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사결이 나를 찾은 건 비공정 출항 후 하루가 지난 시점이었다.
“귀가 먹먹하거나 어지럽진 않습니까?”
“마계에선-”
‘마계’라는 말에 그가 흠칫했다.
“이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나는 더 이상 내 정체를 숨기지 않았다. 사결은 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착각인지 모르지만 어쩐지 기가 죽은 듯 보였다. 식사로 추정되는 트레이도 계속 손에 든 채다.
계속 삐거덕거리는 사내를 물끄러미 보았다. 나는 그를 어쩌고 싶은 걸까. 아니, 그와 뭘 어쩌고 싶은 걸까. 여기까지 따라오면서도 사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기분이다. 이명환만 생각하면 아직도 피가 끓고, 나를 속인 사결을 보면 속이 울렁거리는데 원래 하던 것처럼 냉정하게 끊어낼 수가 없다.
그래서 그저 이 상황이 우습고 좆같았다.
멍청하게 굳어 있던 사결이 겨우 입을 열었다.
“이…건 아침입니다. 샌드위치와 수프인데 더 먹고 싶은 게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바로 만들어 오겠습니다.”
뒤늦게 원래 목적을 떠올린 모양이다.
“지금은 딱히 배가 고프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드시는 게…. 식사는 잘해야 합니다.”
“거기 두면 나중에 먹겠습니다.”
냉정하게 선을 긋자 그가 풀이 죽어 입을 다물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제 갈 길 잘 가던 뱀을 나뭇가지로 꾹꾹 찌른 기분이다. 내가 그런 기분을 느껴야 할 이유 따위 하등 없는데. 정확히 말하면 독니로 나를 문 뱀을 찌른 거니까 정당방위 아니냔 말이다.
기분이 더욱 나빠졌다. 내 눈치를 보던 뱀이 말했다.
“올해 당신 나이가 스물여덟이죠.”
“…….”
“전 스물일곱입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그러니 말을 편하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사결이 웃었다. 애써 밝은 척 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당신이 그러고 싶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전 이게 편합니다.”
아래로 내려가 있던 그의 손가락이 슬쩍 안으로 말렸다. 침묵이 찾아왔다. 방 안의 소리라곤 부유하는 비공정의 희미한 기계음뿐이다. 괜히 어색하다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그와 같이 있는 동안 이런 침묵이 이어졌던 적은 거의 없었다.
대화의 공백은 항상 그가 채웠다. 내 관심을 끌겠다고 혼자 이것저것 떠들어대면서.
“변명하고 설명. 어느 걸 먼저 들으시겠습니까?”
“둘 다 듣고 싶지 않다면요.”
“그럼 설명만이라도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피식 웃었다.
“설명?”
“…….”
“당신은 수해에 들어가고 싶고 그러기 위해선 마기에 내성을 가진 귀환자가 필요하다. 그 정도면 제가 알아야 할 건 다 아는 거 아닙니까?”
과묵하던 입이 뭐에 홀렸는지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사결은 딱딱한 표정으로 굳어버렸다. 항상 갑옷처럼 두르고 있던 여유와 나른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신은 내가 누군지 압니다.”
20년 전 이명환의 손에 의해 마계에 보내졌다 돌아온 귀환자.
“그리고 나는 당신이 누군지 알고 있죠.”
20년 전 대재난에서 살아남은 이명환의 아들이자 현 크레딧 길드의 길드장.
이게 그와 나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이었다.
“이렇게 합시다. 나도 수해에 들어갈 이유가 있으니 당신에게 협조하겠습니다. 대신 당신은 그 대가를 내게 지불하세요.”
사결은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림자가 지지 않는 구름 위의 하늘. 지상보다 느리게 기운 해가 내 등과 그의 뺨을 비췄다.
내 그림자가 그의 반신을 덮었다. 그건 내게서 시작된 빛과 어둠이 어떻게든 그에게 섞여들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앙상한 덩굴이 어떻게든 고목을 휘감으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그리샤로 간 후엔 어쩔 생각이었습니까.”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재촉하는 대신 순순히 답했다.
“당장의 계획은 그리샤로 가는 것까지입니다. 그 다음은 무사히 도시에 들어간 뒤에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정말 유명한 정보는 대중에게도 알려져 있다지만 그건 S급 유명 헌터의 프로필 정도였다. 현 토벌상황이나 길드 내 세력 다툼에 대한 건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정말 듣고자 한다면 뒷골목의 정보상을 통해야 한다. 내가 필요로 한 정보들도 그랬다.
수해 토벌은 여러 길드가 협력해 진행한다고 하는데 중심이 되는 길드는 예나 지금이나 변동이 없다. 비공식적인 총책임자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내가 그리샤에 가는 데 성공했다면….
‘…아마 사결을 찾아갔겠지.’
나는 그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왜? 왜 감추지?
자문하자 무의식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진심이 조용히 깨어나 고개를 들었다.
‘사결이 쩔쩔매는 지금의 상황이 네게 도움이 되니까.’
내가 물었다. 도움이라니 대체 어디에. 설마 거래에 유리할 거라는 뜻인가?
그것은 이제 막 깨어났음에도 굉장히 또렷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마음이 네게 머무는 데 도움이 될 거란 뜻이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확 들었다. 맞은편의 사결과 눈이 마주쳤다. 그때 알았다. 이 방에 들어온 이후 사결은 한 번도 내게서 눈을 뗀 적이 없다는 걸.
해가 산이 아닌 구름 너머로 스러지는 하늘. 지상보다 느리지만 착실히 기울어진 해가 노을이 되어 그와 나 사이를 가로질렀다. 빛과 어둠이 사라진 자리에 황혼만이 남았다.
