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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37)화 (37/106)

37화

쿠구구.

누르는 힘이 더욱 강해졌다. 왜곡된 중력에 담벼락이 무너지고 전신주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여긴 그리샤가 아니야. 당신이 아무리 대단한 인간이래도 남의 도시에서 이딴 짓을 하고 무사할 것 같아?!”

주재영은 독기를 품고 한 소리였겠지만 이현수가 듣기엔 마냥 같잖았다. 식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였으면 자신 보다 신나서 입을 털었을 사결이 조용했다.

이현수는 보지 말자 다짐하면서도 결국 사결을 훔쳐봤다. 그는 바로 후회했다. 괜히 봤다. 입에서 입김이 나오지 않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사결은 적당히 기분이 나쁘면 주변 온도가 내려갈 만큼 냉기를 뿜지만, 진짜로 화가 나면 오히려 아무 변화도 없이 홀로 고요해졌다.

적어도 겉보기엔 그랬다.

스아아.

손끝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절대영도에 가까운 냉기가 응축됐다. 뺨이 창백해지고 손끝은 하얗게 변했다. 지금 사결에게 닿으면 드라이아이스를 맨손으로 쥔 것처럼 삽시간에 동상을 입게 될 거다.

분노에 잠겨 그 외의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상태라는 뜻이다. 이현수는 속이 다 울렁거렸다. 우연으로 얽혀서 악연과 미운 정으로 함께 한 지 벌써 스무 해.

그가 사결의 저런 모습을 본 건 단 한 번뿐이었다. 그의 유일한 혈육이 죽었던 날이다.

사결이 걸음을 옮겼다. 짓눌림 속에서도 전혀 거침없는 움직임이었다. 발을 하나씩 뗄 때마다 아스팔트가 눈처럼 푹푹 패였다.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남은 발자국이 하얗게 얼어붙었다. 정말로 눈 위를 지난 듯한 흔적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을 목도한 주재영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앞으로 내뻗은 손이 달달 떨리며 그가 만든 중력장도 함께 흔들렸다.

“어, 어떻게….”

사결을 똑바로 마주한 주재영의 심장이 덜걱했다. 살기등등한 눈이 시선만으로 그를 난자했다. 얼음으로 가득한 드럼통에 머리부터 처박힌 것 같다. 주재영의 턱이 떨리며 이가 딱딱 부딪혔다.

“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저리…!”

과도한 공포에 주재영이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사결 님.”

일정하게 앞을 향하던 걸음이 멎었다. 다행이다. 아직 이성은 남아 있구나. 이현수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사결 님은 더 급한 볼일이 있지 않으십니까.”

“…….”

후우욱.

냉기가 몰아쳤다. 한껏 고여 있던 힘이 일시에 방출되며 충격파에 가까운 바람이 주변을 후려쳤다. 기절한 주재영이 볼썽사납게 날아가 뒹굴었다. 데굴데굴 구른 몸이 담벼락에 부딪힌 후에야 멈췄다.

“이현수.”

“예.”

“제대로 처리해.”

“예. 확실히 하겠습니다.”

사결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모습이 허름한 주택의 대문을 열고 사라졌다.

인기척이 건물과 벽에 한차례 가려진 후에야 이현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때마침 기절했던 주재영이 깨어났다.

“어…헉. 흐어억. 어? 괴, 괴물 새끼. 어디로 갔어.”

분노보단 두려움이 가득한 중얼거림이었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린 후 주변에 사결이 없음을 확인한 그의 기세가 순식간에 살아났다. 부러진 팔을 감싸며 일어난 그가 이현수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호랑이 뒤에 있던 여우. 다시 말해 합당한 분풀이 대상을 발견한 눈이었다. 아까 굴러가며 대가리를 다쳤나. 이성적인 사고라곤 쥐꼬리만큼도 못 하는 것 같았다.

주재영이 이현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까와 같은 중력장이 그를 덮쳤다. 이현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피식 웃으며 그를 향해 마주 손을 뻗었다.

쿠웅!

“어?”

주재영의 시야가 훅 낮아지더니 뺨이 아스팔트에 닿았다. 차바퀴에 깔린 메뚜기처럼 몸이 짓눌린 후에야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당했는지 깨달았다.

