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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45)화 (45/106)

45화

여전히 어항 앞 고양이 모드인 사결의 뺨에 이현수가 캔 음료를 댔다. 차가운 커피였다. 카페인을 확인한 그가 거절하지 않고 캔을 따 단숨에 들이켰다. 이현수가 한숨처럼 말했다.

“길드의 긴급연락입니다. 삼라성의 최치택이라는 자가 뭔가 일을 벌인 모양입니다.”

이현수가 단말기를 조작했다.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문서가 떠올랐다. 아래는 그리샤 시장의 직인이 찍혀 있었고 뒷장엔 헌터 협회의 공문이 함께였다.

사결은 본 척도 하지 않았다. 충분히 예상한 이현수가 사결과 모니터 사이에 홀로그램을 불쑥 들이밀었다. 중첩된 화면 탓에 뒤편이 잘 보이지 않았다. 미간을 찌푸린 사결이 눈동자만 움직여 이현수를 흘겼다.

그가 대강의 상황을 설명했다. 대강이라지만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을 언급했기에 들을수록 사결의 눈이 가늘어졌다.

“…해서 청문회에 대한 출석요구서가 날아왔습니다.”

과거 도시국가 이전의 시대에 청문회는 조사, 입법, 감독, 인사 이렇게 네 종류였지만 사람들이 가장 크게 인식한 건 인사청문회였다.

지금도 그건 다르지 않다. 다만 의미나 인과관계는 조금 바뀌었다. 과거엔 ‘그 사람을 어떤 자리에 앉혀도 좋은가.’에 대한 자질 검증에 목적을 두었다면, 현재는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 거기 있기에 여전히 합당한가.’를 의논했다.

경우에 따라선 그 자체가 약식 재판이 되기도 했다.

헌터는 기본적으로 일정 수준의 면책권을 갖는다. 본래는 모든 헌터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등급에 따라 탄력적으로 바뀐다. 높은 등급의 헌터는 그리샤라고 해도 귀한 전력이다. 그들의 모럴이 느슨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청문회는 그런 이들을 한 번씩 조여 주는 고삐의 역할을 했다.

한 마디로 ‘버리기 아까운 고등급인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헌터를 공개적으로 두들겨서 말 잘 듣게 길들이는 자리.’라고 하겠다.

현대의 길드는 그 자체로도 일종의 기업체였고, 따로 사업을 벌여 기업체를 운영하는 경우도 많았다. 부정적인 이미지는 가치판단 및 매출과 직결된다. 그들은 마물을 무서워하진 않았으나 돈은 두려워했다. 청문회는 효과적인 고삐의 역할을 했다.

헤스티아 길드장이 세 번이나 청문회장에 선 건 유명한 일이다. 거대 길드 길드장으로선 이례적이지만, 덕분에 그리샤의 사람들은 그의 폭력성과 충동에 대해 인지하게 됐고 헤스티아는 그로 인한 불이익을 톡톡히 받았다.

사결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다만,

“민간에 공개는 하지 않고 진행된다라…. 이거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나?”

픽 웃은 그가 알만 하다는 듯 말했다. 청문회의 의의는 고삐다. 그런데 민간에 공개하지 않는다? 거기서 벌써 감이 왔다.

“아마 맞을 겁니다.”

많은 것이 생략됐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알아들었다.

사결은 그제야 겹겹이 뜬 홀로그램 문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남이 보면 그냥 대충 훑어 넘기는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를 오래 본 이현수는 알았다. 사결은 글자 하나 빠뜨리지 않고 전부 읽고 있었다.

길드는 결국 기업과 다를 바 없다. 크레딧쯤 되면 무소불위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대기업이다. 과거에 빗대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 길드의 길드장은 대부분 필연적으로 적이 많고, 들어오는 크고 작은 공격도 많다. 이번 일은 그런 공격의 일종이었다.

문서는 나름 요약된 보고서였다. 다만 최치택이라는 자가 그만큼 여기저기 활개를 치고 다녔을 뿐이다.

