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를 잡는 방법 (30)화 (30/106)

30화

한편 냅다 도망친 여원은 정처 없이 길을 헤맸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버스를 탔지만 잘못된 방향이었다. 내려서 다른 번호의 버스를 타고 세 번째가 되어서야 겨우 맞는 버스에 올랐다. 차가운 창에 머리를 기댔다. 그제야 숨이 트이는 기분이다.

하아.

긴 숨과 함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진이 다 빠졌다. 3일 밤낮 전투에 시달린 것보다 심한 탈력감이 들었다. 그는 집에 도착해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 몸을 웅크렸다.

두근.

두근.

평소엔 뛰는 줄도 몰랐던 심장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저도 모르게 손으로 가슴 위를 눌렀다. 그러자 이곳에 닿았던 다른 손의 감촉이 떠올랐다. 흠칫했다. 멋대로 뻗어 나간 생각이 자신을 영화관에 되돌려 놨다.

검푸른 색으로 넘실거리던 어두운 공간. 고백을 받고 전쟁터가 되어버린 머릿속에서 이정표처럼 깜박이던 생각이 있었다.

싫지 않다.

“……!!”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누르고만 있던 손으로 가슴께를 꽉 움켜쥐었다. 우둘투둘한 상흔은 여전히 손바닥을 자극했다. 하지만.

두근.

두근.

지금은 그 안쪽에서 날뛰는 심장에 집중하느라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해가 저물고 밤이 늦도록 여원의 두근거림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 * *

쿠우우.

대도시인 그리샤에서 비공정이 오가는 건 신기할 일도 아니다. 많게는 하루에 다섯 대가 넘는 비공정이 포탑 형태의 전용 선착장을 이용했다.

A-3 포트에는 두 명의 관리인이 나와 있었다. 한 명은 포탑 총괄부서 소속이었고, 다른 한 명은 선착장 관리인이었다. 훤칠한 키의 남자가 이마 위로 손 그늘을 만들었다.

“역시 크레딧 길드네. 비공정의 체급이 달라.”

“최근 입출항 내역이 잦던데, 무슨 일 있나?”

“이번에 수해에서 뭔가 문제가 생겼다며. 어디서 지원이라도 불러온 게 아닐까?”

관리인의 말에 포탑 총괄부서가 비웃음으로 답했다.

“고등급 헌터의 수가 가장 많은 것도 그리샤고 가장 질이 좋은 것도 우리 그리샤잖아. 뭐, 어디서 지원군을 데려와? 다른 도시들은 자기네들 게이트 막는 것만으로도 급급할 텐데.”

“하긴.”

관리자가 멋쩍게 웃으며 손에든 패드를 켰다.

구우우.

묵직한 소리와 함께 서서히 하강한 비공정이 착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경로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도킹용 장비도 다시 한번 체크했다. 이상은 없다.

쿠웅.

착륙이 완료되고 내릴 수 있는 통로가 연결됐다. 비공정은 조용했다. 대기하던 이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때는 ‘어후, 죽겠다.’ 내지 ‘드디어 그리샤인가!’ 따위의 말을 내뱉는 헌터들이 우글우글 쏟아졌었다.

비공정의 연료는 마정석. 한 번 움직이면 기본으로 억대의 돈이 나가는 돈 먹는 하마였다. 그래서 어느 길드든 실을 수 있는 건 다 실어 움직이는 게 기본이다. 그게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런데 크레딧 길드는 조용했다.

“뭐야, 왜 아무도 안 내려? 안에 뭐 문제 있는 거 아냐?”

“에이 설마. 크레딧 길드인데….”

포탑 총괄부서와 관리인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너, 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가서 알아보고 올게!”

“뭐?! 야 이씨, 그냥 같이 가!”

두 사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포탑 내부로 달려 들어갔다.

같은 시각. 비공정의 선수는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백담에서 그리샤까지. 인원을 교대하며 꼬박 사흘을 날아왔다. 집에 가서 씻고 눕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그를 포함해 누구 하나 함부로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도킹을 마치고 통로의 연결이 끝났음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한 사람 때문이다. 이 비공정의 실질적인 주인이자 유일한 손님. 그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이 비공정을 움직이는데 필요한 인력이었다.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사결은 미동도 없이 손목의 단말기만 들여다봤다. 크루들이 저들끼리 시선을 교환했다.

“대체 뭘 보고 계시기에 저렇게 심각한 표정일까요?”

“우리 같은 것들은 몰라도 되는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만의 중압과 책임이 있는 거지.”

“그렇군요.”

“그래. 어쩌면 도시의 명운을 좌지우지할….”

사결은 여원과의 문자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30분 전 마지막으로 전송한 메시지였다.

<한동안 일이 있어 만나지 못합니다.>

234개째 문자였다. 물론 자신이 보낸 것이다. 사내에게선 한 번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사결의 손끝이 화면을 톡톡 두드렸다. 이렇게 의미 없이 시간만 버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어차피 대답이 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기다리고야 마는 것이다.

‘내가 진짜 귀환자가 간절하긴 하구나.’

