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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35)화 (35/106)

35화

생긴 건 용병처럼 생긴 주제에 사내는 답지 않게 순진했다. 귀환자라는 걸 아는 지금은 그 순진함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그가 마계에 떨어졌을 때 나이는 고작 여덟 살. 그 후 스무 해가 지나서야 중간계로 돌아왔다. 즉 인생의 대부분을 마계에서 보낸 것이다.

가치관이 어떻게 변했어도 이상하지 않다. 아니, 학자들이 입을 모아 떠들어대는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것치곤 순하다 못해 맹했다.

‘그게 단순히 사회 통념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면.’

사결이 고개를 틀어 옆을 봤다. 동그랗게 난 작은 창 너머로 격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백담이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앞으로 걸어 나갔다.

반원을 그리는 통유리 앞에 서자 백담의 시가지가 희미하게 보였다. 크루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비공정이 마력장을 통과할 준비를 마쳤다.

“…진짜 케이크 사 준다니 홀랑 따라간 거 아냐?”

“아까부터 대체 뭔 알아듣지도 못할 소릴 하고 계십니까.”

“그냥 혼잣말이야. 그보다 네가 꾸렸다는 팀에게서 보고는 없나?”

“아무 이상 없답니다. 평소처럼 현장에 출퇴근하는 게 다라는데요.”

“확실해?”

“확실하니까 그만 좀 물어보세요. 이틀째 여섯 번이나 물어보셨습니다.”

이현수의 눈이 뾰족해졌다. 그가 이참에 못을 박았다.

“애들 원성이 자자합니다. 무슨 보고를 세 시간마다 해야 하냐면서요. 아니 애들 잠은 재워야 할 것 아닙니까!”

“교대로 밤에도 감시하라 해.”

“그럼 인원이라도 늘려주세요.”

“늘려. 누가 뭐래?”

“…….”

“진작 늘리지 그랬어. 그러게 왜 멀쩡한 애들을 괴롭혀.”

* * *

비공정에서 내린 사결은 곧장 이어폰부터 꼈다.

도시 내에서라면 모를까. 격벽 너머는 상공까지 은근한 마기가 스멀거리는 탓에 어지간한 통신장비는 죄다 먹통이다. 그나마 초고가 단말기의 경우 겨우겨우 문자 수신이 가능한 수준.

그러나 그마저도 수해용으로 나온 것이 아니면 안 됐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문자는 오지 않았고 사결은 나흘 동안 애만 태웠다.

빠르게 단말기를 조작했다. 이어폰이 도청기와 연결됐다. 화면을 나누어 GPS도 확인했다. 도시 외곽의 경계선이다. 아무래도 일터인 것 같았다.

단말기를 보며 세단에 오르던 사결이 차체에 이마를 박았다. 꿍 소리가 났다. 크게 흔들린 세단이 휘청거렸다. 미리 타 있던 운전사가 작게 비명을 질렀다. 사결은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눈을 단말기에 고정한 채 꾸물거리며 뒷좌석에 탑승했다.

이현수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움직일 땐 화면에서 눈 떼고 앞을 보세요.”

니가 애냐. 애야?

사결은 대답도 하지 않았다. 허, 폐에서 헛바람을 뽑아낸 이현수가 혀를 찼다. 밖에 선 경호원이 눈치를 봤다. 고개를 까닥이자 문을 닫는다. 살짝 찌그러졌지만 다행히 문은 잘 닫혔다. 그가 사결의 옆에 타고나서야 세단이 출발했다.

매끄러운 차체가 도심을 가로질렀다. 사결은 온 신경을 귀에 집중했다.

치직. 칙.

몇 번의 잡음 후에 소리가 안정됐다. 하지만 사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주변의 소음만 가득했다. 사결은 오히려 마음이 들떴다. 정말 그 사람이라는 실감이 났다.

