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이 새끼들이 미쳤나.”
“자기 길드장을 죽일 뻔한 인물인데 손도 대지 않고 묶어만 놨습니다. 원리원칙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데 뭐가 문젭니까.”
“적어도 벽에 고정한 건 풀고 사슬도 길게 늘여. 사람 붙여서 배고프면 음식이랑 물 가져다주고 화장실도 제때 갈 수 있게 해.”
“진짜로 미친 겁니까?!”
“멀쩡하니까 그만 물어봐. 그리고 말은 바로 해. 죽이려고 하지 않았어.”
“제가 CCTV로 본 건 뭡니까. 그럼.”
“마지막에 힘 뺐어.”
그건 죽이려고 했는데 중간에 마음을 바꿨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손에 힘도 천천히 들어왔어. 귀환자니까 마음만 먹는다면 단번에 죽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지.”
자신을 죽이려고 한 상대에 대한 사결의 필사적인 변호를 들은 이현수의 뇌리에 마침내 불이 켜졌다.
그가 양손에 얼굴을 묻으며 신음했다. 하긴 이렇게 대놓고 티가 나는데 모르는 척 부정하는 게 더 힘들다. 떠올리기만 해도 소름이 돋지만 지금 이 인간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어제만 해도 CCTV를 보는데 갑자기 판이 시작돼서 얼마나 기함을 했는지 모른다.
이현수가 끙끙거리는 새 그래도 좀 차분해진 사결이 말했다.
“흥분하는 바람에 깜박했어.”
“…뭘요.”
“내가 이명환 아들이라는 걸.”
“? 뭔 말도 안 되는…. 아.”
사결은 이명환의 친아들이 아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극소수였고 지금에 와선 이현수 하나뿐이다. 게다가 이명환에 관해 말을 나누는 것도 그가 유일했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사결이 피곤함에 찌든 표정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너하고 붙어 지내다 보니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어. 제기랄.”
몰랐던 건 아니다. 그건 말 그대로 깜박한 것에 가까웠다. 자신이 이명환과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 아는 사람하고 붙어 다니며 편하게 이야기하다 보니 습관처럼 상대방도 이미 안다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상황도 상황이었다. 절박하게 매달리다 상대방이 겨우 마음을 열 기미를 보이자 그 외의 것은 뇌리에서 깨끗하게 지워졌다. 절대 간과해선 안 됐던 것까지도.
전후 관계를 이해한 이현수는 숙연해졌다.
‘들켰구나.’
노리고 접근했다 한들 그게 사람을 죽일 이유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대체 어떤 경로로…. 아니, 지금은 중요하지 않지.’
이현수는 나오려는 한숨을 참았다.
대신 뭘 해 보기도 전에 파국을 맞은 상사에게 위로부터 건넸다.
“어쨌든 한동안은 여원님과 거리를 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해명하려고 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선 오히려 더한 오해만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이건 사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게 반, 여원이 다시금 사결을 공격할 게 우려된 게 반이었다.
이현수는 사결의 목이 졸리던 순간을 떠올렸다. 새삼 등골이 서늘하다.
사결은 그리샤를 이끌어가는 거대 길드의 길드장이었지만 그의 진짜 가치는 따로 있었다.
그는 토벌에 참여한 헌터들이 이정표로 삼는 가장 밝은 별이었고 그리샤의 모두가 두 손 모아 뒤따르는 선지자였다.
“그래.”
사결이 시무룩하게 답했다. 이현수의 심경은 더욱 복잡해졌다.
* * *
길드장이 데려온 연인이 길드장을 죽이려고 했다!
그 소식은 크루들을 시작으로 파견 임무로 탑승했던 소수의 길드원에게까지 전해졌다.
“치정?”
“치정이네.”
“길드장이 쓰레기 짓을 했겠지.”
사결을 우상시하는 비공정 크루들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뭔가 사정이 있을 거라 여기거나 여원에게 적대감을 표출했지만, 길드원들은 달랐다.
