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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를 잡는 방법 (34)화 (34/106)

34화

5장. 잠식

그리샤의 삼라성 길드.

…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던 때도 있었다.

재앙이 도래한 직후 삼라성의 길드장 최치택은 바로 그리샤를 떠나 다른 대도시에 정착했다. 그리고 이미 도시를 주름잡고 있던 거대 길드 중 하나에 흡수됐다.

삼라성은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런데 겨우 말단 간부 자리를 차지했을 때 길드장이 최치택을 호출했다.

“이봐 치택이. 자네가 해줘야 할 일이 생겼어. 삼라성 길드장이었던 자네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야.”

간부 자리의 말석은 최치택을 부리기 위한 밑 작업이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는 이를 갈면서도 몇몇 길드원과 함께 그리샤로 돌아갔다. 등급이 높은 헌터는 망명이 어렵지 않다. 한 번 떠났던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다. 사회적으로는 비난하겠지만 절차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본 길드로부터 몰래 지원을 받은 덕에 자리를 잡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나서 그는 중형길드 대표인 자격으로 토벌에도 합류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그것만이었으면 차라리 나았겠지만 적은 내부에도 있었다. 최치택은 길드 내 상가 건물 모퉁이에서 어떤 대화를 엿들었다.

자신을 따라 대도시로 갔다가 이번 작전을 위해 함께 돌아온 이들이었다. 말하자면 직속 수하. 동고동락을 함께해온 삼라성의 원년 멤버들. 그들이 속닥거리는 건 최치택의 뒷담화였다.

“-잖아. 무슨 광명을 누리겠다고 망명을 했나 몰라. 그때 남아 있었으면 이런 개 같은 취급 받으면서 개고생할 일도 없었을 거 아냐.”

“내 말이. 삼초승달도 해체했다며? 그럼 2위였던 우리 삼라성이 바로 1위로 치고 올라갔을 텐데.”

“하아. 그 등신을 아직도 리더랍시고 두고 보는 내가 등신이지.”

최치택은 분노로 눈앞이 벌겋게 변했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튀어 나가 벽에 녀석들의 대가리를 박았겠지만 지금은 할 수 없다.

삼라성은 이제 분점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주인은 도시에서 제 돈줄과 명줄을 틀어쥐고 있는 길드장이다. 쓸데없는 트러블로 그의 심기를 거스를 순 없었다. 막말로 제게 얻어터진 저 새끼들이 길드장에게 찌르기라도 하면.

‘겨우 얻은 말단 간부 자리도 나가리야.’

분에 못 이긴 그는 트레이닝 룸에 틀어박혀 강철로 만든 기둥을 샌드백처럼 두들겼다.

‘일이 이렇게 될 줄 내가 알았겠냐고!’

쾅쾅!

‘좆도 모르는 새끼들이. 지들도 살겠다고 쫓아와 놓고 왜 나한테 지랄이야! 나는 길드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했어. 남은 놈들은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잖아!’

콰앙!

최치택은 인내했다. 이제 와 다른 선택지는 없다.

길드장이 준 임무를 해결하고 이 짜증 나는 도시를 뜨는 것. 핏줄이 터진 눈으로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그는 받았던 명령을 복기했다.

‘분란 조장과 사결의 몰락.’

둘을 따로 진행할 수도 있지만 최치택은 기가 막힌 수를 떠올렸다.

‘토벌에 참가한 길드들의 불만을 사결에게로 이끌고 터트린다.’

그리샤의 쟁쟁한 길드들이 처음부터 사이좋게 토벌에 참가한 건 아니었다.

수해가 할퀸 상처를 겨우 복구해나가던 초창기. 토벌에 참가했던 건 삼초승달과 아뮬렛, 이 두 길드뿐이었다. 헌터 협회까지 하면 세 개의 세력이 주축이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토벌은 초반부터 어떤 문제도 없이 매끄럽게 진행됐다. 그뿐이랴. 토벌과 동시에 게이트에서 얻어오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양의 마정석이 쏟아졌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무수한 마물이라는 건 그만큼 많은 양의 마정석을 품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소식을 들은 길드 수뇌부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성공한 이상 마의 수해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한발 늦은 대형 길드들이 앞다퉈 토벌에 참가했다.

