤엔 졸음운전도 방지할 수 있죠.”

동준은 말이 많았다. 듣기 좋은 저음의 목소리는 어딘가 귀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그런 점까지 놀랍도록 누군가와 닮았다. 얄궂은 우연이었다.

“단순히 예뻐서 찾는다는 겁니까.”

“아름답다고 느끼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모든 사람은 아름다운 것에 본능적으로 끌립니다. 거기에 맛있는 커피와 케이크 한 조각이 더해지면 거리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지죠.”

그렇게 말하는 동준은 한없이 진지했다. 여원은 더 묻지 않았다.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정적이 찾아왔다. 히터 때문일까. 제법 안온한 분위기였다.

“…….”

야간의 도로는 한적했다. 드문드문 자동차의 불빛이 스치고 나면 다시 어둡게 가라앉는 도로뿐이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말을 나눴다. 대체로 동준이 말하고 여원이 듣는 구도였다.

여원은 또 한 번 기시감을 느꼈다. 낯설어야 할 상황이 더는 낯설지 않다. 그러자 어째선지 기분이 가라앉았다. 힐금거리는 시선이 옆에서 느껴졌다.

툭툭, 긴 손가락이 핸들을 두드렸다. 약간의 초조함이 묻어나는 손가락을 모른 척했다.

어느새 이너시티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밤하늘의 한구석을 밝힐 만큼 환한 빛이 머문 도시. 결코 잠들지 않는 그리샤의 심장부였다.

이너시티는 강줄기에 맞닿아 있었다. 낮에는 분명 아름다울 푸른 강은 밤이 되자 거대한 검은 덩어리처럼 보였다. 대교를 지나며 아래를 응시했다. 검게 물결치는 표면에 가로등 불빛이 아른거렸다.

툭, 두드림이 멎었다. 고민을 끝낸 동준이 제안했다.

“나름 복잡한 사정이 있는 것 같은데. 갈 곳 없으면 아르바이트 하나 안 해 볼래요?”

대교가 끝나고 차가 지하도로에 진입했다. 어둑한 오렌지빛 조명이 간헐적으로 번득였다.

“서로 리스크를 감당하는 거죠. 전 당신에 대해 잘 모르지만 궁금해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을 겁니다. 대신 당신은 석 달 정도 무보수로 일해주세요. 잘 곳과 밥은 제공해 드릴게요. 카페 개업을 준비할 때 예산이 좀 빠듯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완전히 오버 될 줄은 몰랐거든요.”

굳이 그런 외곽에 터를 보러 간 것도 예산 때문이라고 동준이 설명을 덧붙였다.

“이너시티에도 마음에 쏙 든 곳이 있긴 한데, 거기다 카페를 차리려면 직원 없이 혼자 해야 해서요. 아무래도 그건 자신 없거든요.”

그러니까 저 좀 도와주세요.

그렇게 말한 사내가 힘없이 웃었다. 여원은 그제야 시골길에서 저를 주운 임시동행인을 제대로 봤다. 연한 인상의 남자였다. 눈에 띄게 잘생긴 건 아니지만 선하고 순하게 생겼다는 말은 자주 들었을 것 같다.

“…….”

쉽게 말해 마계에서 한 시간도 못 살아남을 얼굴이다. 무슨 생각하는지 안다는 듯 그가 손으로 목 뒤를 문질렀다. 민망한 표정이다.

“친구들에겐 못 미덥다는 말 많이 들었죠. 실제로 속아서 사이비 신문을 정기 구독한 적도 있어요.”

어때요. 불안하죠. 막 챙겨주고 싶죠. 그런 기색이 역력했다. 여원은 다른 포인트에 집중했다.

“그런 사람의 뭘 믿고 무보수로 일하라는 말입니까.”

동준이 바로 말을 바꿨다.

“그것도 다 대학생 때의 일입니다. 지금은 꽤 듬직해졌어요.”

진짜 듬직한 사람은 자기 입으로 듬직하다고 하지 않는다.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보자 그가 식은땀을 흘릴 기세로 고백했다.

“죄송합니다. 약하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제가 이래 봬도 A급 헌터거든요. 물론 A급이 길바닥에 굴러다닐 만큼 많은 그리샤라 그렇게 유명하진 않습니다만.”

이건 의외다. 그리샤에 헌터가 많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면 진짜 길에 다니는 사람의 반이 헌터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어쨌든 정말 헌터라면 그와 자신의 인연은 여기까지다.

헌터라고 무조건 사결과 관계있진 않겠지만,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피해야 하는 게 지금 제 처지였다.

“어? 으악! 위험하잖아요. 손잡이 당기지 마요!”