어차피 전부 연기일 뿐인데. 이러고 있으니 진짜 연애하는 기분이 들었다. 픽 웃은 사결이 포기하고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문자가 살짝 위로 밀려나며 맞은편 아래쪽에 색이 다른 말풍선이 떴다. 사결의 눈이 크게 뜨였다. 순간 오류인가?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만큼 사내의 답장은 현실성이 떨어졌다.

<얼마나요.>

쾅!

주먹을 쥔 사결이 팔걸이를 내리쳤다. 아닌 척 까마득한 윗선을 살피고 있던 크루들이 일제히 움찔했다.

“무, 무, 무슨 일인 걸까요?”

“우, 우리 같은 것들은 몰라도-”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시벌!”

“…….”

혼란에 빠진 크루들이 뭐라 쑥덕이든 사결은 개의치 않았다. 문자를 234개나 씹더니 내가 찾아가지 않는다니까 얼마나 안 오냐고 물은 거야 지금?

사결이 꼬고 있던 다리를 풀었다. 밴드에서 단말기를 분리해 손에 쥔 그의 엄지가 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존나 귀엽…>

문장을 만들다 말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사결은 쓰던 걸 지웠다.

<뭘 믿고 그렇게 귀엽…>

앞엣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탁탁탁. 다시 지운 그가 기도하듯 양손을 모았다.

“아, 시발 진짜.”

숨을 길게 내쉰 사결은 우선 흥분을 가라앉혔다. 겨우 침착함을 되찾은 그가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일주일은 족히 걸릴 겁니다.>

<가능한 한 빠르게 돌아가겠습니다.>

<같이 갈 카페도 미리 봐 뒀습니다.>

<그러니 케이크 사준다는 애송이가 있어도 절대 따라가지 마세요.>

<현장의 인부들도 가능한 한 어울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친절한 남자는 다 흑심이 있는 겁니다.>

<사고 때문인지 도시가 뒤숭숭하던데 가능하면 돌아다니지 마세요.>

<나 없다고 바람 같은 거 피면 안 됩니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벌써 보고 싶네요.>

<좋아합니다.>

그러나 문자 내용은 전혀 침착하지 못했다.

들썩임과 팔불출이 텍스트로 보이는데도 사결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흠. 완벽하군.’

깔끔하고 질척거리지 않고 요점만 제대로 전달했다. 작업을 마친 그가 화면을 위로 올렸다.

그리고 여원의 답장 부분을 캡처했다.

찰칵.

사결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자 관리인 대신 이현수와 길드원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공정이 정박한 게 언제인데 이제 하선하십니까.”

“그래. 잘 다녀왔다.”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곤하시겠지만 바로 회의장으로 가셔야 합니다.”

“알아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됐지?”

서로 말을 주고받긴 하는데 저걸 과연 대화라고 할 수 있나. 뒤따라 내린 크루의 표정이 묘해졌지만, 길드원들은 익숙한 듯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회의 결원은?”

“없습니다. ‘수해 토벌’에 참가한 모든 길드의 관계자가 한 명 이상 와 있습니다.”

“그럼 덜떨어진 헤스티아 놈들도 와 있겠군. 혹시 길드장이 직접 왔나?”

“아뇨. 부길마가 왔습니다.”

“그거 아쉽네. 쓸데없는 명령이나 내리는 주둥이를 얼려버리려 했더니.”

“…….”

정말로 아쉬워하는 사결의 등에서 냉기가 넘실거렸다. 길드원들이 춥다고 호들갑을 떨며 거리를 벌렸다. 포탑을 벗어난 그들은 세 대의 차에 나누어 탑승했다.

이현수와 사결은 자연스럽게 같은 세단을 탔다.

그리샤의 도심지는 고층 빌딩으로 가득했다. 빛을 반사하는 유리가 거리를 밝혔다. 도로는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고 어딜 가나 사람으로 넘쳐났다. 드넓게 조성된 인공 숲엔 운동하거나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을 하는 이들이 가득했다.

지금의 그리샤를 본 이들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20년 전의 이곳의 모습을. 그 참상과 폐허를. 직접 보고 겪지 않았다면 저도 믿지 못했을 거라고 이현수는 생각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이렇게 조용하지.’

보통 때 같았으면 생글거리는 낯으로 헤스티아 놈들의 오장육부를 하나하나 꼽아가며 어디부터 어떻게 얼려버렸을지 늘어놨을 사람이다. 고작 이렇게 끝날 리가 없는데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니 어째 불길했다.

‘혹시 더 큰 사고를 치기 위한 추진력을 얻는 중인 건 아니겠지.’

사결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심각해진 이현수가 망아지 같은 길드장을 힐금거렸다. 사결은 그러거나 말거나 단말기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제게 오는 연락의 9할은 안 좋은 소식이고, 나머지 1할은 광고라며 단말기를 손목에 찬 똥 취급하더니.’

진짜 이상했다. 이현수의 의심이 깊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결은 심각하게 화면을 들여다봤다.

놀랍게도 새 메시지가 세 개나 와 있었다. 사결이 오, 하며 내용을 확인했다.

<좋아한다는 말은 그만하시면 안 됩니까.>

<심장이>

<자꾸 이상하게 뜁니다.>

콰앙!

주먹이 차의 옆면을 후려쳤다. 충격으로 차 문이 움푹 패이며 차체가 흔들거렸다.

“으아악!”

“으악!”

운전사와 이현수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0