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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44)화 (44/106)

44화

“그래요. 뭐 그렇다고 칩시다. 그래서 뭔 짓을 해도 끝까지 안 되면요?”

사결은 대답하지 못했다. 생각만으로도 슬픈지 눈가가 촉촉해졌다. 못 볼 걸 본 이현수는 미간을 구겼다.

“그리샤에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뒤를 봐 줘야지.”

제정신인가.

“누굴 만나는지, 어딜 가는지 전부 감시하고 날파리가 꼬이지 않게 해야지. 그렇게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선에서 서서히 그물을 조여 마지막엔 어쨌든 손에 넣을 거다.”

…이런 거 보면 또 제정신인 것 같고.

“그가 당신을 죽이려 했던 건 기억에서 지우셨습니까?”

그런 짓 당했는데도 좋냐? 라는 뜻이다.

“진짜 죽이려 한 건 아니라고 했을 텐데.”

“그걸 어떻게 장담하십니까.”

사결은 대답하지 않고 보안실을 나섰고 이현수는 더 말리지 못했다. 홀로 남겨진 이현수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밖으로 나온 사결은 무표정으로 걸었다. 복도는 온통 철판과 자물쇠뿐인 장소로 이어졌다. 화물칸으로 가는 연결통로였다.

앞에서 꽤나 머뭇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간 쌓인 초조함이 찰나의 망설임을 밀어냈다.

끼이익.

쇳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웅웅대는 굉음 때문에 귀가 아팠다. 공기는 차디찼고 바닥은 거칠었다. 모니터로 보던 것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 사결이 미간을 구겼다.

온도가 뭐? 감압이 뭐?

‘이현수 이 새끼가 진짜.’

이럴 줄 알았으면 박박 우겨서라도 객실에 감금하는 건데. 입술을 깨문 사결의 시선이 구석의 벽에 닿았다. 그곳에 여원이 있었다. 벽면에 기대앉아 고개는 푹 숙인 채다. 무슨 사람이 미동도 없다.

마른침을 삼킨 사결이 천천히 다가갔다. 발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상대는 반응이 없다.

“여원.”

불러도 마찬가지다. 사결은 사내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흐트러진 머리칼을 손끝으로 건드렸다. 앞머리를 옆으로 쓸어 넘기자 그제야 죽은 듯 미동도 없던 사내가 눈을 떴다.

별거 아닌 행동에 심장이 요동쳤다. 여기 오기 전 몇십 번이고 되뇌며 준비했던 말들이 깡그리 날아갔다. 정제되지 않은 말이 입안을 맴돌았다.

‘이럴 거면 왜 나랑 잔 겁니까.’

‘무슨 생각으로 나를 따라나섰습니까.’

‘정말로 날 죽이려 했습니까?’

여원이 사나운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고작 눈빛인데 숨이 막혔다. 저 안에 담긴 적의를 부정하고 싶었다.

“…….”

“…….”

어디서 피비린내가 났다.

구웅. 구웅. 크게 울려대는 엔진음이 멀어지고 무수한 함성이 울려 퍼지는 전장이 언뜻 보였다 사라졌다.

하지만 사결은 그런 살기보단 여원의 반응 자체에 크게 동요했다. 싸늘하고 냉정하다. 희미한 적의가 서린 시선이 꿰뚫을 듯 그를 향했다.

“돌아가십시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사결은 표백되어 그대로 굳어졌다.

며칠 전 몸을 섞을 때 느낀 열기는 다 환상이었나. 그때 안아본 저 피부가 델 듯이 뜨거운 걸 알고 있는데, 지금은 한 뼘 가까워지는 것도 힘들다. 그 간극이 사결의 심부를 후벼 팠다.

“그리샤에 도착할 때까진 혼자 있고 싶습니다.”

거부는 완강했다. 사결은 말도 붙여보지 못하고 도망치듯 화물칸을 나왔다. 삐걱거리며 복도를 걸었다. 그렇게 몇 걸음이나 멀어져 왔을까.

콰앙!

하급 마물은 그냥 죽여 버리는 주먹이 철판으로 덧댄 복도의 벽을 후려쳤다. 망치로 친 듯 그 자리가 움푹 들어갔다.

몇 번 더 내리친 사결이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덮었다.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행동 또한 그답지 않은 일이었다.

이성이 무뎌지고 겪어보지 못한 감정이 파도처럼 저를 쳐 댔다. 파도는 곧 거대한 폭풍을 몰고 왔다.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말을 몇 번이고 삼켰다.

“시발. 씨발 진짜.”

되풀이된 욕설은 물에 젖은 낙엽같이 힘없고 부질없었다.

* * *

비공정의 항해는 순탄했다.

이 거대한 하늘 고래는 제 뱃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개의치 않고 구름 사이를 가로질렀다.

사결은 그 후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때가 되면 헌터임이 분명한 크루가 식사를 들고 왔다. 사슬이 닿는 아슬아슬한 지점에 식판을 놓고 한 번 노려보고 가는 것이다.

빈 그릇을 같은 자리에 두고 다시 철판에 등을 기댔다. 이틀간 한 일이라곤 눈을 감고 사색에 잠긴 것과 가끔 눈을 떠 손바닥 크기의 둥근 창으로 밖을 훔쳐본 게 다였다.

