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사결이 협회 건물을 나서자 기다리고 있던 길드원들이 달라붙었다.
“깽판은 어떻게 된 겁니까?”
“맞아. 판 엎는다고 해서 따라온 건데요.”
“우우. 시간 낭비했다. 고기 사 달라.”
진지하게 깽판을 논하는 여자 한 명에 촐싹거리는 남자가 둘. 셋 다 S급 헌터들이다.
헌터 협회의 정문 앞. 장소가 장소인지라 인지도 있는 헌터들도 종종 볼 수 있기에 여기 직원들은 어지간한 인물의 행차는 잘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 이들의 시선이 죄다 자신들을 향해 있는데도 크레딧의 S급들은 어미 닭 보는 병아리처럼 사결만 따랐다.
그에 사결이 퉁명스레 말했다.
“그러게. 예상이 빗나갔네. 한 명 조졌을 뿐인데 꼬리를 말더라고. 좀 더 근성 있는 놈들이었으면 재밌을 뻔했는데.”
“사결 님께서 직접 나서지 않았습니까. 당연한 결과입니다.”
“아, 그래도 아쉽네요.”
“간만에 힘 좀 쓰나 했더니.”
한마디를 하면 열 마디로 돌려주는 녀석들을 바라보며 사결은 이현수에게 손을 까닥였다. 그의 품에서 금박이 들어간 까만 카드가 등장했다.
“이걸로 맛있는 거 사 먹어.”
“깽판은 밥집에서 치겠습니다.”
“워후. 싸장님 최고!”
“고기 먹자 고기!”
“깽판 치지 말고, 식기 부수지 말고, 얌전히 고기만 먹고 해산할 것.”
“…….”
“예!”
“알겠습니다!”
각자의 대답을 끝으로 사결은 세단에 올랐다. 과묵한 한 명과 희희낙락한 둘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시선을 돌리자 사람은 어디 가고 멀리 지붕을 넘나들며 번화가를 향해 뛰어가는 벼룩 세 마리가 보였다.
팔짱을 낀 사결은 이동하는 동안 생각에 잠겼다.
주제는 지금 그가 가장 몰두하고 있는 대상이다. 사결의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사내가 자신에게 푹 빠지게 만드는 것.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줄 것처럼 마음을 줘서 그를 위해서라면 수해에 들어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게 되는 것.
그런데 언제부턴가 목적을 생각하면 기분이 나빠졌다.
‘왜지? 지금 기분이 별로라 그런가?’
비단 지금만의 일이 아니었음에도 사결은 그렇게 되뇌었다.
이현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답지 않은 짓을 하셨습니다.”
사결의 시선이 옆을 향했다.
“미로 말입니다.”
20년 전. 몬스터 웨이브가 잠잠해진 후.
해일이 되어 들이닥쳤던 마물들은 각자의 게이트 근처로 돌아가 둥지를 틀었다. 마계에서처럼 으르렁거리며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로 돌아간 놈들은 헌터들에게 별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건 A에서 S급을 넘나드는 고등급 마수나 강한 번식력으로 무리 지어 소규모 웨이브를 일으키는 까다로운 마물도 마찬가지였다.
각개격파로 나가면 S급이 두 자릿수를 넘어가는 그리샤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싸움이다.
그럼에도 학자들은 부정적이었다. 그들은 토벌이 성공을 거듭하고 성과를 낼 때도 끊임없이 걱정하고 경고했다.
마기. 정확히는 그런 마기에 의한 마소 중독 때문이었다.
마소 중독은 사실 일반인보단 헌터에게 더 위험한 병이었다. 일반인의 경우 발병해도 연명치료를 통한 생존과 일상생활이 가능하지만 헌터의 경우 일단 발병하면 죽는다고 봐야 할 만큼 예후가 좋지 않았다.
몸 안에 잠재된 마나가 스며든 마기에 반발하는 탓이다. 그 상태에서 마나가 마기에 밀리면 마소 중독에 의한 사망 처리, 이겨내면 급성 마소 중독으로 치료 후 복귀.
그리고 수해엔 그 마기가 응축된 벽이 있었다. 뭣 모르던 초기엔 많은 헌터가 죽어 나갔다.
학자들은 그 벽을 ‘블랙미스트’라고 명명했다. 매스컴은 좌절과 자극을 표현하기 위해 ‘벽’이라는 직관적 표현을 즐겨 썼고, 헌터들은 ‘미로’라고 불렀다.