“재밌네. 딱히 내가 준비할 건 없어 보이는데.”

“그래도 뭐에 대한 청문회인지는 아셔야지 않겠습니까.”

“뭐에 대한 청문회인데.”

“크레딧 길드의 만행과 횡포에 대해서입니다.”

“하하. 내가 요즘 웃을 일이 없다고 이런 식으로 웃겨-”

실실거리던 사결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굳어졌다. 의아해진 이현수가 그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대체 뭘 봤길래 저러-

콰앙!

그의 생각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거대한 폭음과 함께 멀지 않은 선수에서 소란이 일었다.

“뭐, 뭐야!”

“당장 상황 보고부터 해!”

사결이 문을 향해 뛰었다.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헐레벌떡 달려온 크루와 딱 마주쳤다. 길드장과 코끝이 닿을 거리에서 마주친 크루는 당황으로 굳어버렸다. 사결은 그의 팔을 안으로 확 잡아당기고 저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중심을 잃은 크루가 엇, 엇, 하다가 앞으로 굴렀다.

“헉. 뭐야?”

“길드장님이다!”

“어, 엄청 빨라.”

“역시 S급 헌터….”

“지금이 감탄하고 있을 때냐! 다들 정신 차리고 화재부터 진압해!”

요란한 사이렌이 울렸다. 선수와 복도는 예상치 못한 사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으로 분주했다. 자동문이 다시 닫히고 소음이 한 꺼풀 멀어졌다. 이현수가 의자 옆에 구겨진 크루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지?”

“그, 그걸 파악하려고 보안실을….”

그렇겠지. 이현수는 혀를 차면서도 여전히 모니터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안절부절못하며 다시 뭐라 말하려는 입을 그가 막았다.

“됐다.”

“예?”

“길드장께서 해결을 위해 가셨으니 너희는 너희가 해야 할 일을 해.”

크루의 낯이 확 밝아졌다. 그렇다면 전혀 걱정할 게 없다는 것이 표정으로 전해졌다. 그는 알겠다며 보안실을 뛰어나가 선수로 향했다.

이현수는 폐부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을 끌어올려 내쉬었다. 팔짱을 낀 그가 한 화면을 응시했다. 노이즈가 낀 카메라는 옆으로 기운 채다. 폭발의 충격 때문이었다.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예상하긴 했다. 사색이 되어 뛰어나간 사결을 보자 더 확인할 것도 없었다. 소란의 진원지는 화물칸이었다.

* * *

벽면에 뚫린 거대한 구멍을 바라보며 여원이 입술을 짓씹었다. 뭘 잘못 건드렸는지 구멍 한쪽에서 타닥거리며 스파크가 튀었다. 불길은 작았지만 연기는 거창했다. 누가 보면 비공정의 추락을 생각할 만한 연출이었다.

여원은 생각했다.

‘불을 지를 생각은 없었는데.’

이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사람이 몰린다. 뛰어내리고 나서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도망부터 가야 할 판이었다.

‘하긴 인생이 언제 내 뜻대로 됐었다고.’

그는 자조했다. 당장 지금 상황만 해도 그렇다. 마지막 선택은 자신이 했지만, 그 직전까진 반쯤 내몰리듯 당도한 게 여기였다.

여기.

단순한 말이지만 그 말이 내포한 것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여원은 잡생각을 쫓아내며 폭발로 찢겨나간 구멍의 가장자리를 꽉 움켜쥐었다. 아직 열기가 남은 철판이 살짝 구겨졌다.

상반신을 앞으로 내밀었다. 보통사람이라면 그대로 휩쓸려 떨어질 만큼 강한 바람이 불었다. 그래도 높이는 생각보다 높지 않다. 도시에 들어온 이후 비공정은 느린 하강을 시작했고 드문드문 자리한 농가의 형태가 꽤 선명하고 크게 보였다.

‘이 정도면 죽지는 않겠어.’

탈피를 거듭해 강해진 몸이라도 이 높이에서 날개 없이 떨어져 무사할 순 없다. 온전할 거란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부상은 감안한다.’