“주, 중력제어?”

“예. 흔한 능력은 아니죠.”

저벅.

매끈한 구두코가 가까워졌다. 아까 사결에게 저 비슷한 구두로 개처럼 맞았던 주재영의 눈에 다시 두려움이 서렸다. 이현수는 대놓고 혀를 찼다.

‘분명 시의원의 아들이었지.’

귀환자 주변을 알짱거린 놈이었다. 그러다 사결에게 찍히기까지 했다. 당연히 뒤를 캐 봤고 놈이 상상 이상의 쓰레기임을 알게 됐다.

이런 재활용도 안 될 생활폐기물과 어떤 식으로든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쓰레기를 버리려면 어쨌든 손을 대야 하는 법. 그것만 해도 기분이 나쁜데 이 쓰레기는 능력까지 자신과 같았다. 정확히는 하위호환이었지만 어쨌든.

“기분 더럽게 중력제어고 지랄.”

콰직!

“커흐억!”

“그냥 죽여서 묻어버리면 편하겠는데 하필 시의원 아들이야. 시발 그냥 어디 한 군데 조질까. 아- 그냥 뇌를 털어버리는 편이 품도 덜 나가고 좀 더 깔끔한 해결이긴 한데. 백담에 그만한 실력자가 있던가?”

“커헉. 컥. 흑.”

살벌한 혼잣말에 주재영의 바지가 젖었다. 이제 그의 눈에선 미약한 반항이나 적의조차 사라지고 없었다. 있는 건 순수한 공포뿐이다. 노리던 대로다.

‘이런 놈들은 조금 살 만 해지면 어떻게든 이를 드러내고 발톱을 세운단 말이지.’

이현수는 노련하게 싹을 밟았다.

퍽!

“아악!!”

구두에 성기가 눌린 이현수가 죽는다고 소리를 질렀다.

“큰 소리 내면 우리 사장님이 돌아올 텐데?”

“끄으…끄으읍.”

“혹시 나중에라도 엄한 마음이 들거든 오늘을 떠올리세요. 전 사장님이랑 달리 성정이 착하고 합리적이라 이 정도에서 끝내지만, 또 망둑어처럼 펄떡거리면 그땐 내가 아니라 우리 사장님이랑 면담하게 될 겁니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아들으시겠습니까.”

주재영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향해 이현수는 싱긋 웃었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 그만 주무시죠.”

빠악!

그는 업무 스트레스를 한껏 담아 주재영의 머리를 후려쳤다.

* * *

사결은 이상한 소리를 들으면 그걸 전한 물건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제 귀가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그는 오늘 처음 자신의 귀가 맛이 갔다고 여겼다. 아까부터 들리는 모든 말들이 이상했다.

서여원이 놈팡이에게 자신을 사 달라고 했다. 불가사리가 갑자기 이족보행을 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만큼이나 현실성이 없었다.

긴 다리가 녹슨 철문을 지났다. 낮은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에도 사결은 속이 홧홧하게 끓는 걸 느꼈다. 속성의 영향인지 그는 어지간한 일엔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머리도 가슴도 인위적으로 차갑게 굳힐 수 있는 사람. 그게 바로 자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슴속에 달군 돌이 굴러다니는 듯하다. 참을 수 없는 불쾌함에 뇌가 녹고 심장이 끓었다.

똑똑.

낡은 문 앞에 선 사결이 노크를 했다. 대답은 없다. 안쪽에서 느껴지던 인기척은 노크와 동시에 씻은 듯 사라졌다. 일부러 감춘 것이다. 사결이 문에 손을 얹었다.

사아아.

하얗게 서리가 낀 문의 가장자리가 얼어붙었다. 얼음은 주인의 의지에 따라 움직여 문과 벽 사이에서 팽창했다.

쩌적.

사결이 문을 걷어찼다. 쿵 소리가 나며 쇠문이 안쪽으로 쓰러졌다. 방 안쪽에서 문을 향해 서 있던 여원이 눈을 크게 떴다.

