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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47)화 (47/106)

47화

이번 청문회엔 시장, 시의원, 그리고 대형 길드의 길드장 혹은 부길드마스터가 참석했다.

방청객과 기자는 없으며 가장자리엔 경호 인력이 빼곡히 포진했다. 솔직히 쓸데없다고 생각했다. 여기 모인 이들의 무력은 서대륙 최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결은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착석한 이들을 훑어봤다.

‘다들 많이 컸군.’

이 자리에서 가장 어린 사람일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시장이 위원장으로서 개회선언을 했다. 청문회의 진행 자체는 지루했다. 상투적인 질의 문답이 오갔다. 사결은 교과서적 답변을 했고 질문한 길드장은 납득하며 넘어갔다.

유일한 참고인 자격으로 말석에 앉아 있던 최치택은 어리둥절했다.

‘뭐야. 왜 다들 쓸데없는 질문만 잔뜩 하는 거야.’

‘기억나지 않는다는데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간다고? 제정신인가?’

‘내가 어떤 개고생을 해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는데…!’

당황은 분노가 됐다. 어느새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청문회를 보며 최치택이 이를 갈았다. 회동이 끝나고 연락을 받았을 땐 이렇지 않았다.

식사 자리에는 맨 처음 포섭한 길드장을 비롯해 그리샤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크레딧 타도를 외치며 술잔을 부딪쳤다. 자리가 파한 후, 처음 낚은 물고기는 다시금 최치택의 등을 퍽퍽 두드리며 자신만 믿으라 했었다.

“이번에 길드 계정으로 SNS에 올라온 사진 말인데….” 

그랬던 인간이 뭐 저딴 질문을 한단 말인가! 

‘뒤늦게 겁이라도 먹은 모양이지.’

쓸모없는 새끼들. 최치택은 겨우 짠 판이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가 버린 것에 분노하면서도 이성적으로 판단했다. 이건 텄다. 그렇다면 흐름에 편승해 조용히 있다 나가자. 그렇게 판단했을 때였다.

“참고인 석의 삼라성 길드장.”

그 순간 장내에 있던 모든 눈이 말석에 앉은 최치택을 향했다. 자료를 부스럭거리던 손이 멎었다. 옆자리에 앉은 길드장을 건드리며 낄낄거리던 헤스티아 길드장마저 입을 다물었다. 그 인공적인 침묵과 주목에 최치택이 쨍하고 얼어붙었다.

‘뭐야…?’

그는 뒤늦게 이상함을 느꼈다. 그렇게 뒤에서 작업하고 회동까지 거쳐 겨우 얻어낸 자리다. 촌철살인 같은 질문이 쏟아져도 모자랄 판국인데 개회 내내 쓰레기 같은 질문만 이어졌다.

‘잠깐. 이거.’

최치택이 뒤늦게 무언가 깨달았다. 사결이 픽 하고 웃었다. 그리고 사방에서 민감한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삼라성은 확실히 그리샤의 길드였습니다. 그랬던 때가 있었죠. 하지만 그리샤를 버리고 다른 도시로 망명해 심지어 내내 다른 길드의 일원으로 살던 사람이 왜 다시 돌아온 겁니까?”

“무려 3년 치의 세금을 축소해서 낸 혐의가-”

“마정석의 불법 외부 반출의 정황이-”

머리가 아찔해지는 수위의 질문들이었다. 심지어 그 대부분이 사실이다. 최치택은 이 자리가 청문회장인지 법정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러다 결정타가 날아왔다.

“그래서 청왕의 위스퍼리 길드와는 무슨 관계지?”

헤스티아 길드장이다. 여전히 손으로 턱을 괸 채 실실 웃는 낯이다. 시장이 처음으로 예의를 갖추라는 지적을 했다.

헤스티아 길드장은 건성으로 알겠다고 대답하곤 “그래서 무슨 관계냐니까?”하고 질문을 되풀이했다.

최치택은 칼날 위에 선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자, 잠깐만요. 지금 이 자리는 크레딧 길드의 마정석에 대한 부당한 독점과 그리샤에서의 폭거에 대한-”

“아, 맞아. 그랬지. 그럼 원제로 돌아오도록 할까.”

그렇게 말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사결이었다. 길게 다리를 꼰 그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위원회로 참석한 시의회와 길드의 중진들은 침묵으로 묵인했다.

그 모습이 꼭 무소불위의 권력을 움켜쥔 왕과 그가 거느리는 신하들처럼 보였다. 최치택의 머리에서 벼락이 쳤다. 막연한 불길함이 마침내 형체를 갖췄다.

사결이 턱을 까딱했다. 질문하라는 뜻이다. 꽤나 모욕적인 행동이었지만 지금의 최치택에겐 그걸 걸고넘어질 만한 여유가 없었다.

“수, 수해에서 나온 마정석 중 크레딧을 중심으로 한 세 개 세력이 가지는 마정석이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이야.”

최치택은 반말조차 그냥 넘어갔다.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원하는 대답을 얻은 그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게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전혀.”

사결은 당당했다. 최치택은 당황하면서도 겨우 찾은 숨구멍을 포기하지 못하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어떻게 그런-”

“이 자리의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일걸?”

그건 단두대의 구멍이었다. 사결이 좌중을 돌아봤다.