부르는 이름만큼이나 형태도 다양했다. 말도 안 되게 넓은 면적으로 뭉쳐 있을 때도 있었고 뱀처럼 숲을 휘감은 것도 있었으며 어떤 것은 도넛처럼 일정 구역을 둘러쌌다.
미로를 따라 수해에 어느 정도 파고든 지금으로서도 미로 자체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전기뱀장어 같은 것이 빛을 내며 수해 내부를 어슬렁거리는 게 목격됐다는 건 이제 뉴스거리도 못 됐다.
미로 내부에선 항상 검은 스파크가 튀었고 그 광경은 마계처럼 테라포밍이 된 수해에서도 압도적으로 이질적이었다.
수해용으로 개발된 드론조차 미로의 벽에 닿으면 오작동을 일으켜 추락했다. 거기 삼켜진 헌터들은 시체도 찾지 못했다.
결국 미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는 것 외엔 심부에 접근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토벌에 참가한 이들만이 아니다. 그리샤의 모두가 생각했다. 이런 식이라면 언젠가 미로로 둘러싸인 막다른 길이 나와 토벌 자체가 고착 상태에 빠질 거라고.
그 순간이 도래한 건 약 두 달 전, 사결이 귀환자를 찾아 헤매던 때였다. 김철수에 대한 보고서가 작성될 무렵이기도 했다.
사결은 협회의 입을 빌려 토벌에 참가한 모두에게 경거망동하지 말 것을 지시했는데 공적에 눈이 먼 헤스티아 길드장이 독단적으로 벽을 뚫어보겠다고 나섰다가 길드의 정예들을 개죽음시켰다. 그게 이번 사태의 핵심이었다.
사결이 뚱하게 대답했다.
“미로가 왜.”
“굳이 크레딧 길드에서 책임지겠다는 말까지 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덕분에 다들 입 싹 닫아서 퇴근이 빨라졌잖아.”
“그건 잘하셨… 이 아니라.”
월급쟁이 이현수는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
“말 돌리지 마시고요.”
“여태 잘해 왔잖아. 난 남에게 큰 기대 안 해. 그냥 지금까지 해 온 만큼만 해주면 충분하거든.”
사결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현수는 불현듯 깨달았다.
“처음부터 직접 해결할 생각이셨군요.”
“이렇게까지 골머리를 썩일 줄은 몰랐지만.”
“설마 그 미친 계획을 진짜 실행할 생각은 아니시겠죠.”
사결이 쓴웃음을 지었다.
토벌 관계자들이 여태 놀기만 한 건 아니었다. 수많은 연구진과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방법이 하나 제안됐다.
미로의 가장 얇은 곳을 마력운용계의 힘으로 뚫는 것이었다. 하지만 얇다고 해도 상대적인 것일 뿐, 직경이 1.4km나 됐다.
게다가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속성끼리 부딪쳐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는 게 밝혀졌고, 결국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면 한 사람이 해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하지 않은 건 사결 때문이었다.
수치가 말해주고 있었다. S급을 뛰어넘는 그라면 가능할지 모른다고.
해당 지점의 미로 안에 있는 마물은 분류번호로 B-27. 헌터들은 그것을 독무벌(毒霧)이라고 불렀다.
크기는 성인 팔뚝만 하고 벌과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벌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독침은 없다.
무리생활을 하고 한 마리만 죽어도 남은 수천 마리가 그 죽음을 알아차려 일제히 공격해 들어온다. 말이 B급이지 일단 건드리면 S급도 도망치는 것 외엔 상대할 방도가 없는 녀석이었다.
“아무리 사장님이라도 그걸 한 방에 몰살시키는 건 불가능합니다.”
“시뮬레이터가 가능하다잖아.”
“확률일 뿐이죠! 그것도 반반이라고 나왔잖습니까!”
“그래. 그렇지.”
사결이 순순히 인정했다. 닦달하던 이현수는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정적을 기다렸다는 듯 사결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더더욱 귀환자를 손에 넣어야만 해.”
김철수.
아니, 서여원이야말로 자신이 여태 기다려온 사람이었다.
“내가 왜 귀환자를 카나리아라고 하는지 알아?”
“…….”
“수백 년 전 광부들은 갱도에 들어갈 때면 카나리아 한 마리를 가지고 들어갔어. 인간보다 가스에 훨씬 민감한 카나리아가 횃대에서 떨어지거나 비틀거리면 그걸 신호로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거든.”