그는 반라였다. 방금 샤워를 했는지 몸과 머리가 젖어 있었다. 노크 소리를 듣고 급하게 바지를 주워 입은 모양새였다.

용병 또는 짐승의 분위기를 풍기던 사내의 몸은 의외로 깨끗했다. 상흔이라고 할 건 목덜미의 잇자국과 가슴팍의 큰 흉터뿐이었다.

붉은색의 잇자국을 집요하게 노려보던 사결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만져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포탄이라도 맞은 듯한 자국이었다. 그 전반에 걸쳐 희미하게 흔적만 남은 문신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두툼한 가슴에 도드라진 한쪽뿐인 젖꼭지가 사결의 심장에 꽂혔다.

“…여긴, 여긴 어떻게….”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여원이 입을 다물었다. 방금의 대답으로 무언가 느낀 것 같다. 사결은 웃었다. 항상 웃고 있는 그였지만 지금만큼 웃음을 참기 힘든 적이 없었다.

“하긴 바람 피지 말라고만 했지. 피면 어떻게 한다는 말은 안 했군요.”

저벅.

신발이 좁은 현관을 넘어 방바닥을 밟았다.

“그걸 지금부터 알려드리죠.”

* * *

[들어봤다고? 그럼 이야기가 쉽겠군. 크레딧 길드의 기반이었던 길드가 바로 삼초승달이오. 그 아들인 사결이 지금 길드장 직을 맡고 있고 가문에서 붙였던 아이가 부길드마스터인 이현수지.]

듣는 내내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정보상의 말은 그 뒤로도 이어졌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머리가 멍하고 귀에는 이명이 들렸다. 나는 비틀거리며 벽을 잡고 섰다.

마기가 불안정하게 일렁였다. 의도한 것도 아닌데 연락하는 동안 잠깐 막아둔 도청마법이 저절로 재개됐다.

[그러니까 더더욱 귀환자를 손에 넣어야만 해.]

[내가 왜 귀환자를-]

[좋아한다는 건 진심이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 나를 위해 기꺼이 수해로 들어갈 그를 상상하면 지금도 거기가 설 것 같은데.]

거대한 균열의 소리를 들었다.

달리던 열차가 브레이크를 밟을 때 나는 것처럼 처절했고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아 뭔-. 왜 이-- 느-?]

[길이 막-- -습니다. 조금- 참--요.]

하지만 레버는 이미 부러졌다. 기차는 결국 충돌과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파직!

파지직!

마기가 아예 요동쳤다. 연결되어 있던 마정석이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부서졌다. 폭주한 마기를 견디기에 스펜타 새끼의 마정석은 너무 작고 약했다.

빠듯하게 아픈 심장을 눌렀다. 충격으로 뒤흔들린 마음을 어떻게든 가라앉히려 애썼다. 숨 쉬듯 입고 있던 무감함이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무감이란 게 어떤 거였지? 찾아온 혼란이 너무 커 도저히 평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욱….”

참을 수 없는 역한 기분에 결국 속을 비워냈다. 그러고 나자 그나마 정신이 좀 들었다. 후우우, 숨을 깊이 내쉬었다.

담담하게. 잠잠하게. 스스로를 연무장에 있던 바위나 마수의 숲에 있던 고목과 같이 만들려 노력했고 엄습하는 두려움에 잡아먹히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제법 시간이 흐른 후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종속의 계약에 변화는 없다. 역시 아주 약간의 마기를 운용하는 정도는 괜찮았다. 가설이 맞다는 걸 확인했음에도 기분이 아주 더러웠다.

“예니스. 넌 날 위해 존재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 정말 왜 이렇게 예쁜 거야?”

크라투스의 손에 떨어진 이후 하루하루가 고문이었다. 그는 안 그래도 결여되어 있던 나를 마모시켰고, 감정을 죽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삶을 주었다.

“너는 내 거야. 예니스.”

그런 크라투스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사결의 목소리가 겹쳤다.

[여원은 내 거라고. 너보단 내가 더 절실해.]

마정석을 타고 흘러들어왔던 진실이 내 영혼을 후벼 팠다. 이젠 그를 생각해도 크라투스의 환청이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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