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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38)화 (38/106)

38화

“어이! 철수야! 점심시간 끝났다. 이만 일 하러 가자.”

“…….”

묵묵히 몸을 움직였다. 하급 마물의 시체를 해체해 마정석을 꺼내고 쓸 만한 부산물을 챙겼다. 속이 어떻게 썩어 문드러지건 겉은 태연함을 가장했다. 동요했다고 그걸 외부로 드러내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다.

“뭐야. 자르라는 뿔은 안 자르고 왜 발톱을 자르고 있냐. 철수야.”

“마정석 개수가 모자라는데? 어, 저기 점점이 떨어진 거 뭐야? 잠깐 저거 마정석이잖아! 저 귀한 걸 누가 빵조각마냥 흘려놨어?!”

“처, 처, 철수야. 손에 든 거 내려놔! 대체 독이 뚝뚝 떨어지는 꼬리침은 왜 가지고 다니는 건데?!”

“…….”

그러나 나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괜찮지 못했다.

오후 내내 실수를 연발하며 지박령처럼 배회했더니 박명석이 멀찍이서 중얼거렸다.

“아니 왜 애가 넋이 나갔대. 오전엔 잘만 하더니.”

옆에 있던 인부가 진지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멍한 얼굴, 늘어진 어깨, 다른 곳에 팔린 정신. 저 반응은 틀림없어.”

“뭔데.”

“이 눈치 없는 양반이 진짜.”

그가 박명석의 귀에만 들리게 속닥였다.

“차인 거지! 그것도 점심시간에!”

“헉.”

물론 성능 좋은 내 귀에는 훤히 들렸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말만으로 표현하기엔 저가 말려든 상황이 너무 복잡했다. 비록 나는 원치 않았다 할지라도 말이다.

한숨을 쉬며 어떻게든 일에 집중하려 애썼다. 그러면 그럴수록 묘한 울렁거림이 수렁처럼 나를 잡아끌었다. 겨우 실수만 면하는 수준에서 일을 끝냈다. 어느새 소문이 났는지 나와 안면이 있는 인부들이 내 어깨를 한 번씩 두드리고 갔다.

별말은 하지 않았다. 내 입으로 사정을 말한 게 아니라 다들 에둘러 힘내라고만 했다.

“형!”

옷을 갈아입고 집에 가려는데 주재영이 나타났다. 시끄럽기만 하고 뭐라고 떠드는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나 없다고 바람 같은 거 피면 안 됩니다.]

신기하게도 그 말을 떠올리자 그제야 주재영이 하는 말이 선명해졌다.

“형은 뭐 좋아해요?”

“케이크.”

“저는 불고기랑- 예?”

“케이크 좋아합니다.”

그가 멍청하게 눈을 깜박였다. 그러다 뒤늦게 내 말을 이해하고 반색했다.

“케이크 맛있는 집 알아요. 같이 갈래요?”

“옷이 이래서.”

“음. 그럼 옷부터 사러 가죠.”

속으로만 허탈하게 웃었다. 주재영의 행동이 사내와 비슷한 게 더는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날 저녁을 주재영과 함께 보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데이트였다. 그가 자연스럽게 내 허리에 손을 둘렀다.

“아, 그리고 이제 그만 말 놔요. 형.”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이끄는 대로 걸었다. 살짝 걸치기만 했던 손이 이번엔 힘을 주어 허리를 쥐었다. 여전히 무던한 태도를 취했다. 주재영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 후로 나와 주재영은 하루걸러 만났다. 오전에 일이 잡힌 날은 오후부터 만나고 아예 일을 쉬고 온종일 어울린 적도 있었다. 그를 만나면서도 나는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 * *

“네가 날 사줬으면 해.”

뱉고 나자 그때까지의 망설임이 하찮게 느껴졌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자각 때문일까. 생각보다 담담했다. 혹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1,540만 크레딧.”

그건 그리샤의 위조시민권과 비공정 밀항에 필요한 비용이었다. 주재영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몸에 손을 댔을 땐 역시 놀랐지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정말로 잘 생각은 없다. 현찰로 가져오라 했으니 만나면 돈을 탈취하고 기절시킨 후 그 길로 정보상을 찾아갈 셈이었다.

일은 순조로웠다. 마음에 걸리는 건… 어떤 거짓말쟁이 하나뿐이다.

[그게 자연스러운 겁니다.]

[전 당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거든요.]

[원래 좋아하면 그러는 겁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익숙한 거라곤 살의와 폭력뿐이었다. 그는 그런 내게 낯설고 새로운 감정을 쏟아부었다.

지나고 보니 그게 다 독이었다. 혀가 아릴 만큼 아주 달콤한 독.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중독된 후였다.

고요히 죽어있던 심장은 주인도 모르는 새 세차게 뛰었고 그로 인해 상처를 입었다. 가슴이 아팠다. 겉가죽이 아닌 갈비뼈 안쪽 정확히 어디라고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욱신거렸다.

‘아프다.’

그곳이 텅 비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처음부터 비어 있었으니 당연히 채우는 법도 몰랐다.

‘아파.’

내 안의 공허를 깨닫게 해준 사내는 나를 좋아한다며 햇살 같은 감정들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거짓이었다. 내가 햇살이라고 생각했던 건 빛나는 전구였다.