몇 년이 흐르자 이젠 토벌에 참가하지 않는 길드가 몇 없을 정도였다. 보유한 헌터의 질이 뛰어난 길드는 중소규모라도 발을 걸쳤다.

하지만 마정석의 분배는 아직도 초창기 세 개의 세력이 우선권을 가진다. 시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초기 멤버들의 명분은 여전히 건재했다.

‘틀림없이 불만이 쌓였을 것이다.’

최치택은 흔히 2세대라 부르는 길드들을 타깃으로 잡았다. 두 번째로 발을 들여 빠른 진입을 했으나 여전히 마정석을 차등분배 받는 대형 길드들!

첫 번째는 최근 크레딧에 가장 유감이 많을 헤스티아였다.

“삼라성?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긴 한데, 음식점인가?”

“아. 얘네 그거잖아.”

“? 그거가 뭔데.”

이쪽을 힐긋 본 경호원이 동료에게 귓속말했다. 듣는 남자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바뀌었다.

최치택은 붉으락푸르락하면서도 잠자코 있었다. 놈들이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 모를 만큼 눈치가 없진 않다.

삼라성의 연력을 들은 덩치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꺼져.”

“…….”

최치택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행히 두 번째 길드부턴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그런 수준이 아니다.

“사결? 비즈니스 파트너로는 나쁘지 않은데. 아, 마정석…. 그건 예외지. 사람이 정도를 몰라. 아무리 명분을 쥐었다지만 적당히 해야지.”

“왜 화가 안 나겠나. 크레딧이 먹는 게 전체의 절반이 넘네. 그 나머지의 반을 다시 아뮬렛과 협회가 가져가. 그러고 나면? 당연히 찌꺼기만 남지.”

최치택이 마른 침을 삼켰다. 세 개의 세력 중 특히 크레딧이 삼키는 몫이 클 줄은 알았는데-

‘그게 절반이 넘는다고?’

이건 전혀 몰랐던 정보다.

“우리처럼 애매하게 발을 걸친 길드들은 그 찌꺼기를 깨알같이 나눠 가지는 거지. 에이 시발.”

그래도 나름 대형 길드의 길드장씩이나 되는 인사가 씩씩대며 말했다. 최치택은 내적 환호성을 질렀다. 딱히 부추길 것도 없었다. 분배의 부당함에 대한 그들의 분노는 이미 한계에 달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조금 더 파고들어도 되지 않을까?’

본 길드의 길드장이 내린 명령 속 진짜 목적. 그건 마의 수해에서 나오는 방대한 양의 마정석이었다.

“새 분배율을 주장하자고? 흠, 하긴 시간이 그렇게 흘렀으니 슬슬 말을 꺼낼 때가 되긴 했지.”

“다른 길드들도 다 같은 생각인가…. 뭐, 당연히 그렇겠지. 그럼 일단 내부회의를 거친 후에 연락 주겠네.”

“뭐? 정의구현? …솔깃한데?”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건 분배의 부당함에 가장 먼저 분통을 토했던 길드장이었다. 그가 손으로 턱을 문질렀다.

“잘됐군. 크레딧 길드장이 마침 그리샤를 떠났다는데. 이참에 마음 맞는 길드끼리 회동을 하면 되겠어.”

“사결이 그리샤를 떠났다고요?”

“요새 뭐 하는지 도시에 잘 안 붙어있어. 딴 도시에 애인이라도 숨겨뒀는지 그 비싼 비공정을 무슨 택시처럼 쓴다니까. 젊은 게 좋긴 좋지.”

40대 후반인 그가 50대 후반인 최치택 앞에서 반말로 낄낄거렸다. 최치택은 인내했다. 눈앞의 사내는 다른 어떤 길드장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인물이었다.