소도시로 파견을 나간다는 건 주로 고등급 마력운용계였다. 다시 말해 사결에 대해 알 만큼 아는 이들이라는 뜻이었다. 휴게실을 점거한 이들이 본격적으로 의견을 냈다.
“길드장이 바람피웠나.”
“뭐 그렇지 않을까?”
“아니면 마음도 없이 몸만 보고 덤볐다가 들통났을 수도. 비공정 탈 때 얼핏 봤는데 완전….”
“길드장 취향이었지.”
휴게실에 있던 모두가 짠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료를 뽑으러 왔다가 원치 않게 사결의 뒷담을 듣게 된 크루도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했다. 뒤늦게 이상함을 알아차린 그가 빠르게 휴게실을 나갔다.
파스텔톤의 공간엔 다시 길드원들만 남았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길드장 취향’이라고 말한 길드원이 손가락을 하나씩 꼽았다.
“딱 봐도 무뚝뚝한 성격에, 잘생겼는데 묘하게 금욕적이고, 몸은 또 엄청 좋아.”
“생각해보니 완벽하네.”
“그쯤 되면 길드장이 주문 제작한 거 아냐?”
길드원들이 낄낄거렸다.
그나마 사결에 대해 동경 비슷한 감정을 가진 얼음 속성 길드원이 눈치를 보다 의견을 냈다.
“아무리 길드장님이 쓰레기라지만 설마 그런 짓까지 했으려고.”
‘쓰레기라는 건 인정하는구나….’
옆에 있던 동료가 숙연한 눈으로 얼음 속성 길드원을 봤다. 뭐가 이상한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본인이 뭘 잘못하긴 한 모양이던데?
“어 맞아. 나도 봤어. 화물칸 앞에서 빙빙 돌고 있던데.”
“분리불안 강아지가 따로 없었지.”
대화가 오가는 내내 조용히 커피만 빨던 길드원이 고개를 저었다. 두개골 안에 든 불합리한 기관이 멋대로 상상을 해 버린 모양이었다. 그에 옆에 있던 동료가 놀리듯 웃었다.
촤악!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던 길드원이 조용히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낄낄거린 동료의 머리 위로 물이 쏟아졌다. 단숨에 비 맞은 개꼴이 된 근육질 사내가 벌떡 일어났다.
“함 떠?!”
“뜨긴 뭘 떠 미친놈아!”
“야 말려. 말려!”
개판이 되기 직전, 그들 주변의 중력이 변했다. 갑자기 무거워진 몸에 주춤한 사내들이 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가에 이현수가 서 있었다.
“그대로 비공정 바닥과 함께 추락하고 싶지 않으면 정숙하세요.”
“어…. 그럼 부길드장님도 같이 떨어질걸요?”
“…….”
“입! 이 새끼야 입!”
“으븝븝.”
“아무래도 여기가 마음에 드신 모양인데, 오늘 하루는 여기서 보내시죠. 복도로 한 발자국이라도 나오면 길드장님과 개인 면담을 잡겠습니다.”
“…….”
“…….”
이현수는 경악한 길드원들을 두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원해서 들은 건 아니지만 사실 그들의 비유가 딱 맞았다.
‘분리불안 강아지.’
여원이 화물칸에 끌려간 직후 사결은 그 앞에서 끙끙거렸다. 본인도 별로 현명한 판단이 아님을 알아서 안으로 들어가진 않는데, 화물칸 앞을 떠나지도 못했다.
‘아주 지랄 염병…. 관두자.’
능숙하게 스트레스를 조절한 그가 보안실 앞에 섰다. 노크해도 대답이 없자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미동도 없는 뒷모습이 바로 보였다. 나오려는 한숨을 삼켰다. 어항에 영혼을 빼앗긴 고양이가 따로 없다.
사결이 두 번째로 둥지를 튼 건 보안실이었다. 이유는 감시카메라와 연결된 모니터 때문이다.