그는 눈을 감았다. 한 번쯤은 나올 여원의 목소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무려 일주일 만이었다. 사결은 온 신경을 귀에 집중했다. 쿵쿵거리는 현장의 소음, 왁자지껄한 인부들의 대화 그 사이로 단정한 발소리와 옷이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원의 소리였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얼굴이 붉어지시고 호흡은 거칠어졌는데. 누가 보면 변태라고 하기 딱 좋으니까 지금 말씀하세요. 병원으로 갈지 경찰서로 갈지.”

“멀쩡하니까 조용히 좀 가자 현수야.”

핏발이 선 눈을 부릅뜨자 아무리 이현수라도 더 건드리지 못했다. 이현수는 생각했다. 평소에도 미친개 같은 부분이 있긴 했는데 지금은 그냥 백 퍼센트 미친개 모드라고.

그때 기다리던 목소리가 사결의 고막을 건드렸다.

[재영아.]

다른 남자의 이름이었다.

[형, 오래 기다렸어요?]

…뭐야 이거.

사결이 손을 뻗어 이현수의 멱살을 잡았다. 이현수가 또 뭔데 지랄이냐는 표정으로 사결을 봤다.

“뭐냐, 이거?”

“뭔데요.”

“내가 물었잖아.”

“뭘 물었는지 알아야 대답을 하죠.”

사결이 이어폰을 빼 이현수의 귀에 쑤셔 넣었다.

“악, 아프, 악! 악! 아…? 어?”

멈칫 굳어진 그의 얼굴이 점점 묘하게 일그러졌다.

“자, 잠시만요.”

이현수가 어디론가 연락을 넣었다. 그는 다급히 손목에서 분리한 단말기를 손에 쥐고 열심히 가렸다. 그러나 바로 지척에 있는 S급의 귀를 속일 순 없었다.

“야. 너희 어떻게 된 거야? 뭐? 회식? 이런 씨…! 적당히 마셨어야지. 아니, 적어도 한 놈은… 아니 물론 너희 고생하는 거 다 알지. 아는데, 하….”

그가 더 말하길 관두고 연락을 끊었다. 사결이 눈을 휘며 웃었다. 마물의 몸통과 머리를 손으로 분리할 때나 짓는 표정이다.

이현수는 변명이고 나발이고 그냥 닥치기로 했다. 경험에서 우러난 직감이 경고의 사이렌을 울렸다. 지금 사결을 건드렸다간 좋게 끝나면 박살, 나쁘게 끝나면 개박살이다.

‘아니, 근데 이게 이렇게까지 화가 날 일인가? 별로 상관없는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던 이현수는 수해에 대한 사결의 열망을 떠올리곤 빠르게 납득했다.

미로를 해결해 줄 귀환자에 대한 일이다. 마물의 숲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사결이라면 충분히 분노할 만했다.

사결이 얌전해진 이현수의 얼굴에 단말기 화면을 들이밀었다.

GPS 신호가 깜박거렸다. 눈치 빠른 그는 곧장 위치를 확인하고 목적지를 변경했다. 도심의 호텔로 향하던 세단이 유턴했다.

[이제 일 끝났죠? 그럼 나랑 놀러 가요. 저번에 먹은 케이크 맛있었죠? 혹시 수플레 팬케이크는 먹어 봤어요?]

[…아니.]

[그거 먹으러 가요. 형 분명 마음에 들어 할걸요?]

내장이 압착기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으드득.

살벌하게 이를 간 사결이 앞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더 밟아.”

“예…옙!”

젊은 운전사는 기합이 바짝 들어 엑셀을 내리밟았다. 사결은 길이 막히는 걸 싫어했고 그로 인해 기다리는 건 더욱 싫어했다. 그는 운전사를 스펙과 나이를 불문하고 운전 능력 하나만 보고 뽑았다.

묵직한 차체가 물소처럼 도로를 가로질렀다.

[오늘은 됐어.]