커다란 손이 최치택의 등을 퍽퍽 두들겼다.

“그럼 회동이 끝나면 연락하겠네. 오늘 아주 즐거웠어.”

맞을 때마다 최치택의 몸이 흔들렸다.

“예. 감사합니다.”

손등의 핏줄이 불거졌다. 그는 잔뜩 뒤집힌 속을 감추며 웃어 보였다. 하하 허허. 훈훈한 분위기로 미팅은 마무리됐다.

* * *

사결은 충혈된 눈으로 단말기를 들여다봤다.

지금 그가 기다리는 상대에게서 문자가 오지 않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200개의 문자를 씹혀 본 입장에선 더욱 그렇다.

하지만 아예 답을 안 줬으면 모를까. 분명 훈훈한 분위기가 오가던 차에 갑자기 연락이 끊기니 더 죽을 맛이었다.

“이건 조련이 틀림없어.”

“…….”

“알겠어? 이 내가 지금 조련을 당하고 있다고.”

“어쩌라는 겁니까.”

이현수가 뇌까렸다. 이현수의 얼굴엔 다크서클이 뺨까지 내려와 있었다.

“일이 아주 더럽게 많으니까 도와줄 거 아니면 제발 조용히 좀 계세요.”

“도와주면 떠들어도 되는 건가?”

“…….”

“현수야. 아무리 눈이 돌아도 주인은 알아봐야지?”

“…죄송합니다.”

“알면 됐어.”

사결은 적당히 긁고 침묵했다. 저 일의 반절은 자신이 미로를 해결하겠다 장담한 것 때문에 부차적으로 발생했다.

그는 조용히 단말기로 신경을 돌렸다. 초조한 손끝이 작은 장치를 만지작거렸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목덜미에서 짜릿한 느낌을 받은 후론 더더욱 그랬다. 사결의 예감은 예언에 가까웠다. 잘 맞는 수준이 아니라 백발백중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귀환자에 한해선 빗나간다는 징크스도 이번에 깨졌다.

‘설마 뭔가 사고를 당한 건 아니겠지.’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원에게 집적거리던 웬 놈팡이가 떠올랐다. 이름도 기억 안 나는 C급 나부랭이였다. 주…주…뭐더라. 이쯤 되니 이름도 얼굴도 흐릿하다.

선명한 건 단 하나. 다짜고짜 들어와선 여원의 웃통을 잡아 올리던 모습이다.

‘혹시 그때 미치도록 섹시했던 짝유두를 본 건가.’

그때 사결의 각도에선 탄탄한 복근만 보였다. 만약 그걸 봤다면 안달복달하다 사고를 쳤어도 이상할 게 없다.

“…….”

저도 아직 만져만 봤지 직접 눈으로 보진 못했는데, 그걸 먼저 본 걸로 모자라 뭔가 했을지도 모른다.

콰직.

손에서 뭔가 부서졌다.

‘단말기?’

식겁해서 확인했다. 다행히 웬 정체 모를 레버였다.

“무슨 일…. 으아악!”

“뭐야?! 뭔데 그러… 으아악!”

뭉크의 절규를 표방한 크루들이 웅성거리며 몰려들었다. 이현수가 눈에서 레이저를 뿜었다. 안 그래도 미로 때문에 잘못한 게 있는 사결은 슬금슬금 선수를 빠져나와 비공정의 복도를 걸었다.

‘너무 앞선 생각이다. 미리 경고는 해 뒀어.’

놈팡이가 아니라 그 윗선에 했다. 그놈의 아버지인 백담 시의원에게. 녀석처럼 뒷배 믿고 날뛰는 유형은 뒷배를 직접 패야 효과가 큰 법이다.

‘설령 놈이 미쳐서 손을 뻗었다 해도 그 사내가 그렇게 쉽게 당할 리도 없고….’

케이크 한 조각에 설렘을 숨기지 못하던 순진한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

급하게 선수로 되돌아간 사결이 소리쳤다.

“백담까지 전속력 전진!”

“아! 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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