화면 속 여원이 뭔가를 하는 것도 아니다. 벽에 고정한 팔도 떼어내고 줄을 늘여줬음에도 남자는 벽면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을 뿐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한동안 고요가 이어졌다. 이현수는 그냥 사결의 옆에 섰다. 딱히 할 말이 있어 온 건 아니었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후, 사결이 혼잣말처럼 물었다.
“문 열자마자 ‘전 이명환의 친아들이 아닙니다.’라고 하면 미친 사람 취급받을까?”
“미친 사람 취급은 둘째 치고 믿지 않겠죠. 저런 타입은 증거를 눈앞에 보여줘야 합니다.”
“그럼 유전자 검사를 해야 하는데.”
이명환의 시신은 수해 심부에 있다. 삼초승달 길드의 본관과 맞닿은 이씨 가문의 대저택이 그의 사망 장소로 추정되는 곳이다.
“결국 원점이군요.”
“유전자 검사를 해야 하니 수해 토벌을 도와달라고 하면….”
“네. 잘도 도와주겠네요.”
빠자작.
멀쩡하던 이현수의 구두가 얼어붙었다. 사결이 충혈된 눈으로 쏘아봤다.
“하도 답답해서 그냥 한 소리다.”
“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현수는 빠르게 사죄했다. 자고로 배고픈 맹수와 실연당한 사결은 건드리는 게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게 실연당한 맹수라면 두 배로 조심해야 마땅하다. 사과를 받고도 한동안 노려보던 사결이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긴 다리를 꼬고 팔짱을 꼈다. 거만해 보이는 몸짓이었지만 그를 오래 겪은 사람은 알았다. 저게 초조함의 발로라는 걸.
사결은 속이 타들어 갔다. 여원이 저런 곳에, 그것도 사슬에 묶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닳았다. 느리지만 얕게 오르내리는 가슴팍이 아니었다면 죽었다고 생각할 만큼 움직임이 적다. 팔뚝을 꽉 움켜쥐었다.
제 마음을 자각한 타이밍이 너무 나빴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뭔가 잘못되면 자신이 아니라 외부적 요인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자만이 발목을 잡았다. 이 경우도 엄밀히 말해 양아버지인 이명환이 문제의 중심이었지만 여원은 그를 모른다.
설명한다고 순순히 이해해줄지도 미지수다.
초조함을 못 견딘 사결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렇게 앉아서 속만 끓이는 건 제 성질에 맞지 않았다.
“어디 가십니까.”
“벌써 사흘이나 지났잖아. 이만하면 여원도 생각을 정리했겠지.”
“전 반대입니다. 아직 일러요.”
“그럼 어쩌자고. 어차피 내일이면 그리샤에 도착해. 거기 내려서도 계속 저렇게 묶어두고 짐승 취급할 건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장님이 그렇게 말하니 웃기긴 하네요.”
아무리 삼초승달이라는 기반이 있었다지만 이 자리까지 그냥 온 건 아니다. 여유가 생긴 건 크레딧이 그 위치를 공고히 한 후였다. 그전까진 사결이나 이현수나 독기가 가득했다.
인간성이나 모럴 같은 걸 챙기는 성격도 아니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데 비인도적이다? 적극적으로 그 방법을 택했다.
사실 이현수는 지금도 그런 선택을 하고 싶었다. 주사기를 건넬 때도 이성을 잃은 사결이 양 조절에 실패해 겨우 찾은 귀환자를 잃을까 봐 걱정했던 거지, 주사기 자체를 반대하진 않던 그였다.
‘감정적으로 얽혀서 일이 복잡해졌어.’
이걸 그냥 복잡하다고 표현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렇다. 필요하다면 청왕의 마피아보다 더한 짓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사결이었는데, 지금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온건주의자가 따로 없다.
“그럼 사장님이 생각하는 방법은 뭔데요.”
“설득.”
“설득해서 안 되면요.”
“애원.”
아 씨발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