“혹시 새로운 분배율이 필요하다 여기는 분. 계십니까?”

“새 분배율을 주장하자고? 흠. 하긴 시간이 그렇게 흘렀으니. 슬슬 말을 꺼낼 때가 되긴 했지.”

최치택은 반사적으로 그렇게 말했던 길드장을 봤다. 그는 고요한 눈으로 최치택을 응시할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사결이 비릿하게 웃었다.

“없군.”

“이게…. 이게 대체.”

완전히 넋을 놓은 최치택이 중얼거렸다. 끼익, 의자가 뒤로 밀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사결이 최치택을 향해 다가갔다.

“대재난 당시 피해는 괴멸적이었지. 복구는 요원했고 당장 웨이브가 다시 발생할지 모를 가능성 때문에 많은 헌터가 도시를 떠났다. 최치택. 당신을 포함해서 말이지.”

커다란 손이 최치택의 어깨를 턱 짚었다. 그는 생선처럼 퍼덕였지만 차마 그 손을 떨쳐내진 못했다.

“수로 따지면 대략 1할 정도였나? 하지만 바꿔 말하면 나머지 9할이 넘는 대다수의 헌터는 여전히 그리샤에 남았다. 그 이유가 뭐였을 거라고 생각하나. 너 같은 빡대가리에겐 너무 어려우니까 힌트를 주지. 그리샤엔 헌터만 사는 게 아니야.”

“설마 가족 때문이라고 할 생각은 아니시겠죠. 고등급 헌터는 그 친족까지 함께 망명이 가능합니다!”

“…정정하지. 그냥 빡대가리가 아니라 아주 병신 빡대가리였네.”

사결이 어깨를 으쓱이자 사방에서 웃음이 터졌다. 최치택은 모욕감에 치를 떨었으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명백한 사냥감임을 인지했다. 지금은 납작 엎드려 이 상황을 모면해야 했다.

“대재난이 발생했을 당시의 사망자는 6천 명이 조금 넘었고 그 대부분이 헌터들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1년간 사망자는 3만 명에 육박했고 전부 민간인이야.”

대재난이 끝나고 격벽을 재정비한 후에 죽은 사람이 더 많다. 그게 의미하는 건 하나뿐이다.

“마소 중독 때문이었지.”

수백 개의 게이트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는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그리샤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중간계의 공기에 섞이며 연해졌으나 그만큼 넓은 범위를 뒤덮었다. 그때 마기에 노출된 민간인 중 마소 중독의 발병 비율은 대략 절반.

서대륙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 그리샤는 가장 많은 마소 중독 환자가 살아가는 도시가 됐다.

“게이트는 한정적이야. 그건 곧 거기서 나오는 마물과 마정석의 양 또한 정해져 있다는 뜻이지. 그걸로는 갑자기 늘어난 수만 명의 마소 중독 환자를 감당할 수 없어. 다른 도시의 마정석을 사들이는 것도 미봉책에 불과하고 한계 또한 명확하지. 마정석 값은 폭등할 테고 종래엔 그마저도 전부 소모될 테니까.”

사결이 이런 말을 하는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삼초승달의 최연소 길드장이 되었을 때. 절망에 울부짖는 모든 헌터들을 찾아가 같은 논지로 설득했다.

“망명해서 헌터 일을 하고 돈을 벌어 마정석을 산다 해도 결과는 같아. 그리샤의 모든 이들이 마정석을 찾아 메뚜기 떼처럼 흩어지면 오히려 예정된 파멸만 더욱 이르게 찾아올 뿐이지.”

“…….”

“내 말을 들은 그리샤의 헌터는 열이면 열, 같은 질문을 되돌렸다. ‘그럼 씨발, 우리더러 어쩌라는 건데.’”

그때를 떠올렸는지 몇몇 길드장이 흠칫했다. 헛기침하는 자도 있었다. 어린애 상대로 울컥했던 과거는 모두가 잊고 싶은 흑역사였다.

‘아니 여우콩만 한 게 삼초승달의 후계자랍시고 찾아와서 방법이 있다고 조잘거리는데 그럼.’

‘당연히 좆도 모르고 나대는 건 줄 알았지….’

‘나만 그런 거 아니잖아.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솔직히 너무 어렸다고.’

개중엔 의외로 굳은 눈빛이 되는 자도 있었다. 사결의 대답을 떠올린 사람이다.

“아저씨들. 대체 무슨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거야.”

아직 작고 가는 손가락이 밖을 가리켰다. 격벽 너머, 마물이 들끓는 빼앗긴 땅을.

“마정석이라면 저기 넘치도록 있잖아.”

그때의 빛나는 눈을 그대로 간직한 청년이 나른하게 웃었다.

“생각해보면 단순한 이야기고 당연한 이야기지.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다들 알아차리는 게 늦었을 뿐.”

그리샤는 영락했지만 무한에 가까운 마정석이 나는 땅 바로 옆에 자리했고, 무수한 마소 중독 환자를 발생시킨 증오스러운 멸망의 근원은 유일하게 그들을 연명시킬 수 있는 희망이 됐다.

하지만 모든 길드장이 처음부터 동조한 건 아니었다. 그만큼 마물의 해일이 할퀸 상처는 크고 뼈아팠다. 공포 또한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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