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를 잡는 방법 (49)화 (49/106)

49화

7장. 불가해와 불가항력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그리샤는 평화로웠고 마정석의 수급도 원활하게 이루어졌다. 다른 도시들은 한 번 크게 덴 뒤로 몸을 사렸다. 수해의 토벌도 순조로웠다.

전체의 5할을 수복하고 거기 포함된 게이트를 통제하에 두었을 때, 그 소식이 전해졌다.

[여기는 토벌대 정미나 팀. 긴급 보고합니다.]

전하는 목소리엔 낭패감이 가득했다.

[코드 제로.]

토벌대는 상황 전달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자주 있는 일들을 코드로 설정했다. 개중에서도 빈도수가 높은 건 1부터 9까지. 9는 긴급구조 요망, 3은 지원요청, 5는 토벌 완료와 게이트 폐쇄 성공. 다시 말해 상황종료를 뜻한다.

그리고 빈도수가 가장 낮은 제로(0)는, 

[완전히 막혔습니다. 미로 어디에도 틈새가 보이지 않습니다.]

미로는 다시 한번 모든 문을 닫아걸고 미로가 아닌 벽이 되었다.

두 번째 난관의 도래였다.

* * *

딸랑.

고풍스러운 나무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카페 이프리트의 직원이 몸을 돌리며 카운터에 섰다. 무뚝뚝한 인상의 덩치 큰 사내가 그러자 악의가 없음에도 꽤 위협적이었다. 손님은 주춤하더니 삐걱거리며 되돌아 나갔다.

직원은 여전한 무표정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조금 시무룩한 기색까지 숨길 순 없었다. 그는 고민했다.

‘내가 그렇게 무섭게 생겼나.’

아니다. 객관적으로 꽤 잘생긴 편이었다.

‘예전 일터에선 그냥 평범했던 것 같은데.’

문제는 그걸 압도하는 분위기라는 걸 사내는 몰랐다. 익숙해진 손님에겐 잘난 얼굴과 몸이 더 눈에 들어왔고,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르겠다. 그들은 도망가기 바빠 알려주지 않았으니.

딸랑.

“어서 오세요.”

이번 손님은 단골이었다. 익숙하게 인사를 받아준 손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해 창가 자리에 앉았다. 바 형태로 통유리 앞에 위치한 자리는 카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자리였다.

이프리트는 목 좋은 곳에 자리한 카페였다. 도심 속 거대한 공원의 가장자리. 그것도 벚나무로 둘러싸인 거대한 호수가 바로 보였다. 지금은 겨울이라 앙상한 가지뿐이지만 봄에는 이 근방의 풍경이 온통 하얀색으로 물들었다.

호수의 물은 마정석으로 항상 정화해서 투명하고 깨끗했다. 그래서 수생생물은 살지 못하는 대신 여름에는 수영장이 되어 민간에 개방된다. 호수는 호수다워야 한다며 인공적인 정화를 비난했던 ‘반대파’도 시간이 지나며 사라졌다.

사색의 끝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보이는 호수에도 살얼음이 얼었다. 완연한 겨울의 풍경이다. 애매한 오후 나절. 작은 매장에는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 손님 둘 뿐이다.

아르바이트생은 잠깐의 여유에 자신이 마실 커피를 내렸다. 커피 종류라곤 전혀 몰라서 에스프레소부터 하나씩 시켰던 적도 있던 아르바이트생은 이젠 자기 손으로 카페모카를 만들어 마실 수 있게 됐다.

뜨거운 커피에 닿은 크림이 천천히 녹아내렸다. 양손으로 머그컵을 쥐자 온기가 손을 덥혔다. 겨울은 싫다. 계절은 어디 피할 곳도 없다. 온 세상이 눈과 얼음으로 뒤덮이면 아주 싫은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엔 그랬다.

“…….”

증오해야 마땅한데 덮어놓고 싫어할 수 없는 어떤 사내도 함께 떠올랐다.

완성된 커피 위에 크림을 더 얹었다. 무뚝뚝한 인상과 달콤한 크림의 대비가 묘하게 인상적이라고 구석에 앉은 여자는 생각했다.

크림을 산처럼 쌓으며 그는 상념에 잠겼다. 여기 오게 된 날도 오늘처럼 연한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 * *

여원은 나무 밑에서 눈을 떴다. 위를 보니 꺾인 나뭇가지가 덜렁거렸다. 그가 떨어진 자국이다.

‘움직이는 건… 무리군.’

사흘간 꼼짝도 못 한 채 산 중턱에 널려 있었다. 낙하지점이 꽤 깊은 산중인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탈피를 거듭한 몸은 회복력도 뛰어났다. 걸레짝이 됐던 사지는 며칠 지나자 운신이 가능한 수준이 됐다. 나흘째에 절뚝이며 산에서 내려와 외곽지역에 숨어들었다. 진짜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어떻게 사결의 눈을 피해 숨을 것인가. 그리샤가 그의 손바닥 안일 것은 자명했다. 어쩌면 이렇게 고생하며 도망친 보람도 없이 며칠 안에 붙들려 끌려갈지도 몰랐다.

골목에서 골목으로. 인적 없는 시골 마을임에도 충분히 주의하며 돌담길 사이를 가로질렀다. 목적지는 버스정류장이었다. 돈도 없고 몰골도 이렇다. 무엇보다 쫓기는 신세라 당당하게 타진 못할 테니 천장에 매달려서 도심지까지 이동할 셈이었다.