어렸을 적 그 이야기를 들은 사결은 카나리아에 매료됐다. 매일 찾아보며 키우겠다고 어머니를 조르다 어떤 날은 꿈까지 꾸었다.
탁한 전구가 깜박거리는 음산한 갱도의 어둠 속에서 사결은 그렇게나 바라던 카나리아를 만났다.
네모반듯한 상자에 담겨 있던 책 속의 카나리아와 달리, 꿈속의 새는 사결의 어깨에 앉아 빛나는 날개깃을 부리로 정리했다.
스멀스멀 검게 형상화된 가스가 다가오자 용맹하게 날아올라 맞서 싸우기도 했다.
새는 어둠뿐인 갱도에서 사결을 인도했다. 마치 등불과 같이. 사결은 홀린 듯 길잡이를 따라 꿈길을 걸었다.
“좋아한다는 건 진심이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 나를 위해 기꺼이 수해로 들어갈 그를 상상하면 지금도 거기가 설 것 같은데.”
결국 변한 것은 없다.
모든 건 수해의 심부에 닿기 위해서라고. 사결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현수가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그러다 벌 받으실 겁니다.”
사결이 큰 소리로 웃었다. 별소릴 다 한다는 표정은 덤이다.
“네가 그런 말 하니까 진짜 웃기는군.”
“저도 후회 중이니까 닥치십쇼.”
“하하.”
그때, 사결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윽?”
단단한 상체를 앞으로 살짝 숙인 그가 자신의 뒷목을 부여잡았다. 드라마 속 식상한 장면이 오버랩되는 모습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갑자기 목 뒤에서 정전기 같은 게….”
“조금 있으면 겨울이죠. 건조해서 그런 모양입니다.”
“비유가 그렇다는 거지 뭔가 느낌이 좀 달랐는데.”
“천벌 받은 거 아닙니까?”
이현수는 슬쩍 찔렀다가
“흠, 겨우 이런 게 천벌이면 좀 더 막 나가도 되겠는데?”
“…….”
본전도 못 찾았다.
주둥이로 이현수를 제압한 사결이 단말기를 조작했다. 익숙한 문자창이 떴다. 새로 보낸 문자도 받은 문자도 없이 마지막 문장은 [자꾸 이상하게 뜁니다.]에서 끝나 있다.
톡톡.
화면을 몇 번 두드린 사결이 새 문자를 보냈다.
[그게 자연스러운 겁니다.]
[전 당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거든요.]
[원래 좋아하면 그런 겁니다.]
기대한 답장은 오지 않았다. 아직 오지 않은 걸 수도 있고,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상관없다. 지금부터 만나러 갈 테니까.
“시간이 없어. 바로 백담으로 돌아간다. 지금도 감시는 계속하고 있지?”
“물론입니다. 믿을 만한 사람으로 따로 팀도 꾸렸습니다.”
“절대 아니라며 등한시할 땐 언제고….”
이현수의 이마에 혈관이 돋았다.
“그땐 귀환자라는 걸 몰랐으니까 그렇죠. 확실해진 이상 그 사람이 절실하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현수가 사결을 아는 것처럼 사결 또한 이현수를 속속들이 잘 알았다. 저 말은 진심이었다. 저래 봬도 비서로선 꽤 유능한 인물이니. 그런 사람이 알아서 챙긴다니 걱정할 게 없다고 좋아해야 하는데 사결은 어쩐지 기분이 나빴다.
“내 거야.”
“뭐라는 겁니까.”
“여원은 내 거라고. 너보단 내가 더 절실해.”
이현수는 급격히 피곤해졌다.
“예. 그렇다고 칩시다.”
순순히 대답하자 사결이 싱글거렸다. 그가 시선을 다시 창밖으로 돌렸다. 지금은 백담에서 얌전히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귀환자도 곧 이곳으로 올 것이다.
사결은 그와 함께할 미래를 상상하며 단꿈에 젖었다.
자신만의 특별한 카나리아를 상상하며 잠이 들었던 어린 날. 그때의 설렘이 조금이나마 돌아온 듯했다.
“그 인간이 물려준 유산 중 마음에 드는 건 그거 하나뿐이군.”
어조는 평소와 같았지만,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사결의 눈에 검붉은 살기가 넘실거렸다. 사결의 유년 시절의 복잡한 사정을 아는 이현수의 눈이 어둑해졌다.
“아 뭔데. 왜 이렇게 느려?”
“길이 막혀서 그렇습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세단은 도착지를 향해 최대한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곧 사결의 눈에 하늘 높이 솟은 포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공정 선착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