속도 때문에 잠겼는지 열리지 않는다. 콱콱. 몇 번 더 해봐도 안 된다. 여원이 싸늘한 눈으로 동준을 봤다. 세워. 안 그러면 부순다. 하지 않은 말이 동준의 귀에 들렸다.

“아, 그러지 말고 생각이라도 좀 해줘요.”

바로 아쉬운 입장이 된 동준이 앓는 소리를 냈다.

“가게가 안정되면 밀린 월급도 드릴게요.”

“…….”

“그렇지. 제가 찜해둔 카페 자리 한 번 볼래요? 그럼 그거 보고 결정해요.”

“아니 됐….”

핸들이 급격히 꺾였다. 여원도 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아니면 혀든, 입 안쪽 살이든 하나는 깨물 것 같았다.

차체가 레이스를 하듯 도심을 가로질렀다. 도착한 곳은 가로등이 비추는 호수공원의 한구석이었다. 깊은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 때문일까. 유리에 엑스자 테이프가 붙여진 빈 건물은 음침한 분위기를 풍겼다. [매매]라고 붙여진 프린트마저 불길해 보였다.

그런 건물을 사내는 어딘가 간절한 얼굴로 응시하고 있었다. 자신을 보던 사결과 묘하게 닮은 모습이었다.

“당신이 도와주면 전 헌터를 그만두고 여기에 카페를 차릴 수 있어요.”

헌터를 관두는 것. 아무래도 그게 사내의 진짜 목적인 것 같았다.

“제 오랜 꿈입니다.”

이루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는 것. 그런 것이라면 제게도 있다. 하지만 이 남자의 것과는 다르다. 너무 달라서 비교하는 것조차 초라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냥 없다고 하는 게 맞는 건지도 모른다.

조용히 내린 눈이 어깨와 정수리에 흔적을 남겼다. 그걸 보며 여원은 생각했다. 아무래도 자신은 제게 없는 것에 끌리는 모양이라고.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고 했죠.”

동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긴말을 해야 하는 여원은 머릿속으로 한차례 문장을 정리했다.

“전… 쫓기고 있습니다. 상대는 그리샤에서 아주 큰 권력을 쥔 사람입니다.”

“그럼 잘 숨어야겠네요. 작은 카페 정도면 딱 맞지 않습니까?”

시원한 대답이었다. 거기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한숨을 쉬었다. 제대로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내내 이 남자에게 휘둘리기만 한 것 같다.

그렇다고 이제 와 무를 수도 없는 일. 여원은 동준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의 집에 머물렀다.

마냥 놀고먹은 건 아니었다. 자재나 소품을 보는 데 따라가거나 리모델링 후의 청소를 돕는 등 그는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카페에서 일하려면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겠네.”

밀대에 양손을 괸 채 몸을 기댄 동준이 말했다. 걸레로 테이블을 열심히 닦던 여원이 저 인간이 또 무슨 소릴 하나 싶은 표정으로 돌아봤다.

“쫓기는 몸이라며. 그럼 본명을 그대로 쓸 순 없잖아. 카페에서만 쓰는 닉네임으로 명찰을 파자. 컨셉이라고 하면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 안 할 테니까.”

그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말을 놨다. 여원은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동준은 눈을 부릅뜬 채 동갑이니 내가 말을 놓으면 너도 말을 놔야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다. 뭐라 대꾸하기도 귀찮았던 여원은 그러겠다 했다.

“…그냥 네가 그런 걸 하고 싶을 뿐이잖아.”

“그럴 리가. 이건 순전히 널 위해서야.”

반짝이는 눈이나 어떻게 하고 말해라. 그런 뜻을 담아 쳐다봤다. 이미 여원의 살기에 익숙해진 동준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깔끔하게 무시한 그가 신나서 떠들었다.

“내가 몇 개 뽑아놨는데, 카페 이름이 이프리트잖아? 이건 구시대의 정령을 뜻하는 말인데 네 가지가 더 있어. 마리드, 샤이탄, 진, 쟌. 이 중에 골라봐.”

작정했구나. 거절하면 멋대로 하나 골라 명찰을 파오겠다는 의지가 생생히 전해졌다. 여원은 가장 무난해 보이는 ‘진’을 골랐다.

“흠. 그런데 진(Jinn)은 복수형이라 제대로 하려면 지니(Jinni)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때. 램프의 요정이 되어 볼래?”

“…….”

“농담이니까 제발 사람 좀 그렇게 보지 마.”

그래놓고 정작 본인은 점장 특권이라며 본명을 썼다. 여원은 이번에도 아낌없는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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