일단 도착만 하면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그리샤이니 그 안에 섞이면 아무리 사결이라도 자신을 찾는 데 애를 먹을 거란 판단에서다.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어둠은 숨는 자의 편이다. 긴장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린 채 인근에 숨어 버스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두 시간 동안 앞을 지나간 건 포터 트럭 두 대뿐이었다.

사위가 완전히 깜깜해졌다. 가로등이 켜지고 하나둘 하얀 눈송이가 내리기 시작했다. 먹구름에 별이 가려져 그저 어둠뿐인 하늘을 올려다보다 발길을 돌렸다.

‘지긋지긋하군.’

그리샤는 백담보다 북쪽에 있다. 백담은 간신히 가을의 끝자락을 움켜쥐고 있었지만, 이곳은 이미 초겨울에 발을 들였다.

겨울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 예전이었으면 결코 싹 틀 리 없던 바람이 어째선지 고개를 내밀었다. 진눈깨비가 내리고 양쪽이 텅 빈 시골길을 목적지도 없이 걸었다.

사결이 물었었다. 목적한 바를 이룬 후엔 무얼 할 거냐고.

없다. 그 후는 무(無)였다.

“그럼 같이 생각해보죠.”

“뭘 하면 좋을지, 뭘 하고 살아가야 할지. 제가 같이 고민해줄게요.”

고민의 공유를 약속한 사람은 비공정과 함께 멀어졌다. 지금은 눈이 벌게져서 자신을 찾고 있을 것이다.

‘눈이 내리지 않는 곳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 근방은 아니겠지만 남쪽으로 아주 멀리 내려가면 겨울이 오지 않는 도시도 분명 있을 것이다.

‘거기서 혼자….’

당연한 사실을 중얼거리는데 덜걱하고 무언가 가슴에 걸렸다. 정처 없던 걸음이 멎었다. 머리와 어깨에 눈이 쌓여감에도 더 걸을 수가 없었다.

여원은 사결이 거슬렸다. 첫 만남부터 줄곧 그랬다.

저와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라 꺼려지면서도 신경이 쓰였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구렁이 담 넘어가듯 헤실거리기만 하니 더욱 그랬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계속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 답장도 하지 못할 연락을 기다렸다. 냉정하게 굴지 못했고 그의 손을 뿌리치지도 못했다. 어울리지 않는 미련함으로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마계를 벗어났으면서 새롭게 얽힐 곳을 스스로 만들었다. 세상에 이런 멍청이가 또 있을까.

빵빵!

그때 옆에서 가벼운 클랙슨이 울렸다. 뒤늦게 정신이 들었다. 아무리 상념에 잠겼다지만 차가 옆에 서는 줄도 몰랐다니. 서늘한 눈을 한 채 내려가는 차창에 시선을 줬다.

지금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상대도 하지 않고 자리를 벗어나야 맞다. 그걸 알면서도 우두커니 서서 운전자와 얼굴을 마주했다.

클랙슨 때문이다. 소리는 경적 같지 않게 아주 부드러웠다. 여유도 느껴졌다. 고작 클랙슨에서 누른 사람의 성격이 보이는 게 신기해 여원은 그대로 멈춰 섰다.

창이 내려갔다.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가 고개를 기울였다.

“이봐요. 괜찮아요?”

“…….”

“어디 다친 겁니까? 꼴이 엉망인데.”

“다친 건… 아닙니다.”

“그래요? 아무튼 여기 사시는 분은 아니죠? 여긴 안 쓴지 오래된 정류장이라 버스가 오지 않아요.”

할 말을 잃었다. 버스가 오지도 않는 버스정류장에서 한참을 있었으니 사정을 아는 사람의 눈엔 얼마나 딱하고 우스워 보였을까.

“혹시 이너시티로 가요? 그럼 태워줄게요.”

이너시티. 그리샤의 중심부이자 가장 번화한 시가지를 뜻했다.

잠깐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사결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에서 정체도 모를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게 현명하지 못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이젠 그만 쉬고 싶었다. 가능하면 아무 생각 없이.

며칠 혹사한 몸보다 정신이 더 지쳤다. 차 문을 여는데 엉망인 옷자락이 눈에 들어왔다. 멈칫하며 손을 떼자 사내가 나른하게 웃었다.

“하긴 갑자기 태워준다니 수상해 보일 수도 있겠네요.”

이 주변이 익숙해 보이는 건실한 청년과 다 찢어진 옷을 입은 먼지투성이 외지인. 어느 쪽이 더 수상한지는 생각할 것도 없다. 사내라고 그걸 모르진 않을 거다.

“안심하세요. 저 엄청 허약해요. 그쪽이 한 대 치면 기절할걸요?”

그런데 대답이 저 모양이다. 익숙한 가벼움과 뻔뻔함을 느꼈다. 그러자 경직된 어깨가 조금 풀렸다. 처음 보는 상대가 그리 위험하지 않게 느껴졌다. 우습다. 정말 우습다.

“옷이 더러워서.”

“그럼 벗고 타시죠.”

“…….”

“어, 아니… 농담입니다. 정 신경 쓰이면 그 점퍼만 벗으세요. 차 안은 따뜻하니까 괜찮을 겁니다.”

시키는 대로 했다. 벗은 점퍼를 품에 안고 조수석에 타자 차가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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