수용(受容)은 체념과 비슷했다. 어찌할 수 없는 현상이나 대상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특히 그랬다.

하지만 마계였다면 모를까. 중간계로 넘어온 여원에겐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게 존재했다.

삼초승달.

되살아나기 시작한 감정에 휩쓸려 찢기지 않으려면 그것들을 쏟아낼 대상이 필요했고, 그건 결코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었다.

생각하는 사이 점점 가까워지는 지상을 응시했다. 그의 몸이 서서히 앞으로 기울었다. 매서운 칼바람이 그의 몸을 두들겼다.

“…….”

사결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부터 이럴 생각이었다.

누군가에 붙들리는 것, 새장 안에 갇히는 결말은 이제 견딜 수 없다. 체념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사는 것. 저항하고 몸부림치는 것. 그것이 마계로부터 목숨을 걸고 도망친 이유였으므로.

본래 조용히 탈출할 생각이었지만 사결의 목을 조른 시점에서 그 선택지는 이미 글러 먹었다. 그러고 보면 왜 그랬을까. 여원은 때늦은 의문에 자조했다. 몇 번을 돌이켜봐도 죽일 생각 같은 건 없었다. 그럼 그런 행동을 해선 안 됐다. 당연히 이런 복잡하고 불리한 상황이 만들어질 게 자명하니까.

하지만 그 순간엔 충동을 이길 수 없었다.

‘충동’

그건 여원에게 있어선 ‘자유’만큼이나 낯선 단어였다.

사결과 함께한 날들은 대개 그랬다. 새로운 걸 체감하는 동시에 명확한 답도 없이 정확히 같은 양의 의문이 쌓이는 시간.

봐라. 지금도 그렇다. 그냥 구멍 밖으로 몸을 날리면 그만인 걸 자신은 왜 망설이고 있나.

콰앙!

철문이 안쪽으로 부서졌다. 그 사이로 사결이 뛰어 들어왔다.

“여원!”

그 부름을 들은 순간.

여원은 여태 쌓인 의문 중 처음으로 명확한 답을 얻었다. 자신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구멍 앞에서 미적거리고 있었던 건 저 사내의 얼굴을 한 번 보고 가기 위함이었다.

사결이 구멍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걸쳐 선 여원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사태를 파악한 그는 득달같이 달려드는 대신 자리에 얼어붙었다.

“…뭐 하는 겁니까. 위험하니까 이쪽으로 오세요!”

여원은 굉음에 의해 찢어진 몇 개의 단어와 입 모양만으로 사결의 말을 이해했다.

소음이 너무 커서 제대로 들린 건 거의 없다. 그럼에도 확신했다. 그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불안으로 떨렸다는 걸.

안절부절못하는 사결은 그 자체로 작은 돌이 되어 여원에게 던져졌다. 거친 파문이 일었다. 물결친 기억이 근래의 어느 순간으로 그를 데려갔다.

진실을 알게 된 날. 그래서 마정석을 빵부스러기처럼 흘리고 다녔던 날. 여원은 그리샤로 떠날 결심을 굳혔다.

그러자 어째선지 박명석은 물론이고 인사나 하던 사이였던 인부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뇌리에 남았다. 그리샤로 떠나면 다신 보지 못하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이번엔 자신이 다스렸던 작은 영지의 행정관들과 기사들이 떠올랐다. 완전히 잊고 지내던 머나먼 날의 일상이 바로 어제의 일처럼 선명했다.

그런 불가사의한 현상의 시발점은 눈앞의 사내였다. 그는 중간계로 와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자신의 감정에 물과 양분을 주었다. 

‘안온한… 날들이었던가.’

마음에 형태가 있다면 지금 제 것은 몽글거리는 순두부 같을 것이다.

여원은 인정했다. 사내가 자신에게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휘감아 끝내는 크게 흔들어 놓았다는 걸.

다만 그 흔들림은 이명환의 아들인 그를 죽일 수 없을 만큼은 되었으나 제 안에서 썩어가는 한을 불식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그것뿐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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