해의 움직임을 따라 변하는 하늘, 가끔 구름 틈새로 모습을 드러내는 지상, 다른 도시의 격벽과 마력장이 보일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불모지를 어슬렁거리는 마물이었다.

과거 번영했던 문명의 잔재는 덩굴과 자연에 파묻혀 마물들의 훌륭한 서식지가 되어 주었다. 색감은 다르지만 풍경 자체는 마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물이 어슬렁거리고 그 마물을 잡아먹으려는 마수가 용트림하고…. 때마침 저급한 마물이 날아올랐다. 새를 닮은 그것들이 비공정을 지나 지평선 저편으로 멀어졌다.

나는 생각했다. 사결에 대해서다. 여전히 답은 나오지 않고 나는 무의미한 자문만 반복하고 있다.

백담을 떠난 지 사흘째.

저 멀리 거대한 수해와 맞닿은 대도시의 격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퀘아악!

퀘으엑!

익룡을 닮은 마물들이 비공정을 노리고 접근했다가 마력장에 떨어져 나갔다. 개중 약한 개체는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마비되어 연기와 함께 추락했다. 그 자리로 자연스럽게 다른 마물들이 몰려들었다.

콰드득.

콰직.

익룡은 산채로 갈기갈기 찢겼다. 지상의 마물은 좀처럼 맛볼 수 없는 날짐승의 고기를 포식했다. 남은 건 질긴 꼬리와 갈고리 같은 발톱 몇 개뿐이었다.

때마침 비공정이 도시로의 진입을 시작했다. 하늘배가 두른 마력장의 파장이 격벽의 마력장에 맞춰 변했다.

파직. 파지직.

비눗방울에 다른 비눗방울이 합쳐지듯 비공정이 마력장을 쑥 지나쳐 들어갔다. 여기부턴 도시의 상공이다. 아래는 여전히 숲이었지만 풍경은 밖과 전혀 달랐다. 마물은 없고 가끔 놀란 고라니가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확실히 인간의 영역이란 느낌이었다.

백담과 달리 그리샤에선 격벽과 거주지의 거리가 상당했다. 격벽 자체도 두 겹이었고 바깥쪽 거대한 격벽과 비교적 작은 안쪽 격벽 간의 간격은 대략 3km쯤 되어 보였다.

정보상에게 미리 받아둔 정보와 일치했다. 그렇다면 그리샤의 크기도 정보와 같을 가능성이 크다. 백담의 약 20배가 넘는 면적.

상상하니 아득해졌다. 괜히 초거대도시로 불리는 게 아니었다.

‘격벽에서 차로 한 시간 이상 이동해야 겨우 외곽지대던가.’

외곽의 대부분이 낙후된 도로인 것을 고려해도 엄청난 넓이였다. 비공정의 속도를 생각하면 포트까지 앞으로 십 분쯤 걸릴 것이다.

“…….”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어쨌든 결론을 내렸고 결심을 세웠다.

과거에도, 지금도. 내 우선적인 목표는 그리샤에 가는 것이었다. 밀항을 하나 이렇게 사결을 이용하나 별 차이는 없다. 오히려 그 상황을 원만하게 해결하려면 일단 따르는 척하는 편이 나았을 뿐…이라고 다짐하듯 되뇌었다.

되풀이하는 읊조림이 거짓말이라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제게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 되겠습니까?”

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단칸방.

그날 그 순간의 상황 자체는 내가 크라투스에게 끌려가던 때와 무척 비슷했다. 다른 건 단 하나. 상황의 중심이 되는 자였다.

크라투스와 같은 길을 갈 수도 있었던 사결은 결과적으로 그와 상반된 선택을 했다.

누가 봐도 우위를 점한 상황에서 무릎을 꿇고 내게 애원했다. 멀쩡히 쥐고 있던 칼자루를 내게 넘겨줬다.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홀린 듯 그를 따라나선 건.

나는 온전한 자신의 선택으로 비공정에 올랐다. 여기 이렇게 묶여 끌려가는 것도 전부 내 선택의 결과다.

불현듯 웃음이 났다. 스스로가 결여되고 비틀린 인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체감하니 느낌이 사뭇 달랐다.

‘그때 거절했으면 그도 크라투스처럼 강압적으로 나왔을까?’

아니. 그렇진 않았을 거다.

분위기상. 느낌상. 그런 말로밖엔 설명할 수 없지만,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음에도 밝은 등불 같은 확신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밖은 분지 형태의 평야였다. 추수를 끝낸 논이 휑하게 비어 있다. 농업과 축산업을 생업으로 삼는 외곽의 마을이 가까웠다는 뜻이다.

여기가 내가 내려야 할 곳이었다.

철그렁.

쇠사슬이 불편한 소리를 냈다. 손에 힘을 주자 헌터 구속용으로 만들어졌다는 족쇄가 장난감처럼 부서졌다.

눈을 위로 들었다.

있는 줄 알았지만 없는 것처럼 굴었던 감시카메라를 잠깐 응시하다 등을 돌렸다. 비공정의 벽면을 부쉈다.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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