여원이 거절했다. 저 바닥 끝까지 내려갔던 심장이 잠깐 제 자리로 돌아왔다.

[네게 할 말이 있어.]

올라온 게 무색하게 그보다 깊은 폭으로 다시 떨어졌다. 사결은 여원의 말에 크게 요동치는 자신의 상태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온 신경을 대화에 집중했다.

[뭔데요?]

[여기선 곤란해.]

[그럼 제 차로 가죠. 어차피 집으로 갈 거잖아요? 가는 김에 태워 드릴게요.]

[…….]

대답은 없었다. 대신 나란히 들리는 발소리가 이어졌다. 차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까지도 사결은 애써 행복회로를 돌렸다. 그냥 고갯짓으로 거절하고 걸어갔겠지. 배웅하는 소리겠지.

하지만 GPS 신호는 빠르게 움직였다. 진짜 탄 것이다. 그 빌어먹을 놈팡이의 차를.

뒤통수에 피가 쏠렸다.

겨우 일주일. 아니, 나흘 전 마지막 문자가 왔을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대체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겠지.’

사결은 부글거리는 속을 애써 내리누르며 그럴듯한 말로 스스로를 설득했다.

‘주제도 모르고 나대던 개새끼가 날 들먹이며 협박했을 수도 있어. 그럼 순진하고 마음 약한 김철수는 대번에 걸려들었을 것이고….’

그는 어느새 본래의 여유를 되찾았다. 하지만 분노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사장님. 적당히 하지 않으면 엔진이 얼어붙을 겁니다. 그럼 이동에 차질이 생깁니다.”

이현수가 가능한 사무적으로 말했다. 효과는 확실했다. 입김이 나오던 차내 온도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사결이 발끝으로 앞 좌석을 툭 쳤다.

“더 밟으라고.”

“예, 옙!!”

부아앙!

* * *

주재영은 기분이 좋았다.

단순히 좋다는 말도 부족하다. 날아갈 것 같다. 아주 짜릿하다!

여원의 집으로 향하는 내내 그는 들떠서 재잘거렸다. 여원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세단이 멈춘 곳은 중심부와 외곽의 경계였다. 과거 아버지와 함께 살던 곳. 일부러 이곳을 선택한 건 아니었다. 그저 복지과에서 소개해준 곳 중 이곳이 가장 조건이 좋았을 뿐.

주재영은 차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가 아차 싶었는지 얼른 생글거리는 얼굴로 돌아왔다.

“외곽에 사네요. 형.”

“여기야. 세워줘.”

차는 멈추지 않았다. 주재영이 멈추라고 하자 그제야 운전사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여원은 내리지 않았다. 할 말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머뭇거리는 그를 보며 주재영은 들썩이는 입매를 주체하지 못했다.

까지 않은 선물 상자의 리본을 살살 당기는 기분이다. 기대감에 심장이 고장 난 것처럼 쿵쾅거렸다. 열 살 생일선물로 5억 크레딧이 담긴 통장을 받았을 때도 이렇게 설레진 않았는데.

“형. 할 말이 뭐예요?”

인내심이 바닥난 주재영이 참지 못하고 찔렀다.

“…나중에 할게.”

한참 망설이던 여원은 전혀 바라지 않던 대답을 남기고 문을 열었다.

당황한 주재영이 황급히 따라 내렸다.

“이 주변이나 돌고 있어. 필요하면 부를 테니까.”

“예.”

운전사에게 간단히 지시한 주재영은 곧바로 여원을 뒤쫓았다. 따라잡는 건 금방이었다.

“형. 형. 그럼 커피라도 주세요.”

“…….”

“여기까지 태워다 드렸는데 그 정돈 주시겠죠?”

여원의 집에 있는 건 물 뿐이다. 하지만 주재영도 진짜 커피나 마시려고 저런 말을 한 건 아닐 것이다.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집까지 세 블록을 남겨두고 여원이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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