하얗게 빛나지만 식으면 차갑고 그러다 혹시 깨지면 빛없이 나를 찌르기만 하는 그런 필라멘트 전구.

“…흐.”

자꾸 웃음이 났다. 샤워하는 내내 미친 사람처럼 웃다가 거울을 보고 뚝 그쳤다. 눈꺼풀 아래로 한차례 폭풍이 몰아치다 잠잠해졌다. 동요는 짧았다.

분노하고 실망했다. 사결에게도, 자신에게도.

하나, 그뿐이다.

체념은 숨 쉬듯 익숙한 것이었다. 마계에서 십몇 년을 해 온 게 그것이었으니까. 독이 너무 달콤해서 당장 포기할 수 없다면 중독된 채로 서서히 마음을 죽여가면 된다.

나는 능숙하게 자신을 구겨 저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빈자리엔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감정이 대신 자리했다.

노크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어차피 찾아올 사람은 없으니 그냥 무시했다.

콰앙!

“…?!”

바지를 입은 직후 두꺼운 쇠문이 집 안으로 쓰러졌다.

반사적으로 경계태세를 갖추다 멈칫했다. 문을 부수도 들어온 건 다름 아닌 사결이었다. 언제나 여유와 나른함으로 빙글거리던 낯을 완전히 굳힌 채 그가 구둣발로 단칸방을 침범해 들어왔다.

사결은 먹이를 뺏긴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더니 예고 없이 달려들었다. 그의 양손에 얼음이 떠올랐다. 찬 기운이 훅 끼쳐 잠깐 멈칫했다. 저주와 같은 빙룡의 기억이 뇌리를 들쑤셨다.

날카로운 얼음 칼날이 좁은 방을 날아다니며 나를 압박했다.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살기는 없다. 그건 처음부터 위협용이었다. 사결은 얼음칼 사이를 물 흐르듯 가로질러 육탄 공격을 감행했다.

퍼억!

세워서 막은 팔이 찌릿했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뒤로 날아가 처박혔을 힘이다.

콰자작!

사결이 발을 굴렀다. 그 자리에서부터 새하얀 얼음뱀이 머리를 치켜들고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간격을 파고든 그것들이 내 다리를 휘감으려 시도하다 실패하자 발치에서 폭발했다.

“윽.”

뒤로 날아간 몸이 벽에 부딪혔다. 파편 사이로 훅, 거대한 몸이 또 다른 벽처럼 나타났다.

쿵!

“……!”

결국 방구석 바닥에 처박혔다. 뒤늦게 생선처럼 펄떡였지만, 몸 위에 올라탄 그의 몸뚱이가 바위 같았다.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내가 과거 상대했던 마수나 마족에 비견해도 뒤지지 않았다.

격렬하게 저항하자 그가 내 얼굴과 배를 후려쳤다. 나는 굳이 막지 않았다. 이 정도 얻어맞는 건 별일도 아니었으니까. 대신 반격하려는데 때려놓고 놀란 사결이 흠칫 굳었다.

그 탓에 나도 대응할 타이밍을 놓쳤다. 잠깐의 소강상태가 찾아왔다. 숨이 버거울 만큼 무거운 공기 속에서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왜.”

그가 재차 으르렁댔다.

“왜 제대로 공격하지 않습니까.”

나는 저항하면서도 그에게 해를 가하려 하지 않았다. 그걸 뒤늦게 깨달은 사결의 낯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짧은 틈새에 많은 고민을 했다. 어떻게 대답해야 그에게 더 큰 상처가 될까.

“상대하기도 싫어서.”

툭 내뱉자 사결의 눈이 조금 크게 뜨였다.

“하, 빌어먹을.”

욕설을 짓씹은 그의 주변으로 얼음 입자가 보석처럼 부유했다. 비슷한 것을 크라투스에게서 본 적이 있는데 그것보다 훨씬 예뻤고.

“그런다고 내가 봐줄 것 같습니까?”

조금 슬펐다.

빠지직.

바닥에서부터 생성된 얼음이 내 양 허벅지 위를 아치형으로 덮어 바닥에 고정했다. 그런 것치곤 묘하게 차갑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허벅지와 얼음 사이에 아주 작은 공간이 있었다.

표정이 굳으면서 헛웃음이 났다.

‘빌어먹을 새끼. 그런 말 할 거면 진짜 봐주지나 말던가.’

“왜 그런 반응입니까. 나 진짜 안 봐준다니까요?”

“그렇습니까?”

잔뜩 비꼬듯 대답했다. 그가 움찔한 틈을 타 몸에 힘을 줬다.

끼기긱.

마나로 만들어진 얼음은 마물의 표피도 뚫을 만큼 강하고 단단하다. 그런 얼음에 쩌적, 금이 갔다.

“!”

확실히 고등급 헌터라 그런가 상황판단이 빨랐다. 냉정을 되찾은 그는 얼음에 힘을 집중하며 동시에 단단한 팔로 내 양손을 바닥에 내리눌렀다.

‘제법 강하긴 하지만….’

마주 힘을 주자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순수한 완력은 내가 조금 위인가.’

“…육체강화계?”

“글쎄. 어떨 것 같습니까.”

이런 상황에서까지 속성능력을 쓰지 않는 걸 보면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표정이다. 그러는 저야말로 마력운용계 주제에 왜 자꾸 힘으로 해결하려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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