인지하지 못했던 사이 이미 그는 내게 스며들었다. 미온수처럼 혹은 체온처럼.
“거래를 하자고 했죠.”
흠칫하며 사색에서 깨어나 사결을 봤다. 내 그림자를 두른 그의 반신이 나를 향해 기울어졌다.
“이게 내 대답입니다.”
“……!!”
사결이 내게 입을 맞췄다. 놀라 그의 어깨와 가슴팍을 밀었다. 그러나 시늉뿐이다. 손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고 온 신경이 맞닿은 입술과 그 안에서 얽히는 혀에 몰렸다. 낮은 신음이 목 안쪽에서 울렸다. 사결이 짐승처럼 그르렁거렸다.
“헉. 하아. 하아.”
“당신과 거래는 하지 않아. 연애면 모를까.”
그렇게 말한 사결은 자기가 말하고도 놀란 듯 눈이 조금 커지더니 오래지 않아 후련한 표정이 됐다. 확신을 얻은 열망이 순식간에 몸집을 불려가는 게 보였다. 목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비켜!”
이번에야말로 힘을 줘 그를 거칠게 밀쳤다. 사결은 주춤거리며 버티다 이내 거리를 벌렸다.
붉고 파괴적인 충동이 고개를 들었다. 이를 악물고 심호흡했다. 감정적으로 나가지 말자. 침착하자. 스스로를 다독였다. 감정적으로 나가면… 사결의 피를 보게 될 것 같았다.
“쓸데없는 대화는 여기까지 하죠. 거래하지 않겠다면 더는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존대를 고집했다. 언어의 울타리로 그에 대한 내 태도를 제한했다.
“여원.”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당신에게 그 이름은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솟구치듯 벌떡 일어났다. 사결이 흠칫 놀랐다.
“…….”
“…….”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분위기에 맞지 않게 얼굴이 붉어졌을 것 같아 한층 더 정색하고 말했다.
“거래하지 않겠다면 더는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나가주세요.”
“여…”
다시금 이름을 부르려던 그가 멈칫했다. 나는 그걸 기회 삼아 문으로 향했다.
“됐습니다. 나가지 않겠다면 내가 나가죠.”
“아니, 잠깐. 잠깐만요!”
나보다 더 격하게 일어선 사결이 내 손목을 움켜쥐었다. 솔직히 놀랐다. 아픔보단 그의 손이 숨길 수 없을 만큼 떨리고 있어서다.
“제게 기회를 주기로 했잖습니까.”
“?”
내가 의아해하자 사결은 크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뒤늦게 단칸방에서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그랬죠.”
“그러면….”
“저는 분명 기회를 드렸습니다. 바로 방금 전에요.”
뒤늦게 깨달은 사결의 얼굴이 숫제 파래졌다.
“기다려 주십시오.”
“놔.”
냉정하게 일갈하고 노려봤다. 안절부절못하던 사결이 결국 손을 놨다. 그를 지나쳐 문으로 가려는데 이번엔 옷을 잡혔다.
“놓으라고 했습니다.”
좀 버티는가 싶더니 놓는다. 그리고 이번엔 다른 쪽 소맷자락을 잡았다. 놔. 안 놔? 그만 잡아. 아 놓으라니까?
한 걸음 뗄 때마다 놓고 잡고를 반복하다 보니 문까지 하세월이었다. 심지어 반 밖에 못 왔다. 이젠 아예 뒤에서 나를 와락 끌어안은 사결을 보며 푹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매달릴 거였으면 애초에 저를 왜 속였단 말인가. 뻔뻔하게 거짓말을 한 건 본인이면서.
“이럴 거면 그냥 거래를 하겠다고 하면 되잖습니까.”
사결은 이제 대답도 하지 않고 나를 안은 팔에 힘을 줬다.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 그가 희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뭔 애도 아니고.’
“아니, 실은 알고 있습니다.”
‘…진짜 애냐.’
황당함에 말을 잃었을 때 엉겨 붙은 사결이 부스럭거리며 나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목덜미에 숨결이 느껴졌다.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좋아합니다.”
달뜬 한숨 같은 고백이었다. 둔중한 충격이 머리를 때렸다. 심지어 사결의 고백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좋아해요. 좋아합니다. 당신이 좋습니다.”
우습게도 그가 끼어들었던 일상이 떠올랐다. 나는 과묵했고 그는 필요 이상으로 말이 많았다. 자연히 대화의 공백을 채운 건 그였다. 그때와 같은 구도다. 달라진 건 하나의 말이 반복된다는 것.
“내게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입을 쩍 벌린 그가 내 목덜미를 잘근 물었다. 기세와 달리 가벼운 압박감과 기분 좋은 저릿함만 느껴졌다. 혼란이 휘몰아치는 머릿속과 달리 몸의 반응은 단순했다. 뱃속이 뜨거웠다. 정확히 어디라고 콕 짚어 말할 수 없는 곳이 저리기도 했다.
“이번엔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속삭인 사결은 짐승처럼 나를 탐했다. 당장 안 밀어내고 뭐 하냐는 머리의 외침을 한껏 상기된 몸이 거부했다.
“……!!”
지금 내가 혼란스러운 건 온통 붉은 노을 때문이다.
가슴이 먹먹한 건 이곳이 하늘 높이 나는 비공정 내부이기 때문이고, 고요하던 마음이 술렁이는 건 내가 앞날을 알 수 없는 여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모든 것엔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그러니 이 사내에게 이렇게 자신을 내던지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도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가슴 한편은 여전히